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65
364. 왕좌의 부름 2
“…여기는.”
통로 곳곳에 마석이 종유석처럼 자라나 있다.
그리고 마석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팔과 다리가 그 날카로운 마석들 사이에서 돋아나 있었다.
엘리멘탈 웨일링의 희생자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된 것이다.
“반릉 아카데미의 서고입니다. 보아하니 책자도 빼가지 않은 모양이로군요.”
보통 도시가 포위되거나 하면 중요한 기밀 서류나 마법서적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거나, 최악의 경우 파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릉의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도시가 함락당하거나 침탈당하리라고 상상도 하지 않은 듯했다.
서고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고, 그 주위에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의 시신들만이 전위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런 것 같군.”
아자딘은 엘리멘탈 웨일링의 희생자들, 그 끔찍한 단말마의 순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자코모의 딸에 대해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들은 모두들 반릉 아카데미의 실험체였으니 기록은 있을 겁니다. 다만 아마 오래전에 이미….”
버나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하다못해 기록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군. 자코모도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저희가 그것을 찾는 동안 그리셀다가 전력을 가다듬을 겁니다. 에란트리 퀘스트를 해결했으니 백작님은 이대로 돌아가셔도 됩니다만, 저로서는 그리셀다와의 오랜 악연을 끝내고 싶군요.”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셀다를 살려두고 싶진 않다. 그러나 셀레스철 파이어가 불러들인 웬디고의 권속들과 그녀가 충돌하고 난 이후에 만나고 싶군.”
“아. 그것도 그렇군요.”
반릉의 왕성, 산의 심장의 안쪽에는 무수한 함정들이 배치되어 있다.
어차피 아케나르 주교의 가면을 얻은 지금, 에란트리 퀘스트를 빼앗길 일이 없으니 함정 돌파는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게 맡겨도 되리라.
웬디고의 단도를 사용해 사신을 폭주시킨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에게 좋은 교훈도 될 테고.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기밀 서류들은 지금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 되거든요.”
버나드는 반릉 아카데미의 건물로 아자딘을 안내했다.
*********
반릉 아카데미에는 아샤지트의 권속으로 변이한 드워프와 노예 족쇄가 채워진 고블린이 돌아다니며 마석화한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들의 시체를 거두고 있었다.
버나드는 혈마법을 이용해 간단히 드워프들을 따돌렸고, 그 틈에 아자딘 일행은 손쉽게 연구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 있군요. 이게 엘리멘탈 웨일링 연구에 대한 기록일 겁니다.”
버나드는 익숙한 손길로 무수한 서류들과 책자들 사이에서 철제 상자 하나를 찾아냈다.
“드워프들의 정리 방식은 잘 알고 있거든요. 상당히 합리적이긴 합니다. 나중에 영지를 경영할 때도 적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료들에게 가르치면 좋겠군.”
“제가 오래 살아있다면 말이지요.”
버나드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리셀다와 반릉 아카데미에 복수한다는 뜻을 품었을 때, 그는 고작 홀로 떨어진 탈주 마법사에 불과했다.
그런데 자신의 손은 아니지만, 아자딘의 손에 의해서 복수의 맹세가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버나드가 느끼는 것은 기쁨보다는 허탈함이었다.
“아샤지트의 눈을 사용하는 걸 좀 줄이지? 네더의 신물을 쓰는 게 부담이 없을 리가 없을 텐데.”
아자딘도 버나드가 최근 혈마법을 마구 써댄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니 그걸 눈치 못 채면 장님일 것이다.
보통 자신의 피를 매개로 하는 혈마법은 뱀파이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자주 많이 사용할 수 없다.
아샤지트의 눈이 피를 내주어 자기 피를 흘릴 필요 없이 혈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지만, 이것은 네더의 신물.
무작정 사용하면 그 책임은 반드시 무겁게 술자를 짓누른다.
아자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리셀다를 앞둔 버나드의 마음이 너무 간절하기에 무의미한 잔소리를 참고 있던 것이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아직은….”
