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42
341. 북제의 등극 1
“무슨 뜻이지 아자딘 경?”
트리오다나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전략적으로는 산도카르를 포기하고 구난기사단 령으로 돌아가는 게 방어엔 더 좋지. 평지인 산도카르보다 구난기사단 령이 훨씬 험준한 지형이라 방어하기도 좋고, 아울러 아랑기 왕국에도 좀 부담을 안겨줘야 아랑기 왕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겠어?”
“그건… 현장직이 판단하기엔 너무 큰 그림이군. 일단 상층부에 보고하기 위해 물러나겠다. 아자딘 경. 그동안 부디 무운 장구하기를….”
트리오다나는 그리 말하며 물러나다 문득 막사 차양을 걷던 손을 멈췄다.
“그런데 아자딘 경. 그대는 누구에게 기사 서임을 받았지?”
“플랑크 경.”
아자딘은 트리오다나의 의문에 솔직히 대답했다. 트리오다나가 이미 알면서 물어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에 감출 필요가 없었다. 서로서로 다 알고 있는 마당에 굳이 자신의 격을 낮출 이유가 없다.
“플랑크 경이 마지막으로 서임하는 자는 기사도의 꽃이 된다는 예언이 있던데 그건 알고 있나?”
“금시초문이군. 그거 죽고 난 뒤에도 치는 거야? 죽음의 기사가 된 후에도?”
아자딘은 능청을 떨며 대답했다.
적어도 플랑크 경은 아자딘에게 그 예언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아자딘이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구난기사단의 일원이 된 이후로 종종 아우렐리아 던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사도의 꽃이라. 이상한 말이군. 정말 기사도의 귀감이 되는 자라면 자신만이 특별한 존재가 되기보다는 정의와 용기, 지혜와 자비가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그래서 자신이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자기 혼자 기사도의 꽃이니 뭐니 그럴싸한 영광을 독차지하느니 말야.”
“으음.”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의 발언에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꼈다.
예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미덕을 충만케 하는 것.
나 홀로 기사도의 꽃이라는 부끄러운 소리를 듣느니 온 세상에 정의와 미덕이 물처럼 흐르고 자신은 묻혀도 좋다.
아자딘의 발언은 그렇게 좋게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예언에 집착해 스승을 살해한 북제 코헨의 일파에서 보자면 이것은 그들에 대한 빈정거림이고 모욕이었다.
‘이 천한 놈이 감히 아버님을 모욕해? 어째서 플랑크 경은 이런 녀석을….’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의 발언에 분개했지만 일단은 좋게 이곳을 떠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럼 무운장구하게 아자딘 경. 그대의 무고함은 상부에 반드시 전하겠다.”
“음. 그대도 무사하길.”
아자딘은 건성으로 트리오다나의 무운을 빌어주었다.
*********
용기 교단의 테르시오 지휘관인 가레스 경은 휘하 병력과 함께 산도카르에 남아서 관문의 수리와 방어에 협력하며 아자딘이 산도카르 백작령을 장악하게 된 계기를 조사하고 있었다.
본래는 가레스 경과 그 휘하 부대도 함께 반릉 왕국으로 나아가 구조요청을 보내는 상단을 구출하려 했지만, 가레스 경이 이끄는 테르시오 병대는 인간과 드워프의 혼성부대였기에 행군 속도가 느리다는 약점이 있었다.
마차와 수레는 아자딘의 군벌이 이미 다 징발해 버렸기에 그들은 산도카르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이곳에 남아있어야 했다.
아자딘의 세력 입장에서 보자면 화약 무기를 사용하는 테르시오 병들이 요새 성벽을 지키고 있으니 또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여기에 아자딘이 차샨의 부하들에게서 압수한 블런더버스와 대포도 배치되어서 산도카르 관문의 방어력은 상당하다 할 수 있었다.
“이거 참, 공짜로 남의 요새 경비를 서주게 되었구려.”
가레스 경은 산도카르 백작령의 수비를 떠맡게 되면서 내심 감탄했다. 아자딘에게 그는 적인지 아군인지 명확하지 않은, 굳이 따지자면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자딘은 그런 가레스 경마저 징발해서 산도카르 방어군으로 쓰고 있었다.
문제는 세상이 점점 흉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산도카르 관문 요새의 방벽에 선 가레스는 차가운 바람을 느꼈다.
여름의 바람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차가운 바람이 그의 수염을 떨리게 했다.
“가레스 경. 난민들이 또 찾아온 것 같습니다.”
가레스의 보좌인 드워프 성기사가 자신의 지팡이로 관문 앞, 길목을 가리켰다.
이것저것 싸 들고 온 피난민들이 길을 따라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이브첵 백작은?”
“역시 관문을 개방하고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브첵과 아자딘은 이미 이야기가 되어있었는지 그들은 난민 전부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받아들인 난민들에게는 아자딘의 보병대장인 하프엘프 리전과 드워프 칼란이 접근해 병사들을 뽑아갔다.
무작정 난민을 구휼하기보다는 병사로 쓸만한 이들을 뽑아 훈련 시키고, 급료를 줌으로써 자기 가족은 자신이 부양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흐음. 이런 식으로 병력을 불려 나가는군. 이거 괜히 잠자는 용을 깨운 것 같은데. 괜한 짓을 했어.”
산도카르의 정세를 살펴본 가레스 경은 아자딘에 대한 사문회가 잘못되었음을 확신했다.
난민들이 하나같이 반릉 왕국의 멸망을 말하고 있고, 뱀파이어와 변이체들을 말하고 있었다.
아자딘이 미쳐서 반릉의 왕자를 처단한 게 아니라 정말 그가 뱀파이어였음이 입증된 것이다.
