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9
28. 성기사들의 학살 5
유시(流矢)로 민간인을 살해한 죄는 어떻게 변명이 될 것 같다. 전령일족과 함께 있던 농장 놈들이니 왕의 교회 입장에선 사교도나 다름없다. 하지만 정말 전령일족을 상대하려니 죽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전령이 공격을 가해오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냐?”
“사냥하러 나왔나 보군. 성기사들이 창과 활이라니. 게다가 수련기사야 그렇다 쳐도 정식기사가 말이 없다니.”
“…그게 어쨌다는 거냐?”
“왜 사냥하러 와서 갑자기 마을 사람들을 죽였지?”
“마을 사람들이 사교도이기 때문이다.”
“아니지. 너희들은 나와 손을 섞을 때까지도 내가 전령이라는 걸 몰랐어. 우리 애들이 활을 쏘고 나서야 전령일족이 있다는 걸 알았다. 즉….”
아자딘은 상황을 파악하고 혀를 찼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입막음하려고 했군.”
“…….”
“맞나 본데요?”
미디암은 성기사들의 반응을 보고 아자딘의 추리가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수풀에서 약초나 버섯 캐던 사람들을 동물로 오인하고 쏴 죽였나 보군. 입막음하기 위해 추격하다가 그만 농장 전체를 몰살하고.”
“입 다물어라, 영혼 없는 불경자 놈아.”
정곡을 찔린 가즈렉 경은 분개했다.
정확히는 사냥 중 발사한 화살이 유시(流矢)가 되어 울타리를 점검하던 농부를 죽인 것이지만 그런 추태를 전령일족에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날 죽여서 내 입을 막는 건 어려울 텐데?”
아자딘은 자신의 소검을 맞고 기절한 성기사의 손에서 창을 집어 들었다. 사냥용 단창이 가즈렉 경을 겨누었다.
“너희들이 더 이상 이 마을에 해를 끼치지 않고 보상금을 내놓고 참회기사가 된다면 죽이지 않고 끝내겠다. 지금까지는 안 죽였는데….”
아자딘은 창을 허공에 휘둘렀다가 다시 가즈렉 경을 겨누었다.
“…이제부터는 안 죽이기가 쉽지 않겠어.”
비록 수련기사 둘을 무력화시켰지만 여전히 적들의 수가 많다. 아자딘도 더 이상 관용을 베풀며 싸울 수는 없다.
‘미친놈 아냐? 이제부터 안 죽이기 쉽지 않겠다니? 그럼 지금까지는 우리를 안 죽이려고 봐주고 있었단 말인가?’
왕의 교회의 성기사는 그 실력에 있어서 일반 기사들보다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시골의 기사들이 스파링 파트너가 없어서 자신들의 실력을 키우지 못하는 반면 전부가 기사인 성기사단에서는 빠르게 서로의 실력을 비교하고 향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성기사들을 상대로 지금까지 봐주면서 싸웠단 말이 아닌가?
“웃기고 있네. 영혼 없는 불경자 놈이 무서워서 우리가 물러나면… 그것만으로도 처벌받을 거다.”
“처벌이 두려워서 계속 죄를 범하겠다고?”
“네놈을 잡아가면 모든 게 해결이지! 네놈 실력을 보아하니 전령 중에서도 꽤 직위가 높은 놈이겠지? 널 잡아가면 만사해결이다! 이 마을 놈들은 황제 추종자들이니 어차피 죽어 마땅했던 거야!”
듣고 있던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참아야 했다.
아자딘은 108령. 전령들 중 최하위이면서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기피하는 자다. 그런 아자딘의 실력을 저리 고평가하다니.
하지만 성기사들도 절대 녹록지 않은 상대인 걸 보면 저들의 평가가 맞다. 아자딘의 실력은 절대 하위전령의 솜씨가 아니라는 건 미디암과 이스마일 모두 공감하는 바였다.
그때 아자딘이 창을 또 던졌다.
“흥!”
