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60
359. 사신 폭주 3
구난기사단 상층부에서는 아자딘을 괴롭히기 위해서 그가 거부할 수 없는 내용의 에란트리 퀘스트를 하달했다.
하지만 성직자들 밑에서 자라 구난기사단의 경전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셀레스티얼의 눈에는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의 잊힌 전통을 바로 세우는 이정표처럼 비쳤다.
이는 북제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었다. 북제는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셀레스철 파이어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길 원했다.
그런데 아자딘이 셀레스티얼 기사들 사이에서 동경을 받게 되면… 기껏 일궈낸 기사단을 아자딘에게 떠먹여 주는 꼴이 될 수 있었다.
‘뭐, 이제부터는 죄다 우리 형제들이 들어찰 거라 그럴 일은 없지만 말야. 백지상태의 어린 셀레스티얼들이 걱정이군.’
트리오다나는 아자딘을 경계하면서도 겉으로는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트리오다나 경도 여기 와 계시군요. 혹시 콕스할 주교 아케나르 님의 행방을 아십니까?”
“당신의 후원자 말이지요? 잘 모릅니다. 어째서 그녀를 저희에게 물어보십니까? 아자딘 경이 구난기사가 되기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분으로 아는데, 설마 그런 분의 행방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저희에게 물으시다니요.”
네 후원자는 네가 챙겼어야지. 그렇게 비난하는 뜻이 은근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시치미를 떼고 답했다.
“뱀파이어들이 그녀를 납치해서 여기로 끌고 왔다고 들었습니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이곳에서 뱀파이어들과 싸우고 있다면 적들의 동태를 자세히 알지 않을까 하고 혹여나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너희들이 여기서 뱀파이어도 못뚫고 빌빌대고 있다고 들었다. 설마 포위 중인 적들이 인질을 납치하기 위해 들락날락하는 것도 몰랐냐? 그럴 거면 포위 왜 했냐? 눈이 단춧구멍인가?’
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이 자식이?’
‘이 새끼가?’
아자딘과 트리오다나가 서로서로 마주 볼 때 카르나가 옆에서 말을 꺼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사실이라면 반릉 왕성 안으로 들어가 있겠지요. 산의 심장 말입니다.”
산의 심장, 그것은 반릉왕국의 왕성으로 산을 파고 들어가 만들어진 광산을 거주구로 바꾼 거대한 산중 도시였다.
까마득한 고대 시절부터 계속해서 드워프 왕국의 본산이었던 산의 심장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전선을 확장하지 못한 채 이곳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산의 심장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주둔지에 저희의 말과 마차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네. 저희가 맡아두는 동안 말들에 일을 좀 시켜도 된다면 말이지요.”
“물론입니다. 그냥 마구간에서 여물만 먹으며 살찌울 필요는 없겠지요.”
아자딘은 기꺼이 말과 마차를 그들에게 맡겼다.
*********
아자딘 일행은 이곳에서 주둔군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에란트리 퀘스트, 그러니까 뱀파이어들에게 납치된 아케나르 주교의 행방을 쫓겠다고 셀레스철 파이어 단장 카르나에게 허가를 구했다.
카르나는 흔쾌히 아자딘의 제안에 응했으니, 아자딘은 이제 이곳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점을 트리오다나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으음… 카르나. 아자딘 경을 내쫓는 게 좋지 않았을까? 군사 작전 중이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우리와 함께 전선에 설 것을 강요할 수도 있었을 텐데.”
“트리오다나. 그는 구난기사이고, 셀레스티얼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아서 막 대할 수 없어. 그리고 어쩌면 그가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잖아?”
“정말 그렇게 될까 봐 걱정이야. 저 작자는 놀라운 성과를 낸다고.”
트리오다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공략에 지지부진하고 있는데 아자딘이 성과를 낸다면, 기껏 천사의 모습을 해서 민중들에게 지지를 받던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위상이 상하게 된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도 물론 대단하지만 아자딘은 그들 이상이다.
이런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북제가 오랜 세월 고생해서 일군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아자딘 한 명의 명성을 위한 들러리 신세가 될 수 있었다.
