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38
337. 파멸의 심장 3
한 그룹의 히포그리프 위에 누가 봐도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성기사가 불타오르는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나는 구난기사단 지혜 교단의 호스피탈러, 트리오다나! 그대들을 구하러 왔소!”
그렇게 말한 성기사의 등에서 눈 부신 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어두운 하늘에서 천사의 날개가 선명하게 빛을 발하자 사람들이 감격했다.
그들은 하늘을 활공하다 마땅한 착륙지점이 없어서 캐러밴 마차 위에 내려섰다.
늠름한 히포그리프의 모습, 거기에 천사의 날개를 가진 누가 보더라도 천사같이 생긴 성기사가 불타는 검을 들고 있으니 그야말로 영웅전설의 한 장면 같아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그 외관만으로도 열광하고 희망을 품었다.
그 틈을 타서 흑발에 새의 가면을 쓴 청년이 히포그리프에 내려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가면을 벗었다.
아무래도 셀레스티얼에 비해 수수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그가 바로 차드라 고원을 평정한 군벌의 대장이며 이 상단의 실질적인 주인, 아자딘이었다.
“아, 아자딘 경!”
상회의 호위병들, 아자딘 군벌의 부하들은 아자딘을 알아보고 감격했다.
아자딘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몸소 히포그리프를 타고 날아왔으니 적어도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만큼 아자딘의 부하들이 그에게 갖는 충성심은 대단했다.
“전령병!!”
“예!”
“난민들을 캐러밴 마차 원진 안으로 들여보내. 2열! 우측통행으로! 버밀리온의 병사들! 난민들이 무사히 캐러밴 마차 원진 안쪽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돕도록!”
“넵!”
“사람들에게 우측통행하라고 해! 이쪽에서 나간다!”
병사들은 아자딘의 지시에 따라 즉시 교통정리에 나섰다.
통제에 따르면 마차 원형진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고 하자 혼란이 줄어들었다.
난민들은 마차 원진 안에 들여보내준다는 말에 군말 없이 이쪽의 통제에 따르기 시작했고 덕분에 길이 열렸다.
“트리오다나 경!”
“말해라.”
“나와 함께 북쪽으로 간다. 북쪽의 전사들을 지원하지!”
“알겠다!”
트리오다나 경이 날개를 펼쳐 하늘로 뛰어오르자 정말 집 한두 채쯤은 너끈히 뛰어오를 높이로 날아올랐다. 아자딘은 마차 위를 뛰어서 달리며 트리오다나를 뒤쫓았다.
“하, 진짜 성기사 다 되었군 그래. 무안의 아자딘이….”
딜리아는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달려가는 아자딘을 보며 감탄했다.
그녀는 난민들을 깔아보고 그들의 무절제하고 배은망덕한 요구에 분노하고 있었지만, 아자딘은 굉장히 빠르고 간결하게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물론 저 트리오다나라는 천사 날개의 기사가 보여준 모습의 임팩트로 다들 입을 다물게 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뛰어난 군중통제능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정말… 믿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니까.’
딜리아는 어느새 아자딘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
휘브리스에서 사교도라는 것은 흑마법이나 금지된 사술, 쿠르트 판테온의 신앙이나 네더 마법에 심취해 육체 변이가 일어난 이들을 부르는 총칭이다.
즉, 사교도가 출몰했다는 것은 이형의 힘에 잠식된 인간들을 발견했다는 소리였다.
제로드 남작의 군대는 바로 그런 사교도들, 이형의 힘으로 가시덩굴 촉수팔을 가진 기괴한 인간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때 인간이었을 이들은 기괴한 모습으로 땅을 기며 무시무시한 촉수 채찍을 휘두른다.
놀란 기사가 마상 방패와 창으로 그 촉수를 막았지만, 촉수가 방패에 불꽃을 튀기고 말의 머리를 후려갈긴다.
말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뿜고 쓰러진다.
