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36
335. 파멸의 심장 1
반다이크 상회, 파이어글리프 지부의 지배인인 딜리아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아자딘과의 거래로 파이어글리프 지부의 매출은 과거 대비 10배가량 상승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차드라 고원의 여러 영지를 병합하면서 농지를 개간하고 지적을 통합하면서 적은 농부로도 더 많은 소출을 낼 수 있도록 농경지를 개편했다.
그리고 남는 잉여 노동력을 병사로, 기술자로, 노동자로 바꾸는 데 필요한 대량의 물품들을 반다이크 상회에 주문했을 뿐 아니라, 반다이크 상회가 원하는 각종 물품을 제조하고 만들어 주어서 상회의 이익을 크게 증가시켜주었다.
아자딘과 거래함으로써 딜리아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령일족 원로원에서는 아자딘을 당장이라도 죽여야 한다고 분노하고 있었다.
일족의 배신자가 공공연하게 구난기사단에 들어가 이름을 날리는 것도 전령일족에 대한 모욕인데 그들의 중대한 사업을 방해한 것이다.
특히 조운선 습격 사건을 훼방 놓은 것을 원로원은 참을 수 없는 도전으로 보고 딜리아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다.
‘아자딘의 약점을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거래를 끊고 직접 암살해라!’
그와 함께 원로원은 딜리아에게 단도를 하나 내주었다.
‘아니, 이 칼 한 자루로 뭘 하라고?’
딜리아는 아자딘의 능력을 곁에서 보아서 잘 알고 있었다.
아자딘은 어찌 된 일인지 놀랍게 향상된 무력과 마법으로 차드라 오걸들을 제압하거나 동맹을 맺고 차드라 고원의 영지들을 접수했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산도카르 백작마저 휘하에 거둬들였다.
이런 인물을 칼 한 자루 줬다고 죽일 수 있다고 믿는 원로원의 정신상태를 믿을 수가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 시국에 곡식을 태워?’
아무리 그것이 승리를 위한 편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핌불베르트가 다가오고 있는 지금 조운선을 약탈하는 것도 아니라 태우려 했다는 전령일족 상층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나가 놈들이랑 붙어먹더니만 돌았나. 노망난 것들….’
병량을 공격하는 것은 병법의 기본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식량을 태워버려서 다가오는 미래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품는 것은 비단 딜리아 만이 아니었다.
전령일족의 젊은이들 상당수가 이번 일에서는 오히려 원로원의 행동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휘브리스 인들을 지배하고 싶은 것이지 몰살하고 싶은 게 아니다. 원로원은 휘브리스 인들을 몰살시키고 나가들과 함께 하는 삶을 그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나가들은 그들과 종족이 아예 다르며 식인을 하는 존재들이다.
전령일족의 젊은이들은 나가들과 함께하는 미래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딜리아는 아자딘이 보여주는 미래에 공감하고 있었다.
“아, 내가 미쳤지.”
“뭐가 말입니까? 지배인?”
“아, 아니….”
상념에 잡혔다가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소리를 낸 모양이다. 대답이 궁색해진 딜리아는 자신의 앞에서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의 잔등을 가리켰다.
“이거 말야. 이거.”
지금 그녀는 직접 캐러밴을 끌고 반릉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자딘 그 작자가 내 부하들, 도플갱어들을 얼마나 죽였는데 나는 그 작자가 시킨다고 지금 반릉으로 상단을 직접 끌고 가고 있냐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만.”
“아니야. 화가 난다고. 끄응.”
그래. 그녀는 아자딘에게 화가 나 있었다. 이래저래 자신을 이용하고 도플갱어들도 죽여버리고 그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사업 아이템을 가져와서 요구한다.
그런데 그 요구를 들어주면 수입은 확실하다. 성과도 나쁘지 않고, 아자딘과 싸우면 목숨을 부지할 자신이 없는데 그의 말을 들어주기만 하면 확실한 보상을 안겨주니 합리적인 선택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도 아자딘의 부하처럼 되어버렸다.
