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99
298. 복수의 복수자 1
오크인 스콧은 다리에 근육이 붙는 게 싫다고 징징댔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 브리의 시체를 엮어서 만든 탈것을 타고 다니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자딘은 히포그리프에게 스콧이 타고 다니는 기괴한 탈것을 먹어 치우게 하고 대신 그를 히포그리프에 태워 먼저 보내기로 했다.
“으악! 아니 이 괴물. 이 천재적인 예술 작품을 먹어버리다니! 대장! 너무하잖아.”
“예술작품 좋아하네. 그리고 괴물이라고 부르지 마. 왜냐면 네가 이놈을 타고 날아가야 하거든.”
“아니 대장. 히포그리프의 등에 올라타라니. 매달려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근육이 붙을지 모르는데.”
“굶으면 빠진다. 잔말 말고 타고 가. 어차피 히포그리프는 지구력이 약해서 멀리 날아가진 못해.”
“대장하고 지벡 경은?”
“우리야 걸어서 가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지도를 보면 남쪽으로 하루 걸어갈 거리에 삼거리가 있는데 거기에서 합류하도록 하자.”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그럼 전언 마법으로 전언 걸어줘.”
아자딘은 비상 식량용 말린 생선을 꺼내 보였다.
스콧이 그 말린 생선에 사령술을 걸자 말린 생선이 전언술 인형이 되었다.
“그, 그럼. 으, 제발 별일 없어야 하는데.”
스콧이 먼저 히포그리프를 타고 남쪽으로 날아올랐다.
“그럼 우리도 가볼까? 괜찮나? 지벡 경? 몸 상태가 영 아닌 것 같은데. 업어줄까?”
“괜찮습니다. 농담도 심하시군요.”
갑옷을 입은 기사를 업고 가겠다니. 지벡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아자딘은 농담으로 말한 건 아니었다.
다행히 지벡이 걸을 수 있어서 아자딘에게 업히는 볼썽사나운 꼴은 면했다.
*********
셀레스철 파이어가 북상한 길을 역으로 되짚어가니 자연히 그들의 활약을 마주하게 된다.
곳곳에서 만나는 행객들이 아자딘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안녕하시오. 무사님. 도적은 아니시겠지요?”
“용모수려하고 걸음걸이에 당당함이 있으니 도적이 아니라 어디 지체 높으신 분으로 보입니다만.”
행객들은 무장한 아자딘을 두려워하면서도 아자딘의 용모를 보고 그가 도적은 아닐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구난기사단의 수련기사 아자딘이네.”
“아 구난기사단 분이군요. ”
“아자딘이라면 차드라의 아자딘 경입니까? 전령일족 출신이라는?”
“원 참. 엄청 유명해졌군. 그렇네.”
“이거 참….”
“소문과 다르군요. ”
그들은 아자딘의 용모만으로도 호감을 느끼는지 근거도 없이 호의를 내비쳤다.
‘대체 내게 무슨 소문이 도는 거야? 그리고 이 사람들은 왜 외모만 보고 그렇게 나도는 소문을 무시하는 거고?’
아자딘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잠시 발을 멈췄다. 지벡이 피로가 쌓여서 틈틈이 쉬어줘야 했다.
지벡은 칼자루를 지팡이 삼아 걷다가 근처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아자딘이 수통을 건네주자 사양하지 않고 받아 들고 마신다. 그동안 행객이 아자딘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 대해서 아십니까?”
“알지. 그렇지 않아도 그들과 만나고 오는 길인걸?”
“아, 그렇습니까? 그분들이 남쪽에서 브리들을 죽이고, 정착지 주민들을 구조해 주신 걸 아십니까? 대단했다고 하더군요.”
“마물이 들끓지만 정의의 불꽃은 더더욱 선명하게 타오르는군요.”
사람들은 정말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 마냥 셀레스철 파이어의 활약을 떠들고 다녔다.
“셀레스철 파이어에 아자딘 경 같은 영걸이 함께하니 구난기사단에 복이 있군요. 하하.”
