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12
311. 종파 분쟁 1
‘말도 안 돼. 그는 전령일족… 영혼 없는 불경자! 신왕살해의 대죄를 범한 이방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기적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큰일 날 단어다.
기적을 행사하는 성기사.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기적을 행사하는 장본인.
세 개의 교단으로 나뉘어 있던 구난기사단을 하나로 묶을 기적의 인도자.
구난기사단에도 언젠가 세 교단을 하나로 통합할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셀레스철 파이어의 단장 카르나야말로 바로 그 기적의 인도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비 교단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이 카르나에게, 지혜 교단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판을 뒤엎을 존재가 나타났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이건.’
하이네는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사실 오래전에 신앙을 잃었다.
아니 그녀만이 아니다.
다른 기사단원들 모두 미덕보다는 천사의 피를 숭배했다. 신성력을 잃어가는 기사단의 현실을 외면하며 더더욱 천사의 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대통합을 불러올 위대한 인도자의 예언조차 그저 민중들을 현혹하기 위한 헛소리, 지혜 교단은 사술을 써서 카르나를 만들어 냈고 자비 교단은 암살과 모략으로 그 판을 뒤집고 권력을 자신들의 것으로 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하이네는 자비 교단의 일원으로서 미덕에 대한 신앙을 잃고, 그저 조직의 충실한 도구로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가슴에 진실로 믿음이 싹트고 있었다.
‘아아 간사하구나. 기적을 보고 나서야 생기는 믿음이라니. 하지만 실로….’
하이네는 가슴 깊숙이에서 샘솟는 법열에 몸을 떨었다.
*********
아자딘은 반다이크 상회의 앞에서 젝트, 스콧과 합류했다.
“헉… 헉헉. 으윽. 대장. 서, 설탕이 필요해!”
스콧은 도망치기 위해 자기 다리로 달렸기 때문인지 저혈당 쇼크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코웃음 쳤다.
“날 바보로 보는군. 도착한 지가 언제인데. 지금 살아있는 걸 보면 굳이 당을 보충할 필요는 없잖아? 먹고 싶은 거라면 또 몰라.”
“아니 대장도 참. 난 정말 죽을 뻔했단 말야.”
그야말로 근육의 신이 편애한 것 같은 육체를 가진 오크들은 전력질주에 생명을 걸어야 했다.
근육이 너무 많아서 산소요구량도 많고 설령 폐활량이 버텨줘서 산소를 많이 공급해 주면 그다음에는 저혈당 쇼크가 찾아온다.
전력질주로 인한 그러한 생명의 위협은 급작스럽게 찾아오기 때문에… 스콧이 지금 살아있는 것은 일단 회복되었다는 뜻이다.
“자. 여기.”
아자딘은 스콧에게 캬라멜을 던져주었다. 브투마가 쑥대밭이 되어서 설탕 무역에 차질이 생기자, 설탕과 관련된 제품들의 가격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 캬라멜은 아자딘이 브투마에서 활약할 때 구해둔 것이었다.
굉장히 귀한 보물이었지만 스콧의 활약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깝지 않았다. 물론 스콧 말고 지벡에게도 주었다.
“목표는 달성하셨습니까? 아자딘 경. 젝트 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벡은 캬라멜을 받으며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아자딘은 대답 대신 품에서 주문 두루마리를 꺼냈다.
“이건?”
“그게 말이지. 아, 마침 사람이 왔군.”
놀랍게도 반다이크 상회 앞에 나타난 인물은 황금 갑옷을 걸친 성기사, 젝트 경이었다.
젝트는 부하들 없이 혼자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반다이크 상회 앞에 만들어진 분수대의 돌담에 앉았다.
“캬라멜입니까? 혹시 저도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
아자딘은 아까워하는 기색을 팍팍 풍기면서 젝트에게도 건네주었다.
지벡이 쓴웃음을 지었다.
“약속은 지키시는군요? 아자딘 경. 젝트 경에게도 정보를 공유하실 셈입니까?”
