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40
339. 파멸의 심장 5
아자딘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어 공중에 떠오른 여자 뱀파이어 하나를 잡아서 그리셀다에게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리젤다를 향해 달려든다.
그리젤다가 던져진 여성 뱀파이어를 피하면 그 순간 각도를 틀어 그녀를 공격할 셈이었다.
허나 그리셀다는 자기 딸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톱을 휘둘러 그녀를 조각내버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자딘을 향해 손톱을 찍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은 마치 밤의 어둠처럼 검어서 이 비바람 속에서는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사람이나 짐승의 손톱처럼 보이지만 순간적으로 몇십 배나 거뜬히 늘어나고, 그렇게 가늘게 늘어난 것임에도 기이하게 강건해서 마치 잘 벼려진 검처럼 상대를 찢어발긴다.
그 안에 잠재된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에 아자딘은 그녀의 손톱을 피해 손을 뻗었다.
목표는 아샤지트의 눈. 그리셀다의 미간에 붙어있는 커다란 붉은 보석이었다.
그러나 그리셀다는 아자딘의 공격을 피하며 그 팔에 손톱을 찍었다.
아자딘의 손바닥이 꿰뚫리고 손톱이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튀어나왔다.
“으윽?!”
“아하하하. 달콤한 피 냄새로구나. 꼬마야. 어디 볼까?”
그리셀다는 가볍게 아자딘의 가면을 날려버리고 손을 치켜들었다. 아자딘의 체구가 작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지면에서 발이 뜬다.
놀랍게도 그리셀다는 한 손만 사용해서 아자딘을 들어 올린 것이다.
아자딘은 즉시 자기 손을 붙잡아서 상처가 더 찢어지는 걸 방지하였지만 덕분에 그대로 그리셀다에게 빨려 들어갔다.
“으윽!”
“호오? 과연?!”
그리셀다는 가면이 날아가 드러난 아자딘의 눈을 보며 감탄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정도로 매끈하고 섬세한 이목구비에 황제 야에슬라트조차 매혹시켰다는 보라색 눈동자, 하르코니아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별처럼 반짝인다.
신왕진서 사본과 뒤틀린 복무의 계약, 신비한 태생으로 초자연적으로 태어난 아자딘은 본래부터 눈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수려하고 우아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하르코니아의 눈은 그 용모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었다.
“매력적이구나. 후후. 셰이드 해그들에게 주긴 너무 아까운….”
그리셀다는 아자딘의 손을 꿰뚫은 채 마치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듯 스텝을 밟았다. 아자딘은 손이 찢기지 않기 위해서 그녀를 따라 춤을 추어야 했다.
“아하하하! 훌륭하구나, 아자딘. 전령일족의 영웅을 내 손에 넣다니! 어떻게 할까?! 내 혈족이 되겠느냐?! 나와 함께 이 밤의 주인이 되어 지극한 쾌락을 누릴 것이냐? 아 물론 내가 너에게 질리지 않는다면의 이야기지만….”
그리셀다가 아자딘을 손에 넣었다고 여기고 기뻐할 때였다.
갑자기 아자딘의 손에서 황금빛 불길이 일어났다.
“아!?”
아우렐리아 던의 일부가 아자딘의 손에 남아있던 것이다. 아자딘은 그리셀다에게 완전히 상처 하나 없이 접근하기란 어려울 것이라 여기고 수십 가닥으로 조각난 아우렐리아 던의 일부를 손에 쥐고 있다가 그리셀다의 몸에 접촉한 것이다.
“크아아악!”
경악한 그리셀다는 자기 손을 잘라서 아우렐리아 던의 불길이 전신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손목을 잘랐던 손톱을 휘둘러 아자딘을 공격했지만, 아자딘은 그녀의 공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가볍게 지면에 손을 짚고 그녀의 공격을 피해냈다.
“미안하지만 그쪽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아자딘이 앞으로 물구나무서며 올려차기로 그리셀다의 턱을 날려버렸다.
그리셀다의 턱뼈가 부서지고 아샤지트의 눈이 하늘로 떠올랐다.
“카악!”
