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48
347. 에란트리 퀘스트 3
“소문 들었나?!”
“아자딘 경에게 아랑기 왕국이 백작 위를 제시했다지?!”
“오, 전령일족 출신에게 백작이라니….”
병사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에디르와 기디트는 종사, 도펠죌트너라는 신분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시험받기 위해서 훈련장에 왔다가 그 소문을 들었다.
차드라 고원 출신의 사람들은 아자딘이 백작위를 제수받았다는 소리에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피난민 출신 병사들은 반신반의하거나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 전령일족에게 귀족자리를?”
“세상에.”
“아니 뭐야? 지금 아자딘 경을 의심하는 건가?”
그때 에디르가 나섰다.
“브투마 왕국의 마지막 왕족인 다르한 자덱 경을 살해한 것이 바로 전령일족이네. 그들은 고결한 신왕조차 가차 없이 살해하는 영혼 없는….”
그러자 차드라 고원의 병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그래서 뭐?”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계략일 수 있지 않소? 대체 그는 왜 이만한 재산을 풀어서 굳이 사람들을 구휼하고 병사들을 키운단 말이오?”
“그걸로 녹을 받아먹으려고 온 게 당신 아닌가? 그런데 의심이 되나?”
“나는… 믿음이 배신당할 때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아오. 물론 지금 당장은 처자식이 있으니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했지만… 불합리한 일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 목숨까지만 잃고 싶소.”
아자딘이 주는 녹봉에 이끌리긴 하지만, 그러다가 목숨 이상의 것을 잃을까 두렵다. 에디르가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 주위의 병사들이 말했다.
“일단 아자딘 경은 적어도 깨끗해.”
“어찌 그렇게 확신하시오?”
“왜냐면 차드라 고원은 원래 구난기사단의 유배지 같은 곳이니까. 기사단에 잠입해서 세력을 키우고 싶다고 차드라 고원에 들어올 멍청이는 없지.”
차드라 출신의 병사들은 모두 인정하는 것이었다.
아자딘이 처음부터 무슨 백작위를 제수받을 만한 대형 군벌의 수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악착같이 기어올랐으며 그런 실력을 입증한 사람이 스파이일 리는 없다.
“그 사람은 잠입할 필요가 없어. 맨손으로 밑에서부터 일군 거라니까.”
“다들 그를 좋아하나 보군요.”
“좋아한다기보다는….”
“그가 해준 것이 너무 많지.”
차드라 고원에 유배된 이들은 한때 금수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유배지에서 옴짝달싹도 못 했고, 안에는 범죄자 출신의 흉악한 선임들이 자유를 억압했으며 앞날에 대한 희망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자딘은 그것을 통합해서 희망을 만들어 냈다.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부덕한 이들은 처단하고, 차드라 고원의 땅을 하나로 통합했다. 나이산도카르와 산도카르를 손에 넣은 뒤로는 외부와 교역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희망이 생겼다.
온 세상이 절망에 가득 찬 이때 차드라 고원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한 희망이 생겨났으니 그런 인도를 가져온 인도자를 좋아하지 말라는 게 무리였다.
“하지만 대체, 그래서 그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는 겁니까? 어째서 그는 이런 걸 하는 겁니까?”
“우리도 모르겠어. 다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병사들은 갸웃하더니 말했다.
“아자딘 경은 진짜로 삼위의 미덕을 믿는다고 하는 모양이야.”
“네?”
“지혜와 용기와 자비를 실천해서. 정말 구난기사단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지.”
“그게 가당키나 한….”
에디르는 그렇게 말하다 자기가 한 말에 놀랐다.
삼위의 미덕이 웃음거리가 된 시대. 구난기사단령에 몸을 의탁하기는 했지만, 세 가지 미덕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한 동화책처럼 여기고 있었다.
아자딘은 그걸 진심으로 믿는단 말인가?
“진짜 성기사라고? 전령일족이?”
