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21
320. 기근의 전령 4
카르나의 세라마이트 장검이 눈부시게 빛나고 엄청난 불길이 활화산처럼 솟구친다.
쇠조차 녹일 것 같은 열기가 카르나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트리오다나가 카르나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카르나도 상당하군. 만만치 않겠는데?’
아자딘은 카르나의 진면모를 눈앞에서 보고 놀라워했다.
전령일족과 나가들에게서 조운선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가루라를 사용한 아자딘에게는 꽤 버거운 상대가 될 것 같다.
“아자딘, 아무래도 당신은….”
“그런데 여기서 불을 질러도 되겠어?”
“…….”
아자딘의 뒤에는 조운선이 있다. 카르나의 공격이 빗나가면 조운선에 불이 옮겨붙을 것이다. 지금도 카르나에게서 폭사 되는 열기 때문에 조운선의 여러 곳에서 연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전생의 두루마리는 내게 없다. 여기서 나에게 화풀이 해봤자 딱히 북제의 행동을 감추는 일은 못 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잡아가야겠다면 나는 저항하겠어.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여기서 서로서로 자기 갈 길을 가도록 하지? 카르나 경.”
“믿고 싶은 말이군.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자딘 경. 그럴 수는 없어. 당신은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흠? 조운선을 구조해 준 걸로 고마워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그러니 당신을 죽여서 셀레스티얼로 전생시켜 주겠다! 아라가사로 사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테니까!”
“아… 하하하. 재밌는 이야기인데?!”
그 순간 카르나의 검이 불꽃과 함께 튀어나왔다.
아자딘이 카르나의 검을 청의 처형인으로 받아쳤지만 놀랍게도 아자딘이 밀린다.
조운선을 지키기 위해 마력을 너무 써버린 지금, 아자딘의 몸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자딘이 카르나의 검을 튕겨냈어도….
카르나가 날개를 허공에 한 번 휘두르자 불길이 뒤따라 아자딘을 덮친다.
깜짝 놀란 지벡이 망토를 펼치고 뛰어들어 날아드는 화염을 걷어내고 천벌의 주문을 외워 카르나를 공격했다.
“조운선을 전부 불태울 셈인가!”
지벡이 분노하며 카르나를 노려보았다. 카르나는 설령 조운선에 불이 옮겨붙건 말건 아자딘을 죽여 입을 막는 쪽을 택한 것이다.
물론 카르나가 화염을 흩뿌리며 검을 휘두르는 정도로 조운선을 불태울 수는 없다.
전령일족들의 불화살은 조운선 여러 척을 동시에 공격해서 소화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카르나는 고작 배 한 척을 배경으로 싸우고 있는 것이니… 선원들이 이미 강물을 여기저기 뿌려놔서 바로 타지도 않았다.
허나 만약 카르나의 공격이 조운선에 직격한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이런 힘이 있으면 아까 나가들과 싸울 때 쓰지 그랬어.”
“아자딘!”
카르나가 분개하며 아자딘에게 뛰어드는 그때… 강가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쐐액!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잔영을 여러 개 휘감고 카르나에게 명중했다.
카르나의 갑옷과 날개가 그 화살들을 쳐냈지만 피가 튀었다.
“큭?! 전령일족이 또 있어?”
아자딘이 그 틈을 타서 스콧과 지벡의 허리띠를 양손으로 잡더니 뒤로 몸을 날렸다.
거구의 근육질 오크인 스콧, 금속 갑옷을 입은 지벡을 양손에 하나씩 들다니 말이 되나 싶지만, 아자딘은 그들을 가뿐히 들어 올릴 뿐 아니라 그대로 몸을 날려 수면 위를 발로 차고 나아가 배에 올라섰다.
이 배에는 전령일족의 남녀 셋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카르나에게 화살을 맞춘 장본인이었다.
“도중에 공격해서 모양새가 구겨졌지만 내 제안은 유효하다. 카르나 경. 내 입을 막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용기 교단과 상의하는 게 어때? 애초에 날 풀어서 보내준 것부터 용기 교단의 함정인데 그런 함정에 지혜 교단 소속인 당신이 놀아나서 되겠어?”
