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32
331. 사문회 1
구난기사단의 수련기사, 아자딘이 반릉 왕국의 국경으로 쳐들어가서 무려 반릉의 왕자 칼즈마티를 죽이고 산도카르 백작령을 접수해 버린 대사건이 일어났다.
이것만으로도 세상이 발칵 뒤집힐 일이다. 그러나 그 후에 벌어진 일은 그 이상이었다.
산도카르 백작이 왕의 교회에 반릉 왕실을 고발한 것이다.
죄목은 바로 뱀파이어화. 인류에 대한 반역죄였다.
반릉의 왕자 칼즈마티가 뱀파이어이며 그의 공격으로 군신의 계약이 깨졌으니, 아자딘을 새로운 주군으로 섬기고 구난기사단에 산도카르의 수호를 청하겠다는 뜻이었다.
반릉 왕국은 당연히 혐의를 부인하고 산도카르 백작을 반역자로 규정, 파문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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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
아자딘에게 통행증을 써줬던 칼린츠 왕자는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 집무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머리로 들이받았다.
“워워. 진정해. 진정. 물건이 아깝잖아.”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아자딘은 태연했다.
그는 칼린츠 왕자의 머리보다 그것과 충돌하는 물건들을 걱정했다.
“미친놈아! 침공을 해버리면 어떻게 해?! 게다가 어떻게 이겼어? 아니, 재주도 좋아! 어떻게 백작령을 통째로 먹냐?”
“내가 먹었다기보다는 백작의 함정에 빠진 거지. 사실 백작으로서도 반릉 왕자가 자기 영지 안에서 죽었는데, 뱀파이어인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그런데 왜 수련기사인 네게….”
“그야 전령일족이고 영혼 없는 불경자라는 내게 백작이 머리를 숙이면 왕의 교회나 세간의 눈길도 끌 수 있을 거 아냐? 반릉 왕실에 뱀파이어가 있다는 소리를 그냥 하면 왕의 교회가 들어주겠어? 대뜸 주둥이를 틀어막겠지.”
실제로 산도카르가 반릉 왕실을 고발한 이 사건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차드라의 호걸들을 제압한 것으로 명성을 드높이던 아자딘이었는데 이제는 그 유명세가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온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었으니 반릉 왕실이 억지를 부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럼 산도카르의 이브첵도 사실 널 이용하는 거잖아? 너는 그걸 알고서….”
“원래는 그쪽으로 교역로를 만들려고 했는데 산도카르랑 척을 지면 교역로 만들어 둔 게 말짱 도루묵이 되겠더라고. 물론 아랑기 쪽으로 빠지거나, 히포그리프 타고 날아다니거나. 밀수하자면 못 할 건 아닌데. 또 상대가 날 지목해서 투항하겠다는데 안 받아 주는 것도 모양이 나쁘잖아.”
“으음. 아니 지혜 교단에서 널 해치려고 벼르고 있는데 그런 좋은 일을 저지르다니. 틀림없이 사문회 감이다. 사문회. 수련기사 주제에 그런 큰일을 덜컥 맡으면 어떻게 해? 상부에 물어보고 결정했어야지!”
“솔직히 이번 일은 사문회가 열릴 만하네.”
아자딘도 이번 일은 구난기사단에게 너무 심한 짓을 해버렸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구난기사단 입장에선 그렇지 않아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전령일족, 영혼 없는 불경자, 신왕살해자 등등 온갖 안 좋은 소문들을 다 달고 다니는 녀석을 받아들여 줬는데, 이놈이 대형 사고만 치고 다니지 않는가?
반릉 왕국의 변경백작령을 접수해 버리다니 이만저만한 큰일이 아니다.
칼린츠 왕자의 말대로 상부에 우선 물어보고 결정했어야 할 일이었다.
물론 그리했다면 그동안 산도카르 백작령은 반릉 왕국에게 신나게 짓밟힐 테고, 아자딘은 산도카르 백작령을 지켜야 할 의무도, 반릉 왕국과 칼을 섞을 명분도 없어지니….
산도카르 백작은 자기 목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고 아자딘은 그 도박을 받아들여 준 것이다.
“지혜 교단이 사문회에 출두하라고 세인트 말로리로 부르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런데 내가 지금 자리를 못 비우는데. 산도카르 백작령 쪽으로 병력을 배치하는 중이라서.”