가즈렉 경은 날아드는 사냥용 창을 간단히 쳐내고 아자딘에게 주문을 시전했다. 이번엔 신성한 빛의 망치가 아자딘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아자딘이 그것을 피했지만 빛이 폭발하며 그 여파가 휩쓴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 속에서도 침착하게 허리에 끼던 활대를 풀어 활줄을 끼우고 바닥에 쓰러진 수련기사가 가지고 있던 사냥용 화살을 뽑아 들었다.
수련기사는 전통에 화살을 많이 갖고 다니진 않아서 세 발 정도가 고작이다.
“정면에서 그런 걸 맞을 것 같냐!”
가즈렉 경이 돌격해왔다.
“그래?”
아자딘은 활을 하늘로 들어 고각으로 쏘았다.
이선궁의 준비동작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방비하다.
“위험해요!”
미디암이 아자딘을 지원하기 위해 가즈렉 경에게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가즈렉 경은 호언장담한 대로 눈높이로 날아오는 화살을 칼로 쳐내고 쇄도해왔다.
“아!”
당황한 미디암이 또 한 발을 쏘았을 때였다. 이번엔 아자딘이 화살과 가즈렉 경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
아자딘은 공중에서 날고 있는 화살을 붙잡고 빙글 몸을 돌리더니 그 화살을 자신의 활대에 끼우고 발사했다.
미디암의 화살을 쳐내기 위해 칼을 들었던 가즈렉 경은 갑자기 방향 전환해 옆에서 쏘다시피 하는 아자딘의 근접사격을 버티지 못했다. 아자딘이 쏜 화살이 관자놀이를 꿰뚫으며 가즈렉 경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억….”
“말도 안 돼!”
남은 수련기사들은 아자딘이 펼치는 신기에 가까운 재주에 당황했다. 가즈렉 경은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오는 화살도 쳐낼 만큼 출중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걸 가즈렉 경에게 날아가는 화살을 도중에 낚아채서 다시 쏘기로 제압했다고? 사람이 아니라 악마의 소행 같다.
“…….”
“그, 그건 뭔가요?”
심지어 전령일족인 미디암도 궁금해서 물어온다.
“화살되먹임이란 기술이다.”
“화살되먹임? 그것도 카자스 해서인가요?”
“아니 이건 내가 창안한 기술이지. 뭐 아주 어렵진 않으니 너희들도 좀 연습하면 할 수 있을 거다.”
아자딘은 미디암에게 친절히 설명해주고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건가?”
아자딘이 하늘로 손을 들자 방금 전 그가 하늘로 쏘았던 화살이 손에 빨려들듯 날아와 잡혔다. 조금 전에 하늘로 쏜 것도 이렇게 써먹기 위해서였음이리라.
아자딘의 활이 비었다고 방심하고 덤벼드는 적을 제압하기 위한 함정. 그런데 그 함정을 쓰기도 전에 공중에서 미디암의 화살을 낚아채 다시 쏘기로 가즈렉 경을 즉사시켜 버렸다.
“아, 저기….”
“농장 사람들을 해친 것에 대해 유가족에게 배상하고 참회기사가 되겠다면 죽이진 않겠다.”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수련기사들이 당황해서 서로서로를 바라보았다. 만약 가즈렉 경이 죽기 전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가즈렉 경조차 이 전령일족에게 살해당하는 걸 보니… 농담하는 게 아니다. 이놈은 정말 자신들을 다 죽일 것이다.
‘그런데 참회기사가 되면 살려준다고? 만약 우리가 도망가서 상부에 황제의 전령이 나타났다고 보고하면 어쩌려고?’
‘까짓거 이 자리만 모면하고 말면 되지. 참회기사가 된다고 해볼까?’
수련기사들은 아자딘의 말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안 됩니다!”
뒤에서 농부의 아들과 딸들이 나타났다.
“그자들이 우리 아버지를!”
“어머니와 형부를 죽였어요!”
“단지 자기들의 실수를 덮으려고 우리를 가축처럼 죽였습니다! 보상금 따윈 필요 없어요!”
