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02
301. 복수의 복수자 4
대체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광기에 찌든 그녀가 아자딘에게 깃발을 겨눴다.
“아자딘! 네놈에게 결투를 청한다! 네까짓 놈도 사내라면 정당한 결투를 받아들이겠지?”
“응. 싫은데?”
“그래 네놈도 어쨌건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으니까. 어… 뭐?”
순간 메이야는 당황했다. 아니 보통 이 경우 거절하는 게 말이나 되나?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고 왔는데.
게다가 그녀는 아자딘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래도 구난기사단에 들어가지 않았나?
명색이 구난기사단의 성기사라는 놈이 결투를 거부해?
“우선 당신, 최근 제대로 잠을 자긴 했나? 머리는 산발하고 눈은 충혈된 상태로 결투를 하겠다니. 무슨 망발이지?”
“네 놈이 내 상태를 신경 써줄 이유는 없잖아?”
“아니지. 애초에 그대는 이미 과거에 나에게 도전해서 패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부지하고 떠났다. 나로서는 이미 승패를 결정지었던 상대가 피폐해져서 덤벼드는 데, 그런 자살행위에 내 칼을 더럽히고 싶지 않군.”
“너는 내 아버지의 원수야! 나에겐 복수할 권리가 있어! 살인자인 네게 결투를 거부할 권리 따윈 없다!”
“글쎄다? 네 아버지는 이미 왕의 교회에서도 망령기사로 만들었지 않나? 민간인을 실수로 학살한 죄를 인정했으니까, 왕의 교회에서도 네 아버지를 망령기사로 만든 거 아닌가? 아니면 뭐야? 왕의 교회는 명예롭게 임무를 수행하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모욕하는 그런 무도한 조직인가?”
“윽….”
메이야는 아자딘의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의 무죄를 주장하자니 왕의 교회를 모욕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유죄를 인정하자니 자신이 결투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패악질이다.
아자딘의 말은 하나하나 다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그녀는 머리가 혼미하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이 흐릿하다.
그래서 대답할 말은 없지만, 감정은 오히려 더더욱 상했다.
“웃기지 마. 네놈의 세 치 혀로 지금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사실이 그렇잖아? 네 아버지를 망령기사로 만든 건 젝트 경이었어. 그렇지 않나?”
“아니 그건… 으윽.”
메이야는 갑자기 자기 머리를 감싸 쥐고 휘청거렸다.
살라스마 주교구의 주무관을 맡을 만큼, 적어도 외모만은 말쑥했던 그녀가 광인처럼 산발하고 휘청거리고 있으니 예사롭지 않다. 그런 그녀의 광기와 분노를 아자딘의 말솜씨가 잘근잘근 톱질하며 자극했다.
“이런, 안 되겠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물러나서 좀 쉬어라. 어차피 나는 젝트 경에게 전서구도 보냈다.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을 테니까 한숨 푹 자고 나서 찾아와라. 아니면 젝트 경과 함께 덤벼도 좋고.”
아자딘은 메이야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아자딘의 눈앞으로 섬광이 달렸다.
무서운 기세의 찌르기다.
메이야가 들고 있던 깃발로 아자딘을 찌른 것이다.
깃발의 끝에는 형식적인 작은 창날이 붙어있는데 실전용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람이 불면 휘청거리는 깃발인데, 그 위에 전투용 창날을 달면 무거워서 감당이 안 될테니까.
그러나… 실전용이 아닌 예식용 창날이라 해도 이렇게 빠르고 강하게 찌르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자딘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틀어 그 공격을 피해냈다.
메이야는 아자딘이 방심하다 휘청거리는 걸 보며 연거푸 깃발을 찌르며 아자딘을 몰아붙였다.
“으왁!”
“꺄악!”
다리를 지나던 다른 행인들이 놀라서 난리가 났다. 아자딘은 목으로 날아드는 깃발 창을 손으로 쳐냈는데….
-텅!
묵직한 굉음과 함께 아자딘이 지탱하고 있는 발이 다리 상판을 부수고 박혔다.
