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50
349. 에란트리 퀘스트 5
“이번 회의에 여러분들을 모신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차드라 고원의 유배자여야 할 아자딘 경이 최근 반릉의 산도카르 백작, 이브첵의 충성 맹세를 받아내었을 뿐 아니라 아랑기 왕국에게 나이산도카르 변경백 지위를 제수받았다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교단의 높으신 분들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지혜 교단의 셀레스티얼, 트리오다나는 회의장 한복판에 나서서 아자딘에 대한 의제를 올렸다.
그 외모가 아름답고 목소리 또한 낭랑하다. 과연 셀레스티얼, 천상의 피로 필멸자들을 매료시키는 존재로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내용에는 묘하게 아자딘에 대한 질시가 담겨 있었다.
기실 이 자리에서 아자딘을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는 인물은 드물 것이다. 가레스 경 자신도 백작이란 높은 지위를 제수받는 것을 행운이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고작해야 수련기사, 그것도 전령일족인 아자딘이 그런 행운을 누리게 된 것에 대해서 모두 시기하고 있었다.
“아니, 구난기사이면서 아랑기 왕국의 봉신이 된다니! 말도 안 됩니다! 이건 전례가 없는 일! 처벌해야 합니다!”
지혜 교단의 성직자가 기다렸다는 듯 분개하며 규탄했다.
그러나 자비 교단의 성직자들이 코덱스를 살펴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벌할 규정이 없습니다.”
“아니, 영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구난기사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지요. 원래 구난기사단에 오는 이들은 상속권이 없는 귀족 자제들이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그러다 상속권자가 사고로 죽어서 복권되면 다들 환속해서 문제지… 만약 환속하지 않고 그대로 백작위를 받는다면 구난기사이면서 동시에 백작일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보통 귀족이 되면 자기 영지에서 놀고먹는 데 열중하느라 귀찮은 구난기사의 의무를 던져버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코덱스에서는 영지를 가진 채로 구난기사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전까지 구난기사단은 대귀족이 구난기사단에 호의적인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당장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가 그렇지요. 어린 시절에 지혜 교단에서 자랐다고 지혜 교단에서는 북제를 자기 사람이라고 싸고돌지 않았습니까?”
용기 교단의 테르시오 단장, 가레스 경은 북제의 예를 들어 빈정거렸다.
지금까지 구난기사단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대귀족이 구난기사단에 호의적인 것을 되레 반겼었다.
구난기사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왕이 된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는 지혜 교단의 자랑거리였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아자딘은 북제때와 달리 차별하다니.
“그는… 경우가 다릅니다! 전령일족입니다.”
“그렇다면 태생이 전령일족이면 구난기사가 될 수 없다. 그렇게 코덱스에 새로 써넣을까요? 아주 자랑스럽군요. 삼위의 대천사와 선현들이 써놓은 코덱스에는 그런 편협한 내용이 없었는데 후대에 우리가 그따위 더러운 문구로 코덱스를 더럽혀야 한다니.”
자비 교단의 성직자도 빈정거렸다.
“아니 그런데 왜 자비 교단은 요새 그자를 싸고도는 거요? 그는 자비 교단 소속도 아닌데? 혹시 그가 외모가 수려해서 좋아하는 거요? 아니면 그가 우리 지혜 교단에 모욕을 가했기 때문에?”
“…지금 그 말씀이 지혜 교단의 성직자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군요. 정녕 우리가 미덕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지혜의 성직자치곤 너무 멍청한 거 아니냐? 그렇게 돌려서 비난하는 것이었다.
“아아, 자비 교단의 손에 무고한 이들의 피가 묻어서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 확실히 미덕과 멀어져 있긴 하구려. 그러고 보면 용기의 교단도 남해 열도의 구조 요청을 도외시하고 도망쳤다고 하지요? 제대로 용기를 보이는 건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뿐인 듯합니다만?”