차라리 부하가 되고 싶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자딘은 부하들에게 확고한 보상을 약속했고 이번에 상단을 습격해 고문한 차샨 일당에게 정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차샨이 고통에서 해방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것도 모자라, 자살하기 위해 몸부림칠 정도로 괴로워했다는 소식은 그녀에게도 전해졌다.
평소 아자딘이 잔혹한 성격이었다면 그 잔혹함에 놀라고 혐오감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평소의 아자딘을 알고 있는 이들은 오히려 그를 믿었다.
아자딘이 흉포한 성정인 것이 아니라 부하를 해친 차샨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부하들의 원한을 갚아주는 데 진심인 것만으로도 저 멍청한 원로원들보다는 훨씬 이상적인 상사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먼저 원로원을 배신하고 붙으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원로원을 배신할 수는…. 아니 왜 나에게 부하가 되라고 요구를 안 하지? 날 책임지고 싶지는 않고 이용해 먹고 싶다는 건가? 책임없는 쾌락? 뭐 그런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상단 선두에서 하프오크 한 명이 걸어왔다.
아자딘 군벌의 일원인 하프오크 쿤타치였다.
“전방에 병사들이 나타났다. 지배인.”
“그래? 어떤 병사지?”
“어, 어떤 병사였지?”
쿤타치는 자신도 알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허공에 대고 물어보았다.
전령인지라 혼자 와 있는데 누가 그의 의문에 대답해 줄 것인가? 허공에 혼자 질문을 하던 쿤타치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왜 하프오크를 전령으로 삼는 거야?”
오크가 뛰어난 지성과 그에 비례하는 재수 없음으로 유명한 종족이라면 그들과 인간의 혼혈인 하프 오크는 근육만 발달하고 지성이 없거나 지성만 발달하고 몸이 쇠약한, 극단에 치우치곤 했었다.
이렇게 몸이 튼튼한 하프오크는 지성이 열화되기 마련인지라 이런 놈을 전령으로 삼으면 말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그러나… 곧 말이 필요 없다는 걸 딜리아도 알게 되었다.
전방에서 엄청난 숫자의 인간과 드워프 피난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뭐야?”
전방에는 병사들이 있지만 그들의 뒤에는 들 수 있는 귀중품들을 잔뜩 짊어지고 도망쳐 오는 피난민들이 있었다. 이걸 쿤타치는 전방에서 병사가 왔다는 말로 퉁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럴 때는 피난민들을 만났다고 해야지!
화가 나지만 따질 틈이 없다.
피난민들의 선두에는 화려한 갑옷을 입은 귀족 남자가 있었는데 얼굴에는 피로와 낭패함이 깊은 상처를 남겨서 설령 귀족적인 허세로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곤궁함이 드러난다.
“이 상단은?”
“반다이크 상회, 파이어글리프 지부입니다. 저는 지배인 딜리아입니다만.”
“이브카르 남작 제로드일세. 혹시 단목가구를 식량과 바꿀 수 있겠나?”
“…….”
딜리아는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보통 피난민들이 가장 실수하는 게 고급가구를 들고나오는 것이다.
장인들이 고급 목재를 깎아 예술품에 가깝게 조각해 낸 고급 가구류는 살 때는 엄청나게 비싸고, 평시에 매우 값진 것이다.
하지만 피난민이 들고 도망치기에는 너무나 무겁다.
평시에는 비쌀지 몰라도 전시에는 귀금속과 식량만 못하다.
“피난 중이신가 보군요?”
“그렇다네. 그대들도 헛걸음하지 않아서 좋지 않은가? 더 북상해 봐야 괴물들만 만날 테니 말이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요?”
“잘은 모르네. 다만 북쪽으로부터 괴물들이 쏟아지고 있다네.”
“소문에 의하면 땅에서부터 마물들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산맥의 심장 깊숙한 곳에서 말이지요.”
