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91
290.셀레스철 파이어 4
아자딘은 히포그리프에서 내려서 칼로 수풀과 나뭇가지들을 쳐내며 길을 열고 있었다.
농민들이 수레를 끌고 다니는 산속 숲길은 노새나 말이 지나기에는 충분했지만, 히포그리프는 이래저래 나뭇가지에 긁히고 찍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데 이럴 거면 말을 탔지. 히포그리프가 도보로 다닐 때는 영 불편하네.’
히포그리프의 큰 덩치도 덩치지만, 보행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신체 구조인 것도 있었다.
히포그리프의 뒷발은 말과 같이 발굽이 나 있고, 앞발은 맹금류의 발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있어 단기간 폭발적으로 힘을 쓰기엔 좋지만, 장시간 지면을 걷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그렇다고 하늘로 날아오르기에는 파이어윈터가 지쳐있어서, 농민들 둘을 태우고 비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 혼자 하늘을 날았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멀리 갔을 텐데. 아니, 그런 생각을 품으면 곤란하지. 내가 이기적으로 굴었으면 이 부자는 죽었을 거다.’
아자딘은 자신이 구해낸 인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현 상황을 감내하려 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짜증이 나는 것은 그로서도 막을 수 없었다.
‘하필 그때 브리 놈들을 발견해서. 응?’
아자딘은 전방의 풀들을 자르며 지나가다가 문득 남쪽에서 일단의 병력이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아자딘은 상공에 아라엘의 목소리를 띄워놓고 그것을 정찰병 삼고 있었는데 그 아라엘의 목소리가 병력을 발견한 것이다.
기마한 병력이 약 다섯, 거기에 중장보병이 열, 다시 그 중장보병 밑으로 일반 창병과 궁사들이 2~30명 정도 해서 혼성 전투단 일개 소대 정도의 병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숲 때문에 잘 안 보이는 걸, 아라엘의 목소리를 접근시킬까?’
아자딘은 조심스럽게 아라엘의 목소리를 접근시켜 보았다.
하지만 아라엘의 목소리가 숲으로 내려가자, 아자딘에게 공유되는 시각에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이 숲의 마력인지, 아니면 저 병력의 마력인지 모르겠지만 강력한 마법이 아라엘의 목소리를 방해했다.
‘으음. 브리가 아니라 무장한 인간인 것 같은데. 젝트 경이면 어쩌지? 하지만 젝트 경이 깃발을 들고 다니진 않을 것 같은데. 젠장, 깃발을 자세히 보고 싶은데 시야 공유가 잘 안되는군.’
아자딘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들을 혼자서 만나보기로 했다.
현재 파이어원터의 상태로는 모두를 태울 수 없으니, 만약 자신을 노리고 온 적이라면 이 부자가 휘말리지 않게 아자딘 혼자 하늘로 날아서 도망가야 했다.
*********
아자딘이 수풀에서 나오자 척후병들이 깜짝 놀라서 아자딘에게 창을 겨누었다.
“누구냐?!”
“구난기사단의 수련기사 아자딘 이다!”
“구난기사단….”
병사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이가 구난기사단을 언급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자딘 또한 안심했다.
척후들 뒤에 있는 기수의 깃발이 구난기사단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척후병들의 뒤쪽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자딘이라면 차드라 고원에 잠입한 전령일족 아닌가! 영혼 없는 불경자! 차드라 고원의 죄수일 텐데, 어째서 네놈이 여기에 있는 거지?!”
“죄수가 된 기억은 없는데?”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척후들 뒤에 있던 기수가 다가왔다.
기수의 깃발에는 구난기사단의 상징인 세 장의 날개 깃발 밑에 불꽃 날개 문양이 붙어있었다.
“죄수가 아니라고? 당장 숙영지를 벗어난 탈영의 죄를 범하지 않았나? 네놈이….”
그는 그리 말하고 자신의 투구 바이저를 벗고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곱슬곱슬한 금발을 가진 귀족적인 용모의 미청년이었는데, 그는 짜증 나는 시선으로 아자딘을 내려보다 아자딘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전령일족 출신의 첩자라고 들어서 이국적이고 기괴한 존재일 거로 생각했는데,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청년이어서 놀란 것이다.
