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22
321. 기근의 전령 5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짜증 내면서 대답할 일이야?”
“이쪽도 편하게 지내는 건 아닌데 답답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인딤은 여전히 아자딘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래그래. 고생했어. 솔직히 당신들은 화조풍월의 4인, 일족을 이끌 차기 당주급의 인재였는데 아라엘이 죽은 후에도 그녀와의 신의를 지키는 것에… 고마워하고 있다.”
“동전 한 닢 가치 없는 감사 인사 따위는… 쳇. 야. 이 자식. 얼굴이나 좀 비춰봐. 아니 젠장. 왜 피투성이야? 아라엘 님의 모습에 피를 바르다니! 저까짓 기사단 놈들이 뭐라고!?”
인딤은 아자딘의 얼굴, 그러니까 아라엘의 모습을 되새기며 내면의 분노와 아라엘에 대한 사모의 마음, 두 마음속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조심해야겠는데. 이 자식, 나중에 내 얼굴통째로 도려내 가서 어디다 장식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네.’
아자딘은 인딤의 반응을 보며 위기감을 느꼈다.
“그보다 아자딘, 당신은 구난기사단에 들어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구난기사단의 저들과 싸우는 건가요?”
디미아는 아자딘을 걱정하며 자신의 옷소매로 아자딘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는데. 마침 동료들도 모였겠다 이야기 해주지.”
아자딘은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가 어떻게 구난기사단 내에 자신의 세력을 집어넣었는지.
그리고 천사상을 갈아서 셀레스티얼로 전생시키는 비술을 이용해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
아자딘이 알아낸 정보를 말해주자 모두 놀라워했다.
이미 이야기를 들었던 지벡과 스콧도 새삼스럽게 그런 불경을 저지르는 기사단의 행각,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북제의 장대한 계획과 그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인내심에 감탄했다.
이미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 두 사람이 그럴진대 이제 처음 듣는 화조풍월의 4인, 아니 3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 맙소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저만한 기사단이 전부 다 그런 술법으로 만들어졌다니.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해야….”
“당신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군요. 그런 깊은 뜻을 가지고 구난기사단에 들어섰다니, 감탄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명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놀러 가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는데 부끄럽군요.”
세라프는 특히 아자딘에게 감탄했다.
사실 그는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격렬하게 실망했었던 인물이다.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구난기사단에 간 것은 모든 짐을 벗어 던지고 그저 자신이 어린 시절 꿈꿔왔던 안식을 얻으러 간 게 아닌가?
커다란 사명으로부터 도망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자딘이 구난기사단 내에서 새로운 사명을 다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세라프는 자신의 의혹이 강했던 만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아라엘 님의 유지를 잇고 있다. 그만큼은 되어야지.”
인딤은 세라프가 부끄러워하는 걸 보며 코웃음 쳤다. 자기는 아자딘을 믿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이제 어쩌실 겁니까? 아자딘?”
“차드라에 돌아가서 식량을 준비하고 병력을 조련해야겠지. 그리고 웬디고의 단도를 회수해야 하는 데다가 엘리멘탈 웨일링을 조사하기 위해서 반릉 아카데미로 쳐들어가야 하나… 해야 할 일이 많군.”
현재 웬디고의 단도는 지혜 교단의 셀레스티얼, 트리오다나가 가지고 있다.
“웬디고의 단도라. 저희가 회수해 드릴까요?”
“아니. 기사단의 일은 내가 맡도록 하지. 그대들은 계속해서 아라가사들의 움직임을 감시해 줘. 할 수 있으면 미디암의 행방도 좀 체크해 주고. 바쁘고 일이 많은 건 알겠는데 아라가사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차피 품도 덜 들잖아? 그건”
아자딘은 화조풍월의 4인, 아니 이제 3인과 함께 그간의 일,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아자딘과 스콧, 지벡은 물살이 거세 더는 조각배로 올라가지 못하는 여울에서 내려섰다.