“………”
가레스 경도 그것엔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구난기사단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용기 교단에게 용기를 보이라고 떠밀어 대곤 했었다. 그게 싫어서 용기 교단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일을 미루어왔으니. 정신 차려 보니 그들도 용기라는 미덕과 거리가 먼 협잡꾼, 정치꾼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네놈들의 싸구려 도발에 넘어가서 제일 먼저 귀한 병력을 갈아버릴 수도 없지. 하지만 부끄럽구나. 핌불베르트가 다가와 환란이 온 세상에 넘치는 데 우리는 이렇게 정치적으로 다투기만 하다니.’
가레스는 문득 아자딘을 떠올렸다.
아자딘의 군벌은 분명히 일개 수련기사가 가지기엔 너무나 큰 권력이었다. 그러나 아자딘이 보인 한결같은 태도는 그가 진정 갈망하는 것이 부와 권력, 명예가 아니라 미덕 그 자체임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정치 놀음으로 단련된 그이기에 확언할 수 있었다.
아자딘이야 말로 진짜 성기사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지혜 교단은 오히려 아자딘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에란트리 퀘스트를 내립시다.”
문득 가레스 경은 그렇게 말했다.
*********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에란트리 퀘스트?”
“예. 아자딘 경은 수련기사이니 에란트리 퀘스트를 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수련기사가 수련을 끝마치고 정식 호스피탈러가 되기 위한 임무를 에란트리 퀘스트라고 한다.
하지만 삼위의 미덕이 빛을 잃고, 구난기사단에 신성마법이 사라지면서 에란트리 퀘스트는 사문화되었다. 수련기사가 단독으로 어떤 퀘스트를 수행할 능력이 없었고, 지난 세월이 너무 평화로워 퀘스트라고 내릴 만한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비 교단에서 당황했다.
“에란트리 퀘스트는 사문화된 옛 법이 아닙니까? 이제 와서 그런 걸….”
“코덱스에 적혀있는 걸 무시하는 겁니까?”
지혜 교단 측에서 신나서 물고 늘어졌다. 코덱스의 조항을 들어 아자딘을 변호하던 자비 교단에게 역으로 코덱스로 반격할 기회가 온 것이다.
자비 교단의 말문이 막힌 사이에 용기와 지혜 교단의 성직자들은 이미 에란트리 퀘스트를 내리는 것은 확정 짓고, 어떤 퀘스트를 내릴지를 두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 에란트리 퀘스트를 내릴까요? 도적 떼 퇴치라던가, 그런 단순한 건 아자딘 경에게 오히려 모욕이 될 것이오. 아랑기의 백작 지위까지 받을 분이 아니오?”
“반릉 왕국이 갑자기 멸망했는데 우리는 그 실체를 알지 못하지요. 반릉 왕국의 멸망을 조사하게 합시다.”
“아, 그리고 반릉의 콕스할 주교 아케나르 님도 찾도록 하지요. 아케나르 주교님의 행방을 찾고 반릉 왕국의 멸망을 조사하라. 좋지 않습니까? 아케나르 님은 때마침 그의 후견인이기도 했으니. 이는 이치에 합당합니다.”
“…….”
지혜의 교단과 용기의 교단은 신이 나서 퀘스트를 정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난이도가 일개 수련기사에게 내릴 만한 것이 아니다.
구난기사들 모두, 아자딘에게 시기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 시국에 아랑기 왕국이 백작의 자리를 내린 것은 꿍꿍이가 있다.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자리. 심지어 과거 멸망했던 나이산도카르 지방의 변경백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껄끄러운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원치 않는 출가를 경험했던 구난기사단의 성직자들은 전령일족 출신이면서 백작의 자리를 제수받은 아자딘에게 참을 수 없는 질투와 시기심,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일개 수련기사에게는 너무 과분한 퀘스트가 아닙니까?”
자비 교단에서는 폭주하는 성직자들의 분노를 막아내기 위해 애써야 했다.