“나는 탈영 따위 하지 않았어. 여기 통행허가증이 있다! 그리고 나는 기사단의 형제로서 왔는데 당신들은 대뜸 죄인 취급하며 형제의 우의를 상하게 하는군! 이름을 대라!”
“으음…”
아자딘의 당당한 태도에 기수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나는 구난기사단의 호스피탈러이며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일원인 아라미스다. 차드라의 아자딘. 여긴 어쩐 일이지?”
“셀레스철 파이어…?”
아자딘은 스스로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일원이라 말한 아라미스의 말에 깜짝 놀랐다.
‘셀레스철 파이어인가? 그렇지 않아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이야.’
애초에 아자딘이 차드라 고원을 나와 세인트 말로리로 향하기로 한 것은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설마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정식으로 챕터마스터의 허가서를 받고 여행하던 중 숲에서 마을 사람을 습격하는 마물을 발견했다. 여기….”
아자딘이 휘파람을 불자 숲에서 히포그리프와 농민들이 튀어나왔다.
“이들이 증인이다.”
“아… 서턴 경!?”
아자딘의 휘파람에 끌려 나온 디건과 던스 부자는 아라미스의 옆에 있는, 비루먹은 노새 같은 말을 탄 노기사를 알아보았다.
“아.”
“아는 사이인가? 서턴 경?”
“네. 저희 소작농입니다.”
서턴 경이라는 노기사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가 이 근처를 봉토로 삼고 있는 기사인 모양이었다.
농민들은 브리들이 숲에서 튀어나와 자신들을 공격한 것과 아자딘이 그들을 구조한 것을 증언해 주었다.
“음. 조금 전엔 내가 실언했다. 용서해 주게 아자딘 경. 경솔한 발언을 했군.”
아라미스는 아자딘에게 사과하고 심지어 아자딘이 내민 통행증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아자딘이 통행증을 내밀기도 전에, 아자딘의 얼굴을 보았을 때 이미 태도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좋아. 사과는 받아들이지 아라미스 경. 그렇지 않아도 셀레스철 파이어의 도움이 필요했거든.”
“그래서 말인데 아자딘 경. 괜찮다면 우리와 함께 합류하는 게 어떻겠나?”
그 순간 아라미스를 따르던 다른 기사들이 깜짝 놀랐다.
“아, 아라미스 경!”
“이번 일은 셀레스철 파이어의 공로가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하필이면 저런 자에게….”
아자딘은 자신의 앞에서 노골적으로 자신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을 보며 실소했다.
‘다 듣고 있다 이 자식들아. 아니 아무리 상대가 원시적인 무기를 쓰는 부족들이라지만 왜 벌써 이긴 기분을 내지?’
이들은 아자딘에게 공로를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사실 차드라 고원에서의 활약 덕분에 아자딘의 명성은 이미 널리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반면 셀레스철 파이어는 이제 시작하는 기사단, 물론 그들이 셀레스철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제 막 시작한 기사단이라 해도 순식간에 유명해질 테지만, 일반적인 기사들은 아자딘의 명성을 위협적이라 여기고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끼리 공로를 다툴 때가 아니라 우선 사람들부터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라미스가 여기서 상식적인 발언을 했다.
‘오? 이 자식? 제법?’
첫 만남부터 아라미스를 고깝게 보던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아라미스에게 호감을 느꼈다.
“아자딘 경. 혼성부대로 오느라 보시다시피 기병대가 부족하다. 지형도 숲지이고, 물론 단련된 우리 기사들의 기량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상공에서 급강하로 적들을 유린해 줄 자가 있으면 좋겠군.”
아자딘이 히포그리프를 가지고 있으니 상공에서 급강하해 적들의 옆을 잘라달라는 요구였다.
“우선 기병들이 먼저 공격하면 그때 날아서 적들의 측면을 치도록 하지. 히포그리프는 말과 달리 지구력이 좋질 않아서 상공을 나는 것만 해도 체력을 많이 소모하거든. 말을 다루는 감각으로 다루면 안 돼.”
“그렇군. 나도 히포그리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아라미스는 아자딘의 말에 수긍해 주었다.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셀레스티얼들의 힘이 궁금했는데, 어디 이즈밀라 말고 다른 셀레스티얼은 어떤지 확인해 볼까?’