단 일격에 턱을 부수고 목뼈조차 뒤로 돌아가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그리셀다는 너무나 빠르게 상처를 재생해 회복시켰다. 의식을 잃은 것은 그야말로 찰나.
그녀는 몸을 날려 아샤지트의 눈을 잡으려 했지만 하나의 인영이 그것을 공중에서 낚아챘다.
그리셀다의 딸, 검은 상복의 여성이 그것을 회수한 것이었다.
“내 딸! 잘했다! 어서 이 어미에게 그것을 돌려다오!”
순식간에 턱을 재생시킨 그리셀다는 딸에게 아샤지트의 눈을 넘겨줄 것을 명했다.
“……….”
“니셀다?”
“…그래. 정말 날 못 알아보는군.”
아샤지트의 눈을 회수한 여성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머리를 덮고 있는 베일이 차가운 밤바람에 흩날리고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셀다의 딸들이 다들 그렇듯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얼굴이지만 다른 딸들과 달리 눈과 이마에 구난기사단의 낙인을 찍은 여성이었다.
“나는 구난기사단의 니셀다다. 추악한 괴물아! 네 죗값을 치를 때다!”
“아, 안돼! 감히! 어서 내놔! 다 죽여버리겠다!”
분노한 그리셀다가 주문을 시전하자 그녀의 발밑으로 검붉은 소용돌이가 맴돌기 시작했다.
끔찍한 네더의 마법이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바지지직!
전기 불꽃과 함께 그 검붉은 소용돌이를 가로막는 힘의 장벽들이 나타났다.
그녀 못지않은 마법사가 그녀의 힘에 개입해 주문의 완성을 방해한 것이었다.
“오래간만이군. 그리셀다.”
그리셀다의 상공에서 뼈로 이뤄진 와이번들이 맴돌고 있었다.
살을 엘듯한 추위, 한파의 눈보라 속에서도 와이번 라이더들은 태연히 비행하고 있었다.
이들이 추위에 면역인 망자들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기사 소크와 그의 군대, 핌불 호드가 나타난 것이었다.
“소크?! 핌불호드라고?!”
그리셀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핌불호드는 상공에서 급강하하며 난민들을 덮치려 하는 사교도 변이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교도 변이체와 언데드 군대, 둘 중 어느 하나만 해도 악몽의 현신 같은 괴물들인데 그들끼리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네, 네놈. 소크를 수하로 부린다는 게 사실이라고?”
그리셀다는 아자딘을 보며 기겁했다.
핌불 호드의 수장, 소크를 아자딘이 거두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것은 당연히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전령일족, 신왕살해자라고 해도 금지된 사술을 터득해 언데드 군단을 이끄는 소크가 고작 핏덩이 청년의 밑으로 들어갈 리가 없다.
그런데….
눈앞에 이 남자는 분명히 성기사의 힘을 극성으로 다루면서도 사령술사인 소크 경과 최소한 동맹을 맺고 있지 않은가?
“수하라고 말하기엔 부끄럽고… 동맹관계라고 해두지.”
아자딘은 손에 박혀있는 그리셀다의 손톱을 뽑아내고 칼자루를 쥐었다.
아우렐리아 던의 칼자루를 향해 지면으로 황금빛 불길이 달리며 모여든다.
녹은 쇳물들이 다시 집결하며 눈부신 황금색의 검신으로 부활했다.
“세… 세상에.”
“세라마이트의 불길로 검을 녹였다 재구성한다니….”
셀레스티얼 기사들도 놀라는 것을 보니 이게 가능한 인물은 아자딘뿐인 듯했다. 아자딘은 입문 수준인 자신도 할 수 있으니 다른 이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우렐리아 던이기에 뱀파이어들을 죽을 때까지 태워버리는 것이고, 아자딘이기에 세라마이트 장검이 녹을 정도로 뜨거운 불길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자딘이 천사들에게 선택받은 자이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그래. 아자딘. 네가 바로 플랑크 경이 마지막에 서임한 자로구나. 하….”
그리셀다는 아자딘의 정체를 알아채고 신음했다.
“그리셀다!”
