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54
353. 왕의 예언 1
콕스할로 가는 길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투의 주체는 혈신 아샤지트의 권속인 흡혈귀와 사교도 변이체들, 그리고 그들에 대항해 맞서는 브리와 고블린, 오우거들이었다.
쿠르트 판테온을 따르는 마물 족속들이 흡혈귀들과의 싸움에 나선 것이다.
평소에는 꼴도 보기 싫은 마물들이지만 뱀파이어들, 그리고 네더의 권속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니 응원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브리들이 잘 싸우네? 인간들 상대로는 영 아니더니만 상성이라는 게 있군.”
아자딘은 브리들이 뱀파이어와 네더 변이체들 상대로 선전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브리들은 힘세고 날래지요. 금속 무기가 없다는 약점이 있지만, 금속 갑옷을 입은 종사단으로 상대하는 게 아니라면 위험한 상대입니다. 일반 농민 병사들로는 학살당할 뿐이에요.”
에디르는 아자딘이 브리를 우습게 보는 걸 보며 당황했다. 아자딘이 관할하던 동쪽 코라사르 지방에서는 브리가 없었기 때문에 아자딘은 브리를 이곳 기사단령에 도착하고 나서 처음 상대해 본 것이다.
“그런가. 이거 참. 응원해 주고 싶은 심정이로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놈들도 구역질 나는 존재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브리나 고블린, 오우거들이 인간을 잡으면 네더의 존재들 못지않게 끔찍하지요.”
인간을 산 채로 잡아먹거나 고문하고 장신구로 만들어 버린다거나 하는 점에서 쿠르트 판테온의 추종자들 역시 끔찍한 존재기는 매한가지였다.
네더의 존재들과 쿠르트 판테온, 어느 쪽이건 간에 인간에게는 잔악하기 짝이 없으니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발과 함께 보고 있자면 인간 세상의 끝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괴물들끼리 싸워서 서로서로 숫자를 줄여주면 오히려 고맙지. 저것들끼리 싸우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 최대한 피해서 가자. 그런데 이 방향이면….”
“네. 이제 곧 콕스할에 도착합니다만….”
“그렇군.”
아자딘은 주위의 황야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자딘이 죽음의 기사 플랑크 경을 만났던 바로 그 황야다.
그때도 황량한 곳이라 느꼈지만 핌불베르트가 시작되고, 혈신 아샤지트의 권속들이 배회하고 있는 지금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바다와 산악으로부터 제각각 불어오는 바람이 광야에서 만나 토네이도가 되어 휘몰아친다.
농담이 아니라 휘말리면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토네이도다. 지면의 흙먼지, 자잘한 돌과 모래, 그리고 메마른 풀과 눈발을 휘감은 돌풍에 휘말리면 얼어붙은 채로 하늘로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토네이도가 내동댕이친 온갖 잡동사니가 하늘에서 쏟아져 광야를 지나는 이들을 위협했다.
아자딘은 그 토네이도의 파편들을 피하며 하늘로 아라엘의 목소리를 띄웠다.
이 바람에 마력이 담겨있는지 아라엘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시야에도 혼선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혼선 속에서 콕스할의 모습이 멀리 보인다.
항구도시 콕스할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뱀파이어 헨드릭이 말한 대로 콕스할의 주교 아케나르는 콕스할에 없고 뱀파이어들에게 납치당했을 것이다.
“콕스할로 가시겠습니까? 주교 아케나르 님을 찾는다면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여기까지 온 김에 들러보도록 하지. 콕스할에서 혹시 또 뭐라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보급도 좀 하고 말야.”
아자딘은 비어버린 배낭을 가리켰다. 사람 식량은 아직 남아있지만, 말의 먹이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
아자딘과 함께 여행하면서 에디르의 기분도 어느 정도 풀려가고 있었다.