“우리도 모르겠어. 대장이 자기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아자딘에게는 이 삼위의 미덕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거라고. 입 밖에 꺼내면 조롱당하고 진위를 의심받을 텐데 그것이 곧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미덕을 바로 입 밖에 내고 그것을 깃발처럼 걸고 휘두르는 이들은 미덕을 명분 삼고 무기 삼으려 하는 것. 정말 미덕을 소중히 여기는 자라면 말없이 그저 실천할 뿐이다.
일자무식인 이들조차 그러한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아자딘은 자신의 미덕에 강요도 설교도 없이 그저 묵묵히 실천했다.
‘믿을 수 없어.’
에디르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는 브투마의 왕족, 만자 자덱과 그 아들 다르한 자덱을 믿고 있었다.
황금왕의 혈족조차 실패한 덕치를 전령일족인 아자딘이 실천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인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자딘 자신이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정황을 본 그 부하들, 병사들,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니… 믿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
아자딘은 군벌의 간부들을 모아두고 아랑기 왕국의 사절이 들고 온 변경백 제수 건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백작 지위라. 무조건 받아야지! 대장! 백작이라고 백작! 바로 대귀족님 되는 거잖아!”
병사장인 리전은 흥분했다.
“뭐, 안 받으면 아랑기 왕국의 국토를 무단으로 사용한다고 시비를 걸게 분명하니… 떼어줘야 할 게 많을 겁니다.”
역시 같은 병사장, 칼란도 백작위를 받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반면 스콧은 반대했다.
“나는 반대야. 대장. 현재 비축된 곡물은… 작년 소모량을 기준으로 볼 때 대략 4년 치야. 대장. 무슨 뜻인지 알지?”
작년 소모량을 기준으로 4년 치, 하지만 지금은 작년보다 훨씬 소모량이 많다.
아자딘이 계속해서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아. 아니 나처럼 위대한 지성의 소유자가 이런 행정업무나 맡고 있다니. 대장네 다른 마법사들이 있잖아? 나처럼 뛰어난 지성을 이런 일에 쓰지 말고 그들을 쓰는 게 어때?”
스콧은 생색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인지라 자신이 행정업무를 한 것을 가지고 으스대기 시작했다.
아자딘의 다른 부하들은 오만방자한 스콧의 발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스콧은 실제로 장부를 실사대조하며 많은 횡령범을 잡아내었다.
저렇게 으스댈 만큼의 실적이 있으니 누구도 그에게 뭐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애쓴 건 알고 있다. 고맙게 여기고 있어. 그런데 스콧. 그런 똑똑한 너라면 지금 받아들인 난민들로 인한 식량 수요는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겠지? 지금 비축된 식량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지금까지 받은 난민들을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식량은 대략 2년 6개월 치 정도. 그런데 백작위를 받으면 아랑기 왕국에서 난민들을 잔뜩 보낼 텐데 감당이 되겠어?”
확실히 문제다. 백작위를 받자니 난민들을 잔뜩 보낼 것이고, 받지 않자니 아랑기 왕국이 보복에 나설 것이다. 아무리 아자딘 일당이 실효지배한다 하더라도 나이산도카르 일대를 아랑기 왕국이 주장한다면 산도카르와 차드라 고원 간의 길이 끊어지게 된다. 그냥 세금만 받아먹고 만족하면 모르겠는데, 백작위 제수를 거절당한 아랑기 왕국이 앙심을 품으면 그 이상의 보복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핌불베르트는 예언에 의하면 못해도 3년은 계속될 텐데. 지금 2년 6개월 치 있는 거 우리끼리 아껴 먹어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아니 2년 6개월 치도 아닐 거요. 사실 그동안 난민들을 쭉 받아왔잖소? 여기에 아랑기 왕국이 난민을 추가로 보낸다니. 이러다간 오히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식량을 빼앗아야 할 수도 있소.”