“뭐, 그 전에 우리가 그 아케나르 주교를 찾아서 역으로 아자딘의 명성에 흠집을 낼 수도 있잖아? 에란트리 퀘스트를 실패하면 승승장구하던 아자딘의 콧대도 좀 낮아지겠지.”
“그러려면 산의 심장 요새의 방어를 뚫어야 하잖아. 일단 산의 심장 요새의 방어를 뚫고 나서 아케나르 주교를 누가 확보하냐… 아 젠장. 결국 이걸 써야 하나?”
트리오다나는 투덜거리며 허리춤에 차고 있는 뼈 단도를 뽑았다. 특수한 짐승의 뼈를 갈아서 만든 것 같은 고급스러운 뼈칼인데 날 끝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와 지면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웬디고의 단도가 트리오다나의 손에 들려있었다.
*********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반릉, 산의 심장에 당도하기 전 버나드는 아자딘에게 그렇게 말했다.
“비밀통로가 많지요. 반릉 왕국, 산의 심장은 저 나가 제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도시. 엄청난 숫자의 비밀 통로와 던전이 만들어져 있답니다.”
니셀다도 그렇게 확언했다.
“문제는 그 비밀통로가 철저히 적들의 통제하에 있다는 겁니다. 저들이 원할 때 여닫을 수 있고, 기괴한 기관들이 매설되어 있어서 안에서 봉쇄하면 철벽이 되는 거지요.”
“그럼 그건 비밀통로라기보다는 일종의 문이군.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는 점에선 성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은데?”
“그러나 성문과 다른 점은 어쨌건 성문보다는 덜 튼튼하고, 일단 안에 들어가면 적들의 심장부를 바로 강타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
버나드와 니셀다는 자신들이 반릉 출신임을 내세워 자신 있어 했다.
그리고….
“아니, 이상하군.”
“여기였던 것 같은데.”
버나드와 니셀다는 인근 공동묘지에서 석조 묘비를 이러쿵저러쿵 만져보며 고생하고 있었다.
“봉쇄했나 보지.”
“헉… 헉…. 음 그렇군요. 그럼 다음 장소로.”
“그래. 이번이 다섯 번째지만 말이지.”
아자딘은 버나드와 니셀다가 오늘 안에는 제대로 된 비밀통로를 찾아내길 바라며 묘지와 납골당을 배회했다.
“음. 아자딘 백작.”
지벡이 아자딘의 이름을 불렀다.
“눈치채셨습니까?”
“물론.”
비밀통로를 찾기 위해 배회하는 동안 아자딘 일행 주위로 점점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반릉의 뱀파이어들이 아자딘 일행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 근처 곳곳에 그들의 감시망이 깔려있을 테니, 다양한 감지마법과 정찰병은 아자딘조차 완전히 걷어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아라엘의 목소리도, 선견조의 마법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에디르.”
아자딘은 종사 에디르를 불렀다.
“네?”
“버나드 곁에 붙어있어. 지벡은 저쪽에….”
아자딘은 일행의 대형을 다이아몬드 진형으로 만들며 그 중심에 버나드와 에디르를, 가장 방어력이 약한 이들을 배치했다.
누가 봐도 너희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고 하는 무력시위였다.
*********
인근에 있는 뱀파이어들은 눈 쌓인 바위틈으로 아자딘 일행을 지켜보았다.
반릉의 회색 바위 위에 그늘마다 눈들이 쌓여있는데, 그 위에 있는 아자딘 일행은 하얀 옷을 입지 않아서 선명하게 잘 보였다.
적은 숫자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소문을 몰고 다니는 나이산도카르 변경백 아자딘이라 해도 저 정도 인원으로 과연 뭘 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공격할까?”
“으음.”
뱀파이어들의 시선이 아자딘의 등에 짊어진 고풍스러운 워소드에 꽂혔다.
“아우렐리아 던이 있단 말이지. 죽을 때까지 지옥의 고통을 맛본다는데, 그게 또 잘 죽여주지도 않는다지?”
“그럼….”