“전진 배치….”
칼린츠 왕자가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말하자면 아자딘은 반릉 왕국이 산도카르를 쳐들어올까 봐 병사를 이동시켰다.
반릉 왕국 입장에선 온 세상에 미친 놈으로 소문난 놈이 병력을 끌고 와서 국경 옆에 배치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된다.
“사문회 출두를 거절하겠단 말이지? 멋대로 국지전 같은 무력시위를 하면서 말이지!”
“연기지. 정확히는. 만약 전면전이 벌어지면 사문회를 연기할 수 있잖아? 규정상 그런 거로 아는데?”
“그런 규정이 있다고?”
칼린츠 왕자는 코덱스를 뒤져보았다.
사문회 출두에 대한 연기 요청은 물론 가능하다. 중요한 일들이 있을 때 구난기사는 상부의 사문회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제로 사용된 사례가 없다. 하물며 수련기사는 더더욱!
하지만 규정상 존재하기는 한다.
“진짜네?”
“반릉 왕국의 뱀파이어들과 싸울 준비를 취해야 할 테니까 연기 사유는 충분하다.”
“그야 그러시겠지. 그런데 정말 사문회는 무시하고 반릉 왕국과 전쟁을 할 셈이냐?”
“어허. 말조심해. 반릉 왕국과 싸우는 게 아니라, 반릉 왕국을 좀먹는 뱀파이어들과 싸우는 거지. 게다가 엘리멘탈 웨일링에 대한 해법도 나올 수 있다고. 설마 구난기사단은 뱀파이어와 싸우는 것까지 하나하나 상부의 허가를 득해야 하는 거야? 아니지?”
확실히, 성기사가 뱀파이어 같은 마물과 싸우면서 굳이 상부의 허가를 얻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일개 수련기사면서 왕국 전체와 싸우겠다는 거냐고. 아랑기도, 심지어 야에가스 신족들도 정복하지 못한 게 드워프들이다.”
“나는 뱀파이어와 싸울 뿐이야. 그들의 신분은 뱀파이어가 인간 세상에 잠입하기 위해 선택한 가면이지.”
“알겠어. 그럼 내가 도울 일은?”
“상부에게 은근히 말해줘. 날 사문회에 넣으면 상부의 권위가 실추될 수도 있다.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야.”
“……….”
“왜?”
“그거 도발이잖아?”
“도발인가? 나는 가감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인데.”
“일개 수련기사에게 날 사문회에 붙이면 기사단의 체면을 구길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잘나신 주교나 고위 성기사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건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게 싫다면 날 승진시키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럼 일개 수련기사가 아니라 고위 성기사에게 당하는 거니 덜 부끄러울 거 아냐?”
“크크큭. 이 자식.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칼린츠 왕자는 너무나 시건방진 아자딘의 대답에 그만 실실 웃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알겠어. 그 말 그대로 전해주지. 하지만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인 내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건, 내가 생색내려는 건 아니지만 알지?”
“왕자에겐 늘 고마워하고 있어. 어려운 발걸음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옆구리 찔러서 절받기로군.”
칼린츠 왕자는 이왕 이리된 이상 아자딘과 한배를 타기로 결정했다. 결심 자체는 오래전에 한 일이지만 왜 이리 불안할까.
“달리 뭐 도와줄 일은?”
“병력을 전진 배치해서 버밀리온과 용천지, 등등의 방위가 약해지는 데 후방 지원만 좀 해줘.”
“알겠다. 후방의 치안을 유지하고 도로에 순찰대를 편성하도록 하지.”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이 반릉 왕국과 본격적으로 승부를 볼 수 있도록 후방 지원을 약속해 주었다.
*********
아자딘은 칼린츠 왕자에게 보고를 마치고 산도카르 관문으로 향했다.
병사들과 인부들을 대동해 산도카르 관문으로 향하는 길을 닦고 길가의 마물을 퇴치한다.
아울러 뱀파이어의 공격으로 부서진 산도카르 관문을 보수하는 작업에도 들어갔다.
“이거 참. 면목이 없군. 하하. 내가 뒷생각을 안 하고 그만… 이렇게 도움을 받아서 미안해서 어쩌지?”
