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93
292. 셀레스철 파이어 6
물론 아자딘이 그런 돌덩이에 맞지는 않았다.
아자딘은 밑으로 몸을 숙이는 것으로 간단히 바위를 피해냈다.
그러자 바위를 던진 장본인이 나타났다.
“그워어어어.”
그것은 머리에 사슴뿔이 돋아난 거인이었다.
언덕거인이라 불리는 거인종인데 특이하게도 눈이 세로 동공으로 변해 있고, 머리엔 사슴뿔이, 다리에는 발굽이 돋아나 있었다.
즉, 브리 거인이었다.
“네놈. 다시 왔구나!”
브리 거인에게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브리 거인이 들고 있는 곤봉에서였다.
이 브리 거인은 생나무를 뽑아서 곤봉으로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나무에는 젊은 여성의 나신이 융합되어 있었다.
조금 전, 아자딘이 숲에서 만났던 드라이어드 주술사였다.
“…아니, 잠깐 안 본 사이에 왜 그러고 있어?”
“네놈이 화살로 나의 화신을 훼손시켰지 않나! 덕분에 이런 꼴이다!”
“그래?”
그 순간 아자딘이 비수를 날렸다.
브리 거인이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곤봉을 들어서 막았다.
그런데 그 곤봉이란 게 드라이어드가 융합된 나무였고, 아자딘이 투척한 비수는 바로 그 나무에 융합되어 돌출된 드라이어드의 나신, 정확히 배에 꽂혔다.
“컥?!”
“그나마 사람 말 하는 너니까 말해주는 건데, 거인이 휘두르는 곤봉에 융합되는 건 그리 현명한 짓이 아니다. 대체 얼마나 멍청해야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이 자식!”
드라이어드가 분노하며 괴성을 지르자 브리들이 사방에서 아자딘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들 함부로 뛰어들지 않는다.
아자딘의 공격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포위망을 형성할 뿐이다.
“후우. 좋아. 그럼….”
아자딘은 세라마이트 장검, 아우렐리아 던을 고쳐 잡고 난전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돌격!”
마을의 다리를 넘어서 아라미스와 기사들이 브리들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자딘을 포위하기 위해 모여든 브리들은 결과적으로 뒤를 맞게 되었다.
‘오, 휘하기사들과 함께 돌격하다니, 이번엔 제법 좋은 지휘였군. 타이밍도 좋고.’
아자딘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과감하게 돌입한 아라미스의 판단을 높게 평가했다.
그런데…
“괜찮은가 아자딘 경!? 적진 한복판에 돌격하다니, 무모하군!”
“…….”
순간적으로 아자딘은 화낼 뻔했다.
‘아까 전 네놈이 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상식적인 돌격이었다! 누가 누굴 보고 말하는 거야?’
“그래도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자네를 구하러 왔네!”
조금 전 브리 병사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아자딘은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그런데 아라미스는 마치 아자딘이 위기 상황일 때 자신이 구조하러 들어온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아자딘의 저력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아라미스가 아자딘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림이었다.
아자딘으로서는 억울하게 목숨을 빚진 셈이 되었고, 이제 와 이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외친다 한들 주위에는 귀담아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전에 왜 이렇게 신경이 거슬리지? 그냥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면 될 텐데.’
아자딘도 자신이 왜 이렇게 대항 의식을 느끼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아자딘의 마음이야 어쨌건 아라미스는 브리 병사들을 베어버리며 아자딘의 곁으로 다가왔다.
“낙마해서 놀란 모양이로군. 어디 다친 곳은 없나?”
“괜찮다. 도와줘서 고맙군. 아라미스 경.”
“천만에. 같은 구난기사단의 형제가 아닌가?!”
“……..”
아자딘은 더 더러운 꼴을 보기 전에 활에 화살을 재워서 브리 거인의 눈알을 관통시켰다.
둔탁한 파육음과 함께 단 일격으로 브리 거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엇?”
“…….”
다른 기사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거인을 쓰러뜨리는 건 기사 무용담에 꼭 등장하는 사건 중 하나라서 브리 거인을 쓰러뜨려 명성을 드높이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다른 기사들은 언감생심 거인을 물리친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아라미스 경에게 그 영광을 맡기려고 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자딘이 거인을 쓰러뜨려 버린 것이다.
‘아니 이 자식이 제일 맛있는 부분을….’
‘활이니까.’
‘활로 거인을 쓰러뜨리다니 좀 비겁하지 않아?’
기사도 무용담에서 거인을 쓰러뜨리는 게 위대한 업적이 되는 것은 놀라운 검술과 전술이 뒷받침되어야 근접전에서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이들이 활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살로 아무리 쏴봤자 관통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거인의 눈알에 맞춰도 뇌수까지 화살이 들어갈 리 없다.
눈알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질겨서 거인의 눈알쯤 되면 화살을 정확히 꽂아도 바로 시력을 상실하지도 않는다. 아자딘이 아닌 다른 사수가 운 좋게 거인의 눈알에 맞췄다고 해서 거인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미 내심 공훈을 다투고 있던 기사단원들로서는 아자딘의 행동이 당돌하고 기분 나빴다.
“훌륭한 활 솜씨군!”
정작 당사자인 아라미스는 아자딘의 활 솜씨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자, 지금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아자딘은 거인이 떨어뜨린 나무에 다가가 그 안에 융합된 드라이어드를 확보했다. 그러자 브리들이 갑자기 광분하며 달려들었다.
조금 전까지 도망칠지 말지 망설이며 우왕좌왕하던 브리들이 아니다. 마치 벌집을 건드린 벌떼처럼 드라이어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들었다.
“좋아! 덤벼라! 한 놈도 남김없이 제거해 주마!”