“그럼.”
아자딘은 버나드에게 받은 서류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무수한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들에 대한 차트가 적혀있었는데, 드워프의 언어인 케림 문자로 적혀 있었다.
“케림 문자군요. 일단 제가 읽을 수 있습니다만.”
“그럼 반반 나눠서 찾아보지.”
아자딘은 서류의 절반을 떼어서 반은 버나드에게 주었다.
“케림 문자를 아십니까?”
“난 몰랐어.”
“네?”
“하지만 내 누이는 알고 있었군.”
아자딘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류를 뒤뒤져보았다.
드워프들은 엘리멘탈 웨일링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원하는 마력을 최대한 많이 뽑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실험체를 최대한 오래 살려서 마석을 뽑아내는 것과 바로 고문해서 폭주시킨 후 마석을 채취하는 방식에 대한 생산성 비교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엘리멘탈 웨일링의 피험체를 가축처럼 여기고 상업성을 생각해 관리하고 있었다.
“끔찍한 놈들이로군. 그런데 버나드. 자코모의 딸 이름이 뭐였지?”
“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이 서류철 대부분엔 비고란이 있고, 거기에 자코모의 가족이라면 반드시 가족관계를 적어 두었을 겁니다.”
반릉 아카데미의 연금노예였던 자코모와 가족관계가 있다면 비고란에 적혀있을 것이다.
바꿔 말해서 비고란에서 자코모나 연금노예라는 단어를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놈들 너무 많은데.”
대체 얼마나 많은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들을 갈아 넣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다. 연 단위로 분류해 두고 있는데 한 해에 못 해도 50명은 꼬박꼬박 구해놓은 것 같다.
“연도별로 분류되어 있으니 여기, 이쪽 서류를 뒤져보면 그 근처에 있을 겁니다.”
“그래. 앗?”
아자딘은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신의 서류에서 자코모라는 이름이 들어있다는 걸 발견했다.
‘피험체의 부친, 연금노예 자코모, 4 섹터에서 유황 에보케이션 작업에 투입. 감독관의 평가는 상중. 뛰어난 실용연금술사. 외모는 평범함, 뱀파이어들이 뱀파이어 화에 대해서 반려함.’
‘병의 진행이 느리고 순도높은 cat.3 이상의 마석을 생성함. 다만 본인의 체적 자체가 너무 적어서 월당 매출은 오히려 낮음.’
‘왼 손목과 오른 발목 마석결정화로 파손, 정신 공황을 일으켜서 아편에 훈증, 하루에 17시간을 재운다. 처음으로 cat.5등급 발생. 연구소 내에서 폭발할 가능성 있음.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권함.’
‘구난기사단 지혜 교단에 판매함.’
파일은 거기에서 끝나있었다.
“맙소사.”
아자딘은 서류를 버나드에게 보여주었다.
“뭐길래 그러십니까?”
케림 문자를 모르는 지벡은 왜 아자딘이 정색하는지 궁금해했다.
“자코모의 딸은 엘리멘탈 웨일링에 걸린 채로 구난기사단의 지혜 교단에 팔렸다고 적혀있어.”
“네? 그럼….”
지벡은 눈살을 찌푸렸다.
명색이 성기사단인 구난기사단이 반릉 아카데미와 비인도적인 거래를 했다는 뜻이 아닌가?
“최악의 경우는 죽어서 마석으로 갈렸겠지만 만에 하나… 셀레스티얼로 전생했을 수도 있겠군요.”
이미 셀레스티얼 제조법을 전해들은 지벡은 그런 가능성도 제시해 보았다.
“지혜 교단에 문의해 봐야겠군요? 그럼?”
“그런데 지혜 교단이 날 안 좋아하는데.”
“지금 드워프 아카데미는 아자딘 백작과 사이가 좋아서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군. 내가 언제 사이좋고 나쁨을 신경 썼다고.”
