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11
310. 기적의 인도자 3
‘지벡이 그렇게 실력이 좋은 줄은 몰랐군요. 게다가 그 오크. 이거 참 함정에 빠지다니.’
용병과 모험가들, 그들의 길드인 셀소드 조합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바질리스크를 죽인 전설적인 검호, 베르담의 최후는 고블린이 던진 눈먼 돌멩이에 맞은 상처가 덧나서 죽었다고.
아무리 강하고 뛰어난 재주를 지닌 이라고 하더라도 피륙으로 이뤄진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하잘것없는 상처나 부상에도 죽기 마련, 방심과 불운은 그 어떤 강자라도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젝트는 방심이 지나쳤다. 지벡과 스콧은 결코 방심해선 안 되는 위험한 인물들이었는데 아자딘이 없다고 너무 방심한 것일까?
-화르르륵!
젝트가 만들어 낸 네더의 마물들의 촉수가 불타오른다.
부패의 천사들이 자신들의 마법으로 네더의 존재들을 불사르며 점점 젝트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젝트의 머리 위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젝트 경! 괜찮나?!”
놀랍게도 아자딘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자딘 경. 당신의 그 오크 술사가 제대로 절 엿 먹였습니다. 설마 이곳의 수호 룬을 깨버리다니.”
“망자인도의 불꽃 말인가?”
스콧이 젝트를 제압하기 위해 일부러 부패의 천사를 불러들이고 지벡과 함께 탈출한 모양이었다.
“네. 그 오크는 정말 대단하더군요. 저보다 더 사령술이 뛰어난 자는 처음 봤습니다. 게다가 지벡도 예전보다 실력이 늘었더군요. 좋은 스승을 만난 건지 아니면 위축된 정신이 해방되어 본래 실력을 이제야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젝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벡의 정신이 위축되었다면 그것은 지벡을 가르친 젝트와 왕의 교회의 억압된 환경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지금 젝트의 발언은 누워서 침 뱉기. 물론 이러한 억압이 전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타인에게 억압이라는 것도 이해할 감수성이 없다.
반면 젝트는 그러한 감수성은 가지고 있으되 본인의 의지로 손을 더럽혀 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야심과 뒤틀린 사명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는 어떤 짓이라도 저지르려고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자신보다 몇 수는 아래라고 얕잡아보던 이들의 함정이랄 것도 없는 흐름에 빠져서 위기에 봉착했다.
“그야 스콧은 그게 주전공이고 당신은 다른 마법도 많이 익혔잖아. 전문마법사에게 전문 분야에서 밀린다고 해서 상심할 필요는….”
“…….”
아자딘에게 그런 위로를 바란 건 아닌데 아자딘은 이 상황에서 젝트의 사령술 실력을 변호해 주었다.
“일단 위에서 천사의 알을 만드는 의식을 지켜보았어. 내막을 알아냈으니 더 이상 볼일은 없다. 자리를 피하지.”
“제정신입니까? 눈앞에 저게 안보입니까?”
젝트는 아자딘에게 반문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젝트조차 부패의 천사 셋은 감당하기 힘들다. 아무리 평정을 가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 해도 지금 아자딘의 평정은 어딘가 이상했다.
젝트도 가급적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지금의 아자딘의 태도는 젝트의 그것과 결이 다른 이상성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을까?
젝트도 고전한 부패의 천사들을 하나가 아니라 셋이나 마주하고 있는데 아자딘은 어째서 이렇게 평안한가?
그때 아자딘이 부패의 천사들 앞에 나아갔다.
썩어 문드러진 천사의 망해들은 뼈로 만들어진 검과 사슬들을 들고 아자딘을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부패의 천사들에게 속박된 죽음의 존재들, 망자들도 아자딘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촤르르륵!
부패의 천사의 뼈로 만들어진 검에 매달린 쇠사슬이 스스로 살아있는 생물체의 촉수처럼 움직여 아자딘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아자딘이 자신의 세라마이트 장검을 들어 그 사슬을 받아내자 쇠사슬이 아자딘의 검에 감겼다.
그리고 아자딘과 부패의 천사 사이에서 무형의 힘이 폭발했다.
