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24
323. 반릉 원정 2
칼린츠 왕자는 자신에게 통행증을 써달라고 하는 아자딘을 보며 당황했다.
기사단령인 세인트 말로리로 다니는 것과 반릉 왕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일의 경중이 다른 문제였다.
물론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인 칼린츠 왕자에겐 그 통행을 허가할 권한이 있었다. 게다가 아자딘이 제시한 명분도 명확했다.
“범죄자 차샨이 탈출했으니 그를 체포하고 그 배후에 연관된 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한 수사에 나서려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한 명분이 서지 않을까?”
“그런데 아자딘 경. 지금 막 전서구로 연락이 왔는데 지혜 교단에서 자네를 소환하려 하는데.”
“소환?”
“그래. 사문회를 열고 싶다고.”
지혜 교단 입장에서 아자딘은 얄밉기 그지없는 녀석일 것이다.
자신들을 두들기고 멀쩡히 차드라 고원으로 돌아간 꼴을 어찌 참고 봐주겠는가? 뭐라도 걸어서 트집을 잡기 위해서 사문회를 열 셈인 것 같다.
“그럴 정신이 없을 텐데.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어때?”
“아 용기 교단과 자비 교단에서 감독원을 파견하기로 되었어. 보아하니까 그대가 찾아낸 셀레스티얼의 비밀을 빌미로 다른 교단이 셀레스철 파이어에 대한 통제 권한을 갖게 된 것 같아.”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멋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위에서 감시하는 위원회를 만들고 이 위원회를 세 교단이 함께 관리한다.
지혜 교단의 하부조직이던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을 모두의 하부조직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지혜 교단이 협박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그런데 받아들인 걸 보면 물밑에서 어떤 암투가 있었을까?
“상당히 빨리 교통 정리가 되어버렸군?”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용기 교단도 셀레스티얼들의 진실, 그들의 약점을 온 세상에 공표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내부 파벌들끼리 싸우면서 굳이 셀레스티얼들의 약점을, 천사상을 갈아버린다는 불경죄를 온 세상에 까발릴 필요는 없었다.
결국 구난기사단의 각 파벌이 원하는 것은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통제권이지, 구난기사단 전체의 명예에 먹칠하는 일은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자딘도 그걸 원했기에 젝트 경에게 두루마리를 주지 않고 구난기사단 내의 용기 교단에 넘겨주었다.
“사문회를 열고 싶다는 걸 보니 열겠다는 아닌 것 같군. 눈치 보고 있는 거지? 그거?”
“그래. 교단의 외부자에게 발설하는지 아닌지 날 보고 감시하고 사문회에 자료로 제출해달라는 군. 그러니까 사문회에 그대를 조져버리기 위한 자료를 날 보고 제출해달라는 협조 요청이야.”
“흐음. 보아하니 지혜의 교단만 그러나 보네?”
지혜 교단 외에는 아자딘을 사문회에 붙이는 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미덕의 교단들이 자기 미덕과 거리가 있다고 해도 지혜 교단이 바보도 아닐 텐데 명확한 죄목 없이 아자딘을 사문회에 붙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셀레스티얼의 비밀을 강탈해 간 죄를 묻는다면? 셀레스티얼의 비밀이 존재한다는 걸 만천하에 자백하는 꼴 아닌가. 게다가 명색이 지혜 교단이 자기네 심장부를 단 한 명에게 털렸다는 걸 자백하는 꼴이니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된다.
아자딘에게 화딱지가 나서 뭐라도 걸고넘어지고 싶은 심정은 이해 가는데 제대로 얽어매려면 아자딘에게 책임을 물을 항목을 작성해야 한다.
지혜 교단의 연구소에 쳐들어온 걸로 걸고넘어진다?
그러면 자연히 셀레스티얼의 전생의식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면 평소 관심 없이 처박아 두던 유배지, 차드라 고원에 있는 아자딘을 무슨 죄목으로 옭아맬 것인가?
