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55
354. 왕의 예언 2
뱀파이어들의 시체를 뒤로한 채 부채와 활을 든 미녀가 걸어 나왔다.
화조풍월의 4인 중 꽃의 디미아, 아라엘의 최고 심복 중 한 명이었다.
“어머. 아자딘 백작. 의외의 장소에서 뵙는군요.”
“오래간만이군. 잘 지냈나? 어째서 다들 날 백작이라고 부르는 거지?”
“아랑기 왕국에서 변경백의 지위를 내리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걸 어떻게 아냐고.”
“저희는 현재 아랑기 왕국의 용병으로 지내고 있으니까요. 아랑기 왕이 변경백으로 당신을 임명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달려가고 싶었답니다. 실제로 세라프는 당신에게 보냈는 걸요? 아마도 길이 엇갈린 모양이로군요.”
디미아가 그리 말하고 손짓하자 인딤도 모습을 드러내었다.
“인딤도 와있었군?”
“그렇다. 세라프와는 길이 엇갈렸나. 음….”
인딤은 아자딘을 보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부끄러워하는 모양이었다.
“아이참. 왜 부끄러워하는 거람? 인딤?”
“아니, 이건 그럴 일이 있어서….”
아라엘의 모습에 집착하던 인딤은 약간의 시그널 차이로 인해서 아자딘과 오해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아자딘은 그런 인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인딤. 아랑기 왕국에 고용되었다고 했지? 어떤 임무를 하달받았지?”
“지금 아랑기 왕국은 뱀파이어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놈들은 왕국 곳곳의 가도를 공격해 도시 간의 연결을 끊어놓고 있지. 우리들은 그 적들의 공세 흐름을 파악하는 척후로서 고용되었다.”
정규군을 들이부은 전쟁은 아랑기안 가드들의 활약으로 인해서 무산되었다.
아무리 드워프 소서러들과 사교도가 섞인 마법사 부대라 해도 정예로 소문난 아랑기안 가드들과 평지에서 맞닥뜨리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뱀파이어들이 비정규전으로 돌아서자 아랑기 왕국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도시는 식량과 물자를 공급받아야 성립할 수 있다. 핌불베르트가 다가와 더더욱 많은 물자를 필요하는 이 시대, 뱀파이어들의 비정규전은 아주 효과적인 전략전술이리라.
“아랑기안들이 편견없이 너희들을 고용했던가? 어떤 연유로 고용되었는지 궁금하군.”
“원로원의 요원들이 각지의 왕족, 귀족들을 무차별로 죽이고 있다. 북제의 부하들이 그런 암살에서 지켜주겠다며 각지의 왕족들에게 충성 서약을 받고 있지. 왕의 교회가 왕중왕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칭호를 댔으니, 북제의 호위를 받아들이면 왕들조차 북제에게 꼼짝 못 하게 되는 거지. 그게 싫다면서 아랑기의 재상이 우리에게 접근했다.”
“재상?”
“오래전부터 우리 아라가사들과 거래하던 자라서 우리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 우리들이 원로원과 다른 세력이라는 걸 믿어주었다. 우리도 돈과 음식이 필요하고.”
“흐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랑기 왕국은 오래전부터 전령일족들과 거래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자딘에게 변경백의 지위를 제수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라가사들에게 상당히 편견이 적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라가사 출신인 아자딘에게 아랑기 왕국은 좋은 안식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리는 없지. 이런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원로원과 거래를 해왔다면… 야에가스 신족으로서 상당히 불근신하군.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이들일 수 있어.’
아자딘이 아라가사이긴 하지만 아랑기 왕국이 아라가사들과 거래했다면 믿을 수가 없다. 북제가 북방 아라가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도 의심이 들었는데, 당연하지 않은가?
“여기 뱀파이어들을 죽인 건 너희들인가? 전부 다?”
