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5
34. 흑마법 재해 5
“어, 설마 당신들?”
주무관 메이야가 당황하며 메이스를 잡았다. 아자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는 그저 상인과 모험가, 순례자 집단일 뿐입니다.”
“아, 네. 그, 그렇군요. 이건 그럼?”
“마을 사람들이 사악한 마법에 희생당한 것 같습니다. 저희가 왔을 때는 다 언데드가 되어 덤벼들었어요.”
“네? 여기 제재소 마을 사람들이 말인가요? 오 맙소사. 그런데 당신들이 그걸 다 격퇴했다고요?”
“아, 저희만은 아니라 다른 상인과 용병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마을 입구도 들어오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등을 돌렸습니다.”
“그렇군요. 당신들이 오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저기 갇혀 있을 뻔했군요.”
“몸은 괜찮으십니까? 얼마나 갇혀 있었습니까?”
“잘은 모르겠어요. 창고 안에 물과 식량이 있어서 버틸 수는 있었지만….”
“잠시 안을 보아도?”
“아, 안 돼요!”
메이야는 아자딘이 안을 뒤져보겠다고 말하자 반대했다.
“안에 혹시 이 일의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 거 없어요!”
“왜 그렇게 단언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하지만 그때 미디암이 말했다.
“아마 성기사 분이 안에서 버티시면서 창고 구석에 생리적 욕구를 해결했을 거예요. 큰 볼일은 방금 해결하셨겠지만 작은 볼일은 더 자주….”
“와아아아악!”
메이야가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니까 자신이 창고에 갇혀서 안에서 소변을 본 걸 들키기 싫어서 아자딘이나 다른 이들이 들어오는 걸 막았다는 소리다.
“별거 아닌 이유군요. 조사해 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잠시 실례지만 당신은 누구시죠? 이런 일을 수사하는 건 원래 저희 성기사단이 전문입니다. 괜히 억측을 늘리느니 훈련받은 이가 이 사건을 컨트롤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메이야의 말은 완전 정론이었다. 소변 본 흔적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치고는 말이다. 물론 아자딘도 황제의 전령이니 수사를 훈련받은 인물이다.
황제의 전령은 무예 전반을 수련할 뿐 아니라 각종 사고 사례, 살인사건이나 범죄 사례 등을 읽고 암기하도록 훈련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왕의 교회의 성기사인데 아자딘이 전령이라고 밝힐 수 없지 않은가?
그때 아자딘을 대신해서 미디암이 나섰다.
“그 훈련받은 분이 창고에 갇혀서 저희가 오지 않았다면 계속 안에 계셨을 것 같은데, 사건을 맡아도 될까요? 차라리 이번에는 저희가 책임지고 조사할 테니 거기 따라주세요.”
“…….”
갇혀 있던 걸 은근히 들먹이자 주무관은 입을 다물었다. 수치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니 말문이 막힐 수밖에.
“그, 그러지요.”
메이야는 포기하고 일행들이 살펴보는 걸 허락해 주었다.
아자딘이 안을 살펴보니 창고 안은 식량저장고를 겸하고 있었고 커다란 목욕통에 물이 차 있었다. 여기서 물을 마시고 저장고의 식량들을 먹으면서 버틴 모양인데, 주위가 어지럽혀져 있는 모습을 보면 하루 정도 갇혀 있었던 것 같았다.
문 입구를 보면 칼로 문을 후려갈긴 흔적이 있고 근처에 소검 한 자루가 부러져 방치되어 있었다.
‘이 주무관이 저 장식용 메이스만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군.’
소검과 방패로 무장한 채 들어왔다가 창고에 갇히게 되니까 소검으로 문을 부수려 하다 칼이 부러져 버린 것 같았다.
“당신이 갇혀 있던 게 하루 정도인가요?”
“네.”
“그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살아 있었고요? 당신이 갇힌 순간 마을에 습격이 있었다. 그렇게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요.”
그렇게 대답한 메이야는 주위의 언데드 사체들을 보며 뭔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아 저 그런데 혹시 저 말고 다른 성기사들은 못 보셨나요?”
“다른 성기사들이라뇨?”
“그러니까 저는 주교님에게 이곳의 와이번을 토벌하라는 명을 받고 왔습니다. 당연히 마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냥꾼들이 필요한 법이지요.”
성기사단에는 공을 세워서 정식으로 서임받아야 하는 수련기사들이 많이 있었다.
“때마침 제 아버님께서 수련기사들을 지도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와이번 퇴치를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아버님?”
“아 네. 제 아버님도 교회의 성기사이시거든요. 저희는 무려 부녀가 함께 대를 이어서 왕의 교회의 법을 수호하고 있답니다!”
그녀는 자랑스러워하며 가슴을 내밀었다.
‘전혀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닌데?’
아자딘은 그녀의 말에 내심 실소했다. 본래 규율에 의하면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은 자식을 낳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상속권 싸움에서 패한 이를 죽이지 않고 왕의 교회에 보내는 의미가 없다. 언젠가 자식을 낳고 세속적인 힘을 길러 다시 복권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옛날에는 아예 출가와 동시에 거세를 해 버렸다 한다. 하지만 성기사단의 규율이 느슨해지면서 제일 먼저 없어진 게 바로 거세였다. 그래서 방탕한 성기사들은 향락을 즐기다 종종 애를 낳았고, 그렇게 낳은 아이들은 또 다른 사생아가 되어 교회에 편입되었다.
즉, 이 메이야라는 여기사는 그런 사생아 태생이란 뜻이다.
