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59
358. 사신 폭주 2
“괜찮으십니까? 혹시 어디 불편하시면 혈마법으로….”
버나드는 아샤지트의 눈을 손에 넣은 뒤로 혈마법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말들에게 먹일 마초가 부족하다니까
‘혈마법으로 만든 선지를 먹이에 섞어보면 어떻겠소? 마초나 콩, 귀리의 소모를 줄일 수 있을 거요.’
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가
‘그건 좀….’
‘뱀파이어화 한 말을 타고 싶지는 않습니다. 뱀파이어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거?’
‘그거 아샤지트의 눈에서 나오는 거잖습니까? 네더의 피 아닙니까?’
‘아무리 혈통 상의 아버님이라 해도 상식과 체통을 지켜주시지요. 딸인 제가 부끄럽사옵니다.’
이런 이유로 모두에게 제지당하고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그냥 신왕진서를 좀 정리하고 있을 뿐이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렇습니까?”
아자딘이 신왕진서를 언급하자 버나드도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아자딘이 신왕진서 사본을 습득해 신왕의 힘을 지녔고, 왕좌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그 사실이 버나드에게는 그렇게 희망적이었는지 눈앞에서 아샤지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험한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
버나드의 혈마법 덕분에 아자딘 일행은 별 어려움 없이 연합왕실의 직할령까지 들어왔다.
저 앞에 산의 심장, 반릉 왕국의 수도가 보인다. 그리고 반릉지방 일대의 거대한 광산 도시 인근의 바닷가에는 구난기사단의 깃발이 내걸린 요새들이 늘어서 있었다.
구난기사단의 정예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당도한 것이었다.
“으음… 혈마법을 풀겠습니다. 이 마법은 주위에 저희를 혈신 아샤지트의 권속으로 보이게 하거든요.”
버나드는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깃발이 걸린 요새를 발견하자 놀라서 혈마법을 해제했다.
자칫하면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게 사술을 쓰는 놈이라고 오인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혈마법을 쓰고 있으니 사술을 쓰는 놈 맞지.’
입장 난처해 질 일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혈마법을 풀자 잠시 후 요새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말에 탄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원들이 아자딘 일행의 마차를 향해 다가왔다.
기사 둘에 종사 넷이 말을 타고 다가와 아자딘 일행의 마차를 에워쌌다. 놀랍게도 그들의 선두에 선 기사는 일전에 한 번 보았던 아라미스경이었다.
아자딘이 칼린츠 왕자에게 통행증을 받고, 세인트 말로리로 향할 때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과 처음 만난 자리에 있던 분견대의 대장이었다.
“음? 아자딘 경?”
투구의 바이저를 들어 올리자 앳된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금발 벽안의 미소녀가 천진난만하게 아자딘을 바라본다.
“아, 오래간만이군. 아라미스경. 아니 별로 오래간만은 아닌가?”
“어쩐 일입니까? 여기에는….”
“에란트리 퀘스트를 받았거든. 콕스할 주교 아케나르 님을 구출하라는.”
“아. 에란트리 퀘스트 말입니까? 부럽군요.”
“음? 부럽다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그야말로 옛날이야기에서나 볼법한 기사담의 주인공 같습니다. 부럽습니다. 저희는 수련기사 경험도 길지 않은데, 다들 호스피탈러가 되어서.”
“…….”
누구는 수련기사로 시작해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명령받는데, 누구는 그냥 출생이 셀레스티얼이라고 해서 곧장 호스피탈러가 된다.
기사단이 노골적으로 그 혈통과 태생에 따라 차별하고 있다는 뜻인데도 아라미스는 오히려 아자딘을 부러워했다.
인생에 굴곡이 없이 호의만 가득한 삶을 살아왔으니, 차별받고 핍박받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옛날이야기의 영웅처럼 준비된 시련을 맞이하는 걸로 보이리라.
‘이 자식… 악의가 없군? 어쩌면 셀레스티얼의 전생의식이 실패해서 정신은 아이인 채 몸만 어른이 된 걸 수도?’
아자딘은 아라미스 경의 상태를 보고 셀레스티얼 전생의식이 계속 수정, 보완되어 온 것임을 눈치챘다.
“할 수만 있다면 바꿔주고 싶군.”
“그런.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자딘 경. 아자딘 경은 차드라 고원을 평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나이산도카르의 변경백이자 산도카르 백작에게 보호자가 되기를 요청받았습니다. 아자딘 백작이시지요.”
지벡은 아라미스경이 아자딘을 계속 그냥 경이라 부르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아자딘이 백작이 되었음을 명시했다.
“아. 아자딘 백작이 되셨군요. 나이산도카르와 산도카르라면… 엄청난 넓이의 땅 아닙니까?”
“뭐 지금은 소출도 안 나오고, 먹여 살려야 할 입만 늘어난 땅이지. 세금을 피해 도망친 화전민들과 마약 밀매조직에 순응하는 산적 같은 주민들이 득실거리는 황무지야.”
“그러나 영광된 일입니다.”
“그보다 콕스할 주교 아케나르 님에 대한 정보는 없나? 여기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상황이 어떻지?”
“안 좋습니다. 전사자가 발생했어요.”
“전사자?”
“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종사들과 병사들을 죽어도 기사단원들은 누구 하나 죽지 않고 각지의 임무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저희의 실력으로, 그리고 천사들에게 물려받은 천상의 힘으로 대처가 가능했었지요. 하지만 반릉에서는… 대포가 있더군요.”
보아하니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평소대로 자신들의 실력, 셀레스티얼이란 태생이 주는 힘을 믿고 덤벼들었다가 반릉의 화포에 맞고 큰 손해를 본 모양이었다.