“행상인으로 겨우 풀칠하고 사는데 이거 돈 좀 모이면 사촌네들 불러다 구난기사단 영지로 이사 가야겠습니다.”
“아이고. 저희가 잔말이 너무 말이 많았군요. 이건 별거 아닙니다만. 피로 회복에 좀 도움이 될 겁니다.”
행객들은 아자딘에게 설탕 바른 말린 과일들을 건네주고 자신들의 길을 떠났다.
“으음.”
눈 없는 괴물로 인생의 대부분을 지내왔던 아자딘은 사람들이 이렇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했나.”
아자딘은 행객에게 받은 말린 과일을 지벡에게 나눠주었다.
“눈이 없을 때도 기품이 우아했었소. 가면을 쓰고 다니면 화려한 연극배우처럼 멋들어졌지. 그런데 이제 눈이 생겼으니… 부족한 부분이 모두 채워졌구려. ”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건 좀 부끄러운데. 게다가 이건 내 누이의 죽음 이후에 생긴 일이라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어.”
“사람들이 외모에 현혹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호의에 어떤 답을 돌려주는가 아니겠소? 뭐 아자딘 경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럴 처지가 아닌데 말이오.”
지벡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린 과일을 입에 넣었다.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입안에 퍼지자 과연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처지가 아니라니?”
“왕의 교회에 대한 믿음을 잃고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도 빛이 바래버렸소.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셀레스철 파이어는 백성을 지키고 있는데 그들에게 탄복하는 마음보다는 저들을 의심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더 크구려. 그렇지 않소? 희박한 의심만으로 저들의 배후에 크나큰 죄악이 있으리라 믿고 무작정 세인트 말로리로 여정을 떠나다니. 시기심이 지나쳐 가슴 속에 이글거리는 숯덩이를 하나 삼킨 것 같소.”
“…….”
아자딘도 시기심이라는 부분에서는 뜨끔했다.
아자딘도 카르나에게, 셀레스철 파이어들에게 시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차드라 고원을 정리하고 조직을 혁신하려는 아자딘에게 셀레스철 파이어는 걸림돌이었다.
‘내가 조직을 혁신하면서 공로를 세워야 하는데 이놈들이 나서서 인망을 다 끌어버리면 내 존재가 빛이 바랜다.’
공정한 성기사로서는 품어선 안 될 마음이지만 아자딘도 인간인지라 시기심과 아쉬움이 앞서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뭐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고.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가 얄미운 건 사실이니까. 조사해 보고 별거 없으면 얄미워도 참아주는 거고, 뭐라도 있으면 그때는 걸고넘어져야지. 단순한 거 아냐?”
“그렇군요. 아자딘 경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니 역시 눈앞이 맑아지는군요. ”
“쓸데없는 소리를, 나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냉정히 생각하면 알 거야.”
그렇게 길을 가다 보니 이번엔 가도의 여인숙 입구에서 음유시인이 노래를 부르는 게 들려왔다.
“모두 들으시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거인들을 무찌른 이야기를 들어보오! 그리고 이 불쌍한 시인의 목을 달콤한 벌꿀주로 적셔주오.”
“우리 가게는 벌꿀주 취급 안 해. 에일만 팔지.”
가게 주인이 걸레 빤 물을 입구 근처 길가에 부으며 투덜거렸다.
“하하. 그렇다면 에일도 환영하오. 벌꿀주는 그저 시적 허용이라 해주시오. ”
“…거인을 무찔러? ”
본래 여인숙을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던 아자딘이 궁금해하자 음유시인이 즉각 아자딘에게 들러붙었다.
“궁금하시오? 그럼 여기.”
“…아니, 나도 구난기사단인데. 별로 안 궁금해.”
“에이. 그러지 말고 여기, 부디 따뜻한 마음으로 배고픈 예술가를 후원해 주시오.”
“원 참.”
아자딘은 지친 지벡이 여인숙 앞에 놓인 의자에 앉는 모습을 보고 모자를 내미는 음유시인에게 동전을 주었다. 그러자 음유시인이 동전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좀 더.”