지혜 교단에 속하는 인물이 용기 교단의 모략에 놀아난다.
어찌 보면 작금의 구난기사단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자신들이 속한 교단, 기사단의 미덕과 다른 작태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아자딘!”
카르나가 분개하자 그의 날개가 무슨 분출하는 화산처럼 불꽃 조각들을 토해내며 조운선에 불을 붙였다.
“카르나 경!”
이즈밀라가 말리고 즉시 뒤에 있던 다른 셀레스티얼 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라미스 경! 얼른 소화 작업을!”
“응.”
“그래 다들 그렇게 배에 불이나 끄고 있어. 가지.”
“…….”
조각배를 몰고 온 전령일족의 남녀는 말없이 아자딘의 말에 따라 삿대를 치고 강을 나아가는 데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데도 엄청나게 빠르다.
그들은 강의 길목을 막고 좌초한 조운선들을 스쳐 지나가며 순식간에 강을 거슬러 사라지기 시작했다.
“큭!”
“그의 말 대로입니다. 우선 조운선에 붙은 불부터 끄지요.”
이즈밀라는 분노하는 카르나를 말리고 다른 셀레스티얼, 그리고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단원들과 함께 배에 붙은 불을 껐다.
“젠장. 아자딘 이 자식. 좋게 보고 있었는데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나가들, 그리고 전령일족과의 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셀레스티얼들은 사망자 한 명 없는 상황이지만 병사와 종사들에 사상자가 있었고 말들이 지쳐서 도저히 아자딘을 추격할 여력이 없다.
게다가 이미 아자딘 일당은 배를 타고 도망쳤으니 이즈밀라가 말하는 대로 조운선의 불이나 끄고 있는 게 합리적이었다.
“이즈밀라. 지금 들은 것들은 입단속 하도록.”
“네.”
이즈밀라는 아자딘의 흔적을 눈으로 좇으며 그리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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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 무사해서 다행이군요.”
삿대를 잡고 있던 여성이 아자딘을 돌아보며 탄식했다.
“아라엘 님을 정말 닮아가는군요.”
“그래 디미아. 당신도 무사했군.”
이 조각배를 끌고 온 이는 바로 과거, 아라엘의 심복이었던 화조풍월의 4인, 꽃의 디미아와 새의 세라프, 달의 인딤이었다.
아라엘이 아자딘에게 자신의 생명을 넘겨주고 죽은 이래 이들은 아라엘의 유지를 잇기 위해 아라가사들을 조사하면서 암약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운선을 습격하는 아라가사들을 미행하다가 아자딘이 조운선을 지키는 모습, 그런데도 카르나와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보다못해 도우러 온 것이다.
아자딘은 그걸 눈치채고 있으면서 넉살 좋게 카르나를 도발해 그의 의식을 자신에게만 집중시킨 후 잽싸게 스콧과 지벡을 데리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완연히 아라엘 님의 모습이 되었군. 설마 네놈. 그 모습으로 이성들을 유혹해 문란한 삶을 보내는 건 아니겠지?”
인딤은 아자딘을 보며 대뜸 무례하고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간만에 봤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럼 설마 동성을? 이놈. 그런 건 내가 용납 못 한다. 아자딘, 그건 네놈이 아라엘 님을 욕되게 하는 거야!”
“이성은 되고 동성은 안돼?”
“아니, 누구와도 교제를 허락할 수 없다. 너는 아라엘 님의 모습과 유지를 이어받은 존재다. 그런데 문란한 삶을 보낸다면 너를 적대하는 자들에게 더더욱 조롱감이 되지 않겠는가? 아라엘 님의 모습으로 남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
“하하. 즉 내가 남들에게 모욕당하면 인딤 너는 자기 일처럼 분개하겠다. 뭐 그렇게 들리는 것 같은데.”
“쓰, 쓸데없는 소리를! 아라엘 님의 유지 때문이다!”
