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46
345. 에란트리 퀘스트 1
그리셀다는 아자딘에게 빼앗긴 아샤지트의 눈을 되찾기 위해 계속해서 부하들을 보냈다.
그러나 뱀파이어들이 아우렐리아 던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그 어떤 뱀파이어도 아우렐리아 던의 불길에 타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리셀다조차 직접 오지 않는 것은 그녀 역시도 아우렐리아 던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아자딘에게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두려움을 아는 적은 무모하게 용맹한 적보다 훨씬 까다롭기 마련이다.
아자딘은 언제 쇄도할지 모르는 뱀파이어들을 막기 위해 산도카르 관문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산도카르 관문으로 밀려오는 난민들과 마물들을 처리하는데 심력을 기울여야 했다.
*********
에디르는 본래 브투마의 종사였다.
그러나 브투마 왕국이 멸망한 날, 쇄도하는 나가들과 전령일족들의 흉악한 공격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반릉으로 도망친 그는 힘겨운 삶을 보내야 했다.
일신의 무예가 있어 어디서도 일자리를 찾을 수는 있었지만 피난민의 삶이란 아무리 그래도 고달팠다.
집도 없이 난민의 캠프에서 지내며 범죄건 뭐건 어떻게든 자식과 아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애써야 했던 그는 반릉 왕국조차 무너지는 날 다시금 피난 가야 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아랑기 왕국?
아랑기안들이 난민이나 거지들에게 가혹하다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때 브투마 난민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산도카르와 나이산도카르 지방에 구난기사인 아자딘 경이 세력을 형성했는데 풍요롭고 안전하다고 한다.”
“구난기사 아자딘? 하지만 그놈은 전령일족이잖아?”
전령일족이면서 구난기사가 된 아자딘에 대한 소문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자딘의 평판은 나쁘지 않다. 차드라 고원의 호걸들을 통합해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일궈내고, 도적과 마물들을 처단해 사람들을 안전하게 하며 길을 닦아 상행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다.
길을 닦고 도적들을 토벌하는 것은 대영주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일단 길을 닦고 정비한다고 하면 그곳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브투마를 침공한 전령일족들의 만행을 그 망막에 아로새긴 에디르로서는 아무리 평판이 좋다 해도 인정할 수 없었다.
전령일족이 다스리는 땅에 피난 간다니? 고려할 가치도 없다.
에디르는 가족들을 이끌고 아랑기 왕국 방향으로 피난하기로 하고 남하를 시작했다.
하지만 핌불베르트가 시작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가을인데도 눈이 내리고 식량값이 폭등했다.
이것도 문제지만 더 한 문제는 바로 바다로부터 마물이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네더스트롬에 가라앉아있던 사신들이 바다생물들을 마물로 만들어 지상을 침공한다고 합니다.”
“어허.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왕의 교회의 성직자들은 피난민들 사이에서 거들먹거리며 사람들이 사특한 소문에 홀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난민 입장에서는 뭐 해주는 것도 없이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거추장스러운 놈들이지만 또 그들이 없다면 난민 무리와 도적 떼를 분간하기 쉽지 않기에… 다들 성직자의 말을 따라, 불길한 소문을 확산, 재전파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날 밤, 성직자는 에디르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관 님?”
“에디르, 그대는 종사 계급이지?”
“예. 부끄럽게도….”
“여기는 셀소드 조합원인 기디트일세. 기디트와 함께 난민 일행의 선두 척후가 되어주지 않겠나?”
“하지만 저는 제 가족들을 돌봐야 합니다만. 과년한 딸이 있어서….”
딸과 아내가 있는 에디르는 가족과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일단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는 그런 에디르에게 척후를 맡아줄 것을 원하고 있었다.
“반릉에서 흉악한 괴물들과 사교도들이 나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 쪽에서도 괴물들이 나오고 있네. 칼을 쓸 줄 아는 자가 필요하다네.”
“그 말씀은….”
“부탁하네. 안심하게. 그대 가족의 안전은 내가 보장할 테니. 내 곁에 두고 보호하도록 하겠네.”
“그러시다면야.”
성직자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에디르는 기디트, 그리고 다른 마을 자경단 출신 사람들과 함께 조잡한 무장을 하고 선두에 섰다.
*********
“점점 추워지는군. 특히 바닷바람이 한기를 담고 있어. 맙소사. 이 일대는 겨울에도 눈이 잘 안 오는 곳인데.”
“거 척후는 조용히 하라.”
“아니, 하지만 입을 열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 같소. 배가 고파서….”
“거 쓸데없는 소리는.”
에디르와 기디트를 포함한 척후는 배고픔과 공포심을 참지 못하고 떠들고 있었다. 그리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들짐승이나 고블린들은 사람이 떠들면 도망치니까 차라리 나을 수 있었다.
그 이상의 괴물들이라면 어차피 이들 수준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음?”
“피 냄새가….”
코를 찌르는 피 냄새가 바람에 실려 날아온다.
시장통처럼 떠들던 척후들이 다들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은 곧 어촌 하나에 당도했는데, 그물을 널어 말리는 장대에 사람이 꽂힌 채 짐승에 파먹힌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손질되지 않은 물고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오, 맙소사….”
“세상이 망해가는군. 어떤 악적들이….”
“아니, 이건 인간의 소행이 아니다. 일단 수색을 끝마친 후에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성직자 님을 부르지.”
에디르는 침착하게 어촌 마을 주위의 위협을 살펴보고 성직자와 난민들을 부르기로 했다.
