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43
342. 북제의 등극 2
“분명 보고서에도 그렇게 적고는 있습니다만… 알다시피 주교님이….”
가레스 경은 주교 핑계를 대며 난처해했다.
‘드워프답지 않게 정치적인 작자로군.’
아자딘은 가레스가 요리조리 남의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는 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레스는 아자딘에게 ‘내가 널 미워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입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다.’
‘나는 이러고 싶지 않은데 다른 높으신 분들 등쌀에 떠밀려서 그랬다.’
이런 어린애도 속지 않을 변명을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눈 가리고 아웅에 가깝지만, 전령일족인 아자딘에게 그 정도 성의도 안보이고 경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가레스 경은 충분히 교양 있고 예의 바른 인물이었다.
그래서 아자딘은 가레스 경의 말, 그 진위와는 별개로 가레스 경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레스 경도 아자딘이 알면서 속아주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말이 통하는 친구로군. 인재야. 전령일족 출신만 아니었다면 벌써 기사단의 중추가 되었을 텐데. 하필이면 전령일족 출신이라.’
가레스는 아자딘이 전령일족 출신인 것을 안타까워했다.
현재 전령일족에 대한 평판은 그 어떤 때보다 더 최악이었다. 전령일족이 나가들과 손잡고 명백히 인류의 반역자로서 활동하는 지금….평판이 좋아지려야 좋을 수가 없다.
그때 아자딘과 가레스 경에게 두 명의 여성이 찾아왔다.
니셀다와… 놀랍게도 자비 교단의 안식인도자, 하이네 경이었다.
“아, 아자딘 경. 그리고… 가레스 경이군요. 저, 자비 교단의 하이네가 그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이네 경은 주위 사람들이 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아자딘에게 무릎을 굽히며 대례를 보였다.
기사단의 위계는 그녀가 더 높은데도 아자딘에게 보이는 경의가 예사롭지 않다.
“하이네 경. 여긴 어쩐 일로?”
“사문회가 이뤄지고 있다고 들어서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습니다만, 교단 상층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고생했답니다.”
하이네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이 싸늘하게 가레스 경을 향했다.
“그래서 가레스 경. 용기 교단은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그가 무고하다는 결론이오.”
“그럼 자비와 용기, 지혜 모두 그가 무고하다는 데 동의한 셈이 되겠군요. 그건 좋은 소식이네요.”
그러자 하이네의 곁에 있던 니셀다가 말했다.
“그리고… 슬픈 소식이 있습니다.”
“슬픈 소식?”
“세흐나트 주교가 파이어글리프에서 그만… 뒈져버렸습니다.”
“승하하셨습니다, 아냐?”
“아, 그랬었지요.”
“…….”
가레스 경은 세흐나트 주교의 죽음을 전하는 자비 교단의 두 여성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물론 세흐나트 주교가 고령이긴 하지만 대귀족인 만큼 야에가스 신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노환을 보이고 있긴 해도 그렇게 쉽게 죽을 몸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히 자비 교단의 뒷공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면 북제 일파의 소행인가?
세흐나트 주교가 무리한 사문회를 일으켜서 공격받게 되면 주교는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북제 입장에서는 곤란하니 미리 죽여서 입을 다물게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이게 사실이라면 가레스 경은 빨리 교단에 돌아가야 했다. 용기 교단에서 머리가 좀 돌아가는 인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가레스 경이 여기에 있는 사이에 용기 교단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이다.
“그, 그런 일이. 어서 빨리 파이어글리프로 돌아가야겠군요. 아자딘 경. 용기 교단은 당신의 자기변호를 받아들이겠소. 사문회는 종료하겠소이다. 사문회 동안 그대에게 불편한 경험을 준 것은 우리들의 본의가 아니었소. 이해해 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고맙소! 그럼 무운장구하시오!”
가레스 경은 끝까지 아자딘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병대를 꾸려 산도카르를 떠났다.
“…무서운 인물이군.”
아자딘은 가레스 경을 그렇게 평가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소심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바로 그 점이 가레스경이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
세흐나트 주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후 지혜와 용기, 자비의 세 성기사단은 모두 아자딘의 무죄로 사문회를 끝마쳤다.
사문회를 걸고넘어졌는데 대상이 무사히 통과했다는 것은 기사단의 역사상 매우 드문 일로, 거의 백 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경우 당연히 사문회를 발족한 이의 권위가 훼손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사문회를 발족한 이가 세흐나트 주교였고, 그가 갑자기 사망했기에 사건은 적당히 무마되었다.
사실 사문회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던 지혜 교단도, 그것에 은근히 편승한 용기 교단도 이 사태가 되자….
‘아, 사문회 그거 저희는 말렸는데 세흐나트 주교님이 워낙 강하게 밀어붙여서.’
‘세흐나트 주교님의 뜻을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이렇게 이미 죽은 세흐나트 주교에게 책임을 몰아주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사태는 그렇게 무마되었다.
그러나….
세흐나트 주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파이어글리프에 도착한 가레스 경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왕의 교회의 깃발이 파이어글리프에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 칼린츠 왕자는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선 남자는 좌측에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을, 우축에는 북방 아라가사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트리오다나와 지혜 교단의 셀레스티얼들과 어산더의 엘프마저 거느리고 있으니 이곳이 곧 그의 궁정이나 다를 바 없다.
어산더의 왕, 북제 코헨이 이곳에 몸소 왕림한 것이었다.
“그래. 세흐나트의 사인은?”