그리셀다의 딸, 니셀다는 그리셀다를 죽이기 위해 사이드 소드를 들고 뛰어들었지만 그런 그녀의 앞을 그리셀다의 딸들이 막아섰다.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
소크도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소크의 친위대인 엘프 와이트들이 주문을 시전하며 뛰어들어 그리셀다의 딸들과 격투를 벌였다.
뱀파이어와 와이트들이 서로 물어뜯고 할퀴는 혈전을 벌이는 사이 그리셀다는 사교도 변이체들의 사이로 몸을 날려 물러났다.
“아샤지트의 눈은 반드시 되찾겠다! 밤을 두려워해라!”
그리셀다는 그 말을 남기고 도망쳤다. 그녀가 도망치자마자 사교도 변이체들이 폭주를 일으켜 광포화되니 소크조차 그녀의 뒤를 잡을 수 없었다.
*********
‘이, 이럴 수가. 저자는 전령일족인데. 저자가… 가장 뛰어난 성기사라고?’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이 아우렐리아 던을 다루고, 그리셀다와도 대등하게 싸우며 그 끔찍한 죽음의 기사 소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며 기겁했다.
그도 이제 아자딘이 예사로운 성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사용하는 세라마이트 장검은 아우렐리아 던, 플랑크 경의 검이다. 플랑크 경이 마지막에 서임한 자는 성기사중의 성기사라고… 지금까지는 아버님이 플랑크 경의 마지막 서임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저자인가? 예언의 주인공은 바로 저자라고?’
덕분에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이야말로 북제의 가장 강력한 적,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눈보라가 녹아 비가 되어 쏟아지는 밤하늘은 기묘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상의 사람들이 들고 있는 횃불과 랜턴의 빛이 하늘에 반사되며 어두운 하늘에 새하얀 백점을 뿌려댄다.
아자딘은 그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내뱉고 있었다.
입김이 얼어붙는다.
흑색의 머리칼은 윤기를 발하고 보라색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순간순간 이채를 발하며 고고한 영웅의 기상을 뿜어내고 있었다.
딜리아와 제로드, 아자딘의 출몰로 구조받은 이들은 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엔 셀레스티얼의 모습에 환호하던 이들이었지만 이제 깨닫게 된 것이다.
아자딘이야 말로 성기사 중 성기사라는 것을.
그가 다루는 세라마이트 장검의 힘, 그리고 필요하다면 죽음의 기사 소크조차 동맹으로 부르는 과단성, 그 모든 것이 영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 젠장. 소크는 왜 온 거야?’
정작 아자딘 본인은 당황하고 있었다. 니셀다와 다른 이들은 히포그리프를 타고 온 아자딘의 뒤를 이어서 당도할 2군으로서 예정된 인물이었다.
그런데 소크는 부른 적이 없다.
소크를 부를 만큼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아자딘은 소크와 아직 의견일치를 보지 않았다.
소크가 노리고 있는 것은 그리셀다가 가지고 있던 보물 아샤지트의 눈. 아자딘은 그것을 소크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아샤지트의 눈에서 피가 계속 나오는 데 그걸 먹으면서 모두 언데드가 되어 핌불베르트를 버티자는데 좋다고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제정신 박힌 놈이라면 거절해야 하지만 소크 경의 군세가 막강하다. 게다가 그가 원군으로 와서 공을 세웠으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정보가 새고 있군. 내 부하들에 스파이가 잠입해 있나? 아니면 파이어글리프에서? 의심할 곳 천지라서 어딘지 모르겠군.’
아자딘의 세력은 기존에 있던 세력들을 흡수해서 급조한 집단이라 당연히 그 안에는 여러 스파이가 있을 것이다.
아자딘도 자신의 세력 안에 스파이나 정보원이 잠입해 있을 것을 상정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크와 연락할 만한 스파이는 없는 줄 알았다. 반다이크 상회나 구난기사단 교단, 왕의 교회의 첩자나 도적 떼 등등은 어쨌건 종교나 이익으로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지만 소크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런데 소크가 여기에 와 있다는 게 아자딘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설마 정말 언데드가 되길 바라는 인간이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