성직자와 난민 일행을 불러왔을 때 성직자는 이 마을의 참상을 보며 난민들에게 명했다.
“이곳의 물고기들은 오염되었으니 손대지 말게.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어!”
하지만 그날 밤…. 난민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몰래 어촌의 물고기를 집어먹은 사람들이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난민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도와주세요!”
입으론 도와달라고 말하는 난민이 근처의 인간들을 습격한다. 그들의 몸에 돋아난 기괴한 비늘이 갑옷이 되고 손발에 돋아난 따개비는 날카롭기 짝이 없는 쐐기가 되었다.
흥분한 난민이 따개비가 돋아난 손으로 사람을 치면 살갗이 뜯겨나가고 뼈가 부서졌다.
성직자의 당부를 듣고 대기하고 있던 에디르와 기디트는 병사들을 이끌고 네더의 마물이 된 변이체를 상대했다. 제대로 된 병사라고 할 수 없는 자경단의 절반이 그 과정에서 죽었다.
“오… 맙소사. 야에가스 신왕들이시여!”
성직자는 고작 생선 좀 주워 먹었다고 괴물로 변한 사람들을 보며 절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출발을 준비하던 난민들은 부유한 지주들, 몇몇이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고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올 광기의 세계를 감당하지 못하고 음독자살한 것인지, 아니면 이들의 물자를 노린 이들의 교활한 독살인지 모르겠으나 성직자도 에디르와 기디트도 조사할 여력이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은 약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그들의 물자를 회수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산도카르로 방향을 틉시다. 바다로부터 광기가 밀려오고 있으니 해안은 위험하오.”
왕의 교회의 성직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신왕살해자인 아자딘을 증오했지만, 아자딘이 다스리고 있는 산도카르로 향하자고 제일 먼저 입을 연 것도 그였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심연의 마물이 두려워서 그들은 방향을 틀었다.
전투원보다 민간인이 많은 피난그룹이 무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산도카르로 향하면서 그들은 자신들 아닌 더 많은 난민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각지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었다.
아무리 구난기사단이라고 해도 이만큼 많은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불현듯 두려움이 앞섰다. 기껏 먼 길을 왔다가 받아주지 않겠다고, 돌아가라고 내쫓긴다면 길에서 굶어 죽을 판이다.
“만약 아자딘인지 뭔지 그 빌어먹을 전령일족이 우리를 내쫓으면 죽여버립시다!”
난민 중 힘깨나 쓸법한 이들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들도 무기가 있고 인원도 많으니 산도카르 관문을 제압하고, 그들의 땅을 약탈할 수도 있다! 그런 허세였다.
‘될 리가 있나.’
전령일족이 발사하는 화살은 일반적인 궁사들의 화살과 전혀 달라서 갑옷 입은 기사들도 즉사시켰다.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껄렁패들이 농부들이나 등쳐먹을 수 있지, 제대로 무장한 병사들도 상대하기 힘들 텐데 무슨 약탈이란 말인가?
그 모습을 지켜본 에디르는 사람들의 허세가 안쓰러웠지만 반론을 세우진 않았다.
*********
초가을인데도 남부 지방에 눈이 내린다. 본래 이 시기엔 눈은커녕 더위와 모기 등쌀에 잠을 설쳐야 할 판인데, 바람이 너무 차서 얼어 죽을 것 같다.
추운 바람을 뚫고 눈에 진창이 된 길 위를 걸으면 체력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 허기가 늪처럼 그들을 땅으로 빨아들였다.
약간의 빵조각, 말린 수수떡 몇 조각 등 그나마 먹은 게 있는 이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대로 기력이 쇠해 바닥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린다.
결국 굶주린 난민들 사이에서 낙오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성직자는 그런 사람들을 안타까워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길 앞에서 일단의 무장 세력이 나타났다.
구난기사단의 깃발을 걸고 있는 기병과 병사들이었다.
“우리는 산도카르의 보호자이며 버밀리온의 대장인 아자딘 경의 부하들이다. 이 길의 치안을 바로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길을 비켜라!”
병사들은 거들먹거리며 그리 말하고 다가오더니, 쓰러진 사람들을 발견하고 일으켜 세웠다.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들이 배낭에서 말린 떡을 꺼내 쪼개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저걸 주나?’
모두 기대하는 눈초리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뭐 대단한 음식도 아니지만, 오랜 시간 굶주림에 시달린 지금에 와서는 다들 입에 침이 고인다.
그런데 병사가 말린 떡을 자기 입 안에 넣고 씹는다.
‘아니 이놈이 우릴 놀리나?!
에디르는 병사의 태도에 짜증을 냈지만 잠시 후,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병사는 입에서 씹던 떡을 손에 뱉고는 그걸 쓰러진 난민에게 먹였다.
워낙 딱딱해서 그냥 먹이면 먹을 수 없을까 봐 자기 입에서 한 번 씹었던 것이다.
위생적으로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건이 좋지 않아 위생적인 환경을 따질 처지가 못 되었다.
쓰러졌던 이가 떡을 받아먹고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다.
“우리들의 대장, 아자딘 경께서는 삼위의 미덕을 숭상하시니 그분의 명에 따라 그대들을 지켜주겠다. 질서를 지켜 길을 따라오게!”
병사는 그리 말하고 말린 떡을 쪼개서 근처의 아이들, 굶주린 기색이 역력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
“놀랍군요.”
성직자와 에디르는 서로서로 눈빛을 교차시키며 공감을 나누었다.
전령일족이 삼위의 미덕을 숭상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