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37
336. 파멸의 심장 2
카밀라는 그런 난민들을 보고 웃었다. 사실 이들이 아자딘을 모욕하는 걸 못들은 체할 수도 있고 그러면 좀 더 부드럽게 일이 진행될 테지만, 아자딘의 이름을 함부로 여기는 놈들을 내버려 두면 이후에도 계속 이런 놈들이 나올 것이다.
카밀라는 그 점을 참을 수 없었다. 아자딘이 무엇을 희생하고 무슨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모르는 놈들이 그를 우습게 보는 것은 참아줄 수가 없다.
“쿤타치.”
“어? 누나?”
“저놈들이 누나를 욕하는데?”
“뭐? 진짜야?”
쿤타치가 한 손에 전투도끼, 다른 손엔 그레이트 소드를 들고 나섰다.
그 순간 궁사들이 화살을 쿤타치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쿤타치 외에 다른 병사들도 활과 석궁, 화승총 등으로 궁사를 겨누었다.
“감히 우리 대장의 이름을 멸시하다니 당장 사과해라. 그렇지 않으면 뭐, 꼴상 보아하니 도적놈들 같은데 상단의 앞길을 미리 치워둘 수도 있지.”
“…….”
“그래서 당신들은? 도적인가? 양민인가? 사과할래 말래? 사과만 하면 될 일이야.”
카밀라의 말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병사들의 총구, 석궁, 활의 방향이 움직인다. 모두가 다 아자딘을 모욕한 이들에게 화가 나 있다는 뜻이며 이들의 훈련도가 장난 아니게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 알겠소. 우리가 잘못했소. 사과를 받아주시오.”
“그런데 당신들 정말 상인이라면 혹시 식량을 살 수 있겠소?”
“나는 경호원이다. 곧 상단이 도착하니 상인들과 이야기하도록.”
카밀라가 그리 말하고 호각을 불자 뒤쪽에서 상단 마차가 나타났다.
제로드 남작 일행과 난민들, 그 외에도 길을 갈 때마다 합류한 난민들로 인해 상단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무슨 일이지요? 카밀라?”
캐러반의 회주, 딜리아가 물어보았다.
“이들이 거래를 요구하는군요.”
“아….”
딜리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거래를 요구한다는 난민들은 가죽끈을 묶은 블랙잭과 곤봉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쪽의 무장이 시원치 않았으면 약탈도 생각해 두었으리라.
“식량을 좀 살 수 있다면….”
“비쌉니다. 그리고 이미 마차는 포화상태이지요.”
딜리아는 부관에게 턱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부관이 작은 칠판을 들고 왔다. 난민들이 주로 식량을 요구하기에 식량의 단가를 적어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이 까막눈이지만 숫자는 읽을 수 있었다.
“콩, 귀리, 보리, 밀, 생선, 육포, 빵, 에일, 세리주의 가격이오.”
“…헉?”
“이런 폭리를… 뻔뻔스럽구료.”
“뭐 폭리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시고, 지나갈 테니 비켜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사, 산도카르로 가는 거라면 우리도 따라가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따라오시지요. 단 뒤에서. 제로드 남작님의 통제를 따라주시지요.”
딜리아는 또 난민무리를 흡수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난민들의 무리가 끝도 없이 불어나고 있었다. 일개 상단 지부가 감당할 숫자가 아니다.
“큰일이군.”
*********
산도카르에서 반릉으로 상행을 하면서 딜리아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초기지를 만들어 두었다.
식량과 무기 등을 중간 지점에 적하해 두고 언제든지 보급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초기지에서 재보급을 하기 전에 식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식량을 요구하는 난민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공급을 조절하기 위해서 딜리아는 일부러 비싼 가격을 불렀지만, 놀랍게도 난민들은 그 가격에도 식량은 물론 술까지 사 가곤 했다.
식사 시간이나 수면시간에 도박판을 벌이는 그룹이 나타난 것이다.
