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44
343. 북제의 등극 3
잔은 아자딘의 말을 듣고 표정을 구겼다.
“저기 그, 재고해 주실 순 없어요? 대장이야 말을 쉽게 하지만 그 말을 전해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네가 직접 코헨 라이오네어에게 말을 전하는 건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만….”
“코헨 라이오네어는 내가 지혜 교단의 지하에 들어가서 셀레스티얼 전생 의식을 알아낸 것과 내가 플랑크 경의 마지막 서임을 받은 기사라는 것도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런데 어산더의 왕님이라고 대접해 주면 골치 아파진단 말이야. 그냥 빌어먹을 괴짜 전령일족으로 포지션을 잡아야지. 안심해. 칼린츠와 네게 피해를 주진 않을 테니까.”
“으음. 그렇게 말입니까? 이미 피해를 안 입었다고 할 수는 없는데… 우리 대장이 아자딘 경에게 배팅했다는 건 이제 다 티가 나서요.”
“벌써 그렇게 티를 다 냈어? 좋은 도박꾼은 못되겠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뭐 그런데 도박 못 할 사람이면 남편감으론 좋은 녀석 아닙니까?”
“그런 칭찬은 아가씨가 해줘야 기쁘지 않을까? 아니면 뭐… 혹시 그쪽은 아니지? 너랑 칼린츠 왕자랑 곧 결혼하냐? 곧 축하해야 할 일 생기는 거 아니냐?”
아자딘은 피식 웃으면서 잔에게 물어보았다.
“그보다 파이어글리프에 들어온 소식은 없어?”
“여기도 정보는 꽤 빠르지 않습니까? 아랑기 왕국과도 교역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산도카르 관문은 아랑기 왕국과 길이 트여있어서 아자딘의 군벌은 아랑기 왕국 루트에 교역상들을 보내며 적잖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돈과 무기, 인력이 모여들어 아자딘의 군벌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차드라 고원의 유배자 신세가 아니니 아랑기에서 세상의 소문들을 모을 수 있었다.
“타라사르 왕국도 나가들에게 해안에서 공격당하고 있고, 전령일족들이 각 왕국의 주요 인물들을 암살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어. 아랑기 왕국에도 난민들이 대량으로 몰려들고 있고 각지에서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들이 발생하며 절망한 이들이 사교도가 되어 수상한 의식들을 치르고 있다고 하지.”
아자딘은 지금까지 입수한 소문들을 나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난기사단령에서는 뭐 다른 소문 없나?”
“…뭐 구난기사단령에도 그 비슷한 소문들이 전부입니다.”
“그래? 내가 듣기론 그것 말고도 더 있을 텐데?”
“어쨌건 그,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자딘 경. 하아. 진짜.”
잔은 무시무시한 북제 코헨에게 네가 직접 오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곱게 전해야 할지 망설이면서 물러났다.
*********
밤이 되자 눈이 쏟아졌다.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이라 할 계절이지만 벌써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아자딘은 망루에 앉아서 눈이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뱀파이어가 찾아오면 상대하기 위해서 그는 매일 밤 산도카르의 관문 위에서 화톳불을 밝히고 그 앞에서 선잠을 잤다.
어엿한 세력의 수장이 되었으니 좀 부하들에게 맡기고 편하게 있어도 될 법하지만 아자딘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도 아자딘의 출생 때문에 욕하는 이들이 있다. 나가 제국과 손잡은 전령일족이 왕국들을 공격하고, 난민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난민들은 나가들 사이에서 화살을 쏘며 인간을 죽여대는 전령일족에 대해서 혐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자딘의 진의를 의심하는 이들이 난민들 사이에 있다 해서 이상한 것은 없다.
아자딘이 베푸는 구휼을 받아먹고 살면서도 아자딘을 의심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자딘 자신이 분골쇄신하며 버텨서야 했다.
“…….”
그런데, 누군가가 화톳불에 장작을 던져넣는 소리가 아자딘을 깨웠다.
은발과 금발이 뒤섞인 사자 갈기와 같은 머리칼을 한 장년의 남자가 화톳불에 장작을 던져넣고 있었다.
맨손으로 장작을 무슨 과자처럼 쪼개버린 남자는 화톳불에 장작을 던져넣고 불 너머로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기묘한 놈이로군. 하르코니아의 눈인가? 전령일족 사이에서 고결한 혈통이어야 발현되는 특징이 아닌가?”
