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88
287.셀레스철 파이어 1
벌어진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아자딘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히 알기 힘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당신 조카라면 그도 야에가스 신족일 텐데. 야에가스 신족과 셀레스티얼의 혼혈이라도 된단 말인가?”
“나도 잘 몰라!”
“…당신이 모르면 어떻게 해?”
“아니, 농담같이 들리겠지만 진짜라고! 내가 왜 술을 퍼먹고 있는데?!”
“북방인은 다 그렇다면서?”
“아, 젠장! 그건 그거고!”
칼린츠 왕자는 자신의 말꼬리를 잡는 아자딘에게 짜증을 냈다.
“정말 모른다고?”
“그래! 내가 몇 번째 자식인지도 모를 판인데, 그 조카까지 알 게 뭐야?”
“아니 잠깐만. 당신, 셀레스티얼 납치하려고 수작 부렸잖아? 북제가 셀레스티얼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북제의 손자가 이미 셀레스티얼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이미 셀레스티얼을 확보했으면서 굳이 왜 이즈밀라를 납치하려고 했어?”
“아니 공식적으론 내가 아니지. 납치는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군.”
아무리 정신없는 상황이래도 이즈밀라를 납치하려 했던 혐의는 부인한다.
그러나 잠시 후 사실상 혐의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니까 난 지금 그 말 못 할 짓을 하면서 고생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조카라는 놈이 튀어나와서 셀레스티얼이라니! 심지어 그것도 한두 살 어린애도 아니고 18세야! 이게 대체 말이 돼? 날 바보로 아는 거야?”
“…나에게 묻지 말고 너희 아버지에게 물어봐야지?”
“그래!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난 오지에 처박혀 있고, 내 아버지란 작자 얼굴 안 본 지 벌써 몇 년이냐? 하도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나네.”
보아하니 북제는 자식을 너무 많이 낳아서 그 자식의 자식들, 손자 세대쯤 되면 누가 누군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도 파악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해서 야에가스 신족의 혈통을 타고난 이가 셀레스티얼이 된 걸까?
애초에 셀레스티얼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때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칼린츠 왕자! 자리에 있습니까?”
젝트 경의 목소리였다.
“들어오시오.”
“실례. 음?”
젝트 경은 아자딘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선객이 있었군.”
“젝트 경. 당신도 모르고 있었나? 북제의 손자 카르나가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단장이 되었다는데?”
아자딘이 대놓고 질문을 던지자 젝트 경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칼린츠 왕자, 설마 이자에게도 그 사실을 알린 거요?”
“내, 내가 알렸다기보다는 그가 스스로 알아낸 거야.”
칼린츠 왕자는 젝트 경의 힐난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딘가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에 아자딘을 붙잡고 자기 아버지 욕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젝트 경과의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가 경계하는 아자딘에게 정보 공유를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젝트 경이 보는 앞에서 둘이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보아하니 젝트 경 당신도 그 일 때문에 여기 온 것 같은데.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다면 이런 오지에 고문으로 오지 않았을 거요.”
젝트 경은 칼린츠 왕자에게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셀레스티얼의 비밀을 파헤치고 구난기사단을 장악하려는 것이 젝트 경과 왕의 교회의 목적이었을 것이고, 칼린츠 왕자는 그 협력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칼린츠 왕자는 그저 곁가지이고 북제는 따로 손자를 둬서 이미 구난기사단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도 당연하리라.
“여하튼 칼린츠 왕자. 내가 찾아온 것은 당신의 고문이라는 영광된 직책을 수행하기에 나의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오. 그래서 고문직에서 사퇴하고, 파이어가드의 대장직 내놓을까 하오.”
“방금 오지라고 말해놓고선. 무슨 겸양을 굳이….”
“…….”
아자딘이 젝트의 말꼬리를 잡자 젝트가 눈을 부릅떴다.
“아자딘 경. 당신에게 신왕진서 사본이 있다는 의혹이 있는데… 이제 나는 파이어가드의 대장도 아니고, 왕자의 고문 역할도 내려놨으니 구난기사단과 관계가 없소. 그러니 당신을….”
“그저 의심만으로 구난기사단의 수련기사인 날 털어보겠다는 건가? 그거참 좋군. 해보시던가?”
“…….”
젝트는 아자딘에게 신왕진서 사본이 있다는 의혹을 여전히 품고 있지만, 직접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보다 칼린츠 왕자. 방금 편지를 보니까 구멍이 좀 있는데.”
“구멍?”
“보아하니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서 인기를 끌어모으기 난민들의 구휼작업에 사용할 식량을 공출하라는 것 같은데. 너무 많은 양을 요구해서 곤란하다고, 챕터마스터와 그 고문이 직접 방문해서 만나보는 건 어때? 이 카르나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칼린츠 왕자 당신도 조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모른다며?”
“그렇지.”
“그럼 직접 만날 핑계가 있는데 만나야지?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도 있고 말이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산에 들어가야지?”
“…….”
확실히 아자딘의 제안이 그럴싸해서 칼린츠 왕자도, 젝트 경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지만 챕터마스터가 빠지면….”
“에이, 어차피 이미 유명무실한데 자리 비운다고 큰일 나겠어? 없어도 잘 굴러가.”
“…….”
칼린츠 왕자가 걱정하는 건 그가 부재중에 일이 잘 안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잘되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미 차드라 고원의 제일가는 세력으로 성장한 아자딘이 챕터마스터인 그가 없는 사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남아서 뭔 짓 할까 걱정되면 나도 함께 가지. 그 카르나라는 인물을 만나보자고.”