본래 다르한 자덱의 절대적인 추종자였던 그는 다르한 자덱이 전령일족에게 죽은 지금, 전령일족인 아자딘이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잡놈이 감히 전령일족이면서 이렇게 잘나가냐? 한 번 꼴상을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접근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아자딘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니 용모 수려하고 무예가 뛰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려 깊고 공명정대한 성품마저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다르한 자덱의 추종자라 해도 아자딘이 걸물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그러니까 전령일족인데도 백작의 자리를 얻어냈지. 아니 어쩌면….’
백작 아니라 왕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잠시 에디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에이, 그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아자딘이 왕좌를 차지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아니, 상상하면 큰일이 날 것 같다.
‘정당한 자가 왕좌에 앉을 때 왕화의 빛이 세계를 수호한다.’
왕의 교회의 가르침이 어쩌면….
‘아니, 너무 지나쳐.’
에디르는 파괴된 콕스할의 관문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콕스할 관문의 석벽이 파괴되어 있고 도시의 문설주에는 사람들이 효수되어 있었는데, 그 시체는 뭔가가 파먹은 상태로 내장이 쏟아져나와 있었다.
끔찍한 장면이다.
그러나 더더욱 끔찍한 것은 이런 끔찍한 모습에 익숙해져 무감각해지는 마음이었다.
바다로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쳐 온다.
가을이 깊어져갈수록 추위 또한 깊어지고 이제 눈도 녹지 않는다.
“이상하군.”
아자딘이 아라엘의 목소리로 콕스할을 정찰시키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말입니까?”
“전초기지같이 되어있는데? 창고가 만들어져 있고, 마을 중앙부의 건물을 철거해서 바다에 방책을 세웠어. 그런데 인기척은 없군.”
아자딘이 본 바, 콕스할은 상당한 숫자의 군대가 도시 전체를 징발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있는 건물들을 헐어서 전투와 주둔에 필요한 시설을 만들어 놓고, 정작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인기척이 없다고요?”
“그래. 텅 비어 있….”
“뭐야? 네놈들은?”
그때 관문 문설주 위에 선 인물이 아자딘 일행을 발견하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드워프들이 총화기를 들고 부서진 관문 위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나. 핌불베르트가 시작된 이후로는 감도가 떨어진다.]아라엘의 목소리가 변명했다.
건물 안에 있던 드워프들은 작아서 아라엘의 목소리로도 발견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블런더버스와 화승총은 15야드 정도의 거리에서 절대적인 위력과 명중률을 가지고 있었는데, 딱 지금이 그 정도 거리다.
아무리 아자딘 일행이 백전 연마의 정예들이라 해도 이 거리에서 화승총 사수를 만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그때 드워프들이 헛기침을 시작했다.
“크음. 실례했군. 그리셀다의 딸인가?”
다행스럽게도 드워프들은 니셀다를 그리셀다의 딸로 알아보았다.
니셀다에 대한 태도, 그리고 드워프들의 수염에 말라붙은 피가 붙어있는 걸로 보아 이놈들 또한 뱀파이어이리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환영이야. 그리셀다의 딸이라면.”
드워프 뱀파이어들이 탐욕을 감추지 못하고 니셀다를 환영했다. 하지만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제지했다.
“잠깐만! 이 멍청한 것들아. 그저 피와 향락에 취해서 정신을 못차리는구나!”
드워프 지휘관은 아자딘 일행의 진입을 제지하고 물어보았다.
“일단 네가 그리셀다의 딸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같이 온 놈들은 뭐지? 혈족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게다가 한 놈은 왕의 교회의 성기사잖아?”
“매혹당한 포로입니다.”
니셀다가 그리 대답하자 드워프 지휘관이 흐음 하고 혀를 찼다.
“아랑기 왕국의 포로인가? 왜 이렇게 많이 잡아 왔어?”
“따뜻한 피를 소량씩 빨아내려고요. 그리고 알지 않습니까? 그리셀다의 딸들이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고작해야 인간 사내 한두 놈으로 제 허기를 채울 수 있겠습니까?”
“아, 그렇군. 그래. 크흐흐흐.”
