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67
366. 왕좌의 부름 4
“으음.”
아자딘은 코를 훔쳤다.
피가 흘러나온다.
입안에도 코안에서도 비릿한 쇠 냄새가 난다.
“괜찮으십니까?”
드워프들의 비밀통로를 따라 이동하던 니셀다가 발을 멈추고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흡혈귀와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나 송곳니와 손톱을 뽑고, 축성된 은과 세라마이트로 스스로 몸을 지지며 성인을 새겨 흡혈욕구에서 벗어난 그녀이지만, 아자딘에게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피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
“음 괜찮아.”
“최근 피를 많이 흘리시는데….”
“이 정도로 많다고 할 것까지야?”
“그럼 자주라고 하겠습니다. 백작님. 혹시 어떤 병이라도 있으신지요? 백작님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병을 감추시려는 마음도 이해합니다만 제게는 말씀해 주십시오. 차드라 수녀원장님은 신묘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자딘의 군벌은 오로지 아자딘의 카리스마로 인해 결집한 것으로 아자딘이 죽기라도 하면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되면 아자딘 단 한 명만의 재앙이 아니다.
“질병은 아니야.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우연히 신왕진서를 입수해서 그 마도서를 읽어버렸다. 마도서의 현물은 왕좌에 반환했어도 지식은 계속해서 주위의 마력을 응집해 내 안에서 커지고 있지.”
시장의 샤먼들, 말린 개구리 다리를 빻아가며 병든 자를 치료해 주는 잡다한 마술사들의 주문서와 달리 진정 강력한 마도서는 그저 읽고 이해한 것만으로도 질병처럼 전염된다.
신왕진서는 가장 강력한 마도서이니 그 본질과 접촉한 순간 들불처럼 타오른다.
아자딘은 그래서 신왕진서 사본을 획득했을 때 사본에 담긴 백색 마력을 사용했지, 사본을 읽고 이해해서 자신의 안으로 옮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라엘은 신왕진서 사본을 직접 읽고 받아들였으며….
그녀와 융합한 아자딘에게도 신왕진서의 불길이 옮겨붙었다.
‘플랑크 경이 그것을 덜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만….’
아자딘은 최근 마도서를 덜어내지 않고 있었다.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신왕진서를 완전히 획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제어하면 될 일이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니셀다는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셀다를 처치하실 거지요? 계속 도망치는데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처단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샤지트의 눈을 가지고 있으니 싫어도 그리셀다는 덤벼들 거야.”
“설마 이렇게 그리셀다를 몰아넣을 줄이야. 백작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를 두려워하며 수녀원장님의 비호하에 평생 숨어지내야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차드라 고원의 오걸이라 불리게 된 거지? 숨어지내던 사람에게 붙기엔 과한 명성이 아닌가?”
“차샨 일당과 싸웠기 때문이겠지요. 아 미노타우르스 녀석의 그리폰도 몇 마리 베어 죽였고 그걸로 싸움이 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녀원으로 피신한 여성들을 노리는 불한당들도 베어 죽이다 보니 그만. 쓸데도 없는 악명이 붙더군요. 불한당의 이름이라 부끄럽습니다.”
“흐음.”
그때 버나드가 말했다.
“백작, 그리셀다가 가까이에 있소.”
버나드는 혈마법으로 그리셀다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니셀다가 그리셀다의 친딸이기 때문에 그녀의 피를 이용해서 가까이에 있는 그리셀다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왕좌가 가까운 것 같은데. 이곳 너머는 왕실 구간일 것이오. 이걸 보시오.”
이끼가 잔뜩 껴있다가 최근에 벗겨진 돌벽에는 케림 드워프들의 왕가를 상징하는 망치와 도끼가 교차하는 인장이 있었다.
“왕실의 문이란 뜻인가?”
“본래는 드워프 왕족의 적색마력이 아니면 열 수 없는 문이지만, 너무 오래되어서 마법이 다 풀려버렸구려. 최근 자주, 많은 이가 이곳을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오.”
