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92
291.셀레스철 파이어 5
‘돕는 건 어렵지 않지만, 실력을 볼까?’
아자딘은 활에 화살을 재우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라미스는 포위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막아선 브리들을 죽이며 계속 나아갔다.
그러나 처음에 비해 명백히 돌파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애초에 숲이 우거진 지형에서 기병이 마음껏 돌파력을 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나무는 머리 높이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지, 길은 울퉁불퉁하지. 맘껏 달렸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낙마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하다.
게다가 브리의 도약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브리 병사가 지면을 박차자 마상의 아라미스의 머리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막연히 짓밟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인간 병사와는 차원이 다른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지상에 있는 브리 병사를 치느라 미처 칼을 회수하지 못하는 틈을 타 공중에 떠오른 브리 병사들이 아라미스의 머리를 향해 사슴뿔 도끼를 휘둘렀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그러나 아라미스는 코웃음 쳤다.
“흥!”
아라미스의 등에서 순백색으로 빛나는 날개가 뻗어 나와 달려드는 브리 병사를 후려쳐 버렸다.
그리고 주문을 시전해 브리들을 공격하고 마을 주민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좋아!”
아자딘은 화살을 날려 브리들을 공격하고 다른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기병들! 좌익 우익으로 나뉘어서 브리들을 공격하고 마을 사람들을 구하도록! 보병들! 중앙으로!”
“우리가 왜 네놈의 말을 들어야….”
“파이어윈터! 이리 와봐!”
아자딘이 히포그리프를 부르자 히포그리프가 크르렁거리며 다가왔다.
히포그리프가 접근하자 말이 놀라며 앞으로 달려 나간다.
기사들은 그제야 좌우로 나뉘어 앞으로 돌격 진형을 갖추었다.
아자딘은 화살을 날려 아라미스를 지원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아라미스가 돌파로 헤집고 지나간 뒤여서 대형이 와해한 브리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브리의 신체 능력은 분명히 인간보다 우수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병장기는 사슴뿔이나 흑요석, 아니면 농부들에게서 노획한 농기구들로 구색만 갖춘 거라서 제대로 무장한 병사들에 비할 바 못 되었다.
금속 무기와 부딪히면 반드시 브리들의 무기가 고장 났고, 어지간한 공격은 병사들이 입은 갑옷이 막아주었다.
게다가 아라미스게 데려온 병사들은 꽤 훈련이 잘되어 있어서 더더욱 그런 점이 돋보였다.
자신들의 장점은 살리고 적의 단점은 도드라지게 하는 싸움을 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브리들이 물러난다.
“저주받은 것들을 살려 보내지 마라!”
아라미스는 계속 추격하며 도망치는 브리들을 뒤에서 강타했다.
그러나 브리들은 인간들보다 이동속도가 빨라서 기병이 아니고선 추격할 수 없다.
얼마 추격하던 아라미스는 수풀 앞에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세, 세상에!”
“천사님이다!”
“천사님이 우리를 구해주셨어!”
마을 피난민들은 자신들을 구조해 준 아라미스에게 그야말로 격렬한 환호를 보냈다.
“두려워하지 마라!”
아라미스는 사람들의 환호에 답하며 검을 높이 치켜들고, 자신의 날개를 빛내 보였다.
불타오르는 세라마이트 장검과 그 불빛을 받아 유리 조각처럼 빛나는 반투명한 백색 날개가 그야말로 옛날이야기의 한 장면 같아서 사람들을 압도했다.
난민 중 바닥에 엎드려 무릎을 조아리고, 기도하며 숭배하는 자들까지 나왔다.
천사의 날개를 가진, 천사의 혈통을 이어받은 존재가 옛날이야기 속의 한 장면처럼 뛰쳐나와 사람들을 구하고 악귀들을 몰아내었으니 다들 감동하는 것도 당연하다.
‘과연, 이게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힘이로군.’
아자딘은 흥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과 달리 아자딘은 냉정하게 아라미스의 능력을 평가하고 있었다.
우선 지휘가 마음에 안 든다.
지휘관이면서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까진 좋다. 가장 강력한 기사를 깃발 들려주고 놀리기엔 병력이 워낙 적었으니까.