잠깐 경계를 높였던 드워프 지휘관이었지만, 그도 니셀다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상상하고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좋아. 들어와! 아랑기 왕국 쪽 전선의 이야기도 듣고 싶군!”
드워프 뱀파이어들은 별 의심 없이 아자딘 일행을 관문으로 끌어들였다.
*********
부서진 잔해들 안쪽으로 들어서자 이제 화승총의 사격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 순간 아자딘은 일행들에게 신호하고 자신도 잽싸게 움직였다.
제일 먼저 가장 가까운 드워프 뱀파이어의 목을 청의 처형인으로 강타한다. 그와 동시에 그림스로운의 곤봉으로 말뚝을 만들어서 뒤에 있는 뱀파이어의 심장을 꿰뚫었다.
“뭣?!”
“하, 함정이다!”
드워프 뱀파이어들이 반항하려 했지만, 니셀다가 드워프 뱀파이어를 공격하고 버나드가 주문을 시전해 피의 거미들을 만들어 내 뱀파이어들에게 붙였다.
지벡도 검을 휘둘러 드워프 뱀파이어들의 팔다리를 잘라 그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크윽! 이 자식들이!”
다만 드워프 지휘관은 뱀파이어가 되기 전에도 드워프 소서러였는지 그림자 도약 주문을 사용해 약 10장 정도의 거리를 단숨에 이동해 빠져나갔다.
“침입자다! 침입자! 경보! 경보를 울려….”
그러나 그 순간 드워프 지휘관의 머리에 화살이 꽂혔다.
“음?!”
아자딘은 드워프 지휘관을 향해 활을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그가 쏜 화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화조풍월, 황학!
화살에서 마력이 폭발하며 드워프 지휘관의 머리를 돌맞은 수박처럼 터뜨렸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또 다른 화살 한 발이 니셀다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만!”
아자딘은 날아드는 화살을 도중에 잡아채어 막았다.
“그녀는 우리 편이다. 공격하지 마!”
“그런가요? 저는 또 그냥 흡혈귀인 줄 알고.”
화살 공격을 감행했던 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철거된 건물의 잔해 속에 숨어있던 전령일족이었다.
월각궁을 뒤에 비끄러매고 손가락에 활깍지를 끼고 있는 젊은 여성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며 나오는데, 움직임이 너무 매끈해서 사람이 걸어나온다기보다는 무슨 연체동물이 움직여서 사람 형상으로 빚어진 것 같았다.
“제니스?”
“저, 전령일족?!”
에디르는 전령일족이 나타나자 흠칫 놀라서 칼을 뽑으려 했지만, 지벡이 그를 제지했다.
“간만에 뵙는군요. 아자딘. 그동안 명성은 익히 들었답니다. 최근에는 나이산도카르의 변경백이 되었다고 하지요?”
전직 24령의 전령 제니스, 과거 아라엘의 부하였던 꽃의 디미아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깍듯하게 아자딘에게 예를 표하고 아자딘의 동료들에게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은 우리 주인, 아라엘 님의 화신. 당신을 아라엘 님을 대하듯 대하라고 하더군요. 제 주인의 남동생분이시니 그에 합당한 존경을 바칩니다. 아자딘 백작.”
“아라엘을 대하듯 대하라니 누가 한 말이지?”
제니스가 말없이 한 방향을 가리키자, 건물이 부서지고, 그 밖으로 뱀파이어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적색 광선이 뱀파이어들의 등을 관통했다.
“커윽?!”
뱀파이어의 몸에서 핏빛 나비가 피어올라 솟구치기 시작했다.
“오, 혈마법….”
버나드가 그 마법을 알아보고 놀라워했다.
상당한 수준의 혈마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뱀파이어들의 육체에서 피의 나비를 피워내지는 못 하리라.
나비는 뱀파이어의 몸을 마치 고치처럼 찢어발기고 날아올랐다.
“제 언니요. 마침 함께 와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