버나드가 그것을 만지며 말했다.
“길은 대충 알겠으니 이제 그리셀다부터 찾아보자. 슬슬 긴 악연에 종지부를 찍어야지?”
아자딘은 드워프들의 왕보다 그리셀다를 먼저 처단하기로 결정했다.
*********
그리셀다는 사실상 반릉의 여왕이었다.
드워프 귀족들은 앞다투어 그리셀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고, 심지어 국왕인 마나위단조차 그리셀다의 치마폭에서 놀아났다.
그리셀다 역시 반릉에서 누린 모든 것을 마나위단의 이름으로, 그의 권위를 빌려서 행해왔으니 마나위단의 명령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어머니. 저희들이 이런 수모를 견뎌야 합니까?”
언제나 쾌락과 향락에 젖어 교태로운 음성만 내던 이 여성 뱀파이어들이 분개하며 물어보았다.
“저 드워프 놈들은 우리들이 제공한 은혜를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는군요.”
“탐닉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런 대접이라니….”
“그게 이상하구나.”
그리셀다 역시 이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이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나위단이 쓰러졌다 깨어난 이후 갑자기 드워프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쩌면 소원의 마법이, 마나위단의 본질을 바꾼 게 아닐까?”
“그렇다면… 저희가 드워프 근위대장의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반릉 왕국을 음지에서 좌지우지할 게 아니면 이 혐오스러운 드워프들과 함께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샤지트의 눈을 되찾고 소원의 마법을 행하도록 하지요.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비원을 이루시는 겁니다.”
“나도 그러고 싶구나. 음?”
-쿠르르릉!
굉음과 함께 요새 전체가 또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난기사단의 공격이 가까워지고 있다. 폭음과 진동의 방향으로 헤아려 보건대 벌써 왕좌의 방과 같은 층까지 내려왔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전방에서 전령을 대동한 드워프 근위대원들이 오는 게 보였다.
전령 둘과 근위대원 하나, 그런데 머리에 그리폰 투구를 쓰고 있다.
놀랍게도 근위대장 이아크가 전령과 함께 오다가 그녀를 맞이한 것이었다.
근위대장 이아크가 소리쳤다.
“지금 여기서 뭣들 하는 거냐? 왕께서 너희들의 지휘를 나에게 붙였다는 걸 알고 있다! 어서 오지 못할까?”
이 계층, 왕좌의 층에는 드워프들의 전음 파이프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어서 파이프 관을 통해 왕의 명령을 전달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아마도 그것을 통해서 그리셀다가 자신의 밑으로 배속되었다는 걸 알게 된 이아크는 방어선을 돌파하는 구난기사단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셀다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오지 않자 직접 확인하기 위해 자기 발로 뛰어온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어머님?”
“죽여라.”
그리셀다는 부하들에게 명했다.
그리셀다의 딸들이 그 명령만 기다렸다는 듯 사이드 소드와 레이피어, 시클 등을 들고 돌진했다.
마치 밤의 악령들같이… 검은 수녀복과 베일을 입은 여성들이 드워프들의 건축물 사이를 쏜살처럼 질주한다.
그 모습은 같은 뱀파이어인 근위대장 이아크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큭!? 미쳤느냐?! 그리셀다?!”
근위대장 이아크는 자신의 도끼창을 휘둘러 다가오는 적들을 쳐냈다. 그리셀다의 딸 둘이 도끼창에 맞아 끔찍한 상처를 입으며 튕겨 나갔지만 다른 그리셀다의 딸들이 달려들어 근위대장의 갑주에 칼을 꽂고 그의 입에 시클을 찔러넣었다.
낫의 갈고리 부분이 마치 낚싯바늘처럼 드워프의 입을 꿰어 집어 든다.
“아하하하!”
“까르르르!”
