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4
33. 흑마법 재해 4
“흠.”
아자딘은 사냥개들을 순식간에 정리하고는 어디 다들 어떻게 하나 지켜보았다. 방진을 어지럽히는 사냥개를 다 물리쳤으니 나머지는 모험가들의 솜씨를 볼 차례였다.
과연 모험가들은 방진의 힘을 이용해 좀비들을 손쉽게 격퇴시켰다.
‘역시 모험가들이 꽤 숙련도가 괜찮군. 사냥하겠다고 단창을 가져와서 진형도 튼튼하게 잡혔고. 하지만….’
이곳은 숲속이다.
만약 방진으로 당해낼 수 없는 다양한 각도의 공격이 가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사실 지금 이 상황도 만약 타르키나 아자딘이 개입해서 사냥개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다. 아자딘은 한 발짝 떨어져서 모험가들의 실력을 견주어 보았다.
*********
제재소 마을 입구의 짧은 전투가 끝났다. 이쪽은 긁힌 상처조차 없는 대승이었다. 그러나 다들 겁에 질려 있었고 전투의 흥분으로 지나치게 체력을 소비했다.
언데드는 그 존재 자체로 혐오스러워 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겁에 질리거나 광분한다.
“이,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
“아 돌아갑시다. 이건 무리예요!”
제재소와 거래하러 온 상인과 그들이 고용한 모험가들은 되돌아가려고 했다. 카카와 치코, 그리고 다른 셀 소드 조합원들은 당황했다.
“아니 우리는 와이번을 격퇴하라고 고용되었는데.”
“그냥 무작정 돌아갈 수는 없어!”
“와이번 이전에 언데드가 있잖아. 이야기가 다르다고!”
“그래도 어, 언데드는 이제 다 정리한 것 같은데.”
“아니 이 숲에서 언데드가 나오는 시점에서 여긴 뭐가 더 나올지 모르는 곳이 되었다니까. 지금은 좀비가 나오지만 나중에 유령이나 망령 같은 게 나오면 어쩌려고? 감당할 자신 있어?”
전체적인 여론을 보면 다들 와이번이고 뭐고 일단 퇴각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다.
살아 있는 마수는 사냥하기 쉽지만 언데드는 사냥하기 힘들다. 상처를 입혀도 피를 흘리지 않고 육체를 완전히 단절시켜야 기능이 정지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휘브리스인들의 미신에 언데드에 살해당한 자는 그들 역시 언데드가 된다고 하니 다들 마수보다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갈 수 있습니까?”
아자딘이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네? 그게 무슨….”
“어?”
그제야 모험가와 상인들은 자신들의 퇴로가 사라졌음을 알아챘다. 분명히 일직선으로 숲길을 따라 걸어왔는데 어느새 그들 뒤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 있었다.
‘나무들이 위치를 바꾸었어.’
아자딘은 숲에서 어두운 힘이 끓어오르는 걸 본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술자가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군. 퇴로를 차단한 걸 보니….’
아자딘은 이 상인들에 대한 술자의 증오를 느낄 수 있었다.
‘다 죽일 셈이로군.’
만약 이들이 정말 전령일족의 핏줄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여성을 노예로 만들고 착취하고 그로 인해 태어나는 아이들까지 대물림하여 노예로 만들었다면….
사형이다.
제아무리 사람 좋은 아자딘이래도 그들을 살려두고 싶지 않다. 그러나….
‘조사가 진전되기 전에는 죽게 할 수 없지. 일단 조사할 때까지는 살려둬야겠어.’
그리 생각한 아자딘은 상인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으아! 어떻게 된 거야?”
“우린 이제 다 죽었어!”
“기, 길이 사라지다니? 분명히 있었는데?”
상인들이 겁에 질려서 모험가들에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라고 명령했다. 모험가들은 그런 화살받이 처우에 불쾌해했지만 호기심도 있었기 때문에 그 말대로 다들 돌아서 가보았다. 그리고 이내 돌아왔다.