“죽여야 합니다! 저희는 금보다 피를 원합니다!”
농민들이 전령인 아자딘에게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을 사형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 천한 것들이!”
성기사들은 발끈했다.
“아무래도 교섭의 여지는 없나 보군.”
아자딘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것을 애석해했다.
‘이 농부들, 복수심에 불타는 건 알겠지만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을 죽이게 되면 농장을 버리고 유랑민이 되어야 할 텐데.’
휘브리스의 백성들 중 농민 소년들은 용병이나 모험가가 되겠다는 꿈을 종종 꾸곤 한다. 평생 자기네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는 농노로 살아가는 건 한창 공상의 나래를 펼칠 나이의 소년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인생설계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용병이나 모험가라는 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다. 몰락한 전사 귀족계급이면 몰라도 아무것도 없는 농노 출신의 소년 소녀들이 용병이나 모험가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용병이나 모험가가 되기 위한 밑천, 초기 장비도 없고 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도적 떼라면 모를까 제대로 된 곳에서 받아줄 리 없는 것이다.
‘유랑민의 삶은 너무 고달픈데. 이들이 그걸 각오하고 지금 복수하자는 건가?’
그러나 피해자들이 복수를 원한다는데 아자딘이 멋대로 용서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분노한 농민의 아들과 가족들이 돌과 도끼로 쓰러진 기사를 찍어 죽였다.
“이 무지렁이 놈들! 감히… 성기사에게! 너희들 모두 저주받을 거다!”
악을 쓰는 기사가 농민들을 죽이려 했지만 아자딘의 화살이 그를 방해했다. 농민들은 아자딘의 화살에 맞아 그 충격으로 마비된 기사를 덮쳐 그도 때려죽이고 말았다.
아자딘은 그 참상을 혀를 차며 바라보았다.
*********
농민들은 기사의 시체와 살해당한 이들의 시체를 모으기로 했다. 성기사들의 폭거에 의해 가족들을 잃어버린 그들은 기사들의 시체를 모독하고 싶어했지만 아자딘이 말렸다.
“시체는 시체일 뿐이다. 살아 있으면 증오해도 된다. 하지만 죽어 버린 자를 필요 이상으로 증오하느라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지. 휘브리스 백성들은 내세를 믿지 않나? 굳이 시체를 모독해서 악업을 추가로 쌓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체를 장례 지내 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대들이 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내가 하지. 약간의 수고를 기울여서 저들의 언데드화를 막는 건 나쁠 게 없다. 그리고 은원을 씻어낸 자리에 최소한의 연민을 보여서 나쁠 건 없겠지. 그렇지 않나?”
“…….”
아자딘의 말에 그들은 마지못해 일단 자신들 가족의 시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러는 동안 아자딘은 성기사들의 시체를 수습했다.
“정말 특이하신 분이세요.”
미디암도 아자딘을 돕기 시작했다. 이스마일은 죽은 성기사들을 뒤져 그들의 장비들을 확인했다.
“성기사들의 무기는 가져가지 않는 게 좋아. 교회 지급품이 대부분이거든. 함께 매장하든가 묘비로 삼자.”
아자딘은 성기사들이 차던 검이나 갑옷은 부장품으로 쓰기로 하고 시체를 포에 싸고 구난기사단의 방식으로 축성했다.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을 구난기사단 방식으로 축성하다니 이것도 모독이 아닐까 싶긴 한데.’
미디암은 그리 생각했지만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후우.”
일을 다 끝내고 구난기사단 식으로 장례를 치른 아자딘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오늘은 좀 정비를 하고 쉬려고 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참회기사가 된다고 하면 용서해 줄 생각이었어요?”
미디암은 아자딘에게 물었다.
“용서는 내가 하는 게 아니지만 뭐 그게 법이니까?”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이 허언으로 약속할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그들은 우리 아라가사들을 영혼 없는 불경한 존재라고 여겨서 우리와의 약속은 아무리 어겨도 죄가 안 된다고 믿는걸요?”
영혼 없는 불경자, 전령일족을 부르는 그 이름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