산도카르의 백작 이브첵은 은근슬쩍 주체를‘우리’로 바꾸었다.
산도카르는 관문요새라서 보통의 성이 석 달 치 식량을 비축하는 데 반해 반년 치의 식량을 비축해 두었다.
하지만 이번 가을걷이를 망쳤으니 설령 핌불베르트가 올 한해만 오고 끝난다고 하더라도 내년 봄쯤에는 보릿고개를 경험하게 생겼다.
그런 상황이니 산도카르 백작 이브첵은 은근히 차드라 고원에 비축된 식량을 탐내고 있는 것이다.
아자딘과 차드라 고원 쪽이 산도카르까지만 챙겨주길 바라는 것이다. 아랑기 왕국이 집어넣을 다수의 난민은 모르는 체하자.
스스로 생각해도 비열하고 천한 발상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아니, 난민은 받지 마라. 그런데 산도카르와 연결은 되었으면 좋겠다니. 백작 위를 받으라는 겁니까? 받지 말라는 겁니까?”
듣고 있던 니셀다가 이브첵 백작에게 짜증이 났는지 따지고 들었다.
“그걸 어떻게 잘… 방도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까 어떻게요?”
“그건 음….”
이브첵이 말문이 막혀 꼬리를 내렸다.
아자딘은 세드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와일드 드루이드 세드린은 영지의 간척, 개척, 그리고 토지 공사 등에 막대한 힘을 보태주어서 현재로서는 아자딘 군벌의 공병대장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세드린. 그쪽의 생각은 어떻지?”
“난민을 거절하면 좋겠지만, 당신이 난민을 거절할 리가 없지?”
아자딘은 자기 입으로 말한 적이 없지만 이제 모두들 아자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자딘은 진짜 성기사다. 구난기사단의 모두가 정치꾼, 협잡꾼이 되어 미덕을 도외시하는 이때, 오히려 전령일족 출신인 그가 미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그런 아자딘이 난민들을 도외시할 리가 없다.
“식량을 생산할 방법이 있어. 자연을 좀 파괴하겠지만.”
“오오….”
모두 세드린의 말에 기뻐했다. 자연이 파괴되건 말건 식량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다들 안도한 것이다.
“단, 그것을 행하면 나는 목숨을 잃는다. 그러니 그 전에 소크에게 속박된 내 가족들에게 안식을 주고 싶다.”
와일드 드루이드 세드린은 자신의 가족들이 소크의 와이트가 되어 사역당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식량 생산을 빌미로 아자딘을 압박했다.
그러나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세드린. 널 죽이면서 식량을 생산할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세드린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소크와 친하게 지내지 마라. 그 자식이 우리 가족의 죽음조차 가지고 노는데, 네가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 소크가 우리 가족을 유린한 것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단 말야! 식량이 필요하지? 내가 목숨을 버려가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그런데 아자딘 당신은 내가 목숨을 걸고 협박하는데도 어째서 내 간절한 요구를 무시하는데?”
그러자 미노타우르스인 셀림이 아자딘을 변호하고 나섰다.
“…아니 저기. 그건 좀 무리지. 아자딘 대장은 소크 경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지내는 게 아니야. 그쪽이 알아서 와서 자기 하고 싶은 말 하고 사라지는 거에 가깝지.”
“그러면 보자마자 대가리에 칼을 꽂아 넣어야지.”
“그게 가능하면 네가 했어야지 세드린.”
“뭐?”
세드린은 분개했지만, 소크 경의 매서움을 잘 알고 있는 다른 이들은 다들 셀림에게 호응하고 있었다.
소크 경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교도 변이체들과 그리셀다의 공격 때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을 테고 아샤지트의 눈도 빼앗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세드린이야 그런 혜택 따위 상관없이 소크를 처단하고 가족을 해방하고 싶을 테지만, 다른 아자딘 군벌의 사람들은 최대한 소크와의 결판을 뒤로 미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