그러나 그러려면 후속 지휘를 맡길 상대는 확실히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무도 없길래 어쩔 수 없이 아자딘이 후속 지휘를 맡았는데, 당연히 아라미스에게 정식으로 지휘권을 양도받은 게 아니라 기사들이 반발했다.
결국 아자딘은 히포그리프를 써서 그들을 내몰아야 했다.
그렇게 뒤에서 열심히 보살펴 주지 않았다면 아라미스가 제아무리 셀레스티얼이라고 해도 적진 한복판에서 꽤 고생했을 것이다.
‘뭐 본인이 실력과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옛날이야기에 나올만한 외형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밥값은 충분히 해낸 거지만 말야. 지휘에서 노련미를 발휘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겠지?’
아자딘이 그런 생각을 품을 때 이 지역의 기사인 서턴 경이 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라미스 경!”
“그래. 서턴 경. 무엇인가?”
“브리 놈들이 마을의 식량창고를 습격하고 약탈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이놈들 식량 약탈이 목적입니다!”
현재 핌불베르트가 의심되면서 구난기사단에서는 각지에 식량 공출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브리들은 바로 이틈을 노리고 조직적인 식량 약탈에 들어간 것이다.
마물에게도 핌불베르트는 가혹할 테니까 그전에 식량을 최대한 확보해 놓으려고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인간들에게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상당히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봐야겠군.’
아자딘은 브리들이 이 시기에 약탈에 나선 것을 두고 그렇게 평가했지만, 아라미스는 심사숙고 없이 즉답이 나왔다.
“좋아. 당장 구조하러 가지! 마을을 탈환하고 브리들을 축출한다!”
아라미스가 마을의 탈환을 선언하자 마을 주민들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아라미스는 말머리를 돌려 아자딘에게 돌아왔다.
“아자딘 경. 당신도 함께하겠나?”
“딱히 다른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함께 하지. 브리라는 것들에게도 신경이 쓰이고.”
아자딘은 아라미스의 됨됨이를 더 지켜보기 위해서 그와 함께하기로 했다.
*********
“그런데 히포그리프로 상공에서 팍하고 돌격할 줄 알았는데.”
“그러게. 우리만 앞으로 내밀고 뭐 하는 거야? 저놈?”
“어쩌면 우리를 소모하려는 게 아닐까?”
다른 기사들은 아자딘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아자딘이 히포그리프가 그렇게 쉽게 날아다니는 놈이 아니라는 걸 설명해도 그들은 아자딘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내가 내몰지 않았으면 가만히 손가락 빨고 뒤에서 구경하고 있었을 놈들이… 적을 쓰러뜨린 숫자도 내가 가장 많다. 이것들아.’
아자딘은 그들의 불만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자딘은 기사들을 돌격시키고 뒤에서 화살을 쏴서 적재적소에 공세 우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후방에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봐야 알 수 있는 공훈이다.
대부분 기사는 자신이 싸운 것만 기억하고 아자딘이 뒤에서 놀고 있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알겠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돌격하도록 하지. 히포그리프의 비행 특성 때문에 당신들이 생각하는 거랑 좀 다를 거야.”
“아자딘 경이 먼저 돌격하겠나? 좋아. 이번엔 당신에게 선봉을 양보하지.”
아라미스는 다른 기사들이 아자딘을 험담하건 말건 무시하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보아하니 방금 자신이 세운 공훈에, 전투의 영광에 취해 있는 듯했다.
“그래. 처음에 한 번 긁고 지나간 후 두 번째 긁을 때 당신들도 돌격해 들어와. 알겠지?”
“알겠다.”
“그럼.”
아자딘은 히포그리프에 올라타서 마을로 향했다.
그 전에 우선 아라엘의 목소리를 보내서 마을 상황을 살펴보려 했지만 숲 전체에 깔린 마법이 아라엘의 목소리를 방해했다.
‘브리들의 마법 때문인지 아라엘의 목소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군. 무기는 야만스럽지만, 약탈 자체는 아주 체계적인데? 이놈들 배후의 세력은 더 거대할 거야. 방심하면 큰코다칠 수도 있겠는걸.’
