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98
297. 신왕살해자 지벡 3
셀레스철 파이어의 구성원들, 셀레스티얼들이 이상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들에게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어도 동맹으로서 마다할 이유도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지벡이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다니?
“왜지?”
지벡은 왜 자신이 셀레스철 파이어를 적으로 여기는지 바로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휘브리스 반도에 도착했을 때, 셀레스철 파이어가 이제 막 세인트 말로리에서 출정할 때였소. 그때 나는 셀레스철 파이어의 젊은 단장, 그리고 북제의 손자라는 카르나의 모습을 보았소. 그것은….”
“그건?”
“아드라타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소. 브투마를 장악한 북제의 아들, 아드라타 왕자 말이오.”
“혈족이니 닮을 수 있잖아? 게다가 아드라타 왕자가 항렬 상으론 카르나보다 위라고 해도 같은 연배일 수 있고.”
나이가 들어도 욕망이 쇠하지 않는 한 야에가스 신왕은 얼마든지 자식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아들이 손자보다 더 어린 경우도 흔하다.
연배가 비슷한 같은 혈족의 인물이 지나치게 닮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닮았다는 정도가 아니오. 아자딘 경, 내가 그를 보았을 때의 충격을 뭐라 전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처음 먼 발치에서 본 순간 나는 마치 거대한 바다괴물이 도사리는 바다 위에 일엽편주로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소. 내 발밑에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괴물이 그 기저에서부터 거대한 악의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공포감.”
“…아.”
아자딘도 지벡이 무슨 뜻에서 말하는지 공감했다.
셀레스철 파이어의 결성, 아름답고 고결한 천사의 피를 가진 기사들.
분명히 호의와 선의로 이루어진 집단이나 그들의 개개인의 품성과 상관없이 어떤 거대한 힘과 음모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심을 지벡 역시 느끼고 있었다.
“너무나 똑같소. 쌍둥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들과 아비, 혈육끼리 닮았다는 정도가 아니오.”
“그래서. 셀레스철 파이어는 북제가 구난기사단을 손에 넣기 위한 수단이다? 출생부터 미심쩍은 마법적인 수단으로 만들었을 테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소. 아자딘 경. 조심하시오.”
“흐음 그래서 날 찾아온 거군. 알겠어. 좀 쉬도록 해. 그동안 나는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지.”
“…….”
지벡은 아자딘이 쉬라고 하자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긴 도피 생활 동안 초췌하고 피폐해진 그는 죽음과도 같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이거 참.”
아자딘은 물론 지벡을 믿는다.
그가 괜한 소리로 카르나를 비방하는 게 아니라, 정말 카르나는 아드라타 왕자와 빼닮은 것처럼 생겼으리라.
그 출생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카르나이다 보니 어쩌면 사악한 마법을 사용해서 태어나게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일단은 지벡을 숨기고 변장시켜야겠군. 북제가 무슨 수작을 부렸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정면으로 상대할 때가 아니지.’
아자딘은 지벡과 스콧을 보호하기로 마음먹고 그들이 잠든 동안 주위를 경계하며 자신도 휴식을 취했다.
*********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본대에 아자딘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브리 군대의 정찰대와 전투를 벌인 뒤였다.
40명의 셀레스티얼 기사들은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브리들을 휩쓸었고, 그들이 이끄는 종사대, 보병대의 병력은 어지간한 백작의 군대보다 많아서 브리의 정찰대를 파죽지세로 쪼개버렸다.
“아, 아자딘 경! 미안하게 되었군. 그대가 간 후에 브리들이 쳐들어와서 신왕… 아니 배신자 지벡 경을 잡는데 나가지 못했네. 그래서 지벡 경은 찾았나?”
카르나는 아자딘을 반기며 물어보았다.
“아, 그랬군요. 찾지 못했습니다. 브리 술자들이 숲의 마법을 써서 그런지 상공에서 살펴보려해도 나뭇가지들이 너무 가려서 보이지 않더군요.”