도박판이 벌어지면 누구는 따고 누구는 잃는다. 그렇게 돈을 딴 사람들에게는 비싼 값을 책정한 식량들도 그리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상단의 재고 중 식량이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 쪽에서 도박판을 열걸 그랬나. 엄한 놈들이 돈을 벌어 가는군.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여론이 나쁜데 우리가 도박장까지 하게 되면….’
-콰르르릉!
딜리아의 고심에 불안감을 더하기 위함인지 눈보라와 비가 섞여 내리면서 하늘에서 번개가 몸부림친다. 한여름의 상공에서 눈이 내린다. 지면이 그나마 더 더워서 지상 근처에서는 비로 변하지만 이대로라면 세계가 얼어붙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뇌광 속에서 기이한 그림자를 본 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히익!?”
“봐, 봤어?!”
“북쪽, 반릉 왕국 쪽에서….”
사람들은 북방에서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사악하고 거대한, 그러나 형언할 수 없는 그림자가 반릉 왕국으로부터 이쪽을 향해 손을 벌리고 있다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겁에 질리자 딜리아는 부관을 돌아보았다.
“전서구를 하나 더 산도카르로 보내지. 몇 마리나 남아있지?”
도플갱어가 인간의 형상으로 변한 이 부관은 새장을 꺼내 보였다.
“전서구는 두 마리 남아있습니다. 한 마리는 아라가사에게, 한 마리는 산도카르에 보내면 이제 남는 게 없습니다.”
“…아라가사에는 보내지 마.”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상단을 돌릴 때 한 번 전서구를 보냈습니다. 더 보내봤자 괜히 전서구만 낭비하는 게 아닐지요.”
“첫 번째 전서구가 당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 더 보내서 나쁠 것도 없지.”
“그렇다면 아라가사에는….”
“어차피 아라가사가 원군을 보내서 우리를 도와줄 것도 아니잖아? 아자딘이 차라리 낫지. 아자딘에게 한 번 더 보낼 수 있게 전서구를 아끼자.”
딜리아는 그리 말하고 현재 자신들의 위치와 난민들 합류상황, 그리고 물자의 남은 양과 향후 계획들, 입수한 소문들을 편지에 적어서 부관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편지를 전서구에 묶고 간단한 마법으로 방향을 알려주고 새를 풀었다.
-콰르르릉!
뇌명이 울부짖는 어둠을 꿰뚫고 전서구가 날아간다.
“부디 무사히 도달해야 할 텐데.”
“도달해도 저쪽에서 준비하고 이쪽을 구하러 오는 데는 시간이 적잖이 걸릴 겁니다.”
“나도 알아. 전날 보낸 전서구도 있고 이번이 두 번째니까, 아자딘이 눈치가 빠르다면 때에 맞출 수 있겠지.”
딜리아는 그렇게 대답하고 부하들에게 야영을 선언했다.
하늘에서 차디찬 비가 내리는데 괜히 밤길을 지나가다 다치느니 야영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원형진!”
캐러반 마차들을 성벽처럼 길가에 주차해두고 그사이를 끈과 천으로 연결해 지붕들을 만든다. 이 캐러밴 원형진은 적은 수의 마차로 상당히 넓은 안전지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원형진을 배치한 딜리아는 직원들에게 명했다.
“상품 중에 천막이 있지? 제로드 남작에게 빌려줘.”
“네? 천막씩이나요? 어제는 그냥 야영해도 별 탈이 없었는데….”
“어제는 비가 안 왔잖아. 난민들이 많으니 우리도 물건을 내어주지 않으면 저들이 폭도로 변하는 건 순식간일 거야.”
딜리아가 그리 마하고 제로드 남작을 부르자 제로드 남작이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고맙지만 우린 이미 천막이 있소.”
“당신들이야 군인이니 천막을 준비했겠지만, 난민들은 그렇지 않겠지요. 저들은 당신의 영민들이었을 테니 당신이 난민들에게 텐트를 배분하도록 해요.”
너만 텐트 있다고 끝날 일이냐? 딜리아는 그렇게 제로드 남작을 힐난한 것이다.
“고, 고맙소.”