“기, 길이 없어졌습니다.”
“길 아닌 길이 있긴 합니다만 그쪽은 너무 좁고 위험합니다.”
좁은 길로 많은 인원이 지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대열이 길어진다. 기습이라도 당하게 되면 꼼짝없이 몰살당한다.
“일단 여기는 넓으니 이 마을에 좀 있도록 하지요.”
아자딘이 그렇게 말했지만 상인들과 모험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안 돼!”
“여긴 그 전령일족 여자가 있던 곳이야.”
“그, 그 여자다. 그 여자가 틀림없어! 역시 저주받은 전령일족. 내 이럴 줄 알았지!”
상인들은 아자딘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는 시늉을 안 하고 두려워했다.
“빨리 떠납시다. 이 마을은 불길해.”
“그, 그러지요.”
“하지만 돌아가는 길이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요.”
“상관없네. 나침반이 있으니까.”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상인들은 모험가들의 반발도 무릅쓰고 돌아가자고 아우성쳤다.
아자딘은 이 상인들이 죽어도 싸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타르키를 따로 불렀다.
“네?”
“이봐, 네가 사람들 진정시켜봐.”
“네? 제가요?”
“내가 할 수는 없잖아? 귀족인 네가 해야 이빨이 들어가지.”
“아, 알겠습니다. 해보려고 노력은 하겠습니다만.”
타르키는 망설이면서 상인들에게 나아갔다.
“자자, 이 천한 것들아. 잠시 주목해라.”
“…….”
겁에 질려 패닉에 빠져있던 상인들도 한순간 다들 입을 다물었다.
“나는 카젤 변경백의 아들 타르키다. 너희 같은 파리 목숨과는 격이 다른 귀한 목숨이란 말이지. 그런 내가 죽을 각오를 무릅쓰고 여기 안을 조사하겠다는데 너희 같은 하찮은 미물들의 목숨 따위가 뭐가 아까워서 이러고들 있나? 우리와 함께 여길 조사해서 내가 이곳의 비밀을 파헤쳐 기사로서의 영광을 획득하는 장면의 산증인이 되어라. 너희 같은 천한 것들에게도 대대손손 자랑할 만한 이야기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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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키의 독려(?) 덕분인지 상인들 상당수가 자신들이 고용한 용병과 함께 왔던 길을 되짚어 되돌아가겠다고 주장하고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이제 셀 소드 조합에서 직접 임무를 하달받은 카카, 치코 남매와 아자딘 일행, 그리고 타르키뿐이었다.
타르키는 왜 자신의 설득이 오히려 사람들을 내쫓았는지 의아해했다.
“어째서 저들은 저러는 걸까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왜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아자딘은 겁도 많은 주제에 진상 떨 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르키에게 아예 감탄해 버렸다. 사람이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존재 자체가 신기하달까. 어쩜 이렇게 말을 더럽게 하는지 그의 머리통을 뜯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덕분에 조심할 필요는 없어졌네요.”
미디암은 웃으며 무서운 소리를 했다. 만약의 경우, 정체가 들통나면 카카와 치코 둘의 입만 단속하면 된다. 물론 이 경우 나머지 인간들은 죽이거나 그에 준하는 처리를 해서 발언 능력을 상실하게 하겠지.
그런 내막을 모르는 카카와 치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형님.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셨습니까? 사람들이 흩어지면 위험하잖습니까?”
“그런 너희는 왜 상인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왔던 길을 흐리는 마법이 걸려 있다면,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게 더 위험하니까요.”
치코가 그리 말하며 조심스럽게 품에서 부적을 꺼내서 만졌다. 브투마의 샤먼들이 쓰는 바짝 구운 도마뱀 부적이었다. 배고프면 먹을 수도 있고 재로 부적을 그릴 수도 있는 원시적인 부적인데 그녀는 그 재를 조금 긁어내서 바닥에 뿌렸다.
바람도 없는데 재가 움직이며 땅 위에 마치 철 가루가 자력에 이끌리듯 파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흑색 마력이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어요. 언데드가 있는 걸 보니 당연하지만.”
