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87
286.핌불베르트 3
소크 경은 아자딘의 입에서 엘리멘탈 웨일링과 천사의 피를 동시에 언급한 것이 공교로운 모양이다.
“지금 구난기사단의 셀레스티얼과 엘리멘탈 웨일링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네. 하지만 보아하니 자네는 몰랐던 모양이로군.”
“…?”
“핌불베르트가 다가오는 지금에 와서 따질 일은 아니지. 나중에 그리셀다에게서 아샤지트의 눈이나 얻어낼 생각을 하게. 추위가 이어지면 사람들이 얼어 죽어 나갈 테니 웬디고의 뼈 칼을 되찾게. 그럼. 나는 이만 가도록 하겠네. 귀찮은 눈이 들러붙기 전에.”
소크 경이 자코모의 발상을 묘한 발상이라고 평한 것은 그 발상이 기발함이 아니라 인과관계상 어떤 역설이 묻혀있음이 분명했다.
그게 무엇일까? 더 들어보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소크 경은 이것에 대해서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수고하게 아자딘 경. 핌불베르트가 다가오는 이때, 과연 저 타락한 기사단안에서 뭘 할 수 있는지 기대하지!”
와이트들이 뼈만 남은 와이번을 끌고 와서 소크 경이 그 와이번을 타고 날아오른다.
“……”
아자딘은 이 기묘한 기사단 선배(?)의 비행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느꼈다.
분명히 사악하고 미친 흑마법사인데….
지금까지 구난기사단에 들어와서 아자딘이 대한 인물 중 아케나르 주교를 제외하면 가장 호의적이고 도움도 많이 되는, 정말 모범적인 선배였다.
“구난기사단이 그만큼 막장인 건가. 제대로 된 선배가 소크 경밖에 없다니….”
*********
아자딘은 소크 경에게 받은 ‘무기 찾는 운명’의 주문을 읽어보았다.
이 마법은 마치 신화의 영웅들처럼 운명 그 자체에 작용해서 인연이 있는 것 중 무기를 되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마법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날 낚시를 하다 잡은 물고기 배를 갈랐더니 옛날에 잃어버린 반지가 나왔다더라.
그런 식으로 흐릿한 인연들을 어떻게든 이어서 연결하는 마법으로 굉장히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고등 마법인 주제에 효과는 미심쩍다.
그러나 전투에서 잃어버린 웬디고의 단도를 되찾기 위해서는 이런 것에라도 기댈 수밖에 없다.
“이런 게 정말 효과가 있나? 어렵긴 더럽게 어려운데? 게다가 청색 마력을 쓰잖아?”
아라엘과의 융합으로 마법소양이 대단해진 아자딘에게도 이 마법은 꽤 어려웠다.
하지만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소크 경도 효과가 있으니까 넘겨준 거겠지.
아자딘은 더듬어 가며 주문을 써보았다.
그러자 머리가 지끈하고 울렸다. 마력이 순식간에 고갈되면서 현기증이 오고 몸에 한기가 든다.
“…뭔가 반응은 있네. 하지만… 모르겠군. 청색 마력은 내 주력 마법도 아니고.”
아자딘에게는 무색의 화조풍월, 백색의 신왕진서, 두 계통의 마력이 기초로 깔려있다.
여기에 아라엘이 연구한 흑색의 사령술이 뒤를 잇고 있으며 적색의 파괴마법과 청색의 운명마법은 다른 마법들에 비해 부실했다.
그런데… 이 마법은 청색 마력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자딘을 쉬이 피로하게 했다.
정말 웬디고의 단검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계속 이렇게 마력탈진을 겪어가며 주문을 쓸 수는 없었다.
‘이거 소크 경이 날 해치려고 준 마법은 아니겠지? 마법 자체는 순수하게 운명 엮기로 되어있는데.’
아자딘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
북방 아라가사의 대원들이 아자딘의 앞에 나타났다.
“뭐야? 암살자인가?”
“아닙니다. 그게.”
“실은 아자딘 경을 미행하라고 왕자님이 시켰는데.”