남작의 청지기로 보이는 노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보아하니 반릉 왕국 전체에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엘리멘탈 웨일링이 사람들을 덮치고 있다네. 음. 이 정도면 이야기가 되겠는가?”
“세상에….”
딜리아는 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혀를 내둘렀다.
북방으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밀려와 그녀의 피부를 할퀴고 지나갔다. 아직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싸늘한 한기는 그녀의 몸을 떨게 했다.
“어….”
“눈이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상의 기온이 높아서 내리는 순간 녹아서 빗물이 되지만 상공에서는 분명히 눈이었다.
차가운 빗줄기에 마차를 끌던 말들이 놀라서 푸르륵 거린다.
무너지는 건 반릉 왕국만이 아니다. 이 세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파멸의 손끝이 실체를 가지고 인류 전체를 향해 서서히 그 숨통을 조여온다.
그러나 딜리아는 그 충격의 여운에 젖을 틈도 없었다. 굶주리고 지친 제로드 남작이 그녀를 보챘기 때문이었다.
“드워프 제 흑단 가구일세. 은박으로 장식되었고 살 때는 같은 무게의 은보다 더 비싼 값을 치렀지. 어머님의 혼수품이었고 나중에 딸이 결혼하면 내주려고 곱게 보관하고 있던 명품일세.”
멸망하는 세상에, 자신의 영지를 뒤로 하고 영민들과 도망쳐온 남작은 가보로 물려받은 가구를 팔아서 빵을 사기 위해 딜리아를 재촉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매입하도록 하지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만….”
딜리아는 일단 이들을 달래기 위해서 거래에 응했다.
*********
제로드 남작의 가구들은 분명히 명품이었지만 지금 시국에서는 그리 좋은 거래 용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딜리아는 그것을 사들이면서 제로드 남작 일행을 일종의 용병처럼 고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 난민들을 만난 이상 상행을 강행해 봐야 얻을 것이 없다.
상단을 돌려서 산도카르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딜리아는 일단 전서구를 띄워서 자신들의 위치, 상황, 그리고 반릉 왕국에 관한 소문들을 가감 없이 적어서 보냈다.
이제 마차를 되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가면 될 뿐….
하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분명히 올 때는 별일 없던 길이었는데 되돌아갈 때는 여기저기 많은 난민과 급변하는 기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으헤. 입김 나온다.”
쿤타치가 입김을 불며 좋아하고 있었다.
“괜찮아? 젠장. 난 추운데?”
여도적 카밀라는 망토를 여미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온이 떨어지고 있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을 엘 듯 차갑다.
아직 여름의 한복판이건만 추위가 예사롭지 않다.
이제 핌불베르트는 광인의 망언이 아니라 실체를 가지고 그 발톱을 들이밀고 있었다.
“정말 세상이 멸망하려고 그러나 보군. 음? 이봐 모두 정지!”
카밀라는 일행들을 멈춰 세우고 앞에 나섰다.
삼거리 갈림길에 난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난민들이라는 건 그들이 생활 집기들을 잔뜩 싸 들고 있어서 알 수 있지만, 그 손에는 곤봉과 블랙잭이 들려있었고 조잡하나마 검과 방패를 갖추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궁사들도 길가에 배치되어 있다. 방심할 수 없는 무리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도 카밀라와 쿤타치,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병사들의 무장상태를 보며 긴장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쇼?”
“반다이크 상회 파이어글리프 지부다. 산도카르 백작 이브첵 경과 구난기사단 아자딘 경이 우리들의 상행을 보장하고 있지.”
“아자딘….”
“그 영혼 없는 불경자 말인가?”
난민들은 퀭한 눈으로 카밀라와 쿤타치, 그리고 그 부하들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카밀라가 혀를 찼다.
“지금 아자딘 경을 모욕한 건 아니겠지?”
“뭐? 이 계집이 미쳤나? 전령일족 놈 모욕할 수도 있지.”
이미 절반쯤 도적 떼가 된 난민들은 카밀라가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자 불쾌감을 드러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