셀레스티얼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아라미스경은 물론, 그와 함께 있던 셀레스티얼 기사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아자딘은 놓치지 않았다.
“아랑기안 가드들도 반릉을 함락하진 못했으니까.”
아자딘은 아랑기안 가드들의 예를 들었다. 아랑기 왕국과 반릉간의 매독 전쟁, 그때의 전훈을 무시한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 대한 은근한 비난이었다.
‘보아하니 그동안은 타고난 천사의 힘으로 잘 풀어나가다가 이제 와서 경험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군. 이거 참…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상층부는 다들 북제의 자식들 아니었어? 나름 군사 경험도 있을 텐데 이러네?’
게다가 셀레스티얼들의 죽음이 없었다고 안심하고 있었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자딘이 처음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과 함께 행동했을 때, 브리 군대와 싸울 때도 병사들과 종사들에서는 적잖은 피해가 발생했었다.
구난기사단에서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각지에서 정예병력을 뽑아서 대주었는데,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병력을 방만하게 운영하면서 종사들과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런 희생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다가 셀레스티얼들 사이에서 희생이 발생하자 이제야 무겁게 받아들이다니.
‘나에게 공손한 녀석들에게 이렇게 배알이 뒤틀리는 것도 문제인가.’
아자딘은 자신에게 공손히 대하는 아라미스 경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저희 요새로 오시지요.”
“요새는 어떻게?”
“니스라프의 함포로 공격해서 함락시켰고, 현재는 저희의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반릉 항구 안쪽은 해안포대가 설치되어서 들어갔다간 니스라프도 위험하겠더군요.”
“그래? 그건 다행이네.”
“네?”
“아니, 들어갔다가 니스라프가 위험해졌을까 봐.”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의 유서 깊은 유물인 니스라프가 반릉의 해안포에 맞고 침몰하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지요! 니스라프 같은 명품을 후대에 남기지 못하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행히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합니다!”
아라미스가 아자딘이 니스라프를 소중히 여기는 기색을 보자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 그게 좀.”
아자딘은 문득 아라미스가 상당히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이스마일 녀석은 참 귀염성이 없었지.’
문득 이스마일이 생각났다.
*********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장악한 해안 요새는 반릉 항구의 진입로를 막는 제1번 해안포 요새로 많은 병사가 주둔하기엔 좋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셀레스철 파이어는 니스라프에 함포를 탑재하고, 그 함포로 이 요새를 침묵시킨 후 이곳에 물자를 내려 야영지를 만들었다.
특이하게도 요새 안에 병사와 종사들이 주둔하고, 밖에 기사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건?”
“아, 셀레스티얼들은 추위를 덜 타서. 바닷바람을 피해 사람들을 안에 배치했습니다.”
“그래?”
또 이런 걸 보면 셀레스티얼들의 근본이 나쁜 건 아니다. 보통 기사들은 종사나 병사들을 위해 안락한 자리를 양보한다는 개념이 없으니까.
아자딘은 그 모습을 보고 문득 물어보았다.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는?”
“아, 그분은 저희 기사단의 후견인이십니다. 물자와 자금, 병기를 지원해 주시죠.”
역시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단원들은 북제에게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보아하니 북제 본인이 직접 이곳에 온 것 같지는 않다.
그때 또 다른 셀레스티얼 기사다 아자딘에게 다가왔다.
이즈밀라였다.
“아자딘 경! 여기서 뵙게 되다니!”
“아, 이즈밀라 경.”
“어쩐 일로 여기 오셨나요? 설마 저희가 발이 묶였다는 걸 알고 돕기 위해서….”
“음. 에란트리 퀘스트 때문인데.”
“아, 에란트리 퀘스트!”
이즈밀라가 감탄했다.
“멋지군요. 역시 아자딘 경.”
“…….”
이즈밀라도 에란트리 퀘스트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셀레스티얼 역시 아자딘을 동경하고 있었다.
“아, 아자딘 경이다.”
“저 사람이? 잘생겼네. 생각보다 엄청 젊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시선이 아자딘의 피부를 간지럽게 했다. 다들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아자딘이 전령일족 태생이긴 하지만,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 대부분이 아직 전생의식이 완전하지 않을 때 태어난 백지 같은 존재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고위 성직자들의 밑에서 구난기사단의 순수한 이념만을 주입받은 이들인지라, 아자딘을 차별하지 않고 그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볼 뿐이다.
하지만 그들 안에도 적개심이 담긴 시선이 있었으니… 비교적 전생의식이 안정된 이후 태어난 이들, 북제의 자식들이었다.
“아자딘 경, 아니 이제 아자딘 백작이시지요. 나이산도카르의 변경백.”
막사에서 트리오다나와 카르나가 걸어 나왔다. 셀레스철 파이어의 단장인 카르나와 지혜 교단의 셀레스티얼인 트리오다나는 겉으로 보기에 피부색 외에 크게 다를 게 없는 쌍둥이.
둘 다 후반부에 전생의식이 안정된 이후 태어난 셀레스티얼이다. 북제의 의지를 구난기사단에 투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두 사람은 북제의 의향과 달리 독자적으로 명성을 얻어 구난기사단 내에 큰 세력을 형성한 아자딘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 아자딘 경이 백작이라고?”
“나이산도카르가 어디지?”
아랑기 왕국이 포기해서 방치되었던 변경지방이지만 지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아자딘이 백작이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단해!”
“우리 구난기사단에 크나큰 영광이야.”
셀레스티얼 기사들은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의 수련기사이면서 백작이 되고, 에란트리 퀘스트를 받았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
그야말로 적수공권으로 자수성가하는 영웅담이 아닌가?
‘아니, 이런 반응을 기대했던 게 아닌데.’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는 셀레스티얼들의 반응에 당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