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05
304. 세인트 말로리 지하도 2
세인트 말로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 중의 하나다.
브투마가 설탕 농장으로 유명하지만, 브투마가 사탕수수 재배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세인트 말로리에서 전 세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남방밀과 보리를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엄청난 인구 부양 능력 덕분에 세인트 말로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가 될 수 있었고, 또 구난기사단 신앙의 성지이기에 순례자 또한 많았다.
그런 순례자들을 위해 가이드 업무를 하는 관광가이드라는 직업까지 있을 정도였다.
“자 여기가 바로 승천의 문입니다. 어때요? 놀랍지 않습니까? 놀랍게도 이 문 양옆의 벽은 보시는 것처럼 회반죽을 발라서 한 장의 돌처럼 보이는데… 수백 년이 지나도록 금 하나 가지 않고, 어디 떨어지는 일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오오.”
아자딘은 연신 감탄하면서 승천의 문을 관람하고 있었다.
스콧은 코웃음 쳤다.
“콘크리트야. 대장. 한 장의 돌로 보이지만 안에는 여러 골재를 합쳐서 콘크리트로 굳힌 거라고. 표면에 금이 안 가는 건 보아하니 매번 죽어라 유지보수하고 있기 때문일걸.”
“그래도 대단하지 않냐?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런 장식이 없다고 뭐라고 하는데 장식이 없어도 이렇게 크기만 해도 웅장하고 멋진걸.”
“대장은 평소에 다른 것들엔 야박한데 구난기사단과 천사신앙에 관련된 것엔 무조건 후한 점수를 주는군. 나의 천재성에 그렇게 후한 점수를 주면 좋을 텐데.”
그때 지벡이 아자딘에게 경고했다.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아자딘 경.”
“아.”
얼굴을 가리는 검은 베일을 쓴 수도사들이 저 앞에서 아자딘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자비 교단인 것 같군요. ”
구난기사단의 삼대 종파 중 하나, 자비 교단의 안식인도자들이 아자딘을 찾아온 것이었다.
*********
자비교단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선두에 선 이는 검은 베일을 얼굴에 두른 수녀였다.
“강녕하신지요? 아자딘 경. 저는 하이네. 자비 교단 소속의 호스피탈러이자, 안식인도자입니다. 최근 명성 드높은 아자딘 경이 세인트 말로리에 당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만나 뵙고자 사자를 몇 차례 보냈는데 그때마다 부재중이라고 하셔서…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직접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검은 베일을 쓴 여성에게서는 농밀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입을 열 때마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자극적인 향기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고혹적이었고, 갑옷 대신 수녀복을 입은 그녀에게서는 위험한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녀에게서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은 은근한 노기였다.
‘이 자식, 자리를 비우고 어딜 싸돌아다니나 했더니만, 관광을 다니고 있었어? 관광? 그걸 하자고 내 호출을 무시하는 거냐?’
교단에서 꽤 높은 신분인 그녀가 사자를 아자딘의 숙소에 보냈는데 아자딘은 숙소를 비워둔 채로 일반 순례자들처럼 관광을 다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꽤 높은 수준의 정신 수양이 필요했다.
쌍욕을 퍼붓지 않은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신수양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은근한 노기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흠, 성기사단 소속이시란 말이지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이네 경. 무슨 일로 이 미관말직의 수련기사를 몸소 찾아오셨는지요?”
“아자딘 경. 당신의 곁에 있는 이는 수배자인 지벡 경이지요? 왕의 교회 출신인?”
“…….”
지벡은 그 말을 듣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변장도 하고 별일 없이 세인트 말로리에 들어왔는데 그래도 소용이 없었나 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실은 차드라 고원에 연락해 당신의 대원 중 누가 당신과 합류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당신이 기사단에 합류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었는지, 그 행보를 되짚어 보기도 했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론이 도출되더군요. 저 오크는 스콧 맥그린이고 함께 있는 검사는 스콧 맥그린이 마지막에 용병으로 참여했던 브투마 북부 산악군에 함께 있던 지벡 경일 거라고.”
“그렇게까지 알아보셨습니까?”
“아자딘 경. 당신은 최근 이 일대에서 가장 단시간에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당연히 뒷조사는 해야지요.”
“흐음.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조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저희 자비 교단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이네는 은근히 자신들의 조직력을 자랑했다.
아자딘이 아무리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가 지벡과 행동을 함께했었다는 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왕의 교회에서는 자신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니 감추려 할 테고, 구난기사단이 그 정보를 입수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파이 조직이기도 한 자비 교단은 그런 정보들을 취득하고 분석해서 아자딘이 지금 함께하는 이가 지벡일 것이라고, 소거법으로 분류해 낸 것이다.
‘역시, 괜히 구난기사단에서 가장 무서운 종파라는 게 아니군. 이거 참, 쓸데없이 유명해지니 이런 문제가 있네.’
아자딘은 하이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가 누명을 쓰고 있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다르한 자덱을 살해한 것은 그가 아닙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소거법으로 알아낼 정도면 왕의 교회 또한 소거법으로 알아낼 테고, 자연히 이는 종파간의 문제가 되겠지요. 왕의 교회는 배신자인 지벡 경의 신병을 원하는데 그걸 우리가 막연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말투는 공손하지만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지벡을 빌미로 아자딘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어 저기, 손님?”