여성 뱀파이어들의 교태 섞인 웃음, 광소가 회당에 울려 퍼진다.
“끄아악!”
근위대장 이아크의 부하들은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붙잡혀 피를 빨린다.
그리셀다의 딸들도 이아크를 붙잡고 사방팔방에서 그의 갑옷을 뜯어낸 뒤 물어뜯었다.
피에 굶주린 악귀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끄악! 배은망덕한 것들! 아무리 금수 새끼들이라 해도 산의 심장의 주인께 대적할 셈이냐?!”
“늘 우리를 얕잡아보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어! 네놈도 뱀파이어가 된 주제에!”
“여기까지 침공당했으면 드워프들의 왕국도 끝장난 것 같은데 무슨 허세냐? 아아. 차라리 부하들이나 많이 끌고 왔으면 좀 더 오래 살았을 텐데, 멍청하구나. 이아크.”
그리셀다는 사지가 찢기고 전신의 피를 빨리고 있는 근위대장을 보며 비웃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웅!
이번에는 등 뒤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아!?”
창백한 백색 마력, 네더의 힘으로 왜곡된 왕좌의 힘이 느껴진다.
왕인 마나위단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리셀다가 당황할 때였다.
“서로 다툴 줄은 몰랐는데….”
금색 화살 하나가 그리셀다를 향해 날아들었다.
통로 너머 코너에서 화살이 꺾이며 날아와 그리셀다를 덮친다.
“이놈!”
그리셀다는 혈마법을 이용해 망토를 펼쳤다. 망토로부터 핏빛 나선이 이제 막 얼어붙는 눈꽃의 결정처럼 굳어지며 퍼져나가 그물이 된다.
하지만 금색 화살은 그 핏빛 그물들을 불태우며 스스로 불꽃이 되어 날아온다.
아자딘이 세라마이트 장검, 아우렐리아 던을 천상의 불꽃으로 녹였다가 화살 형태로 만들어서 발사한 것이다.
뱀파이어들에게 절대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는 이 세라마이트 성검이 핏빛 그물들을 간단히 꿰뚫으며 그리셀다를 노린다.
다급해진 그리셀다는 근위대장 이아크를 붙잡아 금색 화살을 받아냈다.
불운하게도 이아크에 매달려 피를 빨고 있던 그리셀다의 딸 하나가 딸려가 둘을 동시에 화살이 꿰뚫었다.
-퍼억!
불길이 일어나 이아크와 그리셀다의 딸을 태운다.
“꺄아아아악!”
화살이 녹아서 흐물거리며 그녀의 몸통 안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아크는 이미 뱀파이어들에게 동족 포식을 당해서 피가 얼마 남아있지 않은 터라 순식간에 재가 되었지만, 피를 충분히 섭취한 그리셀다의 딸은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채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어떻게든 몸에 박힌 화살을 빼내려 했지만, 흐물거리는 납물 같은 것을 빼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셀다처럼 몸통의 살점 대부분을 포기하고 베어내는 건 그리셀다나 가능한 묘기다. 다른 뱀파이어들은 그 정도 신체 손상을 입으면 온전히 재생하지도 못하고 죽고 만다.
“끄윽?!”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걸 직감한 그녀는 검지와 중지를 자신의 턱 밑에 가져다 대더니, 갑자기 손톱을 신장시켜 단숨에 자기 턱을 꿰뚫었다.
뇌수를 헤집으며 머리 위로 손톱이 튀어나왔다. 스스로 뇌를 파괴해 고통에서 도망친 것이다.
“혹시 모르니 고통을 덜어주거라!”
그리셀다가 명하자 그녀를 따르는 노예 뱀파이어가 도끼 창을 들어 이미 머리를 찔러 자해한 그리셀다의 딸의 목을 쳐 날렸다.
“아, 아우렐리아 던!”
“과연 무섭구나!”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의 천적인 아우렐리아 던의 무시무시한 효과를 보며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