“용기, 자비, 지혜, 세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게 이런 점이 좋군. 서로를 견제하기 바쁘니, 지혜 교단에서도 독단적으로 날 처벌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고 다른 교단들이 날 예뻐하는 것 같지는 않다만.”
“그래서 지혜 교단에서는 은근히 나에게 아자딘 널 얽어맬 거리를 만들어 달라는군.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게 가급적 무장도 해제시키고, 부하들은 다 조각조각 찢어서 실권을 잃게 하라고 말야. ”
“할 거야?”
“아니. 나는 지혜 교단이 아닌걸. 내가 왜?”
“…….”
아자딘은 칼린츠 왕자의 반응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왜 잔을 비롯한 녀석들이 이 왕자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간다.
“어쨌건 지혜 교단이 명령한 건 안 들어도 돼. 내가 이 통행증을 써주면 지혜 교단에 대놓고 반항하는 게 되잖아. 그건 또 싫은데.”
“그럼 니셀다에게 통행증을 써주고 동행 한 그룹에 대한 통행증으로 해줘. 수사팀에 대한 통행증을 써줬는데 설마 거기서 내가 나갈 줄 몰랐다고 하면 지혜 교단에도 충분한 변명이 되지 않을까?”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영특한데? 그런데 니셀다라면 하프 뱀파이어 니셀다 말이지? 통행증을 그녀 이름으로 써줘도 될 만큼 각별한 사이인가?”
칼린츠 왕자는 그리 말하면서 아자딘이 발행해달라는 대로 통행증을 발행해 주었다.
“써주긴 써줬는데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이번엔?”
“반릉 아카데미와 드워프 마피아 놈들을 박살 내고, 엘리멘탈 웨일링을 좀 조사하려고.”
선우의 태양. 핌불베르트를 이겨낼 수 있다는 미지의 물건이 엘리멘탈 웨일링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을 조사하는 한편 아자딘의 부하, 연금술사 딸에 대한 정보도 얻어낼 찬스였다.
본래는 차샨을 협박하며 시킨 일들인데 역시 차샨은 끝까지, 죽어도 아자딘에게 저항하려고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드워븐 소서러 놈들을 박살 내겠다라. 다른 놈이 말하면 미친 소리로밖에는 안 들리겠지만 네가 말하니 다르군. 제발 살살 해라. 좀. 나까지 불똥 튀게 하지 말고. 이번에 통행증 써주는 건 이전과는 다르다는 거 알지?”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에게 확인차 물어보았다.
“셀레스철 파이어의 비밀을 알아내서 내게 공유해 준 건 고마워. 그러나 이전번에는 기사단령 내의 통행증이었고 이번엔 다른 왕국으로 통행증이야. 이번에는 저번처럼 내가 얻을 게 별로 없지. 순전히 그간의 호의 때문에 통행증을 발급해 준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군. 사고 치면 나도 덩달아 말려들어 가니까 이 서류를 내주는 게 단순히 인장 찍어서 서류 하나 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거라고. 알고 있지?”
“알고 있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칼린츠 왕자.”
“옆구리 찔러서 절받는 기분이로군. 하지만 알고 있다니 됐다.”
칼린츠 왕자는 한참 생색을 낸 뒤에야 통행증을 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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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 바위 요새 동쪽, 아자딘의 군벌이 열심히 공사해서 만든 밀수가도는 꽤 그럴싸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경사가 완만한 절벽의 길을 닦아 화물용 슬로프와 사람이 오갈 계단을 만들고, 거기에 거대한 타워를 설치한 후 이 타워에서 슬로프로 밧줄을 내리고 감아올릴 수 있는 거대한 감속기어를 설치했다.
마차나 수레를 타고 오다가 이곳에서 만나면 이제 마차와 수레를 밧줄에 연결하고 언덕으로 끌어올리거나 천천히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밀수용 가도에 아자딘과 니셀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공사는 아주 잘했군.”