산도카르 백작 이브첵은 아자딘이 직접 병대를 끌고 와서 관문 요새를 수리해 주는 것을 보며 능청을 떨었다.
“오면서 봤는데 이곳의 토지도 비옥하더군. 거기에 국경지대. 관세수입도 상당할 테고, 농업 생산량도 적지 않을 거야. 그런데도 발전을 못 한 건 왜지?”
차드라 고원에서 이곳 산도카르로 이어지는 길목은 차드라 고원에서 물이 흘러내리면서 그 물에서 퇴적물 등이 축적되어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었다.
브리와 고블린, 야수와 마물이 출몰해서 그렇지 이 땅의 잠재력도 상당하다 할 수 있었다.
“발전을 못 했다니 무슨 뜻인가?”
“길을 잘 닦고 길가에 출몰하는 마물을 정리하면 충분히 생산성이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동안 안 했지?”
“하하하. 산도카르 백작령과 차드라 고원 사이의 땅은 반릉 왕국인지, 기사단령인지 애매한 곳이라서 내버려 두고 있었네. 함부로 건드리면 정치적인 문제가 되니까.”
산도카르 백작 이브첵은 마치 지금 아자딘이 벌인 실책을 비웃는 듯한 발언을 했다. 차드라 고원과 반릉 왕국 사이의 땅, 정치적으로 민감한 땅을 접수해 버린 아자딘의 행동은 실책이 아닌가?
그렇게 힐난하는 듯한 발언이다.
자신이 아자딘에게 투항하고 산도카르를 넘긴 주제에 그것을 받아들인 아자딘의 선택을 우책이라고 비웃는 것이다.
파격적인 이유로 아자딘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브첵이지만, 그가 마냥 기사도에 미친 정신병자는 아니었다.
철저한 정치적, 물질적 고려가 있기에 아자딘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흐음….”
아자딘이 대꾸가 없자 이브첵은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고 여겼는지 얼른 분위기 전환을 위해 변명을 시작했다.
“게다가 이 일대는 브리와 고블린이 들끓는다고. 그대야 브리 정도는 무슨 길가의 잡초처럼 베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병사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적들이지. 나도 조상에게 물려받아서 이런 갑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잘 싸우진 못하네. 누구나 전사인 것은 아니야.”
아자딘은 이브첵의 변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그의 영지를 돌아보았다.
길이 잘 닦여있는 것도 아니고 농장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이곳 산도카르는 부유했다.
사람들은 영양상태가 좋고 군대는 잘 무장되어 있으며 물자가 많이 비축되어 있다.
“뭐, 드워븐 애로우가 마약 밀수를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찔러준 게 달달했겠지. 괜히 되지도 않는 병사들을 움직여서 마물을 퇴치하는 건 힘든 일일 테니까.”
“윽….”
이브첵은 아자딘의 말에 대꾸할 말이 없는지 혀를 깨물었다.
“드워븐 애로우와 마약 밀수 조직은 전부 짓밟을 거야. 당신은 당신 영지 내의 마약중독자들을 파악해 둬. 그리고 상비병으로 뽑을만한 인물을 선별하고. 마물을 퇴치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운 일이겠지. 이브첵 백작?”
“무, 물론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네.”
이브첵은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한 아자딘의 보라색 눈을 보며 한없이 위축됨을 느꼈다.
“안심해. 이브첵 백작. 산도카르의 백작씩이나 되는 당신이 나에게 검을 맡기고 충성을 맹세한 것은 단순히 이익이나 모략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나는 높이 평가하고 있어.”
아자딘은 야에가스 신왕족의 일원인 이브첵이 자신에게 검을 맡기는 것만 해도 보통 결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치적인 고심 없이 무작정 아자딘에게 충성을 바쳤다면 오히려 아자딘이 그를 거부했을 것이다.
“고, 고맙네. 그런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네는 괜찮은가? 구난기사단 측에서는….”
산도카르 백작 이브첵은 이제 와서 아자딘의 걱정을 해주었다.
“괜찮을 리가 있나. 하지만 세인트말로리에서 여기까지 꽤 머니까 아마 제대로 움직이려면 시간이 꽤 걸릴걸. 그 안에 결판이 나면 좋겠는데….”
아자딘은 마치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