아자딘은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말했다.
“저런. 그랬군.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네.”
다행히 카르나도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닙니다. 제가 더 부끄럽지요.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자리를 비웠으니 말입니다.”
“하하. 오합지졸들 따위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네. 우리는 천사의 후손들이니 브리 따위 잡병들에게 당해서야 쓰겠나? 다만 병사들은 희생이 좀 있었네. 역시 괜찮은 보병대장이 있으면 좋겠단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내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나?”
“감사한 제안입니다만, 일단 통행증을 얻었으니 우선 세인트 말로리에 도착하고 나서 답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자딘은 자신을 회유하는 카르나에게 결정을 뒤로 미루면 안 되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흐음. 설마 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카르나는 아자딘의 태도에 약간 실망한 듯했다. 천사의 날개를 보여주기만 하면 방금까지 주색잡기에 열 올리던 타락 기사들도 순식간에 신실한 천사 신앙자로 돌아서곤 했다.
그런데 아자딘은 셀레스티얼이 천사의 날개를 빛내도, 아름다운 용모의 소녀 기사가 뺨을 어루만져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혹시 아자딘이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건가?
카르나에게 그런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자딘은 셀레스철 파이어를 경계하고 있었으니 카르나가 부당한 의심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리가요. 영광된 제안입니다. 어둠이 다가오고 있는데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활약은 그야말로 어둠을 몰아내는 한줄기 서광과 같습니다. 다만 아시다시피 제 출신이 그렇다 보니… 우선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애석하지만 그때까지 보병대장의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네.”
“상관없습니다. 기사단에 정의가 있고 미덕이 있다면 미관말직이라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종사하겠습니다.”
“아, 그렇군. 미안하네. 아자딘 경. 그대의 신실함을 욕되게 할 생각은 없었네.”
카르나는 직위와 권력으로 아자딘을 회유하려 했다는 게 행여나 아자딘에게 모욕을 주었을까 걱정하며 사과했다. 왕족 출신답지 않게 예의 바른 태도였다.
‘이런 걸 보면 왕족치고는 되게 착하고 바르게 자란 녀석인데. 흐음. 지벡 경이 없는 소리를 하진 않았겠지.’
아자딘은 카르나의 앞에서 시치미를 떼는 것에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그럼 저는 남쪽으로, 세인트 말로리로 떠나겠습니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 무운이 함께하길.”
“그대도 안전히 다녀오게. 아, 이즈밀라 경이 자네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할 거야.”
“네. 인사하고 가지요.”
아자딘은 카르나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
이즈밀라는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서 카르나 다음가는 고참으로 좌익 돌격대의 대장이었다.
그녀는 좌익돌격대 소속 기사들과 함께 전투 후 정비를 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피해가 적었지만, 말이 다치고 보병들, 종사들에선 부상자와 사망자가 나와서 부대를 재편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자딘이 찾아오자 이즈밀라가 눈에 띄게 반색했다.
“아자딘 경! 오셨군요? 지벡 경은 어떻게 되었나요?”
“나무가 빽빽해서 못 찾았어.”
“저런. 아쉽군요. 그를 잡으면 왕의 교회에 넘겨줄 때 생색을 많이 낼 수 있을 텐데.”
“그보다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군. 괜찮나?”
“말발굽이 닳았어요. 편자를 새로 박아줘야 할 말도 많고, 보병대와 종사대에 사상자가 많이 나왔어요.”
“기사들은? ”
“한 명도 다치지 않았지요.”
“그건 대단하네. 과연 전원이 셀레스티얼이란 말인가.”
“이참에 아자딘 경이 보병대장을 맡아주면 든든할 텐데요. 카르나 경이 어떻게든 당신을 포섭해 보자고 제게 귀띔해 주었어요.”
이즈밀라는 그것을 말하며 눈을 빛냈다.
그 시선에 담긴 순수한 호의를 보며 아자딘은 난처해졌다.