“지하도에서의 일은 내 뜻이 아니었다. 메이야 경은 내 통제를 벗어났어.”
젝트는 지하에서 맞붙었던 일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표명했다.
스콧이 비웃었다.
“우릴 생포하려고 했잖음? 혹시 야에가스 신족도 반은 인간이라서 단기기억 상실증이라도 있나? 어휴. 가련한 종족들 같으니. 얼마나 머리가 나쁘면.”
젝트는 무례한 스콧의 말에 은근히 화가 났다.
“메이야는 내 제자이자 휘하. 당신들과 충돌로 사상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당신들을 격리하려고 그랬지.”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지요. 젝트 경. 고결한 혈통이라면 체통을 지키셔야지요.”
지벡도 젝트에게 빈정거렸다.
“그럼 안에 있던 일을 이야기해 주실까?”
“한 명 더.”
아자딘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자비 교단의 하이네가 나타났다.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스팀위브 체인메일 위에 법복을 두른 평상시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몸은 어쩐지 흔들리고 있었다.
“아자딘 경. 무사하셨군요. 옥체 강녕하시니 참으로 크나큰 기쁨이옵니다.”
“음?”
아자딘은 자신의 몸을 지극히 높여 말하는 하이네의 말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 특유의 빈정거림이겠거니 하고 받아넘겼다.
“도망치는 거야 이골이 나 있으니까. 자, 그럼 이야기를 해볼까?”
아자딘은 지혜 교단이 천사의 알을 만드는 방법, 그 의식에 관해서 설명하고 두루마리를 펼쳤다.
두루마리에는 데트르 백작의 영혼을 천사의 알로 환생시키기 위한 주문들이 담겨있었다.
데르트 남작의 진명이 적혀있고 그것을 인장이 봉인하고 있어 인장을 뜯기 전에는 진명을 읽을 수 없게 되어있다.
하지만 인장에서 흘러나오는 힘, 그리고 진명을 적은 글자 자체에 새겨진 힘은 위조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즉 이런 환생 주문에 쓰이는 서명이나 인식은 속일 수 없다.
누가 봐도 데르트 남작과 북제가 가담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데트르 백작의 인장과, 북제의 인장이 찍혀있군요. 북제의 마력으로 데트르 백작을 환생시키기 위한 마법 두루마리라니….”
지벡은 신음했다.
북제가 이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깊이 관여하고 있다니.
“그래. 그리고 아마도 카르나가 북제의 자식인 것은….”
“환생한 셀레스티얼이겠군요.”
“그렇겠지.”
모두 사태의 심각성에 전율했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명성은 이 순간에도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민중들의 숭배를 긁어모으고 있다.
그런데 그 단장이 북제의 단순한 자식이 아니라 환생시킨 셀레스티얼이라니?
천사의 날개와 신성한 힘을 가지고 있는 기사단이라는 것만 해도 이미 민중들을 지배할 텐데 거기에 더해서 인간을 셀레스철로 환생시킬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이점이었다.
“흐음. 이 경우 이 사실을 알리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더욱 북제에 투신하지 않을까 싶군요. 왕의 교회의 중추, 야에가스 신왕족의 귀족들이라 해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그중에서 셀레스티얼로 환생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겠군요.”
젝트는 아자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자딘 경. 그 두루마리를 넘겨주시오. 왕의 교회는 이런 것을 용납할 수 없소. 그 두루마리에 적혀있는 게 사실이라면 성전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거요.”
천사로 환생시켜 주겠다는 약속은 야에가스 신족의 결속을 해칠 것이고, 왕의 교회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다.
왕의 교회로서는 전력을 다해 처치해야 할 사악한 이단의 유혹이다.
젝트는 그 두루마리를 넘겨주면 왕의 교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성전을 선포하겠다고 선언했다.
“…….”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기사단의 더러운 치부를 숨겨야 한다고 주장할 하이네는 말없이 아자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하이네 경? 이 타이밍에 뭔가 할 말 없어?”
“아, 네? 아자딘 경?”
“뭔가 할 말이라도?”
“아, 아닙니다.”
