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6
35. 흑마법 재해 6
미디암은 아라가사의 명가, 에타르 일족의 일원으로 휘브리스 백성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아자딘의 말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백성을 수호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설령 그것이 아라가사에게 적의를 품은 민중들이라고 해도 무력한 이들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전사 귀족의 귀감. 굳이 전사 귀족이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그게 올바르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았지.’
아라가사의 입장만 생각할 뿐 누구도 그 너머의 미덕이나 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사실 미디암은 이미 아자딘을 어느 정도 존경하고 있었다.
만약 아자딘이 그 철학을 장식할 말재간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존경심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그만하십시오, 아가씨.”
이스마일이 투덜거렸다.
“굳이 무리해서 그런 자를 살리고 용서할 필요 없습니다. 죽여야 해요. 흑마법 재해를 일으킨 자를 살려두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존경이라니….”
이스마일은 질투심으로 미칠 것 같았다.
미디암에게 존경?
미디암은 또래의 다른 누구도, 아니 나이 있는 이들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왜 이 눈도 없는 배반자의 핏줄, 저주받은 아자딘에게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지, 그리고 왜 아자딘은 그렇게나 미디암을 귀찮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관심을 저 정도로 받을 수만 있다면 이스마일은 영혼조차 팔 수 있을 텐데!
“너희들이 날 존경하건 말건 그건 상관없다. 할 수 있는 걸 해볼 뿐이지.”
“그래서 저희의 정체를 계속 감추실 겁니까? 활을 쏘지 말고 있을까요? 무력한 휘브리스의 어린아이처럼 짐짝 노릇이나 하란 말입니까?”
“그건 아니다.”
아자딘이 창고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이걸 쓰자.”
아자딘이 꺼내온 것은 마을 사람들이 쓰던 사냥용 활이다. 전령일족의 활인 월각궁에 비하면 장력이 약한 것들로 13세의 소년 소녀들이 다룬다 해서 이상할 것 없는 무기다.
“음, 이걸요?”
“그래, 준비하자.”
“뭘 말입니까?”
“당연히 방어전이지. 우리가 숲이나 늪에 들어가는 건 멍청한 짓이니 여기로 적을 유인하자.”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화살이 많이 필요하겠군. 이 마을 사람이 쓰던 화살들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몰라. 그럼 간만에 활에 왁스도 먹이고 화살이나 만들어 볼까?”
“윽. 화살 만들기 싫은데.”
미디암이 귀찮아했다.
“흠, 그래도 너희들 월각궁에 왁스 먹일 때가 되었지? 꾸준히 관리 안 해주면 활이 터진다?”
전령일족의 활은 다른 활들보다 작으면서도 강력하다. 하지만 관리와 유지보수가 그만큼 힘들다. 적어도 주에 한 번은 왁스를 먹이지 않으면 활 자체가 메마르다가 폭발하듯 부러져 버리는 것이다.
아자딘은 불을 피우고 앉아서 보급품을 꺼냈다. 화살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다. 실과 깃털들, 여기에 제재소에서 구한 나무를 가져와 다듬기 시작했다.
면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게 갈린 손도끼로 나무를 쪼개어 화살대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화살대를 불에 구워 남아 있는 수분과 수액을 말린다.
“준비해라.”
“네.”
종사인 이스마일이 기름빗으로 그들이 데려온 케림 산양의 털을 빗긴다. 산양 털에 있는 피지, 왁스 에스테르를 채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채집한 것을 철판에 털면 벼룩, 이, 먼지 등이 함께 떨어지는데 아자딘은 불에 그슬린 나무를 그 위에 대고 굴리면서 벼룩과 이 등을 터뜨려 죽이고 왁스 에스테르를 화살대에 골고루 먹여 다시 불에 그슬려 가며 다듬는다. 이렇게 해서 화살대를 만든다.
“다음.”
아자딘은 만들어진 화살대를 미디암에게 건넸다. 미디암은 화살대 끝을 가늘게 쪼개고 깃털을 박은 뒤 실을 감아서 조이고 동물이나 생선 뼈로 만들어진 물미를 끼우려 했다.
“물미는 쓰지 마. 실로 마무리해라. 아껴야지.”
“하지만 그럼 화살이….”
“어차피 생목으로 화살대를 만들어서 오래 지나면 말라비틀어진다. 화살촉도 철전촉을 쓸 거야. 이번 방어전에 다 쏟아부을 거다. 말라비틀어지기 전에 다 쏴 버릴 화살이니까 고블린 화살보다 살짝 품질이 좋은 정도면 족해.”
철전촉은 화폐로 쓰이는 철전을 말한다. 팔왕국의 경화(硬貨) 중 철전은 쇠를 부어 만든 유엽전(楡葉錢)으로 화살로 쓸 수 있었다.
전쟁이나 위급할 시 화살로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화살을 쓰는 이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탁상공론이었다.
돈으로 쓰기 위해 사용하는 철전은 불순물이 많은 잡철이다. 그걸로 대충 모양만 흉내 낸 화살촉은 관통력이 떨어진다. 갑옷 없는 상대를 해치는 데는 부족함이 없으나 갑옷을 입은 이들에게는 화살촉이 부러져 별 쓸모가 없으리라.
게다가 유엽전 상당수는 유통과정에서 닳고 휘어져 화살촉으로 쓰려면 튼튼하고 좋은 것을 따로 선별하여 사용해야 했다.
“산양은 다 빗었습니다.”
이스마일은 필요한 만큼의 왁스 에스테르 채취를 끝내고 냉큼 미디암에게 다가왔다.
“그럼 너도 화살촉을 달렴.”
아자딘은 이스마일에게 화살촉을 달게 했다. 셋 다 명궁으로 유명한 전령일족답게 화살 만드는 데도 익숙해서 순식간에 모두의 전통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화살을 만들어냈다.