“윽?!”
엄청난 힘이 창대로부터 전해져서 아자딘의 몸을 훼손하려 했다.
아자딘은 그 충격을 흘려보내려고 하다 그만 바닥을 세게 밟아서 발이 다리를 부수고 박히고 만 것이다.
‘뭐야? 왜 이렇게 일취월장했어? 못 본 사이에 용의 피라도 마셨나?’
아자딘은 갑자기 강해진 메이야의 공격에 당황하며 발을 빼려 했다.
“죽어라!”
메이야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거리를 좁혀 아자딘을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때 아자딘의 왼손이 펼쳐졌다.
-부우우웅!
아자딘의 손아귀 안에서 그림스로운의 곤봉, 아니 도끼가 회전한다.
풍차처럼 도끼가 스스로 허공에서 돌며 아주어스틸로 만들어진 도끼머리, 청의 처형인이 빛의 원반으로 변했다.
그 빛의 원반이 튀어 나가며 메이야의 검을 강타하고 그녀를 도낏자루 뒷부분으로 강타했다.
-빡!
“아.”
비살상으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너무 강하게 꽂혔다.
아자딘은 자신이 메이야를 죽이지 않았을까 당황했는데….
“흐? ”
메이야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섬찟하게 웃었다.
사람 아니라 곰이라도 방금 일격엔 아찔해졌을 텐데 놀랍게도 인간이 무지막지한 공격을 맞고도 버텨냈다.
‘이거 인간이 아닌데?’
아자딘은 그 틈에 발을 빼내고 물러났다.
“아버지의 원수!”
메이야는 크게 고함을 지르며 아자딘에게 창과 검을 휘둘러왔다.
검술의 법도를 무시하고 창칼이 막무가내로 폭풍우처럼 쏟아진다.
아자딘이 청의 처형인으로 그 공격을 막아냈는데 손이 저리고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럴 수가? 내 카자스 해서가 약해졌다고 해도 어째서 이렇게 밀리지?’
그 순간 아자딘은 눈앞의 메이야의 몸집이 커졌음을 깨달았다.
판금 갑옷을 연결하는 가죽끈이 찌직찌직 소리를 내며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몸 안에 근육들이 비대해지면서 갑옷이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어느새 그녀의 매끈한 얼굴에 철사 같은 적갈색 털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멧돼지 인간??”
메이야는 커다란 멧돼지 인간, 웨어 보어로 변신해서 그 힘으로 아자딘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자딘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메이야의 공격을 흘려내며 당황했다.
그녀가 왜 인간 같지 않은 모습으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웨어보어가 되어서 강해졌다는 수준이 아닌데?’
아자딘의 부하 중에는 하프엘프이면서 웨어울프인 리전이 있었다. 리전을 상대해 본 경험에서 보면 지금 메이야는 리전보다 더 강하다. 즉, 메이야의 강함은 단순히 웨어보어가 된 것 이상의 비밀이 있었다.
아자딘은 자신의 세라마이트 장검, 아우렐리아 던을 뽑아 들었다. 아자딘은 그 검으로 자신을 후려갈기는 메이야의 창을 흘려보내고 칼날을 그녀의 겨드랑이에 올려 쳤다.
그리고 몸을 빙글 돌리자….
-서걱!
메이야의 팔이 잘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성을 잃고 무작정 맹공을 펼치는 것에 경험이 부족한 이들은 함께 흥분해서 자기 재주를 펼치지 못하고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자딘은 이미 온갖 괴물들과의 싸움에 이골이 난 인물이었다.
“크윽….”
메이야는 자기 팔을 덥석 집어 들더니, 상처에 대고 피를 지혈시켰다.
상처 부위가 세라마이트 장검의 불길에 타서 바로 재생되진 않지만, 피가 빠르게 멎는다. 아마 저렇게 대고 있으면 팔조차 다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리라.
하지만 아무리 웨어보어라 해도 이 상태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였으니 그 딸도 내 손으로 보내는 건 너무하다 싶어서 놔주었지만… 웨어보어가 된 것은 도를 지나쳤군.”