“대신이라긴 그렇지만 당신들이 후미를 맡아주세요. 난민들 최후미가 가장 위험할 테니 가장 뛰어난 전사들이 그곳을 지켜주어야지요?”
딜리아는 제로드 남작에게 천막을 빌려주고 대신 난민들의 후미에서 야영할 것을 권했다. 제로드 남작과 그의 군대가 난민들 후미를 지켜달라는 요구였다.
제로드 남작은 딜리아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는지 별다른 반항 없이 후미에 진을 치고 천막들을 난민에게 배분해서 난민들이 비를 피하게 해주었다.
반다이크 상회가 고용한 용병들과 아자딘의 군벌에 속하는 병사들이 캐러밴 마차를 호위하고 여도적 카밀라가 척후가 되어서 길 앞을 조사한다.
그런데 해가 떨어지고 차디찬 비가 내리면서 사람들이 아우성친다. 다들 캐러밴 마차의 원형 포진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이다.
늑대가 울부짖고 어둠깔린 산천 초목에 그림자가 춤추자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추위를 부르는 빗물도 문제였다.
다들 여름옷을 입고 있는데 이 빗물은 지독하게 차가웠다.
“우리 애가 열이 나요! 마차에 태워주세요!”
아이를 데려와서 열이 난다고 마차에 태워달라는 사람들도 나온다.
“아니, 거부하겠습니다.”
딜리아는 당연히 거부했다.
캐러밴 마차에 상품들, 식량들이 있는 거 빤히 아는데 그 안에 외부인을 들였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한 명 한 명 받아주다간 끝이 없다.
“이 냉혹한 사람들이! 우리 애가 죽어도 좋다는 건가요?!”
“그래서 무상으로 텐트를 빌려주는 거 아닙니까.”
딜리아는 난민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쿤타치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큰일이다. 딜리아. 북쪽에서 마물이 온다.”
“뭐…?”
쿤타치는 북쪽을 보지도 않고 땅을 굽어보면서 몸을 떨었다.
“무섭다. 무서운 게 온다.”
“…무슨 소리야? 그건? 음?”
그때 북쪽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번뜩였다.
저 멀리 지면을 뒤덮고 있는 무엇인가가 뇌광 때문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난민과 제로드 남작의 야영지로 상당수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적습이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제로드 남작의 고함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아랫배를 울리게 만드는 괴물들의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히익?”
“으아아… 사교도들이다!”
난민들은 그 소리를 듣고 머리를 감싸고 두려움에 떨었다.
방금까지 딜리아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오던 이들이 공포에 떠는 모습은 그녀에게 묘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들이 두려워한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들이 이들에게만 해코지할 리가 없으니까.
“쿤타치! 네 누나는 어디 갔어?”
“어. 누나… 곧 온다.”
과연 한 개의 인영이 마차와 마차 위를 뛰어넘으며 인파를 가로질러 딜리아의 캐러밴에 도착했다.
“네더 사교도들이야! 쿤타치! 싸워야 해!”
“어, 누나!”
쿤타치가 그레이트 소드와 배틀액스를 한 손에 하나씩 집어 들고 일어났다.
보통 인간이라면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대형무기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일어난 하프오크의 거구에 난민들이 압도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난민들이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 살려줘!”
“으아아아!”
겁에 질린 난민들은 아무 방향으로나 마구 달리거나… 어떻게든 캐러밴 마차들로 만든 원형진 안에 들어오려고 하면서 길을 가로막았다.
쿤타치가 나아가려 해도 난민들을 짓밟고 나가지 않는 한 쉽게 나갈 수 없다.
마차 두 대가 다니기에 충분한 넓은 길이라 교통정리만 되면 이렇게 막히지 않을 텐데도 길을 정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교통체증이 일어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딜리아는 참을 수 없는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놈들이 방해하잖아! 내 성질 같으면 다 베어버리고….’
딜리아가 그런 마음을 품었을 때였다.
“모두 진정하시오!”
하늘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포그리프들이 빗줄기를 뚫고 날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