-퍼엉!
지하수도에 돌풍이 일어나고 아자딘 주위로 네 가닥의 토네이도가 잠시 형성되었다 사라졌다.
밀폐된 공간에서 토네이도가 나타났다 사라지니 그것만으로 위력이 엄청나서 아자딘을 향해 날아들던 망령들은 마치 강풍에 휩쓸려 찢겨나가는 안개층처럼 녹아버렸고 부패의 천사들조차 놀라워하며 아자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으.”
“어.”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젝트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경악했다.
부패의 천사들이 아자딘을 보며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리고 썩어 문드러진 자신들의 육체로 힘겹게 쥐어짜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아아… 인도자여!”
“우리에게 안식을!”
부패의 천사들이 안식을 갈망하며 아자딘에게 자신들의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 미덕을 숭상하고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육신으로 이 땅에 내려왔으니 그 헌신에 찬사 마땅할지어다. 이제 내가 그대들을 둘러싼 속박을 해제하리니, 치열한 헌신을 끝마치고 다만 안식 속에 머물라!”
아자딘은 부패의 천사들에게 다가가며 세라마이트 장검을 들었다. 순간 세라마이트 장검으로부터 눈 부신 빛이 폭사했다.
본래부터 세라마이트 장검은 스스로 불타오르는 무기였지만 이것은 단순한 불길이 아니다. 악의 어둠을 씻어내는 태양과도 같은 찬란한 빛이었다.
부패의 천사들은 그럼에도 아자딘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마치 오랜 그들의 고통과 방황을 끝내줄 안식을 기다리는 것처럼 아자딘의 칼날을 기다릴 뿐.
“인도자여.”
“미덕이 그대의 길을 비추기를.”
“미덕이 그대의 길을 비추기를!”
아자딘도 부패의 천사들의 말을 따라 하며 검을 휘둘렀다.
눈 부신 빛과 함께 부패의 천사들의 목이 잘리고 그들의 육신의 속박이 사라졌다.
젝트조차 번거롭게 하던 이 끔찍한 괴물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아자딘의 검을 받아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쓰러졌다.
언데드인 이들은 목과 몸통을 분리하는 정도로 멈추지 않을 것이지만….
놀랍게도 부패의 천사들의 몸은 스스로 불타오르더니 재가 되어 사라졌다.
*********
“후후후후후.”
지하도 안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광인의 폭소 같은 웃음은 젝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하하하하하하!”
젝트는 참지 못하고 웃고 또 웃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아자딘은 천사들에게 선택받았다!
선택받은 인도자!
구난기사단에서 암암리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
분열된 자비, 용기, 지혜의 세 교단, 세 가지 미덕의 성기사단을 모두 통솔할 위대한 인도자가 언젠가 그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
언제 누구의 입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예언은 딱히 이단의 가르침도 아니고, 그저 사람들의 희망을 자극할 뿐이라서 다들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예언의 주인공이 여기에 있다.
그것도 하필이면 아라가사.
신왕을 살해한 죄로 영혼 없는 불경자, 불가촉천민으로 여겨지는 자라니!
‘천사들은 얄궂군요. 휘브리스 백성들 사이에서 가장 천한 자를 인도자로 선택하다니!’
젝트는 아자딘을 선택한 천사들의 결정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시끄럽게 굴지 마. 젝트 경. 부패의 천사들은 내가 안식에 들게 하였지만 다른 마물들이 또 있을지 모르니.”
“아, 죄송합니다. 이거 참.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참을 수 없군요. 아자딘 경. 당신이 천사들이 선택한 자로군요. 언제부터였습니까? 아자딘 경.”
“거창하게 선택받았다기보다는… 뭐 좀 됐지. 아, 이건 비밀로 해줘. 별로 좋은 게 아니라서.”
아자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째서입니까?”
젝트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어보았다.
아자딘은 기적의 사역자.
천사들이 선택한 인도자다.
구난기사단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 천사들의 선택을 받은 자.
그 사실을 밝히면 물론 기성 교단들은 반발하겠지만, 이와 같은 기적의 힘을 보이면 셀레스철 파이어에 필적하는 추종자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권력과 힘, 숭배.
