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14
313. 종파 분쟁 3
“우선 의심 가는 것은… 이단심문관 젝트 경입니다.”
젝트의 이름이 나오자 다들 침음성을 토했다.
왕의 교회의 최강의 기사. 그리고 검은 마도와 음습한 모략, 모든 것에 능통한 인물이다.
그에게 전생의식의 두루마리가 넘어갔다면 지혜의 교단뿐 아니라 구난기사단 전체에 큰 악재가 될 것이다.
“그가 틀림없을 겁니다. 셀레스철 파이어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북제에게 연락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셀레스티얼 기사가 그리 말하자 다들 당황했다.
“아니 잠깐만. 트리오다나 경. 그건 너무 성급한 것 같군.”
“지금 북제에게 연락하는 건 너무 오래 걸리네. 우선 우리 손으로 전생의 두루마리를 찾고 나서 보고 해도 늦지 않지.”
북제에게 자신들의 무능력함을 고하면 가뜩이나 주도권에서 밀리고 있는데 완전히 북제의 끄나풀이 되고 만다.
그런 상황만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젝트 경을 의심하기 전에 또 다른 위협이 있지 않나. 영혼 없는 불경자.”
“네 바로 그저께, 차드라의 아자딘이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뭘 하고 있었지? 그는?”
“관문 밖에서는 웨어보어와 싸움을 벌였다는 보고가 있군요.”
“웨어보어?”
“네. ”
“해괴한 놈이로군. 사건 당일엔 뭘 하고 있었지?”
“사건 당일에는… 여관을 잡고 여관 주인에게 물어서 관광가이드를 찾았다더군요. 오늘 아침에, 아 이제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 아침이 되겠군요. 오전 중에 단체 관광 코스에 등록했다가 자비 교단과 접촉했습니다. 그들의 심문실에 끌려갔습니다만.”
하이네는 아자딘의 흔적을 지혜 교단도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가 자비 교단의 심문실에 끌려간 것으로 위장해 두었다.
이 위장 전략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어 가서 지혜 교단에서는 아자딘이 그동안 자비 교단의 심문실에서 조사받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단체 관광?”
“풉.”
그 순간 셀레스티얼 기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엄중한 회의에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 것이어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지만 그는 당당했다.
“재미있는 자로군요. 연막작전인지 진심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지금 회의 중이네. 트리오다나 경.”
“아 죄송합니다.”
“그래서 관광했다는 건 사실인가?”
“아 죄송합니다. 정식 명칭으로는 세인트 말로리 순례지 안내입니다. 정식으로 자금을 지불했고 한창 순례 도중에 자비 교단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
다들 그 대목에서 할 말을 잃었다.
영혼 없는 불경자 놈이 일반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 상품에 혹해서 단체관광을 했단 말인가? 차드라 고원에서 기껏 여기까지 와서?
“자비 교단이 불러들인 걸 보면 어쩌면 자비 교단과 손을 잡았을 수도 있지.”
아자딘의 황당한 행동이 그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의선상에서 치운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이상한 행적은 그들의 경계심을 더더욱 자극했다.
“일단 그부터 심문하도록 하지. 부르도록 하게. 만약 불응한다면 제거하도록 하고.”
“명분은 뭐로 할까요?”
“그는 신왕살해자 지벡 경과 한패다. 지벡 경을 감춰준 것만으로도 대역죄를 범한 셈이지.”
지혜 교단은 아자딘을 우선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왕의 교회의 이단심문관인 젝트는 그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 쉽게 손이 나가지 않지만 아자딘은 뒷배도 없고, 신분도 전령일족이라 원래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꼬투리가 잡히기만 하면 처벌할 생각이었는데 본인이 눈엣가시가 되어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니 이 이상 좋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가서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북제의 후손이며 셀레스티얼로 환생한 자, 트리오다나 경이 임무를 자청했다.
