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33
332. 사문회 2
파이어글리프의 성에 히포그리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쿠웅!
히포그리프가 횃대에 앉자 건물이 흔들린다. 파이어글리프 요새, 챕터 마스터의 집무실에서 먼지가 부스스 떨어졌다.
“아, 셀림 이놈의 자식, 히포그리프 타고 건물 위에 앉지 말라니까. 소대가리 새끼라 말귀를 못 알아듣나.”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 칼린츠 왕자는 보나 마나 히포그리프 애호가인 셀림의 소행이라 여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잠시 후. 그를 찾아온 인물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숙부님. 라이오네어 일족의 트리오다나 입니다. 당신의 조카 되지요.”
지혜 교단의 셀레스티얼, 트리오다나 경이 칼린츠 왕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칼린츠 왕자는 자신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트리오다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숙부님이라니. 구역질 납니다. 형님.”
“하하하. 알고 있었나? 역시 아자딘 경이 알려주던가?”
트리오다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트리오다나 경, 공식적으로 그는 칼린츠 왕자의 조카이지만 그 실상은 칼린츠 왕자의 형인 트라이튼 왕자의 환생이었던 것이다.
“북방인 다운 남자의 기상은 어디로 가고 남방인이나 좋아할 곱상한 모습으로…. 아니 세상에. 어떻게 한 거야? 그거? 오우거들과 싸우다 전사했다더니만 헛소문이었어?”
“쉿.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칼린츠.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대충은 알고 있겠지?”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는 가족들이 셀레스티얼로 전생하고 있는 사실도 모르는 버린 돌이라서.”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멀쩡한 널 왜 셀레스티얼로 전생시키겠냐? 전쟁 중 상처를 입거나, 죽으면 그때 그냥 죽게 내버려 두기 싫으니까 전생을 시키는 거지.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이거 별로 좋지 않아. 과거의 기억이나 인격은 마치 술을 코가 비뚤어지게 먹고 기억하는 명정상태의 기억 같아. 내 동일성이 유지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군. 전생의 기억은 마치 책으로 읽어서 알고 있는 내용 같아. 지금의 나와는 다른 인물의 삶이라고 생각된달까?”
즉 트리오다나가 트라이튼의 환생이긴 하지만… 성격이나 인격이 완전히 동일하진 않다.
그것은 그럼 트라이튼의 죽음이 아닌가?
칼린츠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트리오다나가 웃어넘겼다.
“물론 죽는 것보단 낫다. 다치고 늙고 병드는 것보다는 훨씬 좋으니 기뻐해라. 너도 아버님께서 전생시켜 주실 테니까. 목숨을 여벌로 하나 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아하하. 그거참 기쁜 일이네. 그래서. 뭐 하러 온 건데. 나도 셀레스티얼로 전생시켜주게?”
“내가 한 말을 못 알아들었냐? 죽거나 다치지 않으면 전생시키지 않을 거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아자딘이라는 그 천둥벌거숭이 때문이다. 듣자하니 네가 그와 사이가 꽤 돈독하다지?”
“정말 아름답게 생겼거든. 사내놈이라 망정이지 그런 여자가 있으면 청혼했을 거야. 쌍둥이 누나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죽었다지 뭐야.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농담치고는 듣기 거북하군.”
트리오다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칼린츠가 그다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아버님께서 그놈에게 관심을 보이신다. 소문에 의하면 놈이 지혜의 플랑크 경의 칼을 가지고 있다던데.”
“아우렐리아 던말인가? 맞아.”
“제대로 쓰던가?”
“설마 칼질도 못 하는 놈이 그렇게 유명해졌을까?”
“아니 내 말은 불이 붙더냐는 거야. 세라마이트의 불길이 타오르던가?”
“난 직접 싸우는 걸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불타겠지? 왜?”
“아우렐리아 던이 불탄단 말인가? 으음. 혹시 그놈을 구난기사단에서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없을까? 녀석이 원하는 게 뭐지?”
“…무릴 걸. 형님. 그 녀석은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뼛속까지 구난기사야. 돈이나 여자, 심지어 명예도 별로 바라지 않는 것 같아.”
전령일족인 아자딘이 뼛속까지 구난기사라니 듣는 쪽 입장에서는 이게 진담인지 농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칼린츠 왕자의 표정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다면 싫어도 구난기사단에서 쫓겨나게 만들어야겠군. 알겠다. 그걸 위해서 내가 온 거지.”
“…….”
“왜? 걱정되나?”
“어. 어지간하면 잠자는 용의 눈꺼풀은 안 당기는 게 좋지 않을까?”
칼린츠 왕자는 트리오다나의 발언을 듣고 어째 걱정되는 눈치였다.
“하이네 그 여자도 그렇더니만 너도 그러는군. 그 녀석에게 대체 뭐가 있나?”