아자딘은 화살을 다 만들고 나서는 남는 왁스 에스테르를 월각궁에 먹였다.
“좋아. 그럼.”
아자딘은 다듬은 목재에 할버드 머리를 장착했다. 경비대장의 할버드 머리를 장착하고 물미를 씌우고 남는 왁스를 바른 후 불에 슬슬 구워가면서 왁스가 고루 배어들도록 한다.
*********
아자딘과 이스마일, 미디암이 화살을 만들고 활을 정비하는 동안 다른 일행들은 마을의 목재, 가구 등을 모아 방벽을 강화했다. 제재소 마을 울타리를 전부 지키는 것은 무리니 집과 창고, 건물 등을 방어선으로 정하고 창문으로 적들이 쉽게 침입하지 못하도록 장애물들을 옮기는 작업이었다.
“단순한 순례자는 아닌 것 같군요.”
카카는 아자딘이 설정해준 방어계획에 따라 가구를 끌어내 배치하면서 감탄했다. 마을 어느 방향에서 적이 쳐들어오더라도 집과 창고들, 이미 있는 건물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가구나 쓰레기더미를 깔아 둔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죠, 그 사람은? 역시 과거에 큰 죄를 지어서 순례하는 사람인가요?”
“나도 잘 몰라.”
타르키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전령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죄송하군요. 본래는 제가 지휘를 해야 하는데.”
살라스마의 주무관 메이야는 성기사인 자신이 제대로 된 지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숲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엉?
와이번의 소리였다. 그리고 제재소 남쪽 입구에서 안개를 뚫고 상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르르르.”
“크우우.”
상인들과 그 경호원들은 어느새 언데드가 되어 있었다. 제재소 남쪽 길로 떠났던 그들이 마물들에게 습격당해 몰살당하고 언데드가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
“빠르군.”
아자딘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상인 집단이 몰살당했다는 것에 혀를 찼다. 상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같이 있던 용병들, 모험가들은 그리 만만한 인물들이 아니었을 텐데.
“자, 그럼 모두 전투 대형으로!”
아자딘은 타르키와 카카, 치코 남매, 그리고 성기사 메이야에게 단창을 들려주고 앞에 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활을 들고 창고 건물 안에 섰다.
상인과 모험가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언데드가 마을 입구 방벽으로 들어온다. 하늘에서 갑자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하. 당신들 제법 재밌는데?]놀랍게도 와이번이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상황을 만든 술자가 와이번의 몸을 빌려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리라.
‘어차피 언데드나 다른 생물을 조종할 수 있다면 와이번처럼 하늘을 나는 놈을 조종하는 게 편하겠지. 시야도 확보되고 이동도 편하고.’
아자딘은 와이번이 바로 저 여성의 빙의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빙의체가 가까이에 있으니 대화를 걸었다.
“당신이 이 마을을 몰살한 전령일족인가?”
아자딘이 물어보자 목소리가 의아해했다.
[뭐? 그건 어떻게 알았지?]“상인들이 말하더군.”
[그래. 그 자식들이 날 노예로 만들고 내 모든 것을 짓밟았지! 내가 전령일족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날 영혼 없는 돌멩이 취급했어!]“당신은 살아 있나?”
[당연히 살아 있지!]그렇게 말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망령들도 자신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기에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힘은 어떻게 얻었지?”
[내가 왜 그걸 말해줘야 하지? 알고 싶다면 내가 부리는 언데드가 되시지. 그럼 싫어도 알게 될 테니까!]“우린 당신을 학대한 놈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적대할 건가?”
[닥쳐! 너희들만이 영혼을 가졌고, 내가 영혼 없는 길가의 돌멩이 같은 거라면 난 너희들의 영혼을 짓이겨 버리는 걸 사명으로 삼겠어! 잘나신 휘브리스인들! 네놈들의 영혼을 고통으로 물들일 거라고!]아무래도 이 술자는 전령일족이라는 이유로 노예 취급받고 학대당한 것에 대한 불만을 휘브리스 백성 전체에게 풀 생각인 것 같았다. 같은 전령일족인 아자딘으로서는 많이 억울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디암이 아자딘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저희가 전령일족이라는 걸 밝히면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저 성기사는 어쩌고?”
“죽여야죠 뭐.”
“성기사를 죽이면 저 타르키의 이복형제들은?”
“그들도 뭐 어쩔 수 없죠?”
“아, 미디암.”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목숨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되는 거란다. 설령 왕의 교회의 성기사라 해도 말이지.”
“오, 맙소사. 그거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듣고 있던 이스마일이 경악했다.
“그럼 무슨 뾰족한 수가 있나요?”
“뭐 본인이 강자가 모든 걸 다 가져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자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누가 강자인지 알려줘야지.”
모험가들과 상인들의 시체가 제재소 마을 입구에서부터 창고를 향해 접근해 온다. 아자딘은 화살을 집어 들어 활시위에 걸었다.
“너무 멀지 않아요? 좀 더 끌어들인 뒤에 쏴야….”
메이야가 좀 더 적을 끌어들인 뒤 쏘자고 했지만 아자딘이 답했다.
“그러고 싶은데 너무 많아요. 우리에겐 공간이 곧 방벽입니다. 공간을 잡아먹히면 방벽도 줄어드는 거예요.”
즉 멀리 있을 때부터 쏴서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화살을 발사했다.
-쐐액!
바람 찢는 굉음과 함께 화살이 날아갔다.
-투확!
발사한 화살이 모험가의 머리에 명중하자 턱뼈가 부서지고 투구 안쪽에 화살이 명중해 투구를 날려 버렸다. 무시무시한 소리는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