“미안하군. 하지만 일단 세인트 말로리를 들리고 나서.”
“그럼 그 후에는 저희와 함께하시는 건가요?”
“뭐 확언할 수는 없어. 알다시피 나는 차드라에 있는 내 부하들을 돌보기도 해야 해서.”
“아, 그렇군요. 아쉽네요.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럼 나는 남쪽으로 가보지. 몸조심하도록.”
아자딘은 이즈밀라에게 작별을 고했다.
카르나에 대한 지벡의 경고, 그리고 어려 보이는 외모보다 더 어린 셀레스티얼의 정신 등 여러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나가 보이는 호의나 이즈밀라의 호의는 아자딘을 난처하게 했다.
차라리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들을 믿고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일부러 지혜를 마비시키는 맹신이다.
아자딘은 이즈밀라와 작별을 고했다.
*********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과 헤어진 뒤, 아자딘은 히포그리프를 타고 남쪽으로 날아가 약속 장소에 도달했다.
수풀 속 소택지 인근 길가에 스콧과 지벡이 대기 중이었다.
“다녀왔소? 아자딘 경, 셀레스철 파이어들은 어찌하고 있소?”
“특별히 의심하지는 않더군. 브리들을 쳐부수며 그대로 차드라 고원까지 갔다가 돌아갈 모양이야.”
“민심을 사겠군요. 과연….”
지벡은 신음했다.
“이대로 셀레스철 파이어의 인망이 높아지면 다르한 자덱의 억울함을 어찌 풀 수 있을지 걱정이군요.”
지벡은 다르한 자덱의 원한을 갚아주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아자딘은 그런 지벡에게 한마디 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지벡. 나도 셀레스철 파이어와 그들에게는 의심을 품고 있어. 하지만 만약 그 의심이 사소하다면, 그래서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 북제가 이런저런 모략으로 세계를 손에 넣더라도 묵인할 생각이다.”
“…그렇습니까?”
“그래. 백성들이 마물과 사교도들에게 위협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다른 왕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에 비해서 북제 코헨은 음흉하고 음습하지만, 열심히 활약하고는 있지. 그는 나를 구난기사단으로 이끌어 준 플랑크 경의 원수이기는 해도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 중대한 하자가 없다면… 나는 묵과하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함께 세인트 말로리로 가시지요.”
“세인트 말로리는 왜?”
“구난기사단에 자비교단이 암살조직을 운영한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그야 뭐, 알고 있지.”
“그와 마찬가지로 왕의 교회에서도 더러운 일을 수행하는 그림자 기사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본래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젝트 경의 제자로서 훈련받던 인물이지요.”
지벡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훈련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방출되었습니다만.”
“마지막 훈련이 어떻길래?”
“세인트 말로리에 잠입하는 훈련이었습니다. 훈련 도중에 무고한 주민에게 발각될 경우 주민을 죽여서라도 잠입해야 하는 그런 임무였지요.”
“세인트 말로리에 잠입?”
“네. 타라사르 왕국의 황무지에 세인트 말로리의 거리를 흉내 내 만들어진 훈련시설이 있었습니다. 기후가 다르니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그곳에서 저희는 훈련을 거듭했었습니다. 세인트 말로리에 잠입해 구난기사단이 감추고 있는 파렴치한 비밀을 파헤쳐 그들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말이지요.”
“어떤 건데?”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도중에 훈련에서 탈락했으니까요.”
“흐음. 그렇다면 왕의 교회도 세인트 말로리에 뭔가 더러운 구난기사단의 비밀이 있다는 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른다?”
“예. 젝트 경은 더 자세히 알고 있을 겁니다만.”
“그럼 우린 젝트 경을 만나봐야겠군. 마침, 그가 어디로 갔는지 대충 윤곽이 그려지는데.”
“네?”
지벡은 젝트의 행방에 대해서 호언장담하는 아자딘에게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