사자와 같은 눈이 아자딘을 뜯어보고 있었다.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다.
이름으로만 전해 듣던 인물을 직접 대면하게 된 아자딘이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답했다.
“이거 참. 명성이 자자하신 분을 뵙게 되는군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자. 그대는 날 존중하지 않을 터. 그렇지 않나? 내가 셀레스티얼들을 전생시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아자딘은 사실 내심 놀라고 있었다. 잔이 벌써 북제에게 돌아가 아자딘의 말을 전했을 리 없다.
잔이 출발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산도카르로 출발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와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아무런 살기도 기척도 없이 온 것이다.
‘아라엘의 목소리를 너무 믿었군. 이렇게 접근할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니.’
[그는 특수한 마법으로 자신의 존재와 기척을 지우고 있다. 인조정령인 나로서는 육신이 없으니 마법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에 약할 수밖에.]아라엘의 목소리가 자신의 한계를 설명했다. 어째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 같았다.
“그대가 플랑크 경의 마지막 서임을 받은 기사인가?”
“아마도 그럴 겁니다.”
“과연 운명이 인도할 만한 일이다. 하필이면 전령일족이라니. 운명은 우리 모두를 시험에 들게 할 셈인가? 왜 존귀한 혈통이 아니라 만인이 싫어하는 혈통의 사람에게 이런 운명을 맡긴단 말인가?”
코헨 라이오네어는 화톳불을 쬐면서 투덜거렸다.
“만백성이 정말 전령일족을 멸시하지 않고 따를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대가 이 목성의 시대를 헤쳐 나갈 위대한 기수가 될 수 있겠는가? 긴말하지 않겠다. 아자딘 경. 내게 충성을 바치도록 하라.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태생이 필요하다.”
코헨 라이어네어는 그리 말하다 자기 말이 이상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정색했다.
“그대를 모욕하고자 이런 발언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대가 지금까지 일궈온 것들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대중은 우매하니 옥석을 가릴 심미안이 없지. 그대가 전령일족이라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은 그대를 불신하고 폄하할 것이다. 그들을 전부 계몽시킬 수 있겠는가? 목성의 시대가 불러오는 환란 속에서 우매한 대중들을 계몽시키며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그러니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 내게 충성하라.”
“대체 무슨 대업을 이루려 하십니까?”
“구난기사단과 왕의 교회의 통합, 그리고 인류의 번영을 이룩하려 한다.”
“지금 상태로는 인류의 번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지금 상태로는 다가오는 목성의 시대를 이겨내지 못하지. 설령 이번 목성의 시대를 분열된 채로도 버텨낸다면 그 후에는? 이 분열이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옹호될 만큼 가치 있는 분열인가? 인간 세력이 분열되고 갈라진 채로 존재하는 한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
“확실히 가치 있는 분열은 아니지요.”
아자딘도 그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분열이 가치가 없다고 해서 통합은 가치가 있습니까? 외람되오나 제 얄팍한 안계를 넓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통합은 가치가 있다. 들어라. 왕의 교회는 신의 피를 추앙하고 구난기사단은 미덕을 숭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의가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어떠한가? 구난기사단의 신자들은 천사의 피를 섬기고 왕의 교회는 자신들의 정의와 욕심으로 왕조차 갈아치우려 하지. 이들은 하나가 되어야 해. 그래야 서로의 교리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완전해질 수 있다.”
“그래서 그 대업을 이루기 위해 제가 당신의 밑에 들어가야 한단 말입니까?”
“아자딘. 그대는 전령일족이야. 그리고 전령일족들은 지금 왕국을 멸망시키고 사람을 죽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민중이 전령일족의 손에 죽어 나가고 있는 줄 아는가? 그들의 원한과 원망을 그대가 홀로 오롯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그대의 한계다. 전령일족인 그대는 작은 세력의 수장은 될 수 있어도 결국에는 자신을 미워하는 세력의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폐하께서는 제 혈통 때문에 사람들이 절 인정하지 않을 테니, 폐하를 이용해서 제 뜻을 펼치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다. 나는 그대를 위한 훌륭한 명분이자 방패가 되어줄 수 있지. 그뿐인가? 그대에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주도록 하지. 내 아들들보다, 더 높고 존귀한 자리일 것이다. 나의 이름으로 뜻을 펼쳐라. 어차피 그대는 직접적인 명예나 부귀영화에는 관심이 없겠지? 플랑크 경이 마지막으로 기사서임을 한 장본인이라면 말이다.”