“아니, 우리가 오기 전에 이미 이만큼 줄어있었다. 저 드워프 뱀파이어들은 전초기지의 물자들을 지키기 위해 남긴 연락책일 뿐이다.”
즉, 반릉의 뱀파이어들은 여기까지 전초기지를 건설한 다음에 무슨 생각에서인지 병력을 빼냈다.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콕스할에서 병력을 뺐을까? 뱀파이어를 좀 남겨뒀어야 심문도 하고 그러지.”
“우리도 원래는 조용히 죽이면서 저쪽 관문의 뱀파이어들을 남겨두려고 했어. 아자딘 네가 와서 일이 꼬였을 뿐이다.”
인딤은 아자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때 디미아가 끼어들었다.
“아자딘. 물론 우리들은 처음부터 뱀파이어를 납치해서 심문했고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
인딤은 정보원으로서 훈련받는 와중에 받은 스트레스 탓인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밥 먹듯 거짓말을 일삼았다.
그런 인딤의 거짓말을 디미아가 바로 밝혀버린 것이다.
“그래? 어떤 일인데?”
“니스라프.”
인딤이 짧게 대답했다.
“니스라프라면 구난기사단의 기함 말야?”
“그래.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니스라프에 타고 반릉 토벌에 나섰어.”
“아무리 니스라프라고 해도 네더스트롬을 뚫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리고 이런 겨울 바다에 배를 띄우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목성의 시대가 다가오면 안다즈 내해에 위치한 네더스트롬의 소용돌이가 약해지고 소용돌이 밑에 봉인되어 있던 네더의 신들의 현세 간섭이 강해지게 된다.
그것이 이 환란, 핌불베르트의 원인이지만 네더스트롬이 약해진다 해도 겨울 바다는 거칠다. 어촌 마을이 사교도 변이체들의 습격으로 파멸한 것을 보면 바다로 이동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지 않을까?
즉, 필연적으로 니스라프는 해안, 연안을 따라 항해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이곳 콕스할 근해도 지나갔을 것이다.
“셀레스철 파이어가 반릉 왕국으로 향했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야. 셀레스철 파이어가 활약을 해줘야 구난기사단과 북제가 세계를 통합하는 데 유리해질 테니까. 그런데…..”
아자딘은 디미아와 제니스, 인딤을 바라보았다.
“북제가 정말 너희들에겐 별 제안을 안 했어? 그자의 성격상 접촉이 없었을 리는 없는데? 어쩌면 아랑기 왕국의 제안 이전부터 그와 만났다던가. 아니, 아라엘이 살아있을 때부터 접촉했을 수도 있겠군?”
아자딘이 질문하자 디미아와 인딤, 제니스의 표정이 변했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질문이었나보다.
“역시… 사실이로군.”
그러자 지벡과 버나드, 그리고 니셀다가 아자딘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서 몸으로 벽을 세웠다.
아무리 이들이 전령일족 아라엘 지파, 아자딘을 아라엘의 후신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이들이라 해도 북제의 입김이 닿아있다면 언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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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짓 하지 마라. 네놈들 따위가….”
인딤은 아자딘의 부하들이 감히 자신을 막아선 것을 보며 코웃음 쳤다.
“인딤, 괜히 쓸데없는 도발 하지 마세요. 아자딘. 우리는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북제와 교섭한 적은 있지만, 아직 그의 휘하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아직까지 말이지?”
아자딘이 반문하자 디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북제의 제안이 너무나 매혹적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디미아는 심호흡을 하며 물어보았다.
“아자딘, 당신은 궁극적으로 뭘 원합니까?”
“북제에게 받은 제안이 정말 달콤한 것이었나 보군. 나에게 그런 걸 물어보다니.”
“북제가 새로운 황제가 되면 우리들을 전령일족으로 복권해 주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아라엘 님이 계실 때는 헛소리라 생각했습니다만….”
“물론 북방 아라가사들과 경쟁해서 새로이 전령을 뽑아야겠지만….”