아자딘은 감속기어와 잘 닦인 산길을 보며 감탄했다.
아자딘이 직접 감독하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드워프 칼란과 브로험 경 등 다른 이들에게 공사 감독을 맡겼다. 대충 만들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감독 상황이었는데 지금 만들어진 모습을 보니 드워프 공학의 진수를 쏟아부어 정교하면서도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커다란 석재 타워가 감속기어를 지탱하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믿음직하다.
“다들 열심히 노력했지요. 아자딘 경의 덕분입니다. 훌륭한 목표를 제시하시니 다들 열의를 낼 수밖에요.”
니셀다는 그리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자딘이 반릉에 데려가기로 한 인물 중에는 반릉 아카데미에 인연이 있는 혈마법사 버나드가 있었다.
혈마법사 버나드는 니셀다의 혈육, 친부이다.
버나드와 니셀다. 이 부녀는 부녀간의 정보다는 생물학적인 혈연으로만 얽혀있을 뿐 딱히 접점이 없었다.
뭐 그건 이 시대의 평균적인 가정의 모습이기도 했다. 가난한 소작농들이야 여건이 안 좋다 해도 부유한 상인, 잘나가는 귀족 남자는 자식의 양육을 아내에게 맡기고 대외 활동에 집중하곤 했었으니까.
그러나 니셀다는 반 인간, 반 뱀파이어라는 희귀한 존재가 되었고 이것에는 버나드의 책임도 있었다.
양육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가 인간으로서의 삶도 파괴된 니셀다에 대해서 버나드는 당대의 아버지로서도 결격사유가 많았다.
니셀다 또한 별로 살가운 성격이 아닌 데다가 진작에 아버지에 대한 정이나 양육 의무 같은 걸 포기했기에 이 부녀는 서먹서먹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자딘이 이번에 반릉 왕국으로 내려갈 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함께 팀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
“으음. 이번 일만 아니라면 버밀리온 요새와 영지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네. 아무래도 마약상인 차샨에게서 압수한 금전도 풍부하니까.”
버나드는 그리 말하며 힐끔힐끔 니셀다의 눈치를 살폈다. 그게 또 니셀다를 괴롭혔다. 차라리 뭔가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대하기엔 서먹서먹하고, 어째 생판 남보다 더 못한 혈육 관계였다.
아자딘도 이 부녀의 기묘한 공기를 느끼고 있었다.
“내가 실수한 것 같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응?”
아자딘은 감속기어를 고정하는 타워에 있던 병사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동남 요새 쪽의 병력으로 이들 역시 아자딘의 부하들이었다.
“아자딘 경!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수고하는군. 캐러반 실종에 대해서 조사하려고 왔는데.”
“아자딘 경. 전서구에 이것이….”
그들은 종이에 둘둘말린 무언가를 아자딘에게 내밀었다. 편지와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
손가락은 녹슨 톱 같은 걸로 잘랐는지 단면이 매끄럽지 못한데 손톱도 다 쥐어뜯었고 지문도 숯으로 지진 흔적이 있었다.
끔찍한 고문 끝에 손가락을 자른 것이다.
그와 함께 드워븐 애로우와 차샨의 요구사항이 있었다.
첫째는 요새를 넘길 것.
둘째는 차샨의 지위를 복직시키고 차샨에게 빼앗아 간 돈들에 대해서 반릉 금화로 2,000냥을 보상할 것.
셋째는 이후에도 드워븐 애로우의 마약 거래를 금하지 말 것이었다.
그 외에도 최근 식량값이 폭등하고 있으니 식량을 싼값에 대량으로 판매하라는 자잘한 요구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요구 셋이 이러한 내용이었다.
“죽고 싶다고 용을 쓰는구나.”
아자딘은 말도 안 되는 요구와 잔혹한 고문의 증거인 손가락을 보며 분노했다.
지금까지 아자딘을 보아온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격렬한 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