아자딘은 직접 히포그리프의 고도를 올려서 육안으로 마을을 살펴보았다.
마을은 소화 작업이 끝나서 비실비실한 하얀 연기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을에 붙은 불을 브리들이 열심히 끄고 약탈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군기가 제대로 잡혔군. 좋아. 그럼….’
아자딘은 히포그리프를 마을 후방, 퇴로 쪽으로 접근시켜서 그곳에서부터 활강하기 시작했다.
고도가 떨어지면서 속도가 붙는다.
그러자 약탈 작업 중이던 브리들이 아자딘을 발견했다.
“키에엑!?”
“크워!”
브리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으로 자신들끼리 의사소통을 취했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들이 대응하기도 전에 마을 뒤쪽 길에서부터 강습해서 히포그리프의 뒷발로 브리들을 두다닥 차버리고 다시 상승시켰다.
그와 동시에 아자딘은 히포그리프 위에서 화살을 쏴서 브리들을 쓰러뜨렸다.
아라미스의 병사들에게 받은 화살 덕분에 평범한 강철 화살이라도 전통을 가득 채울 수 있어서 아낌없이 화살들을 퍼부어 주었다.
‘좋아! 첫 번째 강습은 괜찮고….’
아자딘은 두 번째 강습을 펼치기 위해 고도를 높이려 했다.
허나 그때 갑자기 새하얀 거미줄이 밑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아자딘과 히포그리프를 감쌌다.
“윽?!”
예상치 못한 높은 곳에서 거미줄이 날아왔다.
지상의 술자가 시전한 게 아니라 마을 어귀에 심어진 나무의 꼭대기에서 거미줄이 발사된 것이다.
당황한 아자딘이 얼른 세라마이트 장검을 뽑아 거미줄을 잘랐지만 히포그리프가 균형을 잃고 있었다.
“젠장! 파이어윈터!”
아자딘은 히포그리프에게서 뛰어내리며 세라마이트 장검을 휘둘러 거미줄들을 다 끊었다.
다행스럽게도 세라마이트 장검은 스스로 불타오르는 성질 때문에 거미줄의 근처에 가기만 해도 거미줄을 녹여버렸다.
간신히 거미줄의 속박에서 벗어난 히포그리프가 상공으로 날아올라 지면에 처박는 꼴은 면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자딘이 지상에 착지해 버린 것이다.
브리들이 자신들의 머리에 난 뿔을 앞세워 아자딘에게 뛰어든다.
“뭐야?”
아자딘은 세라마이트 장검을 세워서 날아드는 뿔과 뿔 사이를 가로막고 그대로 휙 비틀었다.
뒷생각 없이 들이받은 브리 병사의 목이 비틀리며 그의 발이 지상에서 붕 뜬다.
아자딘은 돌격해 온 브리 병사를 내동댕이치고 지면에 떨어지는 순간 발로 뻥 걷어찼다.
다른 브리 병사가 식칼을 묶어 만든 창으로 아자딘을 찔렀지만, 아자딘은 팔뚝으로 그 조잡한 창의 몸통을 쳐내고 브리의 아랫배를 세라마이트 장검으로 찔렀다.
-퍽! 퍽! 촤악!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브리 병사들이 아자딘의 공격 한 방에 하나씩 정리되었다.
그러자 브리들도 이제 아자딘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고 함부로 뛰어들지 못했다.
낙마한 기사를 마무리하려는 심산으로 뛰어들었는데, 상대가 다치기는커녕 오히려 동료들을 한칼에 하나씩 정리해 버리는 것이다.
‘아 젠장. 기사 놈들은 뭐 하는 거야.’
아자딘이 적진에 떨어져 있는데도 아라미스 쪽은 감감무소식이다.
‘내가 두 번 강습한 뒤에 들어오라고 하긴 했지만 이쯤 되면 들어와야 할 거 아냐?’
아자딘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아자딘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적어도 20스톤이 넘는 무게로 일반적인 인간이 던질 수 있는 무게의 돌이 아니다.
투석기로 발사해야 마땅한 바윗덩이가 아자딘을 향해 매서운 속도로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