“핌불 호드가 무서워서 더 다가오지 않고 숨었군?”
“…네.”
“잘했다.”
빈정거리는 것 같지만 진심이었다.
만약 이들이 핌불 호드에게 걸려서 소크 경과 싸움이라도 벌어졌으면 칼린츠 왕자 입장에서는 아자딘을 미행시키던 부하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는 것이다.
오해라고 말하기도 이상해지는 꼴이 된다.
‘그런데 이 자식들 아라가사는 아라가사구나. 매복 잘하네. 나도 발견 못 했는데.’
심지어 상공을 날며 정찰하는 아라엘의 목소리도 이들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라엘의 목소리만 믿고 주위 경계를 소홀히 하면 큰일 날 것 같다. 좋은 교훈이 되었군.’
아자딘은 북방 아라가사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칼린츠 왕자는 뭘 할 셈이지? 날 미행해서 뭘 얻으려고?”
“실은 왕자님은 아자딘 경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 미행하면서? 더 의욕을 내면 아예 납치라도 하는 거 아냐?”
“그렇다기보다는 보아하니 아자딘 경은 여자도, 돈도 관심이 없는 듯해서 곤란해하고 계십니다.”
칼린츠 왕자는 다른 귀족들이나 성직자를 구워삶듯이 뇌물이나 향응으로 거래에서의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상대를 믿을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런 그로서는 아자딘처럼 욕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이다.
“정보를 주면 좋아한다고 전해줘.”
“그러니까 그건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그런데 왜?”
“왕자님은 혼자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으신 겁니다. 돈과 향응을 제공할 테니 정보를 그쪽에서 줘야지 이쪽이 먼저 정보를 주고 싶지 않다. 그런 뜻이지요.”
“혼자만 속물이 아닌 척하고 싶은데, 그 자리를 아자딘 경이 먼저 차지한 데다가 얼굴도 워낙 미남이니까 많이 상심하신 것 같습니다.”
북방 아라가사 대원들의 평가가 어째 묘하다.
그러니까 칼린츠 왕자에 대한 이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머저리지만 우리 머저리. 그런 감정이 담겨있는 듯하다.
여기서 좋다고 아자딘이 칼린츠 왕자 험담을 하면 이들은 진심으로 분개하리라.
욕을 해도 자신들이 해야지 남이 칼린츠 왕자를 욕하는 건 싫다. 그렇게 받아들일 소지가 다분했다.
“잔도 그렇고 너희들도 보니까 왕자가 인복이 좀 있나 보네?”
“네. 그게 말이지요.”
북방 아라가사의 대원들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미노타우르스 기사, 셀림은 아자딘의 완전한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는지 주점에서 아자딘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가 누구에게 기사 서임을 받았는지 등을 떠들어댈 정도였다.
십부장 잔은 그런 아자딘에 대한 정보를 칼린츠 왕자에게 전해주었다.
“아니 데스나이트 플랑크 경이라면….”
“폐하에게 마지막으로 기사서임을 했다는 그 인물이지요.”
“아, 엄청 싫어하겠는데? 그 꼰대가 거기에 좀 집착하고 있던 것 같은데.”
“미노타우르스가 너무 허풍이 심해서 귀담아들을 게 못 됩니다.”
“아니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 셀림이라는 미노타우르스 놈이 아자딘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건 확실하잖아? 아주 그냥 간에 쓸개에 혓바닥까지 다 구워 먹으라고 내줬구만?”
칼린츠 왕자는 잔을 바라보고 물어보았다.
“널 보고 그렇게 날 칭송하고 다니라면 하겠나? 잔?”
“뭐 이쁜 구석이 있으셔야지요.”
“잘생겼고 술을 잘 마신다는 거? 싸움도 잘하고. 호탕하고 남자답지.”
“자기 입으로 남자답다고 말한 시점에서 남자답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아자딘 그 인간 엄청나게 미인입니다. 상관이 그쯤 되면 확실히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고 싶어질 만하지요.”
