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08
307. 세인트 말로리 지하도 5
이것은 일개 성직자나 성기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류의 가장 거대한 두 종파 간의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아무리 하이네가 자비 교단의 고위성직자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았다 하더라도 경거망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쩌지? 말려야겠지만… 상대는 부패의 천사와 싸워서 소모가 심한 상태. 하지만 그래도 만약 싸웠다가 지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죽게 될 텐데.’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중압감에 눌려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자 아자딘이 나섰다.
“이야 젝트 경. 이런 데서 만나다니 이거 참 깊은 인연을 느끼는군요. 지벡 경과 회포를 푸는데 죄송합니다만, 지금 뭘 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보시다시피 구난기사단의 추악한 이면을 보고 있습니다. 이 부패의 천사를 보십시오.”
젝트는 부패의 천사를 가리켰다.
“구난기사단이 천사의 피를 얻어낸 것은 실제로 천사를 죽여서 얻어낸 것이오. 그리고 여기 이것이 바로 그 시체지. 구난기사단이 천사의 피를 뽑아낸 망해에 마력과 저주가 깃들어 움직이는 게 부패의 천사요.”
“외람되오나 넘겨짚지 마시지요. 젝트 경. 부패의 천사는 아주 오래전 죽은 고대 전쟁의 흔적입니다. 구난기사단이 천사를 죽였다니, 그런 불경한 발언은 아무리 젝트 경이라 해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이네가 젝트의 발언에 반박했다.
그러자 젝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당신들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 지하도에 들어온 것 아닙니까?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을 만들어 낸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아 그럼 젝트 경은 셀레스철 파이어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여기 들어오셨다?”
아자딘이 능청 떨며 물어보았다. 물론 아자딘도, 젝트도, 하이네도, 다들 서로의 속내는 알고 있지만 입장상 그걸 공식적으로 말할 처지는 못 되었다.
“저희는 그저 이 지하에 숨어든 사교도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늘 있는 토벌 행사였습니다.”
“그것참 우연이로군. 우리들도 마침 사교도들을 토벌하고 지하도에서 가끔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를 조사하기 위해 내려왔는데.”
하이네가 똑같은 말로 받아쳤다.
“아자딘 경은?”
“관광차….”
“관광?”
“원래부터 세인트 말로리에 관심이 많았거든. 어린 시절부터 구난기사단의 책을 끼고 살아서.”
“……….”
젝트는 아자딘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생각했지만, 지벡은 아자딘이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라는 걸 알았다.
‘이 지하도에 들어온 것도 관광의 일환으로 친단 말인가? 미친놈인가?’
하이네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녀도 아자딘이 진심으로 세인트 말로리 관광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는 관광가이드에게 돈을 주며 세인트 말로리 시내를 관광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쩌겠습니까? 아자딘 경. 그대와 나는 쌓인 문제가 많은데 이 기회에 풀어보겠습니까? 내가 지치고 내 부하들이 상처 입어 힘들 때?”
“쌓인 문제라…. 미안하지만 뭐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신왕진서 사본.”
“없다니까. 그건 브투마의 옥좌의 기능을 수복하기 위해 다 써버렸다고 몇 번을 말해.”
“날 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그래. 믿어 좀. 몇 번을 말해?”
“…….”
젝트는 아자딘의 막말에 노기를 드러내며 천천히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하수도의 수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쥐떼와 벌레떼들이 화들짝 놀라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하나가 아닌가 보군.”
또 다른 부패의 천사가 활동하는 게 느껴졌다.
“이 상황에 이런 말 꺼내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
아자딘이 말을 꺼냈다.
“여기서 우리끼리 싸우다 체력을 낭비하지 말고, 일단 셀레스철 파이어의 비밀이 뭔지부터 좀 탐사하면 안 될까? 괜히 여기서 우리끼리 힘 빼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것 같은데.”
“당신이 절 믿고 배후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젝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아자딘을 비웃었다.
그러나 아자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
젝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말인데 하이네 경.”
“네?”
“이렇게… 대형을 짤까 하는데?”
아자딘은 팀의 배치를 새로 짰다. 아자딘 일행이 앞에 서고 그 후미에 하이네, 최후미에 젝트를 붙이는 모양새였다.
‘아니 이게 무슨… 미쳤나?’
하이네는 아자딘의 배치에 기겁했다. 젝트가 만약 배신해서 선제공격을 감행하면 우선 하이네 먼저 젝트에게 살해당하게 된다.
즉, 아자딘 입장에선 믿을 수 없는 하이네를 젝트와의 완충지대에 던져넣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이네가 아자딘의 뒤통수를 치려면? 당연히 자신의 뒤에 있는 젝트와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삼파전의 양상을 이용해서 젝트와 하이네를 자신의 뒤에 배치하다니. 이런 과감한 배치가 또 있을까?
‘이, 이론상 가능하긴 하지만 어느 미친놈이 이런 이론에 자기 뒤통수를 맡겨?’
당황하기는 젝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나 대담한 행동을 하다니? 말을 먼저 꺼낸 이상 이제 와서 농담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자는 정말 신왕진서 사본이 없단 말인가?’
젝트는 자신에 빗대어서 아자딘이 신왕진서 사본을 착복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신왕진서에 적혀있는 마법들을 익히는 것과 별개로 신왕진서 사본은 왕의 교회의 신앙력을 모으는 매개체, 강력한 마력의 원천이 되는 마법의 보물이다. 그런 걸 착복하지 않는다는 건 마법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자딘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문득 그가 여기에 관광차 왔다는 말도 아예 거짓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 정도면 모두 만족할 대형이지? 협력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쁜데. 자 그럼 가볼까?”