“그럼 무운장구하시길. 아자딘.”
디미아는 아자딘에게 우아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인딤이 배에서 잠시 내려서 아자딘에게 다가왔다.
“아 그리고 그 음. 정 욕구를 풀기 힘들다면 내가 사, 상대해 주도록 하지. 지금은 일이 바빠서 한 달쯤 뒤에 찾아갈까 하는데. 차드라 고원의 버밀리온이라고 했지?”
“……….”
“뭐? 왜?”
“농담이었어.”
“…농담이라고?! 이, 이 자식. 내가 얼마나 큰마음 먹고 허락해 줬는데!”
“보통은 농담이라는 거 모를 리 없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네가 나랑 하고 싶은 거 아냐?”
“큭! 이, 이 자식. 아라엘 님의 모습으로 그런 소리 하지 마! 농담이라도 해서 될 말이 있고 안될 말이 있지!”
인딤이 부끄러워하더니만 잽싸게 몸을 날려 조각배 위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보며 아자딘이 피식 웃었다.
“잘가 인딤. 무사하고.”
“돼, 됐어!”
인딤은 부끄러워하며 디미아에게 삿대를 받아 들더니 열심히 배를 쳐서 저 멀리 사라졌다.
“…대장. 그런 농담 하다가 큰일 난다? 사람이건 오크건 언행을 주의해야 하는 법이야.”
“음. 너에게 언행에 대한 경고를 들으니 확실히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위기감이 드는데?”
아자딘은 자신에게 한마디 하는 스콧의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라가사들도 핌불베르트는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군요. 아자딘 경. 그럼 이제는 어쩌실 겁니까? 차드라 고원에 가셔도 북제가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지는….”
“아니. 용기의 교단이 잘해주면 지금 저들은 나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을걸? 한동안 몸 사리면서 힘이나 축적해 둬야지.”
“힘 말입니까?”
“그래.”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자기 손가락을 비볐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서 바지직하고 전기 불꽃이 튀었다.
“아직도 내 안에는 내가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마도서가 많아. 저들 화조풍월의 4인이 조각배를 삿대 하나로 다루면서 빠르게 이동하는 것 봤지? 그것 역시 아라엘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실제로 해보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어.”
아라엘과의 융합으로 넘겨받은 여러 재주와 마력들, 그것들을 아자딘은 아직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과연 시간이 주어질지 의문이다.
*********
아자딘이 파이어 글리프에 돌아오니 파이어 글리프의 챕터 마스터인 칼린츠 왕자가 만사 제치고 달려 나와 아자딘을 환영했다.
“아자딘 경! 무사히 돌아왔군! 정말 다행이네!”
“…….”
너무 환영해서 아자딘이 당황할 정도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 왜 그렇게까지 환영이야? 거의 맨발로 뛰쳐나왔는데?”
“아냐. 그런 게 아니라 셀레스철 파이어 놈들이 와서 곡식을 공출해 갔는데 태도가 여간 거만한 게 아니더군.”
“당신과는 혈족일 텐데도 거만하게 굴던가?”
“팔왕신족의 목을 가장 많이 딴 놈들은 신왕살해자라고 비난받는 전령일족이 아니라 같은 팔왕신족들인걸. 혈족이라고 친하게 지내고 그런 거 없어. 오히려 더 족치면 족쳤지.”
이런 소리를 하던 인물이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 정말 많이 시달린 모양이었다.
“이놈들은 찌르면 뭐 곡물 나오는 창고인 줄 아나 봐! 핌불베르트가 다가온다고 그전에 얼른 농사 팍팍 지어서 식량들 바치라고 성화인데 어떻게 하지? 아자딘 경?”
“일단 기분 상하지 말고 들어봐. 아무리 그래도 농사를 짓는 것 맞는 것 같아. 내가 세인트 말로리에 가 있을 때 그곳에서 바다가 얼어붙는 사고도 발생했는걸.”