“사교도 변이체들을, 아샤지트의 권속들을 움직이자.”
“그러지.”
아자딘 일행을 보며 망설이던 뱀파이어들은 조심스럽게 자기 손목을 그어 피를 내고, 혈마법을 시전했다.
주위를 배회하고 있던 아샤지트의 권속이 몰려든다.
그들의 숫자를 헤아려 본 뱀파이어들은 어느 정도 숫자가 모였다 싶자 아자딘 일행에게 돌격시켰다.
“어디 어떻게 대처하나 볼까?”
제일 선두에서 아우렐리아 던을 받아내 줄 사교도 변이체를 보내고 난 후, 아자딘의 대응에 따라 행동한다.
이쪽의 마법을 좇아서 역공해 올 수도 있지만, 그때 되면 그때 대응한다. 마침 지휘관 격인 뱀파이어의 허리춤에 플린트락 피스톨이 끼워져 있었고, 다른 뱀파이어들 역시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개인의 무예가 뛰어나도 적당한 거리에서 쏘는 화약무기는 당해내기 어려운 법. 반릉이 아랑기 왕국을 격퇴한 것도, 이번에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진격을 막아내는 것도 바로 이 화약무기 덕분이었다.
아무리 명성 드높은 아자딘이라 해도 화승총이 있는데 두려울 이유가 없다. 설령 뱀파이어들에게 극약인 아우렐리아 던을 들고 있다 해도 맞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그런데….
“이형의 피를!”
버나드가 아샤지트의 눈으로 혈마법을 시전하자 피의 화살들이 사교도 변이체의 혈관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폭주!”
혈관 안에서 핏물이 폭주하며 사교도 변이체가 사방팔방으로 피를 뿜어내며 쓰러진다.
거대한 괴물이 몸에서 피를 죄다 뿜어내며 쪼그라드는 그 모습은 보고 있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셀레스철 파이어들도 곤욕을 치른 사교도 변이체들이다.
이걸 이렇게 쉽게 쓰러뜨린다고?
뱀파이어들이 생각한 것보다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그런 데다가 버나드는 그렇게 뿜어져 나온 피로 피의 거미들을 만들더니 갑자기 주위의 뱀파이어와 사교도들에게 돌진시켰다.
뱀파이어들은 적당히 변이체를 던져놓고 간을 보려고 했다가 본의 아니게 싸움의 한복판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이… 이 자식들! 우리를 뭐로 보고!”
“아랑기안 가드도 격파했었단 말이다!”
“우습게 보지 마라!”
명백히 당황했지만 뱀파이어들은 허세를 부리며 사기를 끌어모았다.
아랑기 왕국의 정예병들, 아랑기안 가드들도 격파했다는 것에서 반릉 왕국인들은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샤지트의 눈을 손에 넣은 버나드의 혈마법은 그야말로 무한의 힘에 가까웠다.
무수한 핏빛 거미들과 골렘들이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 형상화되어 쏟아져나온다.
핏빛 골렘이나 블러드스파이더들은 부서진 시체나 주위의 돌과 눈더미들을 이용해 비교적 말랑한 손과 발, 손톱 등을 단단하게 강화하고 뱀파이어들에게 돌진했다.
혈신의 권속들과 피 그 자체가 격돌하는 모습은 참으로 끔찍한 말세의 모습이었다.
“아. 버나드.”
아자딘은 아샤지트의 눈을 이용해 혈마법을 마구 시전하고 있는 버나드를 불렀다.
“뭐요? 아자딘 백작?”
“비밀통로를 알법한 놈은 죽이지 말고 생포해.”
뱀파이어를 생포하라는 건 상당히 무리한 요구였지만, 아샤지트의 눈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는 버나드는 막강한 힘을 휘둘러 뱀파이어들을 공격했다.
“혈마법 한 번 더 쓰고 싶다고 다 죽여버리면 우리만 더 피곤해지니까.”
“…그렇게 하겠소.”
잠시 후, 버나드는 아쉬운 얼굴로 반릉 왕국의 장교 휘장을 달고 있는 드워븐 소서러 한 명을 붙잡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