아자딘은 부패의 천사가 마력 진동을 일으키고 있는 지하도의 심장부를 손으로 가리켰다.
“……….”
하이네도 젝트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제, 젝트 경. 어떻게….”
젝트의 부하들도 난처해했다.
어떻게 대항해 보고 싶지만, 명분도 없고 체력도 없다. 그들은 이미 부패의 천사와 한 번 싸우면서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를 냈고 그에 반해 아자딘 일행은 별 소모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아자딘의 저 여유로운 태도가 그들을 두렵게 했다.
왕의 교회 입장에서 보면 아자딘은 코라사르와 브투마 왕국을 파괴하고 신왕진서 사본을 찬탈한 대역죄인이며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는 마법사.
아자딘에게 덮어씌운 죄들의 목록만큼, 그 악명이 드높아질수록 그에 대한 공포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만든 거짓된 허상에 겁먹은 모습을 보며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들은 여기 남아서 부상자와 사망자를 수습하고 상부에 연락하도록 하십시오.”
“젝트 경?”
“저는 내뱉은 말이 있으니 저들과 행동을 함께하겠습니다.”
젝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아자딘의 제안에 응했다.
“좋아. 훌륭한 선택이야. 젝트 경. 합류를 환영하지.”
아자딘은 정말 젝트에게 일행의 최후미를 맡겼다.
*********
지하도를 탐사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여도가 높은 이는 바로 사령술사 스콧이어었다.
스콧 맥그린은 생명체의 아우라를 확인하는 특수시각으로 주위의 마물, 언데드를 확인한 후 시체들을 먼저 움직여서 혹시 모를 함정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오수나 오물들 때문에 가로막힌 길도 치우면서 최단 거리로 일행을 안내했다.
언데드와 사령술을 좋아하지 않는 하이네도 스콧의 일 처리가 너무나도 신속 정확하고 깔끔해서 뭐라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으음.”
젝트는 아예 본인이 사령술을 쓰기까지 하니 스콧의 사령술에 대해서 뭐라고 못하고 있었다.
그때 아자딘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젝트 경.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 말입니까?”
“당신 부하인 그 여기사, 메이야 경, 여기까지 쫓아와서 라이칸스로프가 되었던데?”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독자 행동을 하겠다고 해서 허락했더니, 그사이에 걸린 모양입니다. 그 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세인트 말로리에서 봤거든? 내가 온다는 걸 알고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데 정말 본 적이 없다고?”
“당신이 온다는 건 저희 쪽에서 공유하긴 했습니다만 아마 그 연락망에서 정보를 알아낸 모양입니다.”
젝트는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대답했다.
즉, 젝트는 아자딘이 차드라 고원에서 내려올 상황에 대비해서 부하들에게 일러두었고, 부하들끼리의 연락망을 통해서 메이야에게 그 사실이 알려졌다.
그렇지만 메이야가 라이칸스로프가 된 것은 내 통제 밖이었다. 이렇게 변명하는 것이었다.
“부하들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군. 뭐 야에가스 신족의 피를 이었으니까 부하들을 그렇게 막대해도 다들 따르긴 하겠지만. 보통 조직 같으면 등 뒤에서 칼 맞아. 너무 귀한 핏줄로 태어나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세상 물정에 어둡다니까.”
아자딘은 젝트의 변명을 반쯤 흘려듣고 그렇게 충고했다.
듣고 있던 하이네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미친놈이 뒷생각 안 하고 말을 막 하는데… 그게 또 틀린 건 없구나. 아주 꼬신데?’
아자딘이 은근히 젝트를 엿먹이는 걸 보며 그녀는 내심 기뻐했다.
그런데 그때 선두의 언데드들을 조종하던 스콧이 외쳤다.
“대장! 넓은 곳으로 나왔는데!”
“그래?”
“사다리가 있고 이것저것 마법약들이 많이 버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가 지혜 교단의 지하인 것 같아!”
스콧이 말하는 대로 아자딘 일행은 거대한 하수구 통로 밑에 당도했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듯한 거대한 철제 사다리가 벽에 붙어있고 그 위로 거인 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 거기서 버려진 무수한 실험체와 약물, 마법잔해의 흔적이 밑에 쌓여있었다.
지혜 교단의 심장부, 그들의 연구실까지 부패의 천사를 만나지 않고 당도한 것이었다.
‘아니 이런 행운이… 하필 이런 때에?’
하이네는 이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 자비 교단이 몇 차례나 정예 탐사단을 구성해서 보냈지만 다들 지혜 교단의 연구실 근처도 못 왔다.
부패의 천사를 포함해 강력한 마물들이 지혜 교단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더더욱 자주 출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자딘 일행은 별다른 저항 없이 지혜 교단 밑에 당도해 버렸다.
‘죽 쒀서 개 줬군.’
젝트도 이 상황을 파악하고 혀를 찼다. 젝트와 그의 부하들이 부패의 천사를 포함해 다양한 마물을 상대하느라 거의 전멸에 가까운 희생을 치른 덕분에 지하가 청소되었고, 그 틈을 타서 아자딘 일행이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 보이지 않은 용기의 기사단이나 모험가들, 보물사냥꾼 등이 최근 이곳에 몰려서 만들어진 우연이리라.
아자딘 일행은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지혜 기사단의 비밀 연구소 그 심장부에 당도한 것이었다.
‘괜찮을까? 지혜 교단의 비밀이라는 게… 이단심문관에게 알려져도? 아무리 지혜 교단이 우리의 경쟁 파벌이라고 해도 그는 같은 구난기사단이지만 저자는 아니야.’
하이네는 문득 불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