“할 말이 없을 리가 없을 텐데?”
본래 하이네 경은 젝트가 두루마리를 내놓으라고 말하면 가만히 있을 인물이 아니다.
지하수도에서는 아자딘에게서 두루마리를 빼앗기 위해 공격할 기세까지 보였던 그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아자딘의 손을 만졌다.
마치 만지면 병이 낫는다고 하는 성자의 성상을 만지는 숭배자들처럼, 그녀는 아자딘의 손을 만지고 있었다.
“봤군….”
아자딘도 바보가 아니라 왜 하이네 경이 이렇게 자신에게 구는지 알아챘다.
“아 죄, 죄송합니다. 아자딘 경. 제가 넋을 잃고….”
“하이네 경은 어떻게 생각해?”
“신은 아자딘 경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
“아니 의견을 제시하란 말이지. 자비 교단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어.”
“당연히 두루마리를 넘겨주셔선 안 됩니다. 왕의 교회에 칼자루를 쥐여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자딘 경께서 그 칼자루를 쥐고 불경한 이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부정하고 어리석은 이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소서.”
“자비 교단의 입장이 아니잖아? 그건.”
사정을 잘 모르는 지벡과 스콧이 눈을 깜빡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검은 베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하이네가 아자딘을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다는 건 그들도 잘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음 대장이 현혹주문이라도 사용했나? 명색이 성기사가 현혹 주문 같은 거에 쉽게 걸리진 않을 텐데. 대장이 잘생겨서 반하기라도 했나?’
지벡과 스콧은 하이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혹감을 느꼈다.
아자딘은 두루마리를 다시 말았다.
“뭐 그래서 이 두루마리는 내가 챙기도록 하지. 젝트 경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두 교단이 성전을 일으키면 그것도 헛된 짓 같아서.”
“셀레스철 파이어를 방치하면 그들은 점점 강해지고 민중들의 숭배를 모을 것이오. 아자딘 경. 그때가 되어도 과연 당신이 미덕을 바로잡을 수 있겠소?”
“내가 미덕을 바로잡는 게 아니야. 그런 짓을 하면 왕의 교회와 다를 게 없지. 천사가 사람들을 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미덕의 힘으로 천사들을 도와 천사들을 구하고 스스로를 구해야 해.”
“하아. 더더욱 구역질 나는 교리로군요. 아자딘 경. 저런 멍청한 백성들에게 스스로를 구하고 천사들마저 구하라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현실감각이 없소이다.”
야에가스 신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젝트는 보통 인간들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아자딘이 말하는 구난기사단 미덕의 교리는 대책 없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런 아자딘부터 황제의 피가 섞인 존재가 아닌가.
거기에 더해서 이제는 천사들의 간택을 받은 위대한 인도자.
하는 말과 현실이 시작부터 따로 놀고 있다.
“그렇다고 그 전에 내분부터 일으킬 수는 없지.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건 당신네 교단 안에서 단속을 하라는 건데. 보시다시피 야에가스 신족들, 팔왕국의 왕후장상들 사이에서도 북제에게 회유된 이가 있을 거야. 그들을 조사하고 당신의 뜻대로 처리해 줘.”
“…….”
젝트는 아자딘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왕의 교회가, 아니 휘브리스의 모든 백성이 천하게 여기는 영혼 없는 불경자, 전령일족의 아자딘이 야에가스 신족인 젝트에게 왕의 교회 내부의 협력자로서 호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젝트로서는 그걸 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에게는 그 나름의 야망이 있고 계획이 있으니까.
저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그 야망과 계획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천사들의 선택을 받은 자와 싸우는 것도 멍청한 짓이지. 싸운다 하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놈과 싸움을 붙이는 게 낫다.’
아자딘의 정체를 알게 된 지금, 젝트는 아자딘과 적대하기를 포기했다.
“알겠습니다. 아자딘 경. 당신 가는 길이 제 길보다 더 험난할 테니. 그 두루마리가 당신의 무기가 되기를….”
젝트는 더 이상 아자딘에게 두루마리를 요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