“으윽!”
방패로 막은 기사의 팔도 부러졌다.
“젠장! 무슨 놈의 힘이….”
말을 일격에 죽이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의 팔을 단번에 부러뜨리다니. 절대로 맞서 싸워서는 안 되겠다.
제로드 남작은 즉시 피스톨을 꺼냈다.
“전원 일제 사격!”
반릉 왕국의 기사와 종사들이라 그런지 이들은 다들 피스톨을 가지고 있었다.
비에 맞지 않도록 소중하게 보관한 피스톨을 꺼낸 기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절반은 비에 화약 접시가 젖어서 격발 되지 않았지만, 나머지 절반만 발포해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퍼퍽!
사교도들, 이형의 괴물들이 쓰러진다.
화약무기의 위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 뒤로 또 사교도들이 몰려온다.
“그르르르.”
“큭!”
한 번 발포한 피스톨은 재장전에 너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반릉 왕국의 기병들은 카라콜 전법, 피스톨을 쏘고 후퇴한 뒤 재장전 후 재돌입하는 전법을 쓰지만 지금처럼 전장에 비가 내리면 어디서도 총을 재장전할 수 없다.
“여기서 맞서 싸워야 한다! 어차피 이 뒤는 길도 없다!”
제로드 남작은 피스톨을 거두고 검을 치켜들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저 괴물들의 괴력을 생각할 때 육탄전은 자살행위다. 물러날 곳이 없어서 맞서 싸우긴 해야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할 때였다.
“목도하라!”
상공에서 날개를 가진 기사 한 명이 착지했다.
“어?”
“처, 천사님이다!”
다들 그 모습을 보며 기겁했다.
셀레스티얼, 트리오다나 경이 아자딘보다 먼저 최후미에 당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세라마이트 장검으로 불길을 일으키고 검신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리고 검의 불길을 손으로 옮겨 화염의 신성문자를 만들어 허공에 그렸다.
“성스러운 불꽃이여!”
차디찬 밤의 빗줄기 속에서 화염 돌풍이 일어났다. 트리오다나가 검을 휘두르자 화염 돌풍이 앞으로 나아가며 달려드는 마물들을 휩쓸어버렸다.
화염돌풍에 휩쓸린 마물들이 지면에서 떠오르며 타 들어간다.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병사들이 귀에는 천상의 찬송가처럼 감미롭게 들릴 지경이었다.”
“트리오다나 경!”
“돕겠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습니다!”
트리오다나의 부하인 다른 셀레스티얼들도 날개를 드러내고 마물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천사의 모습을 한 기사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멸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사람들처럼 감격했다.
*********
아자딘은 트리오다나와 셀레스티얼 일행이 앞지르자 그들에게 앞을 내주고 자신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둠 속에서 많은 마물이 몰려들고 있다. 길 때문에 현재는 후미에 공격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후 병력이 더 당도하게 되면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우회한 병력이 당도하리라.
후미에서 적들을 깔끔하게 끊어주던가 아니면 별동대를 운용해 이쪽도 전선을 넓혀야 했다.
‘확실히 모양새는 셀레스티얼이 더 끝내주는군.’
아자딘은 셀레스티얼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모습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셀레스티얼로 전생하는 의식은 신성모독적인 행위이지만, 그렇게 태어난 이들은 확실히 이 멸망의 시대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만인에게 미움받는 전령일족, 그중에서도 무안의 아자딘이라 불리며 흉측한 외모로 경원시 당했던 그로서는 모습만으로도 만인의 사랑을 받는 셀레스티얼들을 보면 복잡한 심경을 느낀다.
질투라고 해야 할까… 자기연민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아라엘의 모습을 빼앗은 지금에 와서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허망함을 느낀다.
‘어디 트리오다나의 실력을 볼까? ’
트리오다나 만이 아니라 그의 부하인 셀레스티얼들이 세라마이트 장검을 빼 들고 뛰어들어 사교도 변이체들을 상대했다.