아라미스는 이 상황에서도 오히려 기뻐하며 세라마이트 장검을 휘둘렀다.
그와 함께 난전이 벌어졌다.
숙련된 병사들은 금속 갑옷과 금속 무기, 그리고 대형의 이점으로 브리들을 상대하려 했지만, 브리들은 그들의 높은 도약력을 이용해 대열을 뛰어넘어 공격해 왔다.
게다가 이곳의 브리들은 피난민들을 추격하던 브리 병사들과 다르게 체구가 거대했다.
게다가 훈련된 무크를 타고 있는 기병도 포함돼 있어서 숙달된 병사들과 기사들조차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다 좋은데 지휘 좀 하지? 안 되겠네.’
아자딘은 아라미스를 대신해 적들의 세력 중 가장 강력하고 힘겨운 곳에 뛰어들어 달려오는 무크 기병들을 베어버리고 병사들에게 손짓했다.
“창을 쓸 수 있게 넓은 곳으로 빠져!”
“하지만!”
“그동안 내가 막는다!”
아자딘은 직접 강적들을 쓰러뜨려 병사들을 보호하면서 그들의 병장기의 우위를 살릴 수 있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아자딘의 지휘로 난전의 실타래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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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들은 광란을 일으키더니 최후의 하나까지 싸웠다.
마치 공포를 모르는 언데드처럼, 일반적인 생명체라면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전의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아군도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이곳의 지주이기도 한 서턴 경이 전사했고, 병사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그나마 아자딘이 지휘해서 병사들의 피해는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전체 인원의 2할 정도가 목숨을 잃거나, 전투력을 상실했다.
반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되찾았다는 희망에, 그리고 그들을 이끈 아라미스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세상에! 거인을 쓰러뜨리고 마을을 구해주셨어!”
“아라미스 경 만세!”
거인을 죽인 건 아자딘이었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그것을 아라미스의 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직접 전투 장면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자딘도 공훈을 다툴 생각은 없어서 그들이 좋을 대로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
“아 저기… 아자딘 경.”
병사 중 장으로 보이는 이가 아자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아니 그, 고맙습니다. 정말.”
마을 사람들은 화려한 아라미스의 활약에 심취해 있었지만, 병사들, 특히 경험이 풍부한 고참들은 아자딘이 자신들을 지켜주었음을 알고 고마워하고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보다 드라이어드는?”
“아, 저기 있습니다.”
병사들은 드라이어드를 에워싸고 포위하고 있었다.
나무와 일체화된 드라이어드는 자신을 운반해 줄 브리 거인이 죽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을 한복판에 장식품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해치진 않았지?”
“물론입니다. 드라이어드를 죽이면 저주받는다고 하니까요.”
“그럼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아자딘은 그녀를 심문해 정보를 얻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자딘이 다가서자 드라이어드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표정을 바꾸었다.
“사, 살려주세요! 기사님! 지금까지 기사님을 모욕하고 사람들을 해친 것은 제가 아니라 제 몸을 차지한 브리 술사입니다. 저는….”
드라이어드는 그렇게 몸부림치다가 악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축 늘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몸에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드라이어드가 고통에 몸부림친다.
“이런!”
아자딘은 즉시 망토를 벗어서 그녀의 몸을 덮어 불을 끄려고 했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하는 건가!?”
그 모습을 본 아라미스가 달려왔다.
“불을 끄고 있어!”
“이런!”
아라미스가 근처의 양동이를 들고 와서 물을 끼얹었지만, 이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꺄아아아악!”
오히려 드라이어드가 더 고통스러워하자, 보다 못한 아자딘이 검을 휘둘러 드라이어드의 목을 잘랐다.
“윽!”
그제야 드라이어드의 비명이 사라졌다.
“개자식들!”
드라이어드의 목을 베어버린 아자딘은 욕설을 내뱉으며 분개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한 짓이지만, 목뼈를 갈라버리는 끔찍한 감각이 그대로 손에 남아있다.
죽일 이유가 있다면 누구라도 망설이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진 아자딘이지만, 이런 살육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음. 이게 대체….”
“아라미스 경. 이건 함정이다.”
“함정?”
“그래.”
아자딘은 칼을 거두고 심호흡했다.
여전히 아라엘의 목소리가 방해받고 있었다.
이 숲 전체에 깔린 마법은 드라이어드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다.
즉 드라이어드가 아라엘의 목소리를 방해하는 게 아니다. 아직 더 많은 브리의 세력들이 이 숲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이다.
파이어글리프 남단의 구난기사단 영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아라미스 경. 인근에 다른 기사들이 더 있나? 브리의 군대가 보통 숫자가 아니다. 대규모의 병력이 필요해. 필요하다면 파이어 글리프에서도….”
“음. 실은….”
아라미스 경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중장 보병들을 바라보았다.
이들 중장보병은 기사의 종사들이었는데 그중에는 전서구용 새장을 가지고 다니는 서기관이 있었다.
그가 다가와서 고개를 저었다.
“아라미스 경. 그가 듣고 있는데.”
“상관없다. 그도 우리 형제가 맞다.”
“하지만….”
서기관은 여전히 아자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때 고참병들도 나섰다.
“아자딘 경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죽었을 겁니다.”
“거인도 한 방에 쓰러뜨렸다고.”
고참병들도 아자딘을 옹호하자 서기관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라미스 경 전서구가 이상하게 길을 못 찾고 있습니다. 날려 보내도 계속 다시 저에게 돌아옵니다.”
아마도 아라엘의 목소리를 방해하는 마법이 전서구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때 저 멀리서 뿔피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라미스 일행이 물리친 브리의 군대는 고작 척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