*********
등불이 넘실거리는 여인숙 거리, 구난기사단의 성지인 세인트 말로리의 여인숙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 거리는 밤의 어둠에 잠들기를 거부하고, 값비싼 양초와 저렴한 횃불과 욕망에 번들거리는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며 영업하고 있었다.
객줏집과 사창가가 엄숙한 성지에 어울리지 않게 손님들을 받으며 시끌벅적 번성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그러한 여인숙 거리의 한 여관에서 세인트 말로리를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중이었다. 짐이라고 해도 뭐 별반 대단할 건 없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분명 조금씩 늘어난 짐이 있었다.
세인트 말로리의 관광지 기념품이었다.
세인트 말로리의 각 관광지에는 조잡하게 만든 기념비 모형이나 자수가 들어간 깃발, 서류가 바람에 넘어가지 말라고 만든 문진 등을 팔고 있었는데 아자딘이 그걸 사서 모은 것이다.
구난기사단의 실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더 이상 구난기사단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런 관광기념품을 산 것은 아자딘의 안에 여전히 눈멀고 상처받은 소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부하들에게 줄 선물들을 좀 샀다.
귀한 과자, 차드라에서는 좀체 구하기 힘든 향신료, 향수, 고급 옷감, 튼튼한 천에 고급스러운 봉이 붙어있는 줄자 등등 대도시에서 팔법한 물건들을 골라서 선물로 포장하니 짐이 상당하다.
최대한 짐을 단단히 잘 싸서 장거리 여행에 피로가 적도록 잘 배분하고 있을 때였다.
“시, 실례합니다!”
여인숙의 사환이 밑에서 올라오며 목재 계단이 뼛소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노인네의 무릎처럼 삐걱거리는 소리가 여인숙 전체를 천둥처럼 두들겨 댔다.
“아자딘 경 계십니까?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라.”
조금만 걸어도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이 목조건물에서 기척 없이 도망치는 건 힘들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자딘은 과연 이번 손님은 어떤 인물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계단을 내려가 보니… 예상치도 못한 인물을 만났다.
‘카르나, 아니 다른 사람인가?’
카르나와 너무나 똑같은 용모를 한, 그러나 그보다는 좀 더 전체적으로 톤 다운된 용모를 한 청년이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아자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자딘이 계단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를 알아보았다.
“이야. 용모에서 귀티가 나는군요. 전령일족이라고 해서 뿔 달리고 송곳니 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잘생긴 인물이라니. 아 나는 지혜 교단의 호스피탈러 트리오다나라고 합니다.”
“아자딘입니다. 트리오다나 경. 만나서 반갑군요. 그런데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
“이상하군요. 여기 오는 중에 카르나를 만난 것으로 아는데 카르나와 닮은 제 모습에 대해서 일언반구 없다니. 혹시 저를 경계하십니까?”
트리오다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기사는 아자딘이 카르나와 이미 접촉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자딘이 시치미를 뚝 떼고 그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구는 것을 수상히 여겼다. 하지만 아자딘의 대답은 그의 상상을 벗어나 있었다.
“초면에 생긴 걸로 화제를 삼는 건 무례하다고 여겨서 말이지요.”
아자딘이 빈정거리자 트리오다나와 함께 온 다른 기사들이 흠칫 놀랐다. 아자딘의 말은 결국 초면에 외모를 가지고 왈가왈부했던 트리오다나를 비난하는 뜻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흠, 그러니까 초면에 제가 당신의 외모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한 게 불쾌하다 이겁니까?”
“아뇨. 외모 이야기 정도로 불쾌해할 거면 전령일족으로 살기 힘들죠. 워낙 무례하게 구는 놈들이 많아서 익숙해질 수밖에요.”
아자딘은 트리오다나의 말을 능수능란하게 받아쳤다.
“으음… 알겠습니다. 본론부터 바로 말씀드리지요. 저희와 어디 가주셔야겠습니다.”
“어딜요?”
“다른 교단들의 눈을 피해서 아자딘 경을 만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과 만날 자리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정확히는 어떤 분들인지요?”