그 이득에서 초연할 수는 있어도… 사명의 달성을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째서 아자딘은 자신이 기적의 사역자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구난기사단을 왕의 교회처럼 만들 수는 없지.”
“네?”
“삼위의 대천사와 천사들이 내려왔을 때 사람들은 귀로는 미덕의 가르침을 받아도 눈으로는 천사들을 쫓았다. 미덕에서 멀어지면서 오로지 천사들을 숭배하였지. 스스로 신족과 천사의 노예가 되길 바라는 자들의 영혼으로는 미덕에 닿을 수 없으니, 여기서 내가 천사들의 선택받은 자임을 드러내고 기적을 행사한다면 사람들은 또 다른 숭배대상을 하나 찾을 뿐, 미덕에서는 더더욱 멀어진다.”
“아아. 그렇군요. 흠. 그렇다면 아자딘 경. 당신은 저와는 절대로 맞지 않겠군요.”
젝트는 왕의 교회의 일원, 왕의 교회는 위대한 신족의 거대한 계획을 위해서 인간들, 하위 종족들은 모두 야에가스 신족의 계획에 헌신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들은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현실. 미덕의 약속을 들고 온 삼위의 대천사도 결국 숭배의 대상이 된 것처럼 보다 더 뛰어나고 거대한 존재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그들의 본성을 무시하고 당신의 이상을 인간들에게 강요하다니. 아자딘. 당신은 파멸할 겁니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당신은 날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내가 파멸하면 기뻐하면서 손뼉이나 치라고. 아이쿠. 그럼 도망쳐야지. 뒤에서 추격자들 쫓아오겠다. 당신도 따로 탈출로가 있으면 탈출해! 반다이크 상회에서 보지!”
“반다이크 상회 말입니까?”
“약속했지? 위에서 알아낸 정보를 공유해 주겠다고. 약속은 지킨다.”
아자딘은 그 말을 남기고 내빼기 시작했다.
젝트는 그런 아자딘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왕의 교회의 이단심문관인 그로서는 이제 아자딘은 반드시 말살해야 할 인물이 되었다.
왕의 교회로서는 공식적으로는 구난기사단과 협력을 하고 있지만, 그 배후에서는 내심 구난기사단과 천사신앙이 몰락해서 이 휘브리스 대륙의 모든 영성을 왕의 교회가 독점하길 원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왕의 교회와 구난기사단의 신앙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다. 그래도 동맹이 유지되었던 것은 구난기사단 대부분이 미덕보다는 천사 자체를 숭배하는 자들이어서 왕의 교회의 신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
그런데 이제 와서 기적의 사역자, 천사들이 선택한 인도자가 나타나다니.
“하필이면 황제의 전령을, 그것도 자기 일족을 배반하고 튀어나온 녀석을 선택하다니 천사들도 얄궂군. 아, 그렇기 때문인가. 가장 천한 신분의 존재를 택하지 않으면 미덕보다 그를 추종하게 될 테니까?”
아자딘의 존재는 지금의 구난기사단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구난기사단과 아자딘이 서로 치고받게 될 텐데 굳이 지금 젝트가 아자딘을 공격해 그 상황을 정리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럼!”
젝트도 지하수도를 빠져나가 달렸다.
아자딘이 부패의 천사를 해치우긴 했지만, 이곳에는 부패의 천사와 그 휘하의 망자들 외에도 끝없이 마물들이 들끓고 있었다. 빨리 빠져나가지 않으면 마력을 소모한 지금의 젝트도 고블린 돌멩이에 맞아 죽은 베르담의 우를 범할 가능성이 컸다.
*********
“맙소사.”
젝트가 떠나고, 그 자리에 또 한 명의 목격자가 털썩 주저앉았다.
자비 교단의 암살자, 안식인도자 하이네 경이었다.
그녀는 아자딘을 추격하기 위해 지혜 교단의 추적자들, 웨어 보어들을 피해서 먼저 사다리로 내려왔고 그때 아자딘이 하는 짓을 똑똑히 보았다.
부패의 천사들이 안식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믿고 아자딘에게 맡기는 장면을!
그리고 젝트와 아자딘이 대화를 나누는 것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