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01
300. 복수의 복수자 3
“이… 새끼가.”
화가 나지만 히포그리프가 무섭다.
그리고 아자딘의 이름도 무서웠다.
“아자딘 경이라면 그 전령일족 출신 말이지? 차드라 고원의….”
“그 이름을 팔면서 세금 안 내고 지나가려고 한 놈들도 많았지? 이놈도 가짜 아냐?”
“그래도 히포그리프를 타고 있는 허풍쟁이는 없을 테지. 솔직히 통행료 안 내고 날아가려고 하면 그냥 날아갈 수 있을 텐데 굳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아니 알겠으니까 제발 좀 닥치라고 해. 시끄럽고 불쾌하잖아?”
도로 경비대원들은 울상을 지었다.
그런데 스콧은 계속 그들에게 잔소리와 요구를 하면서 그 성질을 긁는 것이었다.
“아 그런데 마실 물이 좀 필요하군요. 혹시 맑은 물이 좀 있습니까? 가능하다면 제 수통도 좀 채워주었으면 좋겠군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런 일은 이곳의 지형지물, 사물들의 배치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네?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아니면 그겁니까? 낭비되는 건 너의 시간이니 네가 직접 가서 물을 떠라? 아, 이거 참. 여러분, 시간의 가치라는 건 상대적인 겁니다. 여러분들과 달리 고도의 지성을 가진 저는 같은 시간에도 좀 더 깊은 사색과 고차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단 말입니다. 종족을 초월해 지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효율성을 생각해 보시지요. 아 여러분들의 지성으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요? 혹시 효율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려웠나요?”
“야 이….”
징수관들이 참지 못하고 창의 머리를 스콧의 가슴 높이로 낮출 때였다.
“실례지만 그쪽의 오크는 우리 일행이다. 뭔가 사고라도 쳤나?”
아자딘과 지벡이 마침내 길에 당도했다.
아자딘은 얼굴을 환하게 드러내었고, 지벡은 수배된 처지인 만큼 얼굴 가리개가 붙은 투구를 눌러쓰고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 한편에 물러나 있었다.
“아.”
“누, 누구지?”
“보라색 눈이잖아? 지, 진짜 아자딘 경이군요.”
경비대원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창을 거뒀다.
“아. 대장. 제때 왔군. 휴우. 히포그리프 고삐 잡느라 팔뚝에 근육 생긴 것 좀 보라고. ”
“…숨 쉬다 근육 붙을까 봐 걱정되어서 어떻게 사냐? ”
“그렇지 않아도 그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숨을 쉴 때 횡경막이란 근육이 폐를 쥐어짜는데 내 아는 오크 중에는 그 횡경막이 너무 두꺼워져서 호흡 곤란으로 사망한 자도 있다니까.”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근육이 너무 잘 붙는 오크들에겐 흔한 사인 중 하나였다. 내장에도 근육이 붙으면서 심폐기능 저하로 수명이 줄어드는 것이 오크들의 천형인 것이다.
아자딘은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반기는 경비대원들을 보며 그들에게 돈을 내주었다. 잔돈 주머니는 오면서 여인숙에서 털어버린 바람에 지갑에서 꺼낸 가장 작은 돈이 은화다.
“통행료하고, 남는 건 이 녀석이 여러분을 귀찮게 한 사죄로 한잔씩 사도록 하지.”
“아니 별말씀을.”
“괜찮습니다. 하하하.”
“이거 참 경우를 잘 아시는 분이네. 하하.”
병사들은 입으로는 사양했지만 아자딘이 내준 은화를 냅쭉 챙겼다.
그런데… 아자딘은 그들 옆에 길가에 말뚝이 박혀있고 말뚝에 수배지들이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지벡의 수배전단이 제일 위에 붙어있었다.
“그럼 지나가도 될까? 길을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여러분들이 그사이에 스콧과 정이 깊어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아자딘은 혹시나 해서 병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병사들이 반겼다.
“저 오크랑 히포그리프를 치워주시겠단 말이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
대체 스콧이 이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스콧이 자리를 떠난다니까 다들 어디서 꽃가루라도 구해서 뿌릴 기세였다.
