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89
288.셀레스철 파이어 2
칼린츠 왕자에게서 통행허가증을 받아낸 아자딘은 제일 먼저 셀림을 찾아갔다.
“히포그리프를 하나 빌릴 수 있을까? 이번에 세인트말로리에 갈 일이 생겼는데 육로로 지나면 그 이단심문관이 날 노릴 것 같아서 말이지.”
칼린츠 왕자의 고문으로 왔던 이단심문관 젝트 경은 아자딘이 신왕진서 사본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소크 경 같은 경우도 있으니까 너무 내 실력을 과신하면 안 되겠지. 피할 수 있는 싸움은 피하는 게 낫다.’
그래서 아자딘은 히포그리프를 타고 날아서 갈 생각이었다.
“빌리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자딘 경. 섭섭하군. 내 가장 빠르고 영특한 놈으로 하나 분양해 주겠네.”
셀림은 아자딘에게 자신의 히포그리프 중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히포그리프 중 최고라네. 원래는 주교가 내놓으라고 하던 거지만….”
셀림은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지혜의 플랑크 경에게 마지막으로 서임 받은 그대가 이 녀석과 함께 낡고 병든 기사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켜 주게. 아 그런데 아무리 아자딘 경이래도 히포그리프는 좀 연습이 필요할 텐데?”
“음 어떻게 타면 되지? 일단 셀림 당신이 타는 걸 보긴 봤는데.”
셀림은 아자딘에게 히포그리프를 타는 법을 가르쳐주고, 주의사항도 자세히 전달해 주었다.
아자딘은 수첩에 그 내용을 받아 적고 셀림에게서 히포그리프를 받았다.
목에 붉은 깃털과 파란 깃털이 섞인 감각적인 모습의 히포그리프였다.
“이름은 ‘파이어윈터’라네. 잘 어울리지? 달리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면 다른 이름을 지어줘도 되네.”
“잘 어울리는데. 불꽃과 얼음 같은 갈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리고 핌불베르트가 다가온다면 파이어윈터라는 이름이 더더욱 마음에 들게 될 거야.”
아자딘은 히포그리프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히포그리프는 대뜸 아자딘의 손을 앞발로 후려치려고 했다.
짐승답게 인간이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빠르기였지만 아자딘의 반사신경도 예사롭지 않다. 아자딘은 가볍게 히포그리프의 앞발 공격을 피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봐. 셀림 경. 이건….”
아자딘이 피했으니까 망정이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팔이 찢어져 나갔을 것이다.
“아, 약간 좀 장난을 좋아해.”
“약간?”
“그렇다니까. 나도 이렇게….”
셀림은 자기 몸 여기저기 살짝 긁힌 상처를 보여주었다.
가죽갑옷을 입고 다니고, 원체 모피가 두터운 미노타우르스니까 히포그리프의 앞발 채기 같은 것에도 약간 긁힌 상처 정도로 끝나지만 맨살의 인간은 치명상이 되었을 상처들이다.
“하아. 알겠어. 뭐 노력해 봐야지.”
아자딘은 셀림과 인간의 간극을 다시금 느끼며 파이어윈터의 등에 올라탔다.
일단 등에 올라타자 또 얌전히 말을 잘 들어서 파이어글리프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
확실히 셀림이 추천한 만큼 파이어윈터는 영특하고 재기발랄한 히포그리프였다. 팔을 할퀴려고 했던 것도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장난기 때문에 그랬다는 걸 알아챈 아자딘은 파이어윈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럼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하게. 다른 성기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게나.”
“뭐 딱히 본때를 보여주려고는… 그냥 가는 것뿐이야. 이상한 기대는 하지 말고.”
“아하하. 아자딘 경. 자네는 불꽃이고 번개이고 바람이지. 메마른 들판에 벼락이 떨어지면 불길이 일어나는 건 필연일세. 그대가 가만히 있으려 해도 불길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을걸?”
“과찬이 지나쳐서 독이 될 것 같군. 정말 조용히 다녀올 거야. 조용히.”