반릉 왕국이 갑자기 마물 폭주가 일어난 것에 대해서 사실 다들 예상하는 바가 있었다. 아마도 반릉 아카데미에서 네더 관련 연구를 하다 폭주한 거겠지. 그런데 그걸 조사하라는 건 죽으러 가라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가레스 저 미친 드워프 새끼가 또 지병이 도졌구만. 똥개가 똥을 끊지. 저러면서 자신은 악의가 없다고 말하는 게 가장 악랄하다니까. 얄미운 드워프 놈,’
자비 교단에서는 에란트리 퀘스트를 언급한 가레스를 향해 증오의 시선을 보냈다.
가레스 경 저 작자는 늘 그랬다. 선을 안 지키는 건 아닌데, 본인은 선을 지키면서 할 만큼 했다고, 이게 현실적이라고 항상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인간이다.
적대할 만큼 나쁜 짓을 하진 않지만 예뻐하기엔 매사 얄미운 인간.
그것이 가레스였다.
“그럼 저희 용기의 기사단은 에란트리 퀘스트를 승인하겠습니다.”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트리오다나를 포함한 지혜 교단에서도 에란트리 퀘스트를 승인했다.
이리되면 자비 교단이 반대하더라도 다수결로 에란트리 퀘스트가 승인되고 말았다.
*********
아자딘이 백작위를 받기로 하자, 아랑기에서는 왕의 사절을 보냈다.
“그럼 아자딘 백작. 축하하오. 전령일족 혈통의 남자가 아랑기 왕국의 봉신이 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오. 오로지 국왕 폐하의 관대함이 있기에 가능함을 아시고 이후 충심으로 그 관대함에 보답하도록 하시오.”
왕의 전령은 굳이 할 필요 없는 혈통 이야기를 들먹거리며 아자딘에게 나이산도카르의 인장 반지와 봉신 계약서를 주었다. 아자딘의 손가락에 맞는 크기가 아니라서 아자딘은 끈으로 반지를 꿰고 그것을 목에 걸었다.
연회도 없고 서커스도 없는 조촐한 등극식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모두 몰려와 환호했다.
“아자딘 백작 만세!”
“백작님께 천사들의 축복이 있으리라!”
아자딘은 병사들의 환호에 답하고 그간 공을 세운 부하들에게 나이산도카르 지방의 식읍들을 나누어 주었다.
아자딘 군벌의 간부들은 물론, 병사들을 통제하는 하사관 등급까지 식읍을 받고 종사 계급으로 임명했다.
파격적인 논공행상이었다.
물론, 핌불베르트가 시작된 지금 그렇게 받은 식읍이 과연 소출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살아남기만 하면 식읍을 가진 종사, 준 귀족계급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데 아주 좋은 소재가 되었다.
“역시 아자딘 님이시다!”
“이젠 백작님이라고 해야지!”
“백작님 만세!”
식읍을 받은 사람들은 물론 받지 못한 이들도 덩달아 기뻐서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전서구를 관리하는 비둘기 탑에서 전령 한 명이 뛰쳐나와 아자딘에게 달려왔다.
“배, 백작님. 큰일입니다.”
“큰일이라니?”
“구난기사단에서 에란트리 퀘스트가 왔습니다.”
“에란트리 퀘스트?”
수련기사가 정식 호스피탈러로 인정받기 위해 수행하는 임무로,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온 유서 깊은 의식이었다.
현재는 유명무실해져서 그냥 햇수만 채우면 별도의 임무 수행 없이도 호스피탈러로 인정받았지만, 구난기사단의 상층부는 아자딘에게 에란트리 퀘스트를 내렸다.
“어디 보자. 왕중왕은 또 뭐야? 왕의 교회 놈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나?”
속내가 뻔히 드러나는 노골적인 견제에 아자딘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보다 전서구에 적힌 세계의 소문과 사건, 가십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그중에는 왕의 교회가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에게 왕중의 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북부 동맹을 공식적인 왕들의 연합체로 인정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게다가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고문으로도 북제 코헨이 승인되었다.
아자딘이 백작위를 받고 군세를 확장하는 것처럼 코헨 라이오네어가 차례차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겨우 백작인데, 이자는 이미 휘브리스 전역을 집어삼킬 기세로군.”
아자딘은 자신 이상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 북제에게 두려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