물론 그것은 웬디고의 단도가 돌아오면서 벌어진 참사였지만 핌불베르트가 다가온다는 것은 이미 여러 세력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
셀레스철 파이어가 마음에 들고 말고 간에 핌불베르트가 다가오면 그전에 최대한 식량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뭐 그건 그렇지만 지금 같은 경우 농사지어 봐야 다 빼앗길 판인데. 그놈들이 내게 준 할당량을 보라고.”
칼린츠 왕자가 턱으로 지시하자 북방 아라가사의 십부장이자 칼린츠 왕자의 심복인 잔이 헛기침을 하고 들어와 서류를 내밀었다.
아자딘이 서류를 살펴보니 과연, 수탈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곡물을 또 요구하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자기가 농사짓는 줄 알겠네. 빼앗기는 건 소작농들이지 뭐.”
“자기도 기사면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하여튼 이놈들 빈손으로 온 주제에 심지어 선박도 내놓으라고 공출해 갔어. 이런 무도한 놈들이 다 있나.”
“배를 줬나?”
아자딘은 이미 결말을 알면서 물어보았다. 오면서 보았던 조운선이 바로 파이어글리프에서 공출당한 선박일 것이다.
이미 결론은 알고 있지만 대체 칼린츠가 뭐라고 불평불만을 토하는지 듣고 싶었다.
“줘야지 어쩌겠어. 그 녀석들 높으신 분들을 다 모아서 뒷배로 삼고 있더라고. 미덕의 기사들이 전부 셀레스철 파이어를 지지한다던데? 게다가 오면서 마물들도 토벌하고 그래서 그런지 녀석들 평판이 장난 아냐. 전부 다 미남 미녀라서 주민들도 식량을 뜯기는 데도 좋다고 난리더구만. 정작 내일부터 파이어 글리프에 식량값이 오르면 날 욕할 거면서 말이지.”
“…하하하.”
“웃음이 나올 일이 아니야. 그래서. 아자딘 경. 세인트 말로리의 분위기는 어떤가?”
“지혜 교단이 셀레스철 파이어를 중점으로 기사단 전체를 통합하려고 한다는 건 사실이었어. 그걸 막기 위해서 자비 교단과 용기 교단도 움직이고 있던데 그들에게 적당히 조력해서 셀레스티얼들의 비밀을 알아냈지.”
“…셀레스티얼의 비밀? 너무 거창한데? 무, 물론 아자딘 경 당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잠깐 사이에 세인트 말로리를 다녀오면서 그런 일들을 해냈단 말이야?”
아자딘에게 세인트 말로리로 오갈 수 있는 통행증까지 써준 주제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아자딘도 설마 자신이 이 짧은 시간 안에 그런 중대한 비밀을 알아낼 줄은 감히 기대도 하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야. 사실 자비 교단 측에서 먼저 접촉해 왔어. 그들도 지혜 교단에 주도권을 빼앗기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적당히 써먹을 말이 필요했던 거지.”
“자비 교단 말인가.”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이 자비 교단과 거래했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
“그놈들 암살자잖아. 용케도 그런 놈들과 거래하는군.”
“그리고 그렇게 알아낸 사실과 물증은 용기 교단에게 넘겨주었지.”
“자비 교단에서 받아서 용기 교단에게 주었다고? 암살자 붙는 거 아냐 그거?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덜렁거리지 않으면 못 할 짓 같은데 잘도 저질렀군.”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의 무용담을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그렇게 들으니까 아자딘도 자신이 엄청 위험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뭐 그 정도 위협은 감수할 가치가 있었어. 대외적인 활동에서는 용기 교단이 자비 교단보다 훨씬 유력하니까. 그리고 사실 테르시오 여단이 총구를 겨누는 상황이라 안 줄 수도 없었고.”
“그래서 셀레스티얼의 비밀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