아자딘이 상대를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히거나 죽일 때는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메이야기 그 선을 넘지 않아서 죽이지 않았지만, 웨어보어가 된 것은 확실히 선을 넘었다. 아자딘이 보지 않는 곳에서 민간인들을 죽이고 잡아먹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네놈이….”
메이야는 자신의 목을 치기 위해 검을 빼 들고 다가오는 아자딘을 보며 치를 떨었다. 팔이 잘린 상처는 웨어보어의 무서운 생명력으로 벌써 출혈이 멈췄지만 그렇다고 싸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잘려진 팔, 떨어진 신경계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지금도 그녀를 뒤흔들고 있었다. 눈앞에서 불빛이 오락가락하고 사물을 확인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때 화살이 날아왔다.
아자딘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지만 화살에는 마법이 걸려있었다.
화조풍월의 황학, 무서운 마력 충격이 아자딘의 팔을 마비시키고 그대로 밀고 들어와 목을 찌르려 했다.
아자딘은 고개를 돌려 화살을 피해내고 몸을 뒤로 날렸다.
“아니 진짜냐?”
그사이 한 발이 아자딘의 히포그리프, 파이어윈터에게 맞았다.
끼에엑!
파이어윈터가 날뛰자 위에 타고 있던 스콧이 떨어지고 사방이 난장판이 되었다.
그 틈을 타서 웨어보어, 메이야는 잘린 팔을 들고 휙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녀를 대신해 전령일족의 암살자들이 다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일족의 배신자! 아자딘! 각오해라!”
“너를 죽이고 일족의 숙원을 방해한 원수를 갚겠다!”
“…농담이지?”
아자딘은 자신보다 아래 기수의 아직 어린 전령들이 덤벼드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아자딘을 원수로 두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복수하려는 사람들끼리 상의해서 순번을 정해야 할 판이다.
*********
아자딘의 존재는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수께끼의 신왕살해자,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불리는 전령일족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자가 구난기사단에 가입했다는 것만으로도 온 세상에 그 이름이 알려질 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 후 아자딘의 행보가 그야말로 엽기적이었다.
아자딘은 죽음의 기사 플랑크 경의 검, 아우렐리아 던을 수복했으며 후원자로 콕스할의 아케나르 주교를 두었다.
그리고 차드라 고원에서는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이들을 차례차례 격파하거나 포섭하였으니, 호사가들이 아자딘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아자딘의 소문은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으며 전령일족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숙원을 배반한 배신자가 이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모욕이었다.
차드라 고원에는 이미 반다이크 상회라는 전령일족의 하부조직이 있었지만 반다이크 상회 지부장은 자기 능력으로는 아자딘을 어찌할 수 없다는 소견을 보내왔다.
일족의 대역죄인을 두고 감히 손을 못 댄다니? 그러나 차드라 지부를 무능하다고 처벌하기엔 이미 많은 전령일족들이 아자딘에게 당했다.
전대 두령 하티르도 아자딘에게 살해당했으니 차드라 고원의 군벌로 성장한 아자딘을 어찌하지 못한다고 전령도 아닌 반다이크 상회 지부장을 처벌할 수는 없으리라.
대신 그들은 아자딘이 차드라 고원을 나왔을 때 암살하기 위해 암살단을 보낸 것이다.
다만 전령일족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환란 때문에 인재가 부족했는지 이 암살단원들은 어째 아자딘보다 기수가 낮고 경험도 부족한 그런 이들이었다.
그들도 자신들만의 힘만으로는 아자딘을 제압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메이야 경이 아자딘을 공격해 힘을 빼놓는 걸 보고 나서 뛰어들었다.
“다들 조심해! 무안의 아자딘이라고 해도 그는 이미 전두령 하티르를 시해했고….”
“그런데 과연 사실일까? 저 녀석 내가 훈련생일 때 봤는데 그때도 빌빌거렸는데.”
아자딘보다 기수가 낮은 이 암살단원들은 아자딘을 삼면 포위하고 화살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