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35
334. 사문회 4
“무슨 큰일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그렇지 않아도 짜증이 나 있던 세흐나트 주교는 감히 사문회에 쳐들어온 전령을 보며 분노마저 느꼈다.
사문회는 구난기사단 안에서 굉장히 진중한 행사인데 어째 여기서는 받는 놈도 반항적이지 않나, 전령이 들어오질 않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그런데 잔이 정색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지금 당장 알려드리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실례합니다. 주교님. 들어보지요.”
칼린츠 왕자가 가레스 경과 트리오다나 경에게 양해를 구하고 물어보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감히 사문회장에 난입하다니. 사소한 일이라면 처벌을 면치 못할 거다!”
“반릉 왕국이 멸망했답니다!”
“그래? 별일도 아니구만… 아.”
무심코 별일도 아니라고 폄하하던 칼린츠 왕자는 자신이 말을 내뱉고 난 다음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뭐?”
모두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트리오다나와 가레스 경은 전령의 말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만약 반릉 왕국이 멸망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사문회 따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반릉 왕국이 멸망했다? 소문이야 그렇게 돌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자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어보았다.
“반릉 왕국 쪽에서 피난민들이 몰려나오고 있습니다. 다들 마물이 반릉 왕국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물 때문에 반릉에서 다들 탈출하고 있는 거지요.”
“반릉 왕국의 군대와 아카데미의 학자들, 마법사들은?”
“그들도 버티지 못하고 탈출하거나… 소문에 의하면 마법학자들 상당수가 마물로 변화해 버렸다고 합니다.”
“피난민들을 목격한 곳은?”
“산도카르 관문과… 아랑기안 게이트, 양쪽 동시에서 피난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해안 도시에도 피난민들이 탄 배들이 도착하고 있고요. 동시다발적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단순한 정보 공작일 가능성은 없겠군요. 역시….”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문회의장 주교 세흐나트를 바라보았다.
“실례지만 사문회는 이만 종료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주교님? 이런 무익한 회의를 지속하는 동안 얼마나 피해가 커질지 상상도 하기 힘들군요.”
“네놈! 아니야! 이건 아니다!”
“뭐가 말입니까? 주교님?”
“이렇게 내 손을 빠져나갈 거로 생각하지 마라! 이 영혼 없는 불경자야! 불경하고 타락한 놈! 구난기사단에 들어와서 다른 이들의 눈은 속일 수 있더라도 내 눈은 못 속인다!”
“…….”
아자딘은 노망기를 감추지 않고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격노하는 세흐나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품에 손을 넣자 트리오다나와 가레스가 흠칫 놀라서 세흐나트 주교의 곁에 섰다.
분노한 아자딘이 세흐나트 주교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자딘이 꺼낸 것은 은화였다.
“자, 잘 보시지요.”
아자딘은 세흐나트 주교의 앞에서 은화를 손가락 사이로 빙글빙글 돌렸다.
그렇게 잠깐 손장난을 하다가 갑자기 아자딘의 손에서 은화가 싹 사라졌다.
“뭣?!”
“…어디 갔을까요?”
“무슨 짓이냐? 갑자기 광대놀음을 하다니?”
“아니 주교님 눈을 속일 수 있나 없나 시험해 보는 겁니다. 저는 당신 눈을 못 속인다면서요?”
“이놈이!”
주교는 아자딘이 자신을 조롱한다는 걸 깨닫고 화를 내려다 억하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화려한 주교복으로 몸을 감추고 있어도 그 안에는 편협하고, 그저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노망든 추레한 몸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주교의 위엄은 사라지고 노망나기 일보 직전의 쪼그라든 뇌세포를 가진 노인네가 앉아있다.
아자딘은 원래부터 세흐나트 주교를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예 무시하고 트리오다나와 가레스를 돌아보며 물어보았다.
“자, 그럼 상황이 급변하고 있으니 묻겠습니다. 사문위원분들의 병력은 얼마나 되지요? 테르시오 2개 중대 정도 되는 것 같은데….”
“…….”
“주로 사용하는 화약과 탄환들의 규격과 2주 치 사용 분량을 적어서 내세요. 보급이 원활하도록 해보겠습니다. 통상 식량이나 보급품들은 파이어글리프에서 지원해 줄 겁니다. 그렇지요?”
“아, 그럼. 물론이지.”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럼 저와 함께 산도카르에 가서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할까요? 당신들은 제가 산도카르를 병탄한 게 아닌지, 무력으로 반릉 왕국을 침탈한 게 아닌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 말인즉 싫어도 현장에 가야 한다 이겁니다.”
가레스는 아자딘의 재빠른 대응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자딘은 이 상황이 되자 오히려 가레스와 트리오다나를 징집할 셈이었다.
가레스와 트리오다나가 가져온 병력, 그리고 그들 자신까지 아자딘이 이용하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절할 명분도 없다.
게다가 대뜸 탄약과 화약 보급부터 신경 쓰는 아자딘의 태도에 마음이 동한 것도 사실이었다.
테르시오 지휘관을 하면서 가장 그들을 골머리 앓게 한 것은 보급을 등한시하는 후방 상급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알겠네. 아자딘 경. 아무래도 그대를 사문 하는 것보다 직접 상황을 보는 게 낫겠지.”
“그, 그러겠다만….”
트리오다나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가레스와 달리 트리오다나에게는 아자딘을 적대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의 위대한 아버지,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가 내려준 사명이 있는데…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아자딘이 하는 말이 옳았다.
“그럼 따라오시지요. 한시가 급합니다.”