“…으음.”
젝트 경은 아자딘의 말에 신음했다.
카르나를 아자딘이 만나보게 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자딘을 혼자 차드라 고원에 남겨두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이 전령일족 놈. 그냥 쳐내버릴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았는데. 노련해졌군.’
과거 아자딘이 그냥 전령일족의 일원일 때는 왕의 교회의 이단심문관으로서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의 성기사가 된 지금은 그렇게 함부로 쳐낼 수 없다.
“좋아. 같이 카르나를 만나보자고. 어떤 놈인지 나도 궁금하다.”
칼린츠 왕자는 젝트 경의 심경도 모르는지 아자딘의 동행을 이미 단정 지은 듯하다.
“카르나 경을 만나보는 건 함께 하더라도 가는 길을 굳이 같이 갈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젝트 경은 아자딘이나 칼린츠 왕자와의 동행은 거부했다.
젝트 경 입장에서는 아자딘이나 칼린츠 왕자나 꼴도 보기 싫은 놈들인데 굳이 함께 갈 이유가 없다.
“칼린츠 왕자의 고문이 아니면 무슨 명분으로 만나려고?”
“왕의 교회의 이단심문관의 직책으로도 충분히 만남의 기회는 만들 수 있소. 염려하지 마시오.”
“뭐 그럼 따로 가서 현지에서 각자 행동합시다. 젝트 경, 파이어가드 고문직은 그만두더라도 카르나 경을 만날 때 정도는 함께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카르나 경도 따로 만나실 겁니까?”
“따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아자딘 경. 그럼… 그간 수고 많았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세인트 말로리에서 뵙도록 하지요.”
젝트 경은 파이어글리프의 고문직에 공식적으로 사표를 던지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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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해가 전 세계적으로 극심히 퍼지면서 누구나 핌불베르트를 의심하게 되었다.
왕의 교회는 공식적으로 핌불베르트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한 왕이 왕좌를 지킬 때 왕화의 빛이 세계를 수호한다.
즉 핌불베르트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지금의 왕들이 자격이 없다는 뜻이니 왕의 교회가 그러한 재앙을 인정할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남해에 얼음이 떠다니고 각지에 우박과 냉해가 달리고 있으니 핌불베르트를 의심하는 것은 지성이 부족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지만 대비는 해야 한다.
그것이 왕의 교회 내부의 방침이었다.
그리고 그 대비 방법은 바로 북제와의 협력을 통해서 구난기사단의 옥토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제의 손자가 셀레스철 파이어의 단장이 되었다면 이는 북제가 그간 왕의 교회를 기만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기에 젝트 경은 파이어가드의 고문직을 박차고 나갔다.
애초에 이 자리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미관말직이었다.
이단심문관이나 되는 인물이 맡기엔 너무나 한직이라 급이 맞지 않았다. 칼린츠 왕자만 보고 왔을 텐데 뜬금없이 카르나라는 인물이 나타났으니 젝트 경은 배신감과 모욕을 느꼈으리라.
“성급하군. 직책 정도는 유지해도 됐을 텐데.”
아자딘은 젝트 경이 사표를 던지고 나가버리자 한마디 했다.
“으음. 어떻게 하겠나. 아자딘 경. 파이어가드 대장 자리가 필요한가?”
“…당신이 그걸 나에게 제안해도 돼?”
아자딘은 자신에게 파이어가드 대장 자리를 제안하는 칼린츠 왕자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
“흥. 알 게 뭐야? 애초에 내 아버지란 작자 얼굴도 기억 안 나는데. 나야 그렇다 쳐도 그쪽은 진짜 길거리에서 날 보면 못 알아볼걸?”
“원래는 어떤 계획이었는데?”
“핌불베르트가 다가오면 식량이 많은 이곳, 구난기사단의 땅을 놓고 싸움이 벌어질 테니까 그 전에 미리 우리 사람을 많이 심어두는 거였지.”
“노골적인데? 그걸 내게 말해줘도 되나? 친해진 다음에 말하자면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자고.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의 뜻에 내가 그렇게 충성할 이유가 없더라고. 내가 왕국을 혼자 계승할 것도 아니고, 다른 왕자들이 드글드글한데 말야.”
칼린츠 왕자는 카르나의 등장으로 굉장히 상처받은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인데 그도 모르는 사이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더는 자신이 아무리 아버지에게 충성하더라도 제대로 된 인상을 심을 수 없겠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낳아준 것 외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이 흐트러진 것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런 사람이 또 나중에 혈연을 이유로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는 법.
아자딘은 지금 상심해서 내지르는 칼린츠 왕자의 말을 흘려듣기로 했다.
“그럼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로서 통행증 한 장 써주시지요. 왕자님.”
차드라 고원은 유배지로 이곳에 배속된 이들은 별문제 없는 성기사라 하더라도 쉽게 차드라 고원을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아자딘은 전령일족 출신으로 구난기사단 안에서도 요주의 인물이다.
물론 아자딘은 이미 동남 바위 요새를 장악하고, 그곳을 통해서 차드라 고원 바깥과 교역을 시작하고 있었으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차드라 고원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챕터 마스터가 직접 허가해 주는 것과는 또 이야기가 달랐다.
과연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에게 통행증을 내줄 것인가?
“…좋아. 써주도록 하지.”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에게 업무상 필요하므로 차드라 고원 밖에서의 활동을 허가한다는 허가증을 아자딘에게 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