아자딘은 자신에게 이상한 기대를 걸고 있는 셀림에게 당혹감을 느꼈다.
*********
여행 준비를 끝마친 아자딘은 히포그리프 파이어윈터를 타고 하늘을 날아 세인트말로리로 향했다.
히포그리프는 힘이 강해서 미노타우르스인 셀림도 태우고 날 수 있지만 대신 지구력이 좋지 않다.
잠깐 타고 날아서 이동하는 게 전부라 결과적으로 하루 내 이동하는 거리는 말과 비슷하거나 그에 못 미쳤다.
하지만 하늘을 날아서 지형지물에 구애받지 않으니 결과적으로는 말보다 훨씬 먼 거리를 날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파이어글리프 남쪽, 숲 위를 날면서 아자딘은 숲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숲의 그늘 사이로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들이 있다. 처음에는 젝트 경이 암습하기 위해 대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지만, 그런 게 아니라 상당한 숫자의 군대가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뭐지? 뭔가가 숲에서 이동하고 있는데 내려서 확인해 볼까?’
하지만 그러다 괜히 화근을 건드릴까 두렵다.
그런데….
“끼이이….”
파이어윈터가 배고프다고 투정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려가야 했군.”
아자딘은 인근에 착지할 곳을 찾아서 조심스럽게 하강을 시작했다.
*********
계절은 여름이지만 여름답지 않은 차가운 공기가 남쪽으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파이어 글리프 남쪽의 작은 마을, 큰 우물 마을의 농부 디건은 심상치 않은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떨었다.
“아빠. 이 정도면 될까요?”
디건의 아들 던스는 나무 널빤지들을 모아와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목재소에서 파는 게 아니라 근처의 나무들을 썰어서 대충 만든 판자인지라 건조하면 갈라지겠지만 상관없었다.
디건은 그저 이번 여름, 우박들만 어떻게든 견뎌냈으면 되니까.
“그래. 목수 놈들이 나무 좀 다듬었다고 너무 비싸게 부르니까.”
“아 그런데 목재소의 델로버 씨가 그러는 데 그쪽에 젊은 일꾼들이 최근 사라졌대요. 드라이어드를 봤다나….”
“뭐? 무슨 소리야?”
“숲에서 미녀들이 나무꾼이나 벌목꾼들을 유혹한다고 하던데요? ”
디건의 아들 던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빛냈다.
머리로는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춘기 소년 특유의 열정이 그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아마도 목재소의 젊은 일꾼들, 도제들도 그러했으리라.
던스야 아버지 디건이 붙어있으니 집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지만, 구난기사단의 농노나 다름없는 목재소의 도제들은 그들을 붙잡을 사명감도, 혈연도 아무 제약이 없었다.
목재소 감독관의 호된 질책보다 10대 사춘기 소년들이 으레 가질법한 열정과 호기심이 그들의 등을 내밀었으리라.
“요새 숲이 흉흉하다는데 드라이어드? 아이고 이 멍청한 놈들아. 왜들 그렇게 하는 짓이 똑같냐? ”
“똑같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음. 거시기 하여튼….”
디건은 말꼬리를 흐렸다.
숲 지역에 사는 청년들에게 드라이어드의 전설은 매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멍청하게 숲을 배회하며 들짐승이나 마물과 마주쳐 벌벌 떨어보기 전까지는 열정과 욕구가 가라앉기 힘든 법, 디건도 젊은 시절에 이미 겪어본 일이었다.
하지만 요새는 때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하필이면 이렇게 흉흉할 때 숲에 들어갔단 말이냐? 드라이어드보다 늑대 밥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거다.”
“뭐 하지만 사냥꾼네 칼도 같이 갔다고 하니까 늑대 밥 신세는 안 당하지 않겠어요? ”
“그놈 그거 다 덫으로 잡은 거다. 너희들이 칼을 보고 막 어디 기사라도 될 것 같다고 말하는 데 진짜 기사는커녕 제대로 된 셀소드도 못 봐서 그렇게 말하는 게지. 응?”