“그렇단 말이지요?”
아자딘은 혀를 차며 제재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나무를 가르기 위한 거대한 수차 톱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수차 톱 주위로 작업장과 숙소들, 창고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창고 문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안의 누군가가 바깥에서 빗장이 걸려 있는 창고 문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들 무기를 꺼내 들고 긴장해서 다가갔다.
“언데드인가?”
“저기 밖에 사람 있어요? 전 사람이에요!”
창고 안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고 말하는 언데드인가?”
“진짜 사람이에요! 전, 음, 나는 왕의 교회의 성기사입니다!”
“왕의 교회의 성기사라고?”
아자딘이 문으로 다가가서 빗장을 제거했다.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젊은 여성 기사가 튀어나왔다. 판금 갑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수련기사가 아니라 정식기사인 것 같은데 방패와 작은 메이스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밀고 있었는지 아자딘이 빗장을 제거하자마자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왁!”
뒤에 있던 카카와 치코 남매가 화들짝 놀라서 뛰어 그녀를 피했다. 꼴사납게 바닥에 나뒹군 여기사가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아, 저런.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지 않아요!”
그녀는 갑자기 번개 맞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일행들이 말리기도 전에 수풀 쪽으로 달려갔다.
“혼자 행동하면 위험합니다.”
“하지만 혼자 행동해야 하는 일이에요! 오지 마세요!”
“아….”
아자딘은 그녀가 뭘 하려는지 깨닫고 추적을 멈췄다. 수풀들 사이로 사라졌던 그녀가 잠시 후 어딘지 좀 더 평온을 되찾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
“아 그게, 좀 오래 갇혀 있다 보니까.”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성기사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화장실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살라스마 교구의 주무관 메이야라고 합니다.”
교구의 주무관이라면 주교 직할대의 장교로 왕의 교회에서도 상당한 엘리트다. 다른 성기사들과 달리 주교 교구, 즉 대도시에서 근무하며 봉급 또한 교구에서 직접 받으니 성기사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다.
주무관이 되지 못하는 성기사들은 엄청나게 넓은 관할 구역을 돌아다니며 상부가 내려주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그러면서 봉토도 없이 먹는 거 입는 거, 장비 보수비, 말 건초값은 스스로 벌어야 한다.
이런 차이가 있다 보니 당연히 아무나 뽑지 않는다. 능력이 출중하거나 가문이 빼어나게 좋은 이들, 혹은 외모가 출중해 도시민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 장식물, 아니면 세무, 회계, 법률, 사서처럼 전문직 기술이 있는 이들. 이러한 이들만이 주무관이 될 수 있었다.
아자딘은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그런 높으신 분이 여긴 어쩌다?”
“그야 성스러운 임무 때문이지요.”
“그럼 왜 창고에 갇혔습니까?”
“제가 창고를 조사할 때 마을에 마물들이 습격해왔습니다. 사람들이 착란을 일으켜서 절 창고째 가두어 버렸는데 가진 물건이 이런 거다 보니….”
그녀는 자신의 메이스를 보여주었다. 우아한 은새김 장식이 들어가 있는 매우 작은 메이스로 무기라기보다는 상류 귀족들의 장신구에 가까운 것이었다.
갑옷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는 훌륭한 무기지만 갑옷을 입은 이들에게는 부지깽이만도 못한 물건. 이런 걸 들고 다니는 걸 보면 그녀는 전투적인 일에 관여하기보다는 서류작업이나 상업에 더 적합한 인물 같았다.
“무, 물론 제 무기는 있습니다만 그건 제 말에 있어서… 마을에는 저 말고 다른 성기사들도 있었으니까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지요. 이 창고 문을 부수기 위해서는 신성한 천벌 마법을 쓸 수는 있었습니다만 그러면 저도 위험해지는지라. 음?”
메이야는 그리 말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을 곳곳에 피와 살육의 흔적이 넘치고 있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