경비대원들의 검문도 없이 아자딘은 변장한 지벡과 함께 삼거리를 지났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깐. 아무리 그래도 거기 투구 쓴 분은 얼굴을 보여주셔야지.”
병사들과 달리 간부로 보이는 이가 아자딘 일행을 제지한 것이었다.
병사들이 혀를 찼지만, 지벡은 군말 없이 투구의 바이저를 들어 올렸다. 얼굴에 두터운 곰보가 자란 까슬한 피부가 드러나 있고, 광대에는 붕대를 둘러서 추하기 그지없는데 회색의 눈동자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미 여기 올 때 분장을 충실히 해둔 것이었다.
브리의 살가죽을 이용해서 분장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그럴싸해서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 죄, 죄송합니다. 아이고 참. 우리 소대장이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 들어가려다가 잘렸거든요.”
“아니 상관없네. 그는 자기 임무를 다한 거지.”
아자딘은 문득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혹시 왕의 교회 사람들은 못 봤나?”
“왕의 교회 사람들이요? 흠. 아 이 근처에 왠 여자 성기사가 상단을 데리고 식량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 계속 가격이 오르고 있어서 농부들이 안 팔려고 하니까 뭐 좀 강압적으로 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왕의 교회 체면상 강도질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만.”
병사들은 말꼬리를 흐렸다.
원래 식량 매입은 세인트 말로리의 교역관에서 하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구난기사단이 관세를 먹이니까, 저들은 직접 상단을 끌고 와서 농부들에게 직거래를 거는 것이다.
이것은 탈세 행위긴 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상단들에게는 암묵적으로 묵과해 주었다.
캐러밴들이 내륙으로 들어오면 돈으로 식량을 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상품들을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이 마을 주민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의 교회에서 주민들에게 사치품이나 공예품을 팔진 않을 테고.
구난기사단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역 내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왕의 교회에게 뭐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줘야 할 판이다.
“가다가 혹시 만날 수도 있습니다만… 어지간하면 상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여자 성기사, 이단심문관의 제자라고 하더군요.”
“이단심문관의 제자?”
그 말에 지벡이 흠칫 놀랐다.
“짚이는 사람이 있나?”
“한 명이 아닙니다. 여럿이 있지요. 하지만 그중 누구일지….”
“흠. 가급적 안 만나면 좋겠지만 어떨지 모르겠군. 그래도 이제부터는 마을들이 많은데.”
세인트 말로리에 가까워져서 이제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드넓게 펼쳐진 농경지들과 그 농경지를 경작하는 농장들, 농장들이 모여 읍내를 이룬 마을들이 보인다.
‘나 혼자라면 그냥 히포그리프를 타고 날아갔겠지만, 도보로 이동하면 아무래도 만나게 되겠지? 히포그리프 이거 타고 날아가는 게 아니면 이래저래 불편하군.’
아자딘은 히포그리프를 끌고 온 자신의 선택을 살짝 후회했다.
지벡 일행과 합류하게 될 줄 알았으면 말로 끌고 올걸.
그러나 히포그리프는 아자딘과 눈이 마주치자 으쓱댄다.
아자딘의 명령에 따라 스콧을 태워다 여기까지 날라준 자신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는 짓은 귀엽네. 왜 셀림이 이렇게 히포그리프를 좋아하는지 좀 알 것 같군.’
아자딘은 히포그리프의 영특함을 보며 기분을 풀었다.
*********
관문 병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아자딘은 길을 떠났다.
그들은 스콧을 자신들의 앞에서 치워주는 것만으로도 아자딘을 구세주로 여기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괴롭혔길래 반응이 이렇게 좋은 거야?”
“지능이 낮아서 주체를 못 하는 이들에게 내 뛰어난 식견을 조금 공유해 주었어. 그랬더니만 역시 다들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데? 멍청해도 옥석을 가릴 줄은 아는 놈들이라 다행이야.”
“…….”
아자딘은 스콧의 아전인수격 해석을 들으며 말문이 막혔다.
*********
그 후 아자딘은 스콧과 지벡을 히포그리프에 태우고 육로로 이동을 계속했다.
세인트 말로리 근처로 오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번화해지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히포그리프를 끌고 다니는 아자딘 일행을 주목했다.