농부 디건은 갑자기 싸늘한 한기를 느끼고 흠칫 놀랐다.
그들이 작업하는 뜰을 바라보고 있는 숲에서, 새하얀 팔이 나무들 사이로 뻗어 나와 있었다.
햇빛을 받지 않은 새하얀 피부가 눈부신 여성의 팔이었다.
“어엇?”
디건의 아들 던스도 그 모습을 확인한 것을 보니 디건 혼자만 보는 환상도 아니었다.
갑자기 숲에서 튀어나온 전라의 미녀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드, 드라이어드다! 아버지! 보셨어요? 드라이어드가….”
“도, 도망쳐라.”
디건은 작업용 도끼를 집어 들고 아들에게 명했다.
“네?”
그 순간 던스는 의혹을 느꼈다.
‘아니 설마 아버지가 드라이어드를 독식하려고?’
순간적이지만 그런 황당한 의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디건의 표정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게 그가 공포에 질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건 드라이어드 따위가 아니야! 아들아! 시장 한복판에 금괴가 떨어져 있는데 아무도 집어 가지 않는 경우는 없다! 마찬가지로 전라의 미녀가 갑자기 형편 좋게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보내진 않는 법이다!”
“그, 그래도 드라이어드는 인간이랑 다르잖아요?”
“요정들도 미남 미녀를 좋아한다! 이것아! 저건 드라이어드가 아니야! ”
디건의 외침과 함께 드라이어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똑똑하구나, 인간. 글자 한 줄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임에도 불구하고 무학의 지혜를 갖추었다니….”
그 순간 드라이어드의 양옆에서 안개를 찢고 짐승처럼 생긴 괴수가 나타났다.
괴수는 ‘브리’라 불리는 수인 마물 종족으로 산양의 뿔과 다리를 가진 괴물이었다.
그들은 곤봉에 사슴의 뿔을 묶어 만든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히익!”
디건의 아들 던스는 똑똑히 보았다. 브리의 뿔에 장식된 인간의 머리와 팔다리들, 그중에는 익숙한 팔찌를 단 팔이 있었다.
사냥꾼 칼의 팔이었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받았다고 하는 녹옥 장식 팔찌를 늘 자랑하고 다녔는데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녹옥 장식 팔찌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숲에 들어갔던 젊은이들 대부분이 저 브리에게 산산조각나고 그들의 수족이 장신구처럼 걸려 그 사체의 존엄조차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곧 그와 그의 아버지도 저 대열에 합류하게 되리라.
하지만 브리들의 폭력이 그들에게 쇄도하기 전에…
바람 찢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한 발이 날아들었다.
화살은 그대로 브리 병사의 무릎에 박혔는데,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화살이 박히는 게 아니라 숫제 무릎을 후벼.
구멍이 뻥 뚫린 무릎은 달리는 브리 병사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하고 꺾인다.
깜짝 놀란 브리 병사들이 돌아본 곳에는 얼굴에 새의 가면을 쓴 한 남자가 있었다.
“아주 훌륭한 아버님을 뒀구나.”
그는 디건을 칭찬하고 다시 한발의 화살을 날렸다.
브리 병사들이 디건과 던스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이들 부자에게 가장 가까운 브리를 쏴버린 것이다.
브리 병사는 나무판과 뼈를 엮어 만든 야만적인 갑옷으로는 남자가 쏜 화살을 막을 수 없었다.
“저 활은?”
“설마 차드라 고원의 전령일족?”
디건과 던스는 눈앞에 나타난 남자를 보며 소문의 전령일족을 떠올렸다.
“어라? 나를 알고 있나?”
디건과 던스를 구출한 이 남자는 세인트 말로리로 향하던 아자딘이었다.
숲에서 뭔가 이동한다 싶어서 확인차 내려왔는데 우연히 이들 부자를 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부자들이 어째 아자딘을 알아본다.
아마도 아자딘의 소문이 차드라 고원은 물론 그 외부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별로 안 좋은데.’
아자딘은 전령일족 사이에서도 배신자로 여겨지고 있었으니 그의 행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