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71
370. 왕좌의 부름 8
“잔인하군요.”
지벡은 혀를 내둘렀다.
“뭐가?”
“아니 이스마일 저 친구에게 당신이 한 행동 말입니다. 백작. 그는 미디암을 연모하고 있으면서 그녀를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는 것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네까짓 놈의 신분을 생각해 보면 미디암을 고문하겠다거나 하는 건 허풍일 거다.
아자딘은 냉정하게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었다.
“지벡, 당신도 그랬잖아? 스스로 연민하면서 규율에 자신을 가두면 진짜 자신의 소망을 모르게 되는 법이지.”
이스마일이 전령일족의 위계질서와 미디암에 대한 연모로 자신을 합리화했다면, 지벡은 왕의 교회의 율법과 야아가스 신족의 혈통에 대한 숭배심으로 스스로를 마비시켰다.
“그야 그렇긴 하지만 보통 그런 자가당착에 빠진 사람은 현실을 말한다고 해서 착각에서 빠져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싫은 소리를 한 당신을 미워할 겁니다.”
“그렇긴 하지. 이 화살만 봐도 그래. 이게 정상적인 애정표현은 아니잖아?”
아자딘은 이스마일이 자신에게 쏘았던 화살을 전통에 꽂아 넣었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없어. 진득하게 감정 다독여 주면서 해결할 여유가 없군.”
아자딘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경우는 음. 시온 에타르를 잡을까? 아니야. 그러면 진짜로 미디암이 위험해진다. 에타르 일족을실각시키면 미디암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
아자딘은 시온 에타르가 원로원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미디암이 인질로 잡혀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그녀가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에타르 혈족이 원로원 내에서 힘을 잃게 된다면 그때는 진짜로 위험해진다.
‘그러나 정말 오만한 발언이다. 아무리 그리셀다 마저 처치한 남자라지만, 우리는 고작 소수의 인원인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에디르는 아자딘의 오만방자한 발언에 혀를 내둘렀다.
‘저 혈마법사가 소환한 피의 거미 덕분에 적들을 피해 다닐 수 있는 건데, 여기서 적을 더 늘리겠다고? 아니, 문제는 그가… 말한 것들은 전부 다 이뤄질 것 같단 말이지.’
그러면서도 어느새 스스로 납득해 버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여기서는 왕좌를 차지해야겠군. 때마침 왕좌가 날 부르고 있기도 하고.”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에디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디르는 짐꾼답게 배낭에서 건량을 꺼내어 주면서 흠칫 놀랐다.
“왕좌가 부른다니요? 설마 석영 왕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
‘아니, 그냥 미친놈일지도 몰라.’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지만 에디르는 이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자딘을 이해하길 포기한 것이다.
*********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예비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반릉, 산의 심장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
그래서 그들은 웬디고의 권속을 총알받이로 삼아 처음의 총격과 포격을 받아내게 하고, 그 후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난전을 걸었다.
이 무서운 속도의 돌진이라는 건 매번 전력질주 후 적들과 육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셀레스티얼 기사들이라 해도 체력이 소진된다.
예비대를 운영해서 병력을 교대하며 충분히 쉴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전투 속행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후방에서 갑자기 아샤지트의 권속들이 폭발적으로 증원된 것이다.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예비대가 공격을 받으면서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은 우세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전멸의 위기로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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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드워프의 왕 마나위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나야말로 진정한 왕이며 이것이 바로 내 왕화의 빛이다!”
창백한 마력, 왜곡된 힘이 석영 왕좌로부터 세계를 향해 뻗어나간다.
혈신 아샤지트의 힘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드워프들에게는 외적을 물리치고 왕국을 수호하는 힘이기도 하다.
“셀레스철 파이어는 저 재수 없는 코헨이 만들어 낸 조잡한 가짜 천사들이다. 저들을 제압해서 그 비밀을 밝혀내면 구난기사단도 내 앞에 굴종하게 될 것이다. 천사의 날개를 가진 기사단을 내 휘하로 부리는 것도 재미있겠군. 생각해 봐라, 비록 가짜지만 천사들이 너희 앞에서 굴복하는 모습을!”
한 왕국의 주인으로서는 참으로 비열하고 천박한 발언이었지만, 그 부하들은 일제히 기뻐하며 환호했다.
뱀파이어가 된 드워프들에게는 욕망의 절제가 없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왕국의 상황은 심각했다.
셀레스철 파이어의 공세는 막아내고 있지만, 대신 석영 왕좌에 야에가스 신족들의 육체를 변형시킨 혈관이 들러붙어 맥동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성장하면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왕좌의 방은 어느새 혈관과 근육으로 뒤덮여 생물의 몸 안쪽처럼 변화되었고 그 변이가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기괴한 변이 속에서 감히 마나위단에게 저항할 인물은 없다.
“받아들여라. 내가 왕이고, 이것이 나의 왕화의 빛이다. 정당한 왕이 왕좌에 앉을 때 왕화의 빛이 왕국을 수호하니!”
마나위단은 왕좌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아샤지트의 권속으로 변이되어 지금은 왕좌에 들러붙은 혈관이 되어버린 야에가스 신족들에게 외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때였다.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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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드워프 근위병들이 그 화살을 요격하려 했지만, 화살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마치 사람들의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산천어처럼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하늘로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드워븐 소서러들이 사용하는 번개 마법보다 효율이 좋지 못한 번개 마법이다.
그러나 그 번개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마석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바닥에 늘어선 혈관들을 따라 피의 거미들이 마석을 품은 채 이동해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이다.
옥좌의 회랑에 온통 혈관들이 자라있었으니 드워프 근위대원들도 수상한 점을 알아채지 못했다.