아자딘은 아라미스가 이끄는 부대에 합류해서 그들의 솜씨를 보도록 했다.
*********
아자딘은 히포그리프의 체력을 온존하기 위해 등에서 내려와 일행들과 발을 맞추고 있었다.
아라미스는 그런 아자딘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왔다.
‘어떻게 히포그리프를 얻었는가?’
‘전령일족에서 나온 이유는?’
‘전령일족은 어떻게 훈련을 하나?’
‘정말 전령일족들은 소문대로 야에가스 신족을 잡아서 그 피를 마시는가?’
등등 황당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아자딘은 그런 질문에 건성으로나마 대답해주며 피로를 느꼈다.
“척후가 수색작업을 할 때는 좀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은데. 브리 놈들이 장님이 아닌 이상 틀림없이….”
“어차피 이 많은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 소리가 나는 건 피할 수 없지.”
“하지만 지휘관부터 떠들면 병사들도 긴장이 풀려서 잡담을 나눌 테고 집중력이 저하될 거야.”
아자딘은 그리 말했지만 생각해 보면 좋은 기회였다. 이번엔 아자딘이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디 출생이지? 꽤 고귀한 혈통인 것 같은데.”
“나의 부모님은 기사단이다. 딱히 인간들이 말하는 가문 같은 걸 내세울 입장은 아니군.”
“…모든 셀레스티얼들이 그런가? 당신들의 단장인 카르나는 북제의 혈통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어떻게 당신이 카르나 단장의 일을 알고 있지?”
“이즈밀라와 친분이 좀 있어서.”
칼린츠 왕자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자딘은 셀레스티얼인 이즈밀라의 이름을 댔다.
“…그래서 내가 셀레스티얼이라는 걸 알고 있군. 아쉽지만 셀레스티얼들에 대해서는 기밀을 지켜야 할 것이 많다. 양해 부탁한다.”
아라미스는 아자딘에게 케케묵은 것까지 다 질문한 주제에 정작 자신에 대한 질문에는 함구했다.
물론 아라미스가 셀레스티얼이기 때문이다.
‘철없는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기밀을 지킬 줄은 아는군. 음?’
그때 아자딘은 전방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과연 저 앞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사, 사람 살려!”
“윽?!”
마을 주민들의 비명이었다.
마을에서 탈주한 사람들이 브리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브리들은 산양이나 사슴과도 같은 하체를 가지고 있어서 풀쩍풀쩍 수풀을 뛰며 순식간에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브리족 전사는 커다란 사슴뿔 도끼와 인간들에게서 노획한 식칼을 묶어 만든 야만적인 형태의 창으로 주민들을 공격했다.
주민들 역시 대항했지만 브리 병사의 체구가 훨씬 더 크고 근골이 강해서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엄하구나!”
아라미스는 자신의 깃발을 종사에게 넘겨주고, 말에 탄 채로 앞으로 뛰어들었다.
-천상의 격려!
그는 주문을 시전해 군마에게 격려 주문을 걸고, 말 위에서 검을 뽑았다. 지상전에서 쓰라고 만들어진 양손용 롱소드, 세라마이트 장검이었지만 아라미스는 그걸 한 손으로 잡고 휘둘러 브리 병사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크으!?”
브리 병사들이 아라미스에게 달려들었지만, 아라미스는 포위되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돌진하며 닥치는 대로 적들을 베었다.
‘기병으로서는 꽤 훌륭하군. 문제는….’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자딘은 아라미스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즈밀라 때도 그렇지만 아라미스 역시 기본 실력은 나쁘지 않다. 훌륭한 기사다.
그러나 노련미가 부족하다.
기병으로서는 매우 훌륭한 돌파지만, 이렇게 기병 숫자가 많지 않은 지금 혼자 돌격하면 적들에게 에워싸일 뿐이다.
무엇보다 그가 최고 지휘관일 때 적진에 혼자 돌격해버리면 뒤에서 지휘를 맡아줄 부관이 없다.
과연 날뛰던 아라미스는 브리 병사들의 방진에 갇힌 채 적진 한복판에 고립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