“지혜 교단의 세인트 말로리 챕터마스터이신 두리오 경입니다.”
세인트 말로리의 지혜 교단을 수호하는 거점기사단의 단장 두리오 경이 아자딘을 보고 싶어 한다니. 자신들의 수사실로 순순히 들어오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아자딘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자딘을 찔러볼 줄은 몰랐다.
트리오다나의 태도나 반응을 볼 때 아자딘이 진범이라는 걸 알고 이러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아자딘이 찔러봐도, 그가 범인이건 아니건 마구 대해도 뒤탈이 없다고 믿고 함부로 이러는 것이다.
어차피 막대해도 문제 생길 게 없으니 지혜 교단에서는 일단 아자딘을 확보해서 잡아두려고 했다.
이들의 말에 응해서 잡혀가면 자신들이 만족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가두어 두고 괴롭히리라.
“바쁜데 나중에 하면 안 되겠습니까? 중요한 일인지요?”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다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주신 거라서요. 혹시 다른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차드라 고원을 오래 비워둬서 돌아가려고 짐 싸는 중이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걸릴 일입니까?”
“안심하십시오. 오래 걸리더라도 설마 부당한 이유로 그대를 감금하거나 그러겠습니까?”
“대체 무슨 일 때문인지 그것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네. 실은 현재 지혜 교단은 이상한 일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오후에 저희 교단의 본부에 부적절한 침입이 있었고, 침입자들이 저희 교단에서 중요한 물건을 훔쳐 갔지요.”
“그래서 절 의심하고 있다, 그겁니까?”
“그렇다기보다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아자딘 경. 물론 당신이 저희를 도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부하면 재미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려는 것일까?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도난당한 것은 정확히 어떤 물건입니까? 보물?”
“마법 스크롤입니다. 강력한 주문을 봉해둔 스크롤인데 침입자가 훔쳐 갔지요.”
“어디에 쓰이는 스크롤이기에? 짐작 가는 곳은 없습니까?”
“짐작 가는 곳이라면 일단 왕의 교회입니다. 아자딘 경. 당신은 이단심문관 젝트 경을 알고 있지요? 최근에도 그와 만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여기서 상의하긴 그렇군요. 왕의 교회와 얽힌 문제를 사람들 많은 여인숙에서 말할 수는 없지 않겠지요? 그러니 저희들을 따라와 주실까요?”
트리오다는 능숙하게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했다. 왕의 교회를 모함하는 듯한 이야기를 공공장소에서 할 수 없다. 그러니 지혜 교단의 본부, 심문실 안으로 들어와라. 이렇게 밑밥을 까는 것이다.
물론 아자딘은 이대로 끌려가면 끝이라는 걸 잘 알기에 거부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그건 왜입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일 것 같아서. 내일 바로 차드라 고원에 돌아가야 하거든요.”
“성문이 열리기 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그저 가벼운 협력 부탁드립니다.”
“…….”
물론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을 그 시간에 돌려보내 줄 생각 따위 없었다.
일단 불러들이기만 하면, 그래서 자신들의 심문실 안에 넣기만 하면 끝이다.
이후 약속을 바꾸어 그를 붙잡아 둔다고 해서 누가 비난할 것도 아니고, 아자딘이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지혜 기사단의 본부에서 탈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끄응. 이 자식들. 끈질기네?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뻔뻔스럽게. 확 처치해 버려?’
아자딘도 지혜 교단이 천사상을 갈아버리고 유력자들을 셀레스티얼로 환생시키는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억지로 자신들의 수사실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으니….
뒷일 생각지 않고 눈앞의 놈들을 처리해 버릴까? 그런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황제의 금화가 사용되었다. 아자딘. 청원자가 지금 그 목숨이 경각에 달해있다.]갑자기 아라엘의 목소리가 황제의 금화가 사용되었음을, 즉 누군가가 황제의 전령에게 청원하였음을 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