“에이. 아자딘 그거? 사내가 듬직한 맛이 있어야지. 미인이라는 말이 나온 시점에서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주 단시간 안에 그 미노타우르스로부터 충성을 바치게 만들었잖습니까? 기간이 2주도 안 지났을 텐데 언제 이렇게 충신으로 만들었는지….”
“그건 정말 대단하네. 나도 충신들을 잔뜩 만들고 싶군.”
“제가 이미 만고의 충신이잖습니까?”
“너 같은 놈 말고 이왕이면 절세의 미녀로, 데리고 다닐 때 폼도 나고 애인도 되고.”
“어쩔 수 없군요. 전 그런 취향은 아닙니다만 왕자님이 원하신다면 엉덩이에 힘 좀 풀어봐야겠습니다. 처음이니 살살 부탁드립니다.”
“…만고의 충신이긴 하구나. 됐다. 이 자식아. 꿈에 나올까 두렵다.”
칼린츠 왕자는 껄껄 웃고는 턱을 괴었다.
“넌 그와도 거래하고 있지?”
“네. 약간은.”
“약간은 무슨….”
“염려 마십시오. 그래도 제 엉덩이는 왕자님 겁니다. 아자딘이 달라고 해도 왕자님께 예약되어 있다고 말할 겁니다.”
“그거참 든든한 소리를 하는 구만. 하지만 작작 해라. 응?”
*********
아자딘은 그 사실을 전해주는 북방 아라가사 대원들을 보며 말문이 막혔다.
“칼린츠 왕자가 인복이 있긴 있나 보군.”
그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인복 넘치는 왕자가 날 미행해서 뭘 거래하려고? 잔의 엉덩이? 그거라면 관심 없으니까 왕자님 다 가지시라고 해.”
“그게 일단, 직접 만나보시지요.”
“이거 참 오늘 보자고 하는 자들이 많네? 알겠다. 안내해라.”
아자딘은 칼린츠 왕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 거처 앞에는 빈 술병들이 즐비해 있었다.
빈 술병들 대부분이 곧 돈인데 여기 쌓인 술병을 내다 팔아도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리라.
‘엄청나게 퍼마셨군. 무슨 일이지?’
아자딘이 감탄할 때 방문이 열리고 조금 초췌한 모습의 왕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 아니 이게 누구야? 아자딘 경 아냐? 어쩐 일인가?”
“칼린츠 왕자. 술을 많이 마셨군. 괜찮나?”
멀리서 봐도 술 냄새가 확 풍겨온다.
“이건 북방인들 다 원래 그렇다네. 별로 특이할 건 없어.”
“뭔가 상심하신 것 같군? 무슨 일 있었나?”
“특이할 거 없다니까… 아니. 아니지. 일은 있었지.”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에게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구난기사단 총본부인 세인트 말로리에서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에게 보낸 명령서였다.
“음?!”
아자딘은 그 내용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곡물을 공출하라는 명령서군. 그런데 수량이….”
“이제 겨우 보리 수확한 철인데 작년 공출량을 다 내라고 하지 뭐야. 역시 이 자식들 날 쳐내려고 이러는 게 틀림없어.”
“뭐 차드라 고원은 구난기사단으로서도 우선순위가 낮으니까. 여기는 말하자면 강제 노역장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좀 돌았군. 일단 다시 고려해달라고 답장은 보냈나?”
“물론 보냈지. 그런데 그 편지를 보낸 놈이 누군지 아나?”
아자딘은 편지에 서명과 인장을 살펴보았다.
서명 옆에 밀랍을 녹여서 인장반지로 인장을 찍었다.
워낙 서명을 흘려 써서 읽기 힘들었지만, 인장과 대조하니 카르나라는 이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카르나? 누구지 이거?”
“내 조카.”
“조카?”
“그리고 이번에 새로 생긴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단장이네.”
아자딘은 깜짝 놀랐다.
구난기사단이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셀레스티얼들을 모아서 그들만으로 부대를 편성하려고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그 단장이 북제의 손자라고?
‘아니 잠깐만. 애초에 북제가 셀레스티얼의 비밀을 모르니까 셀레스티얼을 납치하려고 한 거 아니었나? 그런데 북제의 손자가 셀레스티얼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