사교도 변이체 중에는 아직 인간형상을 한 이들도 있고 이미 거대한 촉수덩굴로 변이된 이들도 있다.
그들을 상대로 셀레스티얼들은 너무나 잘 싸웠다.
마치 기계로 이어 붙인 것 같은 엄청난 악력으로 칼을 쥐고 휘둘러 칼날에 닿는 모든 것들을 자르고 불태운다. 말도 일격에 때려죽이던 사교도 변이체의 촉수공격도 셀레스티얼들은 그대로 검으로 맞받아쳤다.
“와아아아!”
“처, 천사님들은 역시 대단해!”
“우린 이제 살았어!”
병사들이 기뻐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난감하다. 셀레스티얼의 제조 공정, 그 배후에 있는 북제의 야망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저들에게 환호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또 저들이 매혹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건 이해하고 마는 것이다.
[네가 누려야 할 영광이다. 아자딘. 너야말로 천사들에게 선택받은 자가 아닌가?]아라엘의 목소리가 아자딘에게 말을 걸어왔다.
‘글쎄. 나도 확신하진 못하겠어. 신성력이 끓어오르긴 하는데, 내가 어떤 고위 존재를 영접했다는 것도 확신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천사들에게 선택받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무엇이 되었건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아자딘. 어린 시절부터 줄곧 박해받아 왔지만 사람들을 구하고 미덕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던가? 남들이 널 모욕하고 박해하더라도 그 신념에는 한치도 흔들림이 없었는데, 천사상을 갈아서 만든 진짜 불경한 것들이 날개 좀 달았다고 네가 누려야 할 영광을 앗아가는구나. 저들은 널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부르는데 말이지.]‘그것도 모르겠어.’
[뭘 모르겠다는 거냐?]‘내가 너무나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지.’
[……….]‘그래. 나는 셀레스티얼들이 누리는 저 숭배와 사랑, 그들에게 쏟아지는 확고한 신뢰가 부러워. 아무리 내가 구난기사단의 일원이 되고 차드라 고원의 군벌로 성장하더라도 사람들은 전령일족이라는 이유로 나를 의혹과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사랑받고 싶어. 믿음을 주고, 믿음을 받고, 내가 이 땅에 홀로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와 정을 통하고 교감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원해. 그러나 그 소망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저들을 미워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셀레스티얼들에 대해서 공정한 분노 이상의 증오를 한다면, 내 질투와 갈망 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될까 두려워.’
[바보같은… 그렇게까지.]아라엘의 목소리는, 아라엘은 아자딘을 안타까워 했다.
아라엘의 목소리가 보기에 셀레스티얼들은 정당한 천사들의 대행자인 아자딘이 누려야 할 영광을 찬탈하는 쓰레기들이다.
하지만 아자딘은 고독하고 괴로운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공정을 지키기 위해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셀레스티얼들을 상대로도 한 발짝 물러나 있다니.
‘그보다 정찰이나 해줘. 이 마물들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지?’
‘몰라?’
[상공의 찬바람이 강력한 마력폭풍이어서 날아서 주위를 정찰하기 힘들다. 다만 이 바람을 일으키는 존재가 다가오고 있다는 건 이 정도 높이에서도 보이는군.]아라엘의 목소리가 아자딘에게 시각을 공유해주었다.
아라엘의 목소리가 날고 있는 상공, 아자딘의 머리 위에서 탑 두 개 정도의 높이에는 비가 아니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눈보라와 뇌우가 북쪽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데 그 근원이, 바람의 근원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멍청한 셀레스티얼들이 자멸하는 꼴을 볼 좋은 기회다. 네가 내버려 두기만 하면 저들은 죽지. 너의 책임도 아니다.]‘그렇다면 도와주러 가야겠군.’
[바보 녀석.]아라엘의 목소리는 아자딘이 셀레스티얼들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알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