코헨 라이오네어는 아자딘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러나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까?”
“어째서인가? 여전히 부귀영화가 탐이 나서인가?”
코헨 라이오네어의 제안은 어산더의 왕, 북제가 전령일족 출신에게 제안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관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자딘은 코헨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의 폐하가 진심이라는 건 믿을 수 있습니다만, 내일의 폐하는 믿을 수 없군요.”
“내가 내일 당장 노망이라도 들 거라고 말하는 건가?”
“폐하의 마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폐하의 말을 믿을 수 없지요.”
“……….”
“누구나 마음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폐하는 스스로를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하지요. 그래서 폐하가 두 종교를 신왕의 핏줄로서 통합한 후에는 폐하의 변심을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두 개의 종교를 통합하고 그 현인신으로 폐하가 등극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제 누가 폐하를 막겠습니까?”
“전령일족이 말하기엔 이상한 말이로군. 너희들은 황제에게 굴종하지 않았나? 그가 여덟 왕국을 전부 차지하는 것을 도와놓고서 이제 와서 나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구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목성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겨내고 난 이후에도 폐하가 곧 진리요 정의가 되겠지요. 인간들의 이성과 양심은 필요 없이 폐하의 말씀 하나에 모든 이들이 굴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미덕이 중심이 된 세상을 원합니다. 하나의 초인이 다스리는 세계가 아니라 법과 이상과 미덕이 중심이 되고 각자의 양심에 따르는 세계를….”
“법과 이상과 미덕 말인가? 그런 건 형태도 없고 존속할 수도 없지. 황금왕 만자 자덱이 일찍이 그대와 같은 소리를 하던 인물이었지만, 야에가스 신족의 피를 이어받은 존귀한 혈통인 그조차 이룩하지 못하고 좌절해서 살찐 돼지가 되지 않았나?”
“하지만 저는 바로 그것에 구원받았는 걸요.”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전령일족의 낙오자, 모두에게 멸시당하고 괴롭힘당하던 아이를 구난기사단의 낡은 서적과 알디스의 사랑이 구해주었다.
그것이야말로 기적.
물론 안다. 이 앞길에 좌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적은 흔치 않기에 기적이다. 한 번 보았던 기적을 다시 재현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틀림없이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길이겠지.
그러나 아자딘은 이미 구원받았으니 이제 와서 믿음을 배신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제안은 감사하나 거절해야겠습니다.”
“정녕 이상한 놈이로군. 그대는. 어째서 전령일족이 그런 것을 갈망하나? 무슨 계기가 있어서?”
코헨 라이오네어는 대체 어째서 아자딘이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저항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말하자면 길어질 이야기입니다. 설마 진짜로 그게 궁금한 건 아니시겠지요?”
아자딘이 웃으며 물어보았다.
화톳불 너머로 아자딘과 코헨의 시선이 충돌했다.
흔들림 없는 아자딘의 시선을 바라보던 코헨은 아자딘이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인물이라는 걸 알고 혀를 찼다.
“…그렇네.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아. 긴 시간을 들여서 자네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네.”
코헨 라이오네어도 솔직히 인정했다.
“예언하지. 아자딘. 굶주림과 추위가 극심해지면 그대가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은 허망하게 눈에 파묻혀 사라질 것이다. 그대가 그토록 사랑하는 정의와 미덕이 그대에게 아무런 응답도 해주지 못할 거야. 지금은 상관없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은 힘이 다해 고통 속에서 울부짖게 될 것이다.”
“…….”
아자딘은 자신에게 예언하는 코헨의 말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코헨의 몸에 흐르고 있는 신의 피가 그의 눈동자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진실한 예언이리라.
“셰이드 해그들이 할법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폐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흥.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만 재미있군. 그래, 재미있는 만남이었다. 아자딘 경.”
코헨 라이오네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북방 아라가사의 대원들과 엘프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이 망토를 펼치고 코헨 라이오네어의 거구를 감추자 잠시 후 그의 모습은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아자딘은 다시금 화톳불과 함께 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