전령일족의 재건, 황제의 전령으로서의 복권.
북제는 그것을 미끼로 화조풍월의 4인들, 본래 아라엘 지파였던 이들을 포섭한 것이었다.
그것이 너무나 달콤한 것이어서 그들 모두 참지 못할 것이다.
아자딘만 해도 전령일족을 재건해 주겠다고, 황제의 전령으로 복권해 주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설렜으니까.
북제에 대해서 충분히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아자딘조차 이럴진대 다른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선 바로 북제가 내민 손을 잡지 않은 것에 대해서 칭찬해 줘야겠네.”
“당시의 북제의 제안은 헛소리였거든요. 하지만 지금 그는 왕중왕이라는 이름으로 왕의 교회에게 사실상 황제로서 인정받았습니다.”
북제가 아직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 그의 제안은 과대망상증 환자의 헛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왕의 교회가 그를 왕중왕이라 선언하고, 구난기사단의 지혜 교단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금, 코헨 라이오네어가 황제에 가장 근접한 자라는 걸 부정하는 자는 없었다.
“웃긴 놈들이지. 우리를 황제추종자라고 이 잡듯이 잡아 죽이려고 했던 놈들이….”
인딤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왕의 교회에 대한 불만을 내뱉었다.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태도 때문에 무고한 이들을 도륙했단 말인가?
“그래서 아자딘.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비전을 가지고 그 거대한 군벌을 운용하고 있는 겁니까? 북제와 손을 잡지 않고 따로 행동하는 것은 분명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
아자딘은 자신을 꿰뚫고 있는 디미아의 시선을 따갑게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북제가 사실 스승을 살해했다거나, 천사상을 파괴해서 추출한 피를 이용해 자신의 추종자들을 셀레스철로 환생시킨다는 이야기는 해봤자 무의미하겠군.’
그것 하나하나는 북제의 진의와 사람됨을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지만, 북제의 성품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북제의 험담을 듣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희망을 품고 싶어 한다.
아자딘이 제시할 비전이 북제의 그것과 비슷한 이후에나 북제에 대한 험담이 의미가 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아자딘의 비전이다. 자신들의 희망이 되어줄.
아자딘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갑자기 파하핫 하고 웃었다.
“무슨?!”
“우선 고맙군. 디미아. 본래라면 무안의 아자딘이라 불리던, 아라가사에서도 떨거지 신세였던 나와 어산더의 왕 코헨 라이오네어를 같은 저울에 두고 평가하다니 말야.”
“저희는 아자딘, 당신을 아라엘의 유산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기왕이면 아라엘의 유지를 이어받은 당신에게 충성을 바치고 싶어요. 당신이 제시하는 비전이 합당하다면 말이지요.”
“그래. 그런 식인가? 좋아. 이야기하지.”
아자딘은 심호흡한 뒤 선언했다.
“나는 야에가스의 팔왕좌를 차지한 뒤, 구난기사단의 인도자이자 황제가 되려 한다. 북제와는 경쟁자가 되겠지!”
“!!!!!!!!!”
“오오!”
“…….”
“아….”
아자딘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있던 니셀다와 버나드는 아자딘의 발언에 기뻐했고, 왕의 교회와 야에가스 신족에게 충성하는 지벡과 에디르는 아자딘의 발언에 흠칫 놀랐다.
아자딘이 왕위를, 아니 아예 황제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디미아와 인딤이 그토록 바라던 발언이었다.
아라가사 혈통의 황제!
휘브리스 인들에게 박해받던 아라가사들에게 이것 이상의 보상이 또 있을까?
하지만 아자딘은 피식 웃으며 사족을 붙였다.
“….라고 말하면 너희들도 만족하겠지.”
“!”
“………”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아자딘에게 예를 갖추던 디미아도 표정을 찡그렸고 인딤은 참지 못하고 칼을 빼 들었다.
“장난해!?”
인딤이 검은 번개가 되어 아자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