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57
356. 왕의 예언 4
“알겠습니다. 그럼 아자딘 백작… 이후에는 어쩌실 겁니까?”
“콕스할에서 물자를 보급하고 콕스할의 아케나르 주교의 흔적을 따라 반릉으로 향할 예정이야. 현재 반릉에는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공격을 가하고 있겠지? 이건 내 에란트리 퀘스트인데, 만약 아케나르 주교를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게 빼앗기게 되면 내 경력에 흠집이 가니까.”
에란트리 퀘스트 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긴 하나, 아자딘은 자기 경력에 완벽함을 도모하고 싶었다.
북제가 셀레스철 파이어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려 한다면 아자딘은 완벽한 성과로 사람들의 이목을 모아 대항해야 했다.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당신의 명령대로 일단 북제의 휘하에 잠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어? 아랑기 왕국 재상에게 고용되었다면서?”
“어차피 단기 계약이었으니까요. 계약 내용 이상으로 보답해 주었으니, 그쪽도 불만은 없을 겁니다.”
“그럼 물자가 있는 곳을 안내하지요.”
디미아와 제니스는 이미 콕스할 곳곳을 뒤져보았는지 아자딘 일행을 물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반릉의 뱀파이어들이 이곳으로 물자를 옮기기 위해 사용한 마차, 식량과 장비들이 비축된 창고였다.
“여기서 반릉까지는 길이 잘 닦여있어서 마차로도 오갈 만할 겁니다. 드워프 뱀파이어들도 이것을 이용해서 물자들을 실어 날랐거든요.”
“그래? 정말 급하게 빠져나갔나 보군. 물자들이 상당히 많이 남았는데.”
아자딘은 전초기지에 남은 물자들을 보고 일단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
아자딘 일행은 콕스할에서 하루하고 한나절을 더 보냈다. 그동안 말을 먹이고, 숫돌로 칼과 화살촉을 갈면서 휴식을 취했다.
긴 여정에 쌓인 피로가 하루 반 정도 쉬었다고 풀릴 리 없지만, 이틀 이상 콕스할에서 허비할 여력은 없었다.
다행히 버나드의 혈마법이 피로회복에도 많은 도움을 주어서 일행들은 많은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금 반릉의 심장으로 향할 때가 다가왔다.
아자딘은 작별 전에 디미아와 제니스, 인딤에게 충고했다.
“북제의 밑에 가면 주의해라. 솔직히 말해서 북방 아라가사가 어산더 왕국에 오랫동안 충성해 왔는데, 이제 와서 아라엘 지파 떨거지들이랑 공정한 경쟁으로 파이를 나눠 먹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북제의 밑으로 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무리해서 그들의 휘하에 들어가지 말고.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빠져나와서 산도카르나 차드라로, 내게로 오도록 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더욱 뵙기 부끄럽겠군요.”
디미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포함해 그녀의 여동생도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인재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동세대에서 누구도 따를 길 없다고 평판이 자자했던 그들이 낙오자 아자딘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아자딘 백작. 그럼 또 뵙도록 하지요.”
디미아와 제니스, 인딤은 아자딘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 물러났다.
“그럼… 허허. 폐하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아자딘 백작님?”
버나드는 전령일족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짖궂게 아자딘에게 웃어 보였다.
“폐하는 무슨. 평소대로 불러. 에디르! 마차는 당신에게 맡기지. 몰 수 있지?”
아자딘은 에디르에게 마차를 몰게 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어우. 너무 놀라서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는군요.”
지벡보다 더한 왕의 교회 신자인 에디르는 자신의 눈앞에서 불경한 말들이 오고 가는 걸 감당할 수 없는지 몸을 떨고 있었다.
지벡이 그런 에디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왕의 중재를 사용할 수 있었지요?”
“그래.”
“신왕진서의 마법입니까?”
“맞아.”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마도서의 사본은 마력 코어로 만들어 브투마의 왕좌에 도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아자딘의 몸 안에는 이미 그가 이해한 마도서의 지식, 그리고 아라엘이 이해한 신왕진서의 지식이 남아있다.
“유형의 마도서는 제거되었지만 무형의 지식이 남아서 당신을 변이시키고 있는 거로군요. 왕이 왕좌에 앉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요. 그건.”
대관식을 치른 정당한 야에가스의 왕이 왕좌에 앉으면 신왕진서의 지식이 그에게 흘러 들어가게 되고, 평범한 야에가스 혈족이던 이가 비로소 ‘왕’이라 불릴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아자딘은 신왕진서 사본을 모으는 과정에서 어느새 그런 왕좌의 의식과 비슷한 것을 치른 셈이다.
“달갑지 않은 일이지.”
아자딘은 쓱 코를 훔쳤다. 코피가 또 흘러나오고 있었다.
“…….”
아자딘은 대충 그 피를 망토에 쓱쓱 문질러 닦고 마차에 앉았다.
덜컹거리는 마차가 눈보라를 뚫고 앞으로 나아간다.
*********
반릉 왕국의 심장부로 가는 행위는 광기의 심장으로 기어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길가에는 혈신 아샤지트의 권속들과 사교도 변이체들이 돌아다니고, 번개가 칠 때마다 거대한 검은 그림자, 혈신 아샤지트의 모습이 사방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성 있는 존재는 그 끔찍한 모습을 보기만 해도 절규하고 싶어지리라. 구름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혈신 아샤지트의 그림자가 온 세상에 드리워지면 저런 것과 인간이 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
왜 수많은 사교도가 인간이길 포기하고, 네더의 권속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나 거대한 존재를 앞에 두면 인간으로서 독자적인 영혼과 자아를 유지하기보다는 차라리 저 거대한 것의 일부가 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광기를 목도하면서 마차를 모는 것은 죽을 맛이었다.