“심장마비입니다. 그 어떤 독도 검출되지 않았고 침입자도 없었으니 노환으로 예상됩니다만.”
칼린츠 왕자가 그렇게 대답하자 코헨 라이오네어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허. 아직 멀었구나. 내 자식아. 이름이 뭐였지?”
“…칼린츠입니다.”
칼린츠는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보통 시신에 은침을 꽂아서 독을 검출하는 방식은 광독 아니면 피를 썩게 만드는 뱀들의 혈독에나 유용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것에 검출되지 않는 독소들이 있기 마련이지.”
코헨 라이오네어는 그리 말하고 세흐나트 주교의 시체의 손을 잡더니 단도로 그 손가락을 한 마디 잘랐다.
“무슨!”
칼린츠가 당황했지만 그는 그렇게 자른 손가락을 엘프 전사 중 한 명에게 던져주었다.
엘프는 그 손가락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어떤가?”
“바다 문어의 독인 듯하옵니다. 전하.”
“그렇다는군. 아랑기인들이 즐겨 쓰는 독이지. 은침으로 검출되지 않고, 소량으로도 고통스럽게 사람을 죽이지만 대기 중에 나와 있으면 단 하루 만에 독성을 잃는다. 취급에 주의해야 하지.”
북제 코헨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비 교단이 즐겨 쓰는 독이지.”
“억측일 뿐입니다. 애초에 이런 검증 방법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엘프에게 주교의 사체를 먹이는 것을 용납할 교단은 없다.
그러나 어산더의 왕 코헨은 그런 파격적인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어차피 세흐나트의 시신은 내가 수습해 장례를 치를 것이다.”
“셀레스티얼로 전생시키실 겁니까?”
“호오?”
코헨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자식에 대해서 처음으로 그가 흥미를 보였다.
“네가 그걸 알 위치였던가? 칼린츠?”
“저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나름대로 정보망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물어보지. 이곳에 아자딘이라는 놈이 있다고 들었다.”
“네.”
“그가 아우렐리아 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그는… 지혜의 기사 플랑크의 제자인가? 너의 정보력으로는 어떻게 결론을 내렸지?”
“제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플랑크 경에게 마지막 서임을 받은 자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런가. 전령일족이 기사도의 꽃이라고?”
코헨 라이오네어는 쓴웃음을 지었다.
칼린츠의 목소리에서 그에 대한 은은한 분노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선선한 이 공기 속에서 유일하게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 칼린츠 왕자의 안에 있었으니,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분노일 것이다.
“만나보고 싶군.”
“제가 자리를 주선하겠습니다. 다만 다담을 이렇게 많은 병력이 있는 곳에서 자리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군요.”
북제 코헨이 데려온 이들은 하나같이 역전의 용사들, 절대로 만만치 않은 이들이다. 아무리 아자딘과 차드라 오걸이 쟁쟁한 인물들이라 해도 코헨의 부하들이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 만나게 할 수는 없다.
코헨이 아자딘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를 무시하고 북제 코헨이 파이어글리프 산하의 성기사를 살해한다면? 누가 감히 북제 코헨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
아무도 죄를 묻지 못할 것이다. 그 상황은 칼린츠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
챕터마스터인 그의 경력에 오점이 남게 되는 것은 물론, 칼린츠 왕자는 자신의 이름도 기억 못 하는 아버지보다는 아자딘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아자딘과 북제 코헨을 만나게 한다면 적어도 1대1, 아니면 그보다 숫자를 더 줄여서 만나게 해야 했다.
“그래. 그렇군. 알겠다. 만남을 주선해다오.”
코헨 라이오네어는 칼린츠에게 만남의 주선을 요청했다.
*********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가 날 보고 싶어 한다고?”
산도카르의 성벽 위에서 아자딘은 화살을 다듬다가 깜짝 놀랐다.
“네. 그들은 세흐나트 주교의 시신을 수습하러 와서 아자딘 경을 부르고 있습니다.”
칼린츠 왕자의 전령으로 찾아온 십부장 잔은 아자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자딘은 자신이 다듬은 화살을 들어서 하늘을 겨누고 한쪽 눈을 감아 화살이 똑바로 펴져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화살의 끝에 눈송이가 내려와 앉았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인데도 벌써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아자딘은 화살을 흔들어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찍어 부수고 활통에 화살을 꽂아 넣었다.
“날 보고 파이어 글리프에 오라는 건가? 곤란한데? 지금 자리를 비울 수는….”
산도카르에는 엄청난 숫자의 난민들과 계속되는 사교도 변이체들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난민들 사이에 숨어있는 사교도들, 그리고 산도카르 난민촌에서 자행되는 쿠르트 판테온의 신들에 대한 추종행위 등이 치안을 흐리고 있었다.
아자딘은 그런 상황에서 변절자들, 숨어든 사교도들을 골라내어 처단하고 몰려드는 마물을 처치했다.
밤이 되면 뱀파이어들이 공격하는 시늉을 했지만, 아우렐리아 던을 가지고 있는 아자딘의 근처에 오는 뱀파이어는 없었다.
그저 근처에서 공격하는 시늉만 하다 사라질 뿐. 아마도 그리셀다의 명을 받아서 온 뱀파이어들이 차마 아자딘과 아우렐리아 던에 직접 덤벼들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산도카르 관문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 아자딘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혹시 코헨 라이오네어 보고 여기로 오라고 하면 크나큰 실례가 되는 건가?”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실례지요.”
“그럼 결정이군.”
아자딘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로 오라고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