아자딘은 사문회장을 박차고 나왔다.
“멈춰라! 누구 멋대로! 이봐라! 트리오다나 경! 그 배교자를 처단해라! 얼른!”
세흐나트 주교는 참지 못하고 즉시 아자딘을 죽이라고 트리오다나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트리오다나는 그런 세흐나트 주교의 명령을 그저 쓴웃음으로 흘려넘겼다. 아버지의 명에 의해 아자딘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트리오다나도 굴뚝같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아자딘에게 손댈 수 없다.
“주교님. 일단 여기에 온 이상 조사부터 해야 합니다. 산도카르로 먼저 이동하겠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여기 파이어글리프에서 일단 정양하시지요.”
“뭣이… 쿨럭!”
분노하던 세흐나트 주교는 참지 못하고 그만 왈칵 피를 토했다.
코피가 흐르고 눈이 충혈되어 눈에서도 피눈물을 흘린다.
“끄억….”
세흐나트 주교가 참지 못하고 쓰러지자 주교 주위의 사제들이 깜짝 놀라 그를 부축했다.
“무슨….”
아무리 세흐나트 주교가 나이가 들었다 하더라도 파이어글리프에 올 때까지는 정정했던 인물이었다.
“하아….”
세흐나트 주교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지만 트리오다나는 세흐나트 주교를 사제들에게 맡기고 아자딘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
“하아.”
아자딘은 사문회장을 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뱀파이어들이 쳐들어오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아자딘이 가지고 있는 세라마이트 장검, 아우렐리아 던은 뱀파이어들에게는 악몽의 현현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나 반릉 왕국이 멸망했다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지만 아자딘은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해야 했다.
‘조사해 봐야겠지. 표정 관리를 잘해야겠군.’
아자딘의 군벌은 철저히 아자딘의 카리스마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아자딘은 위급한 상황에서 순발력을 발휘해 사건을 수습하면서도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 태연히 활동하면서 부하들의 충성심을 끌어모았다. 핌불베르트가 다가오는 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아자딘의 태연한 태도는 부하들을 안심시켰고, 그들에게 신뢰를 불러왔다. 미혹의 안개가 가득한 곳에서 등대가 하나 있다면 설령 암초로 유도하는 등대라 해도 배들이 이끌리기 마련이다.
아자딘이 확고한 모습을 보여야 사람들이 아자딘을 믿고 따라오는 것이다.
“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반릉 왕국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아자딘의 부하들, 파이어글리프에 배치된 병사들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그건 알고 있다. 산도카르와 연락은 되나?”
“그게… 산도카르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아시잖습니까? 캐러반이 고립되었습니다.”
“…….”
아자딘은 산도카르를 장악하면서 반릉 왕국의 내부 사정을 살피기 위해 또다시 캐러반을 만들어서 반릉 왕국으로 보냈다.
반다이크 상회의 딜리아가 이끄는 상단에 여도적 카밀라와 쿤타치를 합류시켜서 반릉 왕국 내부로 상단을 출발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반릉 왕국이 멸망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캐러밴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파이어윈터의 상태는 어떻지?”
“지쳐있습니다. 산도카르에서 여기까지 강행군을 해왔는데 다시 산도카르로 돌아갈 수는 없지요. 적어도 하루 정도는 푹 쉬게 해줘야 합니다.”
아자딘이 타고 온 히포그리프, 파이어윈터는 체력이 고갈되어있었다.
“그럼 좋다. 파이어윈터의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 준비를 좀 해야겠군. 괜히 서둘러서 지금 당장 출발해봤자 오히려 놓치는 게 많을 테니까. 캐러밴에는 딜리아나 카밀라, 쿤타치가 있으니 그 정도 시간은 버틸 수 있겠지.”
아자딘은 트리오다나와 가레스를 바라보았다.
“당신들도 정비가 필요하겠지?”
“물론이오. 아자딘 경.”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져 행군해야 할 판인데 식량과 무기, 물자 등을 새롭게 준비해야 했다.
아자딘의 히포그리프, 파이어윈터도 휴식이 필요했으니 그동안 행군 준비를 취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도 캐러밴을 구출하러 달려가고 싶지만…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지….’
아자딘이 내심 당황했으면서도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자 부하들과 가레스, 트리오다나가 아자딘에게 감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침착하다니. 역시 인물이로군. 지혜 교단을 털어먹을 만한 기량이 있어.’
가레스는 원래부터 아자딘에게 감탄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태연한 태도가 연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틀림없이 뭔가 고견이 있을 것이다. 이 남자는….’
가레스는 아자딘의 명령에 따르기로 하고 부하들에게 즉시 물자를 조달해 행군 준비를 할 것을 명했다.
한편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에게 질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적이지만 훌륭하군. 너무 훌륭해서 문제지. 이 혼란기를 제압하고 만백성의 우상으로 거듭나야 할 것은 오직 우리 위대하신 아버지뿐인데. 아아, 아버지, 저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는 아자딘을 질투하면서도 그의 확고한 태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악의 세력들이 기상조차 악화시키고 있는 지금, 수많은 사람이 파멸의 환시를 본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셀레스티얼로 전생한 트리오다나 또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런 그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확고한 야심으로 오랫동안 구난기사단과 북방 왕국들을 조율해 온 야심가, 북제 코헨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코헨에 대항하는 아자딘이 있으니….
‘일단 따른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가능하다면 제거한다!’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을 숙청할 준비를 하고 그 역시 부하들을 준비시켰다.
다들 아자딘의 속도 모르고 무심한 아자딘의 겉모습만 보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