-바지지지직!
마석이 폭발하며 전기를 증폭시켜 사방으로 퍼트린다.
마석의 마력폭풍에 휩쓸린 드워프들이 감전되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으악!”
“폐, 폐하!”
드워프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마나위단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으음.”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처음에는 동쪽 통로에서 날아왔던 화살이 이번엔 서쪽 통로에서 날아와 왕좌를 향해 꺾이더니 그대로 날아와 근위병들 사이에서 폭발했다.
이번에도 바닥에 세팅되어 있던 마석이 유폭을 일으키며 근위병들을 쓸어버렸다.
“네놈!”
마나위단이 옥좌의 팔걸이를 후려치자, 지면으로 충격이 퍼져나가며 개미만 한 크기로 변해있던 피의 거미들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혈마법으로 만들어 낸 피의 거미들은 그대로 고스란히 아샤지트의 혈관에 흡수되었다.
“제법이구나, 암살자! 누구냐? 셀레스철 파이어… 아니 그 영혼 없는 불경자인가?”
마나위단은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지 눈치챘다.
산도카르의 수호자이자 나이산도카르의 변경백.
그리고 그리셀다에게서 아샤지트의 심장을 빼앗아 간 인물. 아자딘 외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 그렇군. 아샤지트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그걸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감시를 피하고 여기까지 들어온 모양이로군. 좋아. 아샤지트의 심장을 바쳐라. 그리하면 내 너에게 산도카르와 콕스할, 비센의 백작위를 주마.”
참으로 오만방자한 발언이었다. 아무리 왕이라지만, 이미 적개심을 잔뜩 품고 온 아자딘에게 오히려 보물을 바치고 자신의 군문에 들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내미는 패가 이미 아자딘에게 보호를 청한 산도카르, 뱀파이어와 드워프들의 습격으로 박살 난 콕스할, 역시 그 비슷한 처지인 비센 지방을 내 거는 걸 보면 양심에 털이 난 게 아닐까 싶다.
아자딘이 정말 아샤지트의 심장을 바치고 투항이라도 할까 최대한 싸구려를 보상으로 내건 것이다.
“어지간하면 대답 안 하려고 했는데, 당신 정말 짜증 나는 성격이로군. 당신을 상관으로 섬겨야 했던 그리셀다를 동정하게 되는데?”
아자딘의 목소리가 공간을 맴돌고 있었다. 전령일족에게는 목소리를 쏘아내는 기술이 있어서 아자딘의 목소리로 그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다.
“계속 그런 잔재주를 쓸 것이냐? 그렇다면 내 네놈에게 왕화의 빛을 보여주지!”
“왕화의 빛? 방금 네 근위대원들이 속수무책으로….”
그러나 마나위단이 옥좌에 손을 얹자 옥좌로부터 창백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갑자기 지면에서부터 작은 심장이 하나 나타났다.
바닥에 깔린 혈관들이 뭉쳐져 심장의 형상을 이루더니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었다.
아니 그것은 심장의 형상으로 빚어진 분수라고 해야 하리라.
분명히 번개에 감전되어 쓰러졌던 드워프 근위병들의 몸에 피가 닿자 그들이 회복되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뱀파이어화 된 드워프들에게 피가 공급되면서 그들의 상처를 재생시킨 것이다.
“이 어디에 왕화의 빛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있는 거지? 역겨운 괴물들만 가득한데?”
“흥! 내 백성들을 지켜낸다.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왕의 모습이 아닌가?!”
마나위단은 자신의 ‘왕화의 빛’을 폄하하는 아자딘의 발언에 분개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본인은 자신이 하는 말을 진심으로 믿는 듯했다.
“진심인가? 원래부터 그런 자였나? 아니면 소원의 마법이 그 정신을 왜곡시킨 것인가? 어느 쪽이건 간에 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헛된 일이 되겠….”
“음?”
갑자기 아자딘의 말이 끊겼다.
아자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마나위단은 문득 한기를 느꼈다.
-화조풍월, 현월!
마나위단의 뒤에 한 인기척이 나타났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어디서 달려온 것도 아니고 그저 그의 그림자를 밟고 선 이 남자는 뒤를 보지도 않고 칼을 휘둘렀다.
-촤악!
금색 칼날을 가진 고풍스러운 워소드, 아우렐리아 던이 뱀파이어화된 마나위단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정수리까지 절개했다.
아무리 재생력을 지닌 뱀파이어에게도 머리의 절반이 날아가는 치명상, 하물며 그 도구는 아우렐리아 던이다.
뱀파이어를 영원히 불태우는 황금빛 여명.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위대의 포위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들어오는 화조풍월의 마법.
과연 전령일족이 왜 왕들조차 죽이는 암살자로서 두려움을 샀는지 알게 하는 절묘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금 아우렐리아 던을 휘둘러 아예 마나위단의 목을 날려버렸다.
“이놈!”
“폐하!”
놀란 드워프 근위대원들이 달려들었다.
“본래라면 마석 폭풍으로 정리되었을 텐데!”
아자딘은 마나위단의 피의 심장으로 되살아난 근위대원들을 향해 활을 겨눴다. 그리고 아우렐리아 던을 걸었다.
‘뭐지? 미쳤나?’
‘활로 저 큰 칼을? 화살보다 백 배는 더 무거울 텐데?’
활로 워소드를 발사하겠다니 광인의 행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곳의 드워프들은 전령일족을 상대해 본 경험이 적은지 아자딘이 아우렐리아 던을 월각궁에 걸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전령일족과 거래까지 했었으면서 그들이 활을 이용해 큰 칼을 던지는 투검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모르면 맞아야 한다. 만고불변의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