“나도 혈기왕성한 사내인데 아라엘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 금욕하고 살아라, 뭐 그런 말인가?”
“그래. 잘 이해했군.”
“네가 생각해도 무리인 거 알고 있지? 그렇다면 신뢰할 수 있는 네가 내 상대를 해주는 건 어때? 네가 입단속 잘하면 밖에 소문날 일은 없을 텐데.”
“뭐, 뭣? 진심이냐? 아라엘 님의 모습을 하고서… 아, 아니. 그게.”
인딤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거 참 놀리는 맛이 있는 녀석이라니까.”
아자딘은 인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어?”
아자딘은 황당한 소리를 하는 인딤을 무시하고 디미아와 세라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원로원의 행각을 쫓고 있었습니다.”
“그건 흥미진진하겠군. 녀석들은 무슨 짓을 벌이고 있지?”
“현재 일족은 코라사르와 브투마의 왕좌를 손에 넣었습니다만, 왕좌는 원로원을 거부하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가들이 네더의 사술로 왕좌를 더럽히려 했지만 그것도 실패하고 있는 듯하고요.”
아자딘과 아라엘이 그동안 모은 신왕진서 사본을 전부 투입해서 브투마의 왕좌에 술식을 짜 넣은 덕분에 왕화의 빛이 왕국들을 지키진 못하더라도 왕좌가 사술에 타락하는 일은 막아내고 있는 듯했다.
“왕좌를 손에 넣으면 그간의 박해받던 설움을 전부 해소하고 부와 권력을 장악할 거라고 기대한 일족들은 불만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원로원은 그 모든 것을 배반자인 아자딘이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라고, 장로 카자스와 두령 하티르를 죽여버렸기 때문이라고 그대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답니다.”
“그래? 그런데 왜 조운선은 공격한 거야? 아라가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나가들 사이에서 남천왕이라 불리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나가 여왕이 아니라 네더의 사신의 축복을 받은 자라고 하는데 그가 나가 세력들을 규합하고 전체적인 작전을 짜고 있지요. 핌불베르트가 다가올 텐데 그때까지 인간들의 비축된 식량을 소진시키고 선우의 태양이라는 신물을 찾아내서 자신들의 것으로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선우의 태양? 무슨 소리야 그건?”
“우리도 잘은 모릅니다. 다만 그것이 있으면 핌불베르트에서도 버틸 수 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래? 어디에 있는데?”
“현재 나가들과 아라가사들이 찾는 중이지요.”
“어떻게 찾는데?”
아자딘이 물어보자 디미아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엘리멘탈 웨일링이라고 아시나요?”
“아… 그거.”
“최근 세계 각지에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가 더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로원은, 그러니까 나가와 손잡은 일족의 배신자들은 그들을 주로 찾아다니게 하더군요.”
“………”
“엘리멘탈 웨일링에 걸린 자들이 선우의 태양이라는 걸 찾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인원이 적어서 그 이상은 잘 모릅니다. 부끄럽군요. 아자딘. 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아니. 아니야. 매우 큰 도움이 되었어.”
빈말이 아니었다.
선우의 태양인지 뭔지가 핌불베르트 하에서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게 엘리멘탈 웨일링과 관련이 있다니.
아주 귀중하고 소중한 정보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가들은 남천왕이라는 자 아래에 규합되어 움직이고 있고, 아라가사들은 그것들과 손잡고 완전히 타락해 버린 것 같았다.
“일족은 완전히 그것들과 손잡고 타락한 상태로군. 미디암은?”
타락한 일족들 안에 갇혀있을 미디암이 걱정되었다.
“미디암 에타르, 네 도제였던 소녀 말이지? 알려진 바가 없다. 뭐 죽이진 않았겠지. 에타르 혈족이니 말야. 아니 그런데 우리가 그런 애 정보까지 알아야 해? 우리도 바쁘다고. 인류의 미래와 일족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일들을 조사하고 다니는데 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아이까지 챙길 여력은 없어.”
인딤이 투덜거리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