아자딘의 자코모 딸의 연구파일을 접어서 자신의 품에 넣었다.
이것은 자코모의 딸의 단서이면서 또한 반릉 아카데미와 구난기사단이 끔찍한 거래를 해왔음을 입증하는 서류이기도 했다.
물론 이제 와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구난기사단의 위상에 흠이 갈 것 같지는 않으나 최소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수치스러워하는 이가 나오리라.
*********
“음?”
아자딘은 이곳을 경계하고 있던 드워프 변이체들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 여기 깨끗해졌습니다.”
에디르는 텅 빈 복도를 가리켰다.
분명히 엘리멘탈 웨일링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와 마석들이 종유석처럼 자라나 있었는데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바닥에 마석이 굴러다니지만, 처음에 비하면 숫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줄어들었다.
“음.”
아자딘은 바닥에 떨어진 마석들을 주워들었다. 완전히 다 치우지는 못해서 마석들이 남아 있지만, 시체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시체를 회수한 것 같은데?”
드워프 소서러와 노예 고블린들이 열심히 치우고 있긴 했다.
그런데 그들의 작업속도를 볼 때 오늘 안에 치운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는데, 아자딘 일행이 잠깐 서류를 찾는 사이 이만큼이나 치웠다고?
“아마도 전투를 위해서 회수했을 겁니다. 마석은 훌륭한 전투용 자원이니까요.”
과연 저 멀리서 요란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공세가 산의 심장의 민간 거주구까지 침입해 들어 온 것이다.
“저희는 비밀통로를 이용해 바로 심장부로 들어왔으니까요. 셀레스철 파이어는 이제 정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선 모양이로군요.”
“그래. 놀랍군.”
난공불락으로 유명한 반릉의 수도, 산의 심장 요새를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이 돌파했다.
물론, 웬디고의 권속을 앞세운 돌파이니 남들에게 자랑할 것은 못 되는 일이지만, 놀라운 위업임은 분명하다.
“어떻게 할까요?”
“에란트리 퀘스트는 이미 달성했으니 공을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그리셀다는 당신들 손으로 처치하고 싶겠지?”
아자딘이 그렇게 물어보자 니셀다는 고개를 끄덕였고, 버나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그렇게까지는….”
두 부녀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버나드는 니셀다에게 아버지로서 해준 게 없으니 니셀다가 요구하면 하염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안내하도록 하지요.”
“그리셀다는 어디에 있을까?”
“반릉의 옥좌에 있지 않겠습니까? 비밀통로를 알고 있으니 그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버나드는 앞장서서 나아갔다.
*********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요새의 모든 요새포를 제압하는 데 성공하고,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드워프들은 터널 안으로 물러나면서 안에서 또 종심방어진을 구축했다.
아샤지트의 권속과 노예의 족쇄를 찬 고블린이 선두에 서서 육탄으로 방어벽을 만들었다.
이즈밀라는 부하들을 독려했다.
“별것 아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녀는 손수 앞으로 뛰어들어 아샤지트의 권속의 공격을 유도해냈다.
아샤지트의 권속, 거대한 살덩어리가 혈관 촉수를 내뻗어 온다.
이즈밀라는 재빠르게 몸을 반신으로 세워서 어깨 갑옷으로 혈관 촉수를 미끄러뜨리고, 몸을 돌리며 빠르게 검을 휘둘러 촉수를 베었다.
그녀의 장검이 불타오르며 아샤지트의 권속에게 타격을 주었다.
그와 동시에 웬디고의 권속이 뛰어들었다.
웬디고의 권속, 거대한 설인들은 무서운 괴력으로 아샤지트의 권속을 후려갈겨 후방까지 날려 보냈다.
그리고 입에서 한기를 뿜어내고 손톱을 휘두르며 돌진한다.
“으음!”
이즈밀라는 침음성을 토했다.
효과적이다. 효과적이긴 하지만… 이리되면 웬디고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된다.
구난성기사가 이래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