“건방지네 당신? 주는 대로 받지.”
아자딘은 그렇게 투덜댔지만, 철전촉을 한 개 꺼내서 넣어주었다. 그러자 음유시인이 만족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타락이 만연한 지금의 세상에 다시금 순수한 천사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고자 구난기사단에서 발족한 아름다운 청년기사단이오. 그 단장인 카르나는 저 명성 높은 북제의 손자이며 그 휘하의 기사들 모두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미남미녀들이오. 그들이 준마를 타고 이 땅을 거니는 모습은 그야말로 천사들의 재림 같고 실제로 그들에게는 다들 천사의 혈통이 흐르고 있다오.”
“카르나가 북제의 손자라면 야에가스 신족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천사의 혈통이 흐르지?”
“아마도 모계에서 천사의 혈통이 섞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카르나 경은 그야말로 천사들과 야에가스 신왕들이 우리들 인류를 위해 내린 적법한 통치자일 것이오. 아, 카르나 경을 위해 건배하고 싶구려.”
“……..”
“카르나 경을 위해 건배를 하면 이 시인의 혓바닥이 기름칠한 물레방아처럼 매끈하게 돌아갈 것 같소이다.”
“…여기 한잔.”
아자딘이 동전을 여인숙 주인에게 주자 여인숙 주인이 껄껄 웃으며 에일을 따라주었다.
“아이고 젊은 무사 나리. 이 자식 협잡에 속아 넘어가지 마시오. 야 이놈아. 이미 꽤 받아먹고서 왜 이야기를 아끼느냐?”
“어허. 내가 매상을 올려주고 있잖소 주인장. 에일을 내가 뭐 엄청 좋아해서 뜯어내 마시는 게 아니라오. 주인장 가게 앞에서 이렇게 장사하고 있으니까 주인장도 같이 벌어 먹고살자는 내 마음 씀씀이지.”
“돈을 내는 건 나다만?”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음유시인은 못 들은 체하고 에일을 들이켜더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핌불베르트의 예언을 듣고, 사람들이 굶주리기 전에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차드라에 식량 공출을 요구하러 가던 도중 행인들을 약탈하는 거인 삼 형제를 만났는데 오가는 길 와중에 그들을 토벌하려 했다. 그러나 거인 삼 형제는 기사단이 돌격해 오자 도망쳤고 이래서야 거인들을 잡을 수 없겠다 싶은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기사단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 셋을 뽑아 동수의 결투를 청했다.
감히 인간이 거인과 맞서겠다는 도전에 거인들이 호응하고 말았으니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세 명은 각각 한 명씩 거인을 맡아 죽여버린 것이다.
“번개가 고목을 쪼개듯 카르나 경이 검을 휘두르자 거인의 머리가 수직으로 쪼개졌소이다! 이야. 그 엄청난 위력이라니. 호사가들은 왕의 교회의 성기사가 더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셀레스철 파이어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오! 만약 셀레스철 파이어의 위용을 본다면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세간 사람들!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을 작작 띄워주시오! 그들이 셀레스철 파이어를 만나면 그 다리가 가을바람 맞은 부들처럼 부들부들 떨릴 텐데 우리 기사님들의 체면을 살려줍시다! 하하하!”
술에 취해서 그런가? 음유시인은 자칫하면 경을 칠만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때 여인숙 안에서 갑자기 맥주 조끼 하나가 날아와 음유시인의 머리를 강타했다.
“건방진 새끼! 지금 감히 왕의 교회를 조롱해?!”
“으어….”
음유시인이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빈 맥주 조끼는 나뭇잔이라서 그렇게 심각한 타격을 주진 않았지만, 지금은 아픈 것보다 놀라운 마음이 먼저였다.
왕의 교회의 일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여인숙 안쪽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 대체 어떤 놈의 혀가 감히 왕의 교회를 조롱하였느냐? 또 어떤 귀가 감히… 응?”
그들은 칼을 빼 들려다가 아자딘을 발견했다.
“어?”
그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아자딘을 알아보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