“아, 당신이 그 유명한 아자딘 경입니까? ”
“과연. ”
길이 번잡한 만큼 관문도 많았지만, 그들은 아자딘이 통행증을 제시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통과시켜 주었다.
수배당한 신세인 지벡 경은 브리의 살가죽을 떼어서 만든 변장 도구로 분장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투구조차 벗겨 보지 않았다.
“너무 유명해져도 문제군.”
아자딘은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은 착각에 불쾌감을 느꼈다.
기본적으로 황제의 전령은 황제의 밀사로서 유명해져서 좋을 게 없다. 이런 유명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명해지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하겠지만 아자딘은 명성을 꺼리는 쪽이었다.
그때 아자딘은 한 다리 관문을 만났다.
이제부터 세인트 말로리 영역이었다. 아직 세인트 말로리의“너무 유명해져도 문제군.”
아자딘은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은 착각에 불쾌감을 느꼈다. 시내는 아니지만 여기서부터 세인트 말로리의 관할 구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리 위에 왕의 교회의 여기사 한 명이 깃발을 들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전신 판금 갑옷을 두른 한 여기사가 머리는 산발을 하고 투구를 손애 든 채 깃발을 들고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누구지?”
아자딘이 의아해하자 지벡이 말했다.
“…메이야 경이군요. ”
“메이야 경?”
“잊었습니까? 살라스마 주교의 주무관이던, 가즈렉 경의 사생아 말입니다.”
“음. 아. 그.”
아자딘은 기억을 떠올렸다.
가즈렉 경은 분명히, 재수 없는 화살 오발 사고로 민간인을 해친 후, 그 사실을 증거인멸하기 위해 목격자들을 죽이다 아자딘과 충돌했던 인물이다.
덕분에 아자딘은 성기사 살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저 메이야 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아자딘을 추격했었는데….
“아직도 포기 안 했나? 살라스마에서 여기까지 만리타향인데 여기까지 오다니? 그만 돌아가지 좀.”
“조심하십시오. 보아하니 제정신이 아닌 듯합니다. 게다가 그녀는 당신과 절 알아볼 겁니다. ”
“……..”
문제는 그녀가 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이제와서 뒤로 돌리기엔 아자딘이 끌고 있는 히포그리프가 워낙 이목을 끈다는 것이었다.
과연 메이야는 아자딘 일행을 발견했다.
“거기 히포그리프를 끌고 있는 자! 우리는 현재 수배범을 찾는 중이다! 협조하길 바란다.”
“왕의 교회가 무슨 권한으로 여길 수색하고 있지?”
아자딘이 그렇게 반문하자 그녀가 흠칫 놀랐다.
“당신은….”
그녀는 아자딘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시야에서 아자딘의 눈 부위를 가렸다.
아자딘의 하관, 입과 턱, 목선을 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
“혹시 네놈!? 아자딘인가!?”
“그래. 내가 황제의 전령이자 구난기사단의 수련기사 아자딘이다.”
“이….”
그녀가 무기를 휘두르려 했지만 아자딘이 그녀를 말렸다.
“잠깐만. 내게 무기를 휘두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구난기사단은 나를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설마 구난기사를….”
“너는 내 아버지의 원수다!”
“그리고 네 아버지는 민간인 살해의 죄를 범했지. 아니 애초에 합법적인 부녀관계도 아니지 않나?”
“닥쳐!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우지 마라! 아버지가 살해당한 것보다 너와 배신자 지벡이 그따위 더러운 소리로 아버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게 더 화가 나니까!”
분노해서 고함을 빽 지르는 메이야 경에게서는 이전에 보였던 차분한 모습은 없이 그저 광기와 아집만이 남아있었다.
본래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민간인 살해의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지벡 경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그 후 지벡 경이 왕의 교회 성기사단에서 축출되자 그녀는 지벡이 실은 아자딘과 한 패였고, 그러니 그의 증언은 바로 아자딘에 대한 복수심을 가진 그녀를 속이기 위한 기만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다시금 복수의 길에 올랐다. 이번엔 아자딘만이 아니라 지벡까지 복수 대상으로 넣어서! 그래서 살라스마에서 세인트 말로리까지, 만리타향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쓸데없이 소문이 널리 퍼진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