“있긴 확실히 있지. 아무것도 없는 놈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그 녀석은 정말 대단하다고. 그런데… 그게 뭐냐고 물으면 또 뭐라고 막연히 대답하긴 힘들어. 하지만 분명히 그놈에겐 뭔가가 있다고. 가급적이면 안 건드렸으면 좋겠는데. 아니 사실 그 녀석을 좀 돕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
“그게 무슨 소리야? 녀석은 아버지의 계획에 방해물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아버지께서 얼마나 공들여서 준비하시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그, 그렇지?”
“사사로운 정이 있다면 버려라. 아버지의 뜻을 실천해야지?”
칼린츠 왕자는 이제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인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의 뜻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아자딘의 편에 설 것인가?
“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데?”
“사문회를 열거다.”
“사문회? 세인트 말로리에서? 그럼 안 갈 텐데?”
칼린츠는 아자딘을 세인트 말로리에 출두시킬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리라는 걸 트리오다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거로 생각했어. 그래서 세흐나트 주교가 직접 이곳 파이어글리프로 올 거야.”
“…주교가 직접?”
“그래. 그렇지 않아도 전령일족 놈이 별다른 제지 없이 구난기사단에 들어왔다고 벼르고 있었거든. 세흐나트 주교가 경솔한 행동을 할까 봐 말리느라 고생했다.”
“……”
아무래도 이들은 정말 아자딘을 사문회에 걸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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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카르 관문의 요새를 보강하고 있는 아자딘에게 파이어글리프로부터 전령이 당도했다.
‘세인트말로리로부터 출발한 조사단이 파이어글리프에 당도하였으니, 수련기사 아자딘은 파이어글리프에 출두해 사문회에 응하도록 하라.’
만약 산도카르에 뱀파이어들이 공격을 가해 교전 중이라면 아자딘은 사문회의 연기를 요청하며 시간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사문위원들이 몸소 파이어글리프까지 온 시점에서, 드워프나 뱀파이어와 교전이 없는 지금 은 그것을 연기할 자격이 없었다.
“예상보다 빠르군. 반면… 뱀파이어들은 공격해 오지 않고 있고.”
결국 아자딘은 산도카르의 보강 작업 및 방위는 부하들에게 맡겨두고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파이어글리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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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교단의 트리오다나와 용기 교단의 가레스는 본래 조사만 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흐나트 주교는 사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으며 교단 측에서는 아자딘의 제거를 고려했다.
“천사들을 피해서 들어갔다 나온 것만으로도 그만한 인재는 드뭅니다. 게다가 아라가사들에 대항해서 조운선을 지켜주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사문회에 불렀으니 그가 암살당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충분히 시시비비를 가린 후에 처벌해도 무방하다 봅니다.”
가레스는 아자딘을 암살할 생각까지 하는 주교에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세흐나트 주교가 시치미를 뚝 뗐다.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를 상정한 것이었네. 자네는 나를 무슨 무뢰배로 보는가?”
“네.”라는 대답이 가레스 경의 목구멍까지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그때 아자딘이 도착했다고 전령이 알려왔다.
“빠르군.”
“히포그리프를 타고 날아왔으니까요.”
“슬슬 준비해야겠군요.”
“으음. 자비 교단은 이런 때에 대체….”
트리오다나는 자비 교단의 조사단원이 도착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표시하며 이번 사문회가 열리기로 한 파이어글리프의 집회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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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이 사문회장에 도착하니 사문회장에는 삼엄한 병력이 쫙 깔려 있었다. 가레스 경의 테르시오 병들이 총화기와 단창으로 무장하고 도열해 있었다.
장전된 화약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무리 아자딘이라 하더라도 이 많은 테르시오 병들이 일제히 화약 무기를 발사한다면 살아 나가지 못 하리라.
‘용기 교단이 나를 처치하려 하진 않을 텐데.’
아자딘은 냉정하게 교단의 반응을 계산하고 있었다.
만약 아자딘을 해치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북제의 입김이 강한 지혜 교단 내의 북제 파벌들일 것이다.
지혜 교단이 아자딘에게 수모를 겪긴 했지만 아자딘은 그 후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조운선을 무사히 끌고 오는 것에 협력해 주었다.
즉 아자딘이 구난기사단 안에 있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이런데도 아자딘을 숙청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자딘에 대한 지나친 적개심, 아니면 기사단을 수월하게 사유화하고 싶어 하는 북제의 야망 때문일 것이다.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야겠군.’
아자딘은 주의하고 사문회장에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혜 교단은 트리오다나 경이, 용기 교단은 가레스 경이 배석해 있었다. 그리고 칼린츠 왕자도 부심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문회실 정중앙, 법관의 자리에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언데드에 가까운 비쩍 마른 남자가 화려한 주교복을 입고 아자딘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교 세흐나트.
북제와 손잡은 타락한 성직자가 바로 아자딘을 불러들인 사문회장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