‘출가 전에 낳은 자식이라면 그녀의 아버지는 성기사가 아니라 성직자가 되었겠지.’
부녀가 함께 성기사라는 건 그래서 남들에게 자랑할 게 못 되는 일이다. 아자딘은 혹시나 싶어서 그녀의 아버지와 수련기사들의 인상착의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곧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죽인 자들이군.’
이 숲과 제재소는 아자딘 일행이 어제 떠났던 농장과 만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와이번을 사냥하기 위해 파견된 성기사들이 숲에서 화살을 쏘다가 재수 없게 농부를 죽이고, 그 사건을 덮기 위해 살인 멸구하다 도망친 이가 있어서 농장 전체를 학살하고, 그러다가 아자딘 일행과 만나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그 관련자가 아직 여기 살아 있다. 살라스마의 주무관 메이야는 바로 아자딘이 죽인 가즈렉 경의 딸이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제 아버지는 아주 훌륭한 성기사예요. 무예도 출중하고 몸가짐도 아주 올바르지요. 그분이 고작 언데드 몇몇 따위에 당했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렇습니까?”
아자딘은 실소했다.
확실히 가즈렉 경은 꽤 강력한 적이었다. 아자딘이 기습으로 제거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붙었다면 꽤 까다로운 상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훌륭한 성기사인가?
‘훌륭한 성기사면 딸이 없었겠지.’
규율을 어기고 사생아를 만들었는데 어찌 훌륭한 성기사일까?
게다가 아자딘이 본 바로 그 가즈렉 경과 그 일당은 활을 잘못 쏴서 민간인을 죽이고 그 사건을 덮기 위해 오히려 민간인들을 떼로 학살하다 걸린 인물들이다.
혈육이니까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훌륭한 성기사일 리 없다.
‘훌륭한 아버지일 수는 있겠지만, 음 이건 입 다물고 있어야겠다. 괜히 이 여자랑 얽혔다가 아버지의 원수라면서 덤벼들면 입맛이 안 좋으니까.’
그래서 그녀를 잠시 떼어놓기로 했다.
“당신의 무기와 장비는 말에 있습니까? 말은 언데드가 된 걸 못 봤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상인들, 기사들과 함께 잠시 이 근처를 정찰할 겸 말을 찾아보시지요. 어쩌면 당신의 동료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당신들은요?”
“저희는 이곳의 창고, 마을을 좀 더 조사하겠습니다.”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성기사를 주위 정찰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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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은 창고를 더 조사해보았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요?”
미디암이 물었다.
“여기 제재소를 거점으로 삼고 조금씩 탐험해 볼까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상인들처럼 왔던 길을 되짚어서 돌아가 볼까요?”
“제재소를 거점으로 삼는다. 만약 지금 여기에서 벌어진 현상이 살아 있는 인간 술자가 저지르는 짓이라면 식량과 물 공급이 필요할 거야.”
“그게 아니라면요? 보통 흑마법이 관여된 일들은 원한을 품은 자가 죽어서 망령이 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산 자가 흑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수련과 재능이 필요하지만 망령이 된 자는 흑마법의 재능을 바로 충족시켜 버리기 때문에 재해는 보통 망령들에 의해 벌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저희들은 계속 무력한 어린아이 흉내를 내야 하나요? 당신에게 꽤 부담이 갈 텐데요?”
미디암은 여자 성기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자딘은 미디암과 이스마일에게 활을 쓰는 걸 금지시켰다. 어린아이가 그런 강궁을 다루면 전령일족이라는 게 단번에 들통나니까.
상인들 앞에서도 감추어야 할 사실이었는데 하물며 성기사 앞에서는 더욱더 감춰야 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 사건을 저지른 자가 만약 인간이라면 그자는 아마도….”
“그렇겠지?”
미디암과 아자딘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누구의 소행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
흑마법 재해는 보통 원령에 의해서 일어난다. 살아생전 원통한 일을 겪은 자가 모종의 이유로 제대로 장례도 치러지지 않고 살해당해서 암매장당하거나 하면 악령이 되어 다시 일어나는데, 이런 악령들 대부분은 그저 저주형 영적현상을 일으키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재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이 그런 흑마법 재해라 한다면 유력한 후보는 바로 전령일족이라는 이유로 노예 취급을 받던 여성.
그녀가 살해당해서 악령이 되었다고 봐야 하리라.
“죽어서 망령이 된 것인지 아니면 살아서 흑마법을 익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후자일 가능성은….”
“후자도 어느 정도는 가능성이 있지.”
아자딘은 과거의 사고 사례를 들어 그렇게 말했다.
흑색 마력의 마법은 연구보다는 재능이다. 만약 그녀가 정말 전령일족의 피를 강하게 이어받아 화조풍월의 마도서를 유전받았다면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흑마법에 각성해 마술사가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 성격상 설득하고 싶어지지 않겠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당신은 미학을 중시하니까요. 하지만 저라면 죽일 거예요. 슬픈 기억,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졌다는 건 동정할 만하지만 동정심 때문에 깨진 물동이를 쓸 수는 없지요. 새 물동이를 사는 게 싸게 먹히는 법 아니겠어요?”
아무리 불쌍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동정심 때문에 깨진 그릇을 쓸 필요는 없다. 인간의 정신은 한 번 깨지면 복구하기 힘든 법이다.
간혹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어떤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날카롭고 강하게 다시금 벼려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깨지고 부서진다. 개인사에 대해서 동정할 수는 있지만 그 인간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논조로 말을 꺼낸 미디암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당신이 그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존경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