물론 구난기사단의 사문회라는 건 진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조직에서 마음에 안 드는 놈을 괴롭히고 쳐내는 의식에 가까웠다.
가뜩이나 전령일족 출신이라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정의 교단 얼굴에 먹칠하고, 반릉의 왕자를 죽여서 정치적 물의까지 빚었으니.
반릉의 왕자가 뱀파이어건 데몬이건 상관없이 충분히 처벌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자딘이 차드라와 산도카르 일대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그런 무지성적인 처벌을 가로막았다.
아자딘의 군벌은 난민 중 건장한 사내들을 병사로 흡수해 지금도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고 있었고, 백성들의 지지도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무고한 죄목으로 아자딘을 사문회로 처단하면 아자딘이 가만히 당하겠는가?
아니, 설령 아자딘 본인이 사문회에 굴복한다고 하더라도 그 부하들이, 그에 의해 병사가 되고 그 급료로 생계를 이어가는 난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기사단이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는 명분 없는 사문회를 일으킨 세흐나트 주교에게 책임을 물어야 했다.
‘뭐,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지. 세흐나트 주교는 북제의 끄나풀이 아닌가? 자멸하겠다는 걸 막아야 할 만큼의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혜 교단과 그를 이간질할 수 있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지. 문제는….’
가레스 경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자딘이 무죄라는 게 밝혀진 이상 그와의 관계를 좋게 봉합하고 돌아가서 용기 교단의 사업을 이어 나가야 했다.
이대로 계속 공짜로 산도카르 관문의 용병 역할을 해줄 수는 없다.
‘어서 빨리 돌아오지 않으려나? 지금쯤이면 소식이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그런 가레스 경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망루 위에서 뿔피리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자딘과 그 휘하 병력이 산도카르 관문에 돌아온 것이었다.
*********
아자딘은 캐러반과 난민들을 보호하며 산도카르에 돌아왔다. 함께 갔던 트리오다나 일당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가레스 경이 그를 맞이하러 가며 능청스럽게 물어보았다.
“무사히 돌아오셨구려. 아자딘 경. 그런데 그, 트리오다나 경은 어찌 되었소? 설마 죽인 건 아니겠지요?”
“하하. 농담으로도 해선 안 될 말을 웃으면서 하시는군요? 가레스 경. 트리오다나 경은 먼저 히포그리프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죽지 않았으니 지혜 교단에 연락해 보시지 그래요.”
아자딘은 초면부터 심한 말을 하는 가레스의 말을 웃어넘겼다.
“그래, 산도카르에 남아서 조사해 본 바로는 어떻습니까?”
“혐의는 벗겨졌소. 반릉의 왕자 칼즈마티가 뱀파이어였다는 증거는 명확하고, 그대가 산도카르 백작령을 점거한 것은 정당한 절차에 의함이 밝혀졌소. 사문회는 끝이오.”
“다행이군요.”
“하지만… 사문회와 별도로 용기 교단의 일원으로서 우려를 말하자면 수련기사인 그대가 이렇게 거대한 군벌을 일궈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느껴지는군요. 게다가 난민을 모아서 상비군을 키워내는 것은 대체 왜요? 어디 정복전쟁이라도 벌일 셈이오?”
대부분 기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봉토 하나 경작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아자딘처럼 여러 봉토를 흡수해 대귀족에 필적하는 엄청난 세력을 일구어내면 일인당 경작면적을 늘려 생산성을 높이고, 그만큼의 인원들을 상공업으로 돌릴 수 있었다.
문제는 상비군이다.
상시 전투태세를 갖추고 훈련에 임하는 병사들은 정예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정예병을 계속해서 키워내다니.
수련기사 주제에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많은 군대를 조련하는가?
가레스는 그걸 대놓고 물어보았다.
“다가오는 핌불베르트에 최대한 대항하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저들도 일방적인 구휼보다는 자신들이 일해서 급료를 받는 쪽을 더 선호한답니다. 이 일대는 야수도 많고, 마물도 많아서 길의 안전을 위해서 계속 순찰과 토벌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진 거지요.”
“그대는 캐러밴과 수공품, 연금술 공장과 대장간도 만든 것으로 아오만?”
“뭐 거기에 다 넣고도 인원이 남아도니까요.”
실제로 그렇다. 각지에서 난민들이 몰려오면서 기사단령은 인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아자딘 경. 만약 구난기사단 상층부에서 그대에게 에란트리 퀘스트를 내린다면 어떻게 되겠소?”
“이 시국에 에란트리 퀘스트라고요? 예를 들면 어떤 거 말입니까?”
“반릉 왕국의 멸망을 조사하라든지 아니면 교단 상층부가 인사권을 발동해서 그대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버린다면 말이오.”
아자딘의 군벌을 약화하기 위해 구난기사단은 아자딘에게 에란트리 퀘스트, 기사단의 사명을 내리거나 인사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산도카르 백작은 구난기사단에 투항한 게 아니라, 저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입니다. 차드라 고원의 영지들을 통합했지만 각 영지는 차드라 오걸들의 것입니다.”
산도카르 백작이 구난기사단에 충성을 맹세한 것이라면 아자딘을 다른 곳에 배치해도 산도카르 백작령은 아자딘의 통제하에 있게 된다.
아자딘을 이곳에서 쫓아낸다고 해서 산도카르 백작령을 구난기사단이 통제할 수는 없다. 물론 아자딘이 직접 산도카르 백작령을 경영하는 것을 훼방 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기사단이 얻는 이득이 뭔가?
아자딘에게 노골적으로 적대한다는 걸 공시하는 것?
이래저래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던 산도카르 백작의 충성서약을 아자딘이 받아들인 것은 그의 충성서약이 아자딘에게 지어지는 무거운 짐이면서 동시에 그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기 때문이었다.
“가레스 경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