에디르는 지금 당장이라도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벡을 포함해 아자딘의 부하들, 그리고 아자딘은 대수롭지 않게 그 광기의 심장을 향해 나아간다.
“두려운가?”
“네… 솔직히 말해서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거 네더스트롬에 봉인되었다는 옛 사신 아닙니까? 저렇게 큰 것과 싸웠다니 우리 선조들은 대체….”
왕의 교회의 충실한 신도인 에디르는 네더의 사신 아샤지트의 그림자를 본 순간부터 한시도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도 두렵네. 하지만 지금 두려움에 밀려서 여기서 물러나게 되면… 저것은 더더욱 커져 이윽고 온 세상을 뒤덮겠지.”
“아니 저런 걸 해결하는 게 가능합니까?”
“가능해. 실제로 해결한 적이 있으니까….”
뒷좌석에서 쉬고 있는 아자딘이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됩니다.”
아자딘은 자신이 해결한 적이 있다고 말한 것이었지만, 에디르는 그저 과거 고대 시절에 해결했기에 지금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때 니셀다가 에디르를 보며 노기를 드러냈다.
“아자딘 백작님이 황제가 된다면 지금 그건 감히 왕, 아니 황제의 말에 토를 단 불경한 행동이야. 아자딘 백작께서 말씀하시는 데 뭐가 불만이지?”
“…그만 해, 니셀다.”
아자딘은 니셀다를 말렸다.
니셀다는 한평생 그리셀다를 원망했다. 하지만 감히 그리셀다에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그리셀다의 하수인에 불과한 드워프, 차샨과 싸우며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자딘이 차샨은 물론, 그리셀다마저 꺾고 그녀에게서 아샤지트의 눈을 빼앗은 것은… 그동안 반신반의하던 니셀다를 충성스러운 심복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자딘은 이미 신왕이나 다를 바 없으니, 그가 야에가스의 왕좌를 요구하는 건 정당한 권리였다.
물론 아자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열성적인 부하들이 더 까다로웠다.
흔히 있는 일이다. 부하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하고, 종국에는 이인자에게 조종당하는 군주.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통제하기 위해 아자딘은 지금까지 왕좌를 노린다거나, 자신이 황제가 되겠다든가 하는 야심 찬 발언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 아라엘 지파의 전령일족들이 기어이 아자딘에게서 황제의 자리를 노리겠다는 발언을 끌어낸 것이다.
“알다시피 전통적인 왕의 교회의 추종자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경한 발언이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말하긴 했지만, 본래 남들 앞에서 대놓고 말할 것이 못 된다. 괜히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지.”
“그렇군요. 그럼 저 종사를 처치할까요?”
니셀다는 에디르를 죽이자고 물어보았다.
“…….”
에디르는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확실히 여기서 입단속을 하자면 에디르가 죽어야 했다.
“저자를 살려두면 저자의 입을 단속하기 힘들어지오. 죄 없는 자를 죽이라 함은 지나치지만, 때로는 어리석은 것도 죽을죄가 되지.”
버나드도 에디르를 죽이자는데 은근히 찬성했다.
“그러면 북제가 둘 생기는 꼴이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아자딘은 에디르를 죽이자는 부하들의 말을 거부했다.
“하오나….”
“에디르가 설령 가서 이단심문관들을 불러오더라도 난 시치미 뗄 거다. 이단심문관들로는 내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헤아릴 수 없어. 이미 젝트에게도 시험해봤는 걸.”
왕의 교회의 이단심문관들은 다년간의 훈련과 마법을 이용해서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분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자딘은 신왕진서를 터득한 인물로 왕의 교회의 마법체계, 그 근본을 꿰고 있었다.
이단심문관조차 속일 수 있다. 아자딘이 자신감을 내비치자 니셀다와 버나드도 납득하는 눈치였다.
“그러시다면야. 하지만 아자딘 백작님. 때로는 가치 없는 자에게 자비를 주어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니셀다는 싸늘한 시선으로 에디르를 노려보았다.
“가치 없다고 할 것까지야. 음?”
아자딘은 에디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힉?!”
“마차 세워봐.”
아자딘의 명령에 에디르는 마차를 세웠다.
혹시 지금 죽여서 광야에 자신을 내다 버리려나? 에디르는 겁에 질렸지만 아자딘은 마차에서 내려서 길가의 마을 쪽으로 다가갔다.
광신도 변이체의 습격 때문인지 마을의 건물들이 부서져 있고, 가도에 인접한 상점들은 죄다 약탈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마을의 한복판에는 무너진 우물이 있는데 우물 근처에는 어스름 같은 인간의 그림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쳐져 있었다.
“헉?!”
아직 해가 나 있는 시간인데도 망령들이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자딘은 네크로맨시를 시전해 우물 밑에 마법을 걸었다.
우물에 떨어져죽은 시체들이 차례차례 우물을 기어오른다.
아자딘은 그렇게 우물을 기어오른 시체를 움직여 땅을 파 무덤을 준비하게 한 후, 사령술을 해제하고 구난기사단의 장례의식을 집전해 망령들을 이 세상에서 해방해 주었다.
참으로 기이한 장면이었다.
사령술로 시체들을 움직인 후 백색마력으로 그 영혼을 해방한다.
왕의 교회건 구난기사단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파계의 행위지만, 아자딘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자 우물 주위에 둘러쳐졌던 그림자 중 마지막 존재가 아자딘에게 다가와 아자딘의 앞에서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신과 천사들의 축복받으신 분이여. 이 땅의 왕 되실 분이여.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