관광가이드가 난처해하며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아 저희는 무시하고 가셔도 됩니다. 가이드 잘 받았습니다.”
아자딘은 관광가이드에게 팁으로 은화를 던져주고 하이네를 돌아보았다.
“그럼 하이네 경. 제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아자딘도 더 이상 말 빙빙 돌려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이 자식이?’
자비 교단의 단원들은 아자딘의 태도에 황당함을 느꼈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자비 교단의 사절이 분명히 호출했는데 이놈은 관광하질 않나.
여기까지 그들이 직접 찾아온 것만으로도 그들의 체면에 먹칠한 셈이다.
그런데 그들이 약점을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도리어 뭘 원하냐고 대놓고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하이네는 침착한 태도로 설명을 시작했다.
“아자딘 경. 혹시 세인트 말로리에 거인의 지하도라는 미궁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
“금시초문이군요. 어떤 곳입니까?”
아자딘은 일부러 모르는체 하고 물어보았다.
“금시초문이라.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하지만 뭐, 처음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세인트 말로리 요새는 본래 거인들의 도시였습니다. 거인들의 지하도는 그 당시에 지어진 도시의 하수도였지요. 하지만 아무리 정비가 잘 돼 있고, 치안이 좋은 도시라도 하수도는 해수와 유독가스, 그리고 부도덕한 이들과 사교도들이 숨어다니는 끔찍한 곳이 되기 마련입니다만… 세인트 말로리의 지하도는 그 이상입니다.”
“그 이상이라시면?”
“지혜 교단에서 각종 마법의 잔여물을 하수도에 투기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부산물을 다른 교단에 보여줄 수 없다며 무단 투기하는 쪽을 선호하더군요.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다른 교단에서 규제를 가하려고 해도 지혜 교단이 교단의 심층부를 장악한 이후로는 정도가 더 심해졌고요.”
구난기사단 지혜 교단의 마법 연구, 그 부산물이 하수도에 버려지면서 하수도는 마력이 가득 찬 곳이 되었고 그로부터 온갖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차례 구난기사단에서 직접 하수도 탐험대를 만들어 안에 들여보냈지만, 이미 마력 오염이 극심한 하수도는 본래 하수도를 건설한 거인들이 남긴 지도를 들고 가도 길을 찾을 수 없는 미궁으로 변해있었다.
게다가 지혜 교단이 소극적이었기에 구난기사단으로서도 그저 안에서 슬라임이나 다른 마물들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정도밖에는 성과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것은?”
“지하도를 돌파해서 지혜 교단의 비밀을 밝혀주시지요. 어차피 당신도 그것 때문에 오신 게 아닌가요?”
“흐음….”
물론 아자딘은 그러기 위해서 온 게 맞다.
그러나 지혜 교단의 비밀을 알아내는 게 목적이지 그걸 굳이 자비 교단과 나누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자비 교단은 지벡의 정체를, 그 신병을 붙잡고 그것을 빌미로 아자딘을 위협해서 수확물을 나누자고 하는 것이다.
“물론 맨입으로 부탁드리진 않겠습니다. 저희 자비 교단의 안식인도자들을 붙여드리지요. 인력은 물론 정보와 물자도 제공하겠습니다. 물론 그 정보 중에는… 당신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젝트 경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젝트 경이 지하수도에 들어갔단 말이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겁니까?”
“용기 교단이 왕의 교회의 병력을 끌어들였기 때문이지요.”
“용기 교단만 그들을 끌어들였단 말인가요?”
아자딘의 목소리에 의혹이 붙었다.
세인트 말로리는 구난기사단의 성지, 그곳에 구난기사단과 느슨한 동맹관계인 왕의 교회를 들여와서 그들의 심장부를 탐사하게 만든다는 건 어디 한 교단의 독단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소한 자비 교단도 함께 동의하지 않았는가? 아자딘은 그렇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하이네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수도 정리 작업에서 매년 사상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용기 교단에서는 지혜 교단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왕의 교회에 흘렸고, 왕의 교회는 세라마이트 제조법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신들의 정예 병력을 투입해서 본의 아니게 지하수도 청소를 돕게 되었지요. 그런데 최근, 셀레스철 파이어가 등장하자 이단심문관까지 들어올 정도로 몸이 달아오른 듯합니다.”
그녀는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셀레스철 파이어의 등장으로 몸이 달아오른 것은 자비 교단 그들일 것이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잠깐 활동한 것만으로도, 민심이 확 기울었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지혜 교단의 산하 조직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이대로라면 기사단의 모든 권력이 지혜 교단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도 멀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용기의 교단, 자비의 교단 이 두 종파는 어떻게 해서라도 셀레스철 파이어의 비밀을 파헤쳐야 하는 것이다.
기사단의 치부’를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그 기사단의 치부를 드러내는 건 하필이면 전령일족 출신인 나란 말이지. 여차하면 도마뱀 꼬리처럼 싹뚝 잘라내기 좋은?’
아자딘은 자비 교단이 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알아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거부한다면 이들은 지벡의 신병을 가지고 아자딘을 위협해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