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73
372. 모독의 성왕 1
“맙소사.”
선두에 선 아라미스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만이 아니다.
그의 뒤를 따라온 셀레스티얼 기사들도 일제히 경악을 금치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아… 맙소사!”
“삼위의 대천사들이시여!”
심지어 천사들을 부르며 그대로 졸도하는 이도 있었다. 왜냐면 그들의 눈앞에서 상상도 못 할 불경스러운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텅 빈 왕좌가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다들 그렇게 놀라고 절망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말도 안돼!”
“왕좌가, 왕좌가 부서지다니!?”
왕좌가 박살 났다. 휘브리스의 백성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불경이 벌어졌다.
*********
아자딘이 옥좌에 앉자 신성하고 강력한 힘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 마나위단을 뼈만 남기고 태워버리고, 다른 뱀파이어들과 네더의 권속들도 일소했다.
왕의 교회가 주구장창 이야기해 왔던 진정한 왕화의 빛이다.
“아!”
“오오.”
모두 그 장엄한 모습에 감격했다.
아자딘에게 충성을 맹세한 니셀다와 버나드는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재차 확인하며 이루 말로 하지 못할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지벡도 자신의 번민을 끝내줄 위대한 초인의 탄생을 목도하면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아자딘이야 말로 진정한 왕이고 그에게 종사하는 것으로 그들은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데….
“이렇겐 안 되지.”
아자딘은 이 장엄한 기적의 순간에 짜증을 내며 옥좌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옥좌가 금이 가는 게 아닌가?
“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야에가스 신족의 왕좌가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헉?!”
아자딘에게 충성을 맹세한 니셀다조차 입이 떡 벌어지는 장면이었다.
“시, 신성 모독이다! 신성 모독이야! 역시 전령일족이 왕좌에 앉아서!”
에디르는 그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지벡이 그런 에디르의 팔을 꺾어서 바닥에 짓눌렀다.
그러나 그도 이 상황이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아자딘 백작!?”
“나도 잘 모르지. 이번이 처음 앉아본 거라.”
“네?”
지벡은 당황했다. 아자딘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아자딘은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할 때도 언제나 당당했었다.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상대를 기만하는 것도 가능한 인간이다.
전령일족들이 대체 어떤 훈련을 했는지 아자딘은 스파이로서 그야말로 정점에 달한, 잘 갈린 칼날과 같은 흠 잡을 데 없는 거짓말쟁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자딘이 지금 이 거짓말을 할 때 놀랍게도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대충 헛소리를 주워 삼고 있다는 게 들킬 것 같은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자딘에게도 놀라운 일이 틀림없으리라.
‘세상에. 네더의 사신이 강림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던 인간이 이제 와서 시선을 돌려?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지벡은 상황이 심각함을 느끼고 아자딘을 노려보았다.
아자딘도 자신의 거짓말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는지 자신 없는 말투로 답했다.
“왕좌가 계속 부르기에 앉았는데 깨지지 뭐야.”
“그게 무슨… 아니 잠깐? 왕좌가 불렀다고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맞아.”
그게 사실이라면 아자딘은 분명히 왕의 교회에서 말하는 ‘정당한 왕’이다.
그러나 왕좌가 부서진 것은 왜인가?
“일단 탈출하지. 왕화의 빛이 아케나르 주교를 해치지 않았나 걱정되는군.”
“……..”
아자딘은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아케나르 주교에게 자살하지 말고 자신을 따라 행정을 도와줄 것을 청했었다.
그런 그녀가 왕화의 빛에 상하지 않았을까 두렵다니… 말하자면 아자딘이 발한 왕화의 빛은 왕좌의 방만 번쩍이게 한 게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사실 아자딘이 왕좌에 앉은 순간 발출한 왕화의 빛은 비단 산의 심장뿐 아니라 거의 반릉 왕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지만, 지벡으로서는 그 빛이 어디까지 뻗어 나갔는지 현재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왕좌가 부서진 장면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긴 그렇겠지? 버나드. 길 안내를 부탁해. 셀레스철 파이어를 피해서 지나고 싶군.”
“아, 알겠습니다.”
버나드도 당황하면서 아자딘에게 길을 안내했다.
*********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의 병력은 상당해서 그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아자딘 일행은 왕의 비밀통로를 우회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령일족이 지난 흔적이 있었다.
전령일족이 이곳을 통해서 왕과 접근했던 흔적이다.
“흠… 보급품이군. 챙겨가야지.”
아자딘은 전령일족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남겨둔 보급품들을 회수했다.
전령일족이 만든 화살과 간단한 식량, 붕대는 지금의 아자딘에게도 필요한 보급품이었다.
“읍읍….”
입에 붕대가 둘러진 에디르는 여전히 할 말이 많은지 몸을 비틀고 있었다. 지벡은 그런 에디르를 구속한 채 아자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왕좌에 앉았고 깨졌어.”
아자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진실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지 마시지요. 아자딘 경. 당신이 왕좌에 앉았다는 사실은 셀레스철 파이어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언젠가 밝혀질 사실인데, 그 전에 저희라도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벡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아자딘을 납득시켰다.
“진실은… 그래. 야에가스의 왕좌가 나를 선택했다.”
“…….”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정당한 왕으로서 야에가스 왕좌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왕의 교회는 기꺼이 그 미친 자를 잡아다 갈기갈기 찢고 마지막엔 불에 태워서 죽여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자딘은 실제로 왕화의 빛을 발현시켰으니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그럼 어째서 왕좌를 거부한 겁니까?!”
“반릉의 왕좌 정도로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없으니까.”
“네? 아니 그게 무슨… 그래서 부쉈습니까?”
“부순 건 내가 아니야.”
“그럼 당신이 앉고서 왕좌가 부서졌는데 누가 부쉈단 말입니까? 제가 부쉈단 말입니까?”
“흥분했군. 지벡.”
“흥분하지 않게 생겼습니까? 당신이 왕좌에 앉고 왕화의 빛이 뿜어져 나올 때 저는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과 미혹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내가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 이 비루한 목숨, 비겁하게 연명하며 꾸역꾸역 살아왔구나! 감탄하고 감복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왕좌가 부서지다니요! 제 심정을 당신이 이해하신단 말입니까? 정녕?!”
“그게 말이지… 일단 언성부터 죽여. 소리가 울리잖아.”
아자딘은 그답지 않게 흥분한 지벡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굳이 어렵게 가시는군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왕으로서의 자신을 내려놓았단 말입니까? 당신이 정말 왕좌의 부름을 받은 존재라면 당연히 반릉의 왕좌를 차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당신을, 물론 당신의 태생 때문에 거부하는 이들도 있겠습니다만, 당신을 왕으로 인정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 되었을 겁니다! 왕의 깃발 아래 모두 하나 되어 이 환란을 이겨냈을 거란 말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화가 나는 건, 왕좌가 부서져서 제 기대가 시궁창에 처박힌 것도 있지만 그걸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당신의 태도입니다! 아자딘 백작! 당신이 차버린 것은 왕의 교회의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바라 마지않는 진정한 기적이었단 말입니다!”
“지벡.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나는 딱히 내 개인적인 이상이나 철학 때문에 당장 손에 넣은 반릉의 왕좌를 거부한 것은 아니야. 일단 진정 좀 해. 아, 그래. 신왕진서 보여줘야지.”
“네?”
아자딘이 정신을 집중하자 그의 머리 뒤로 성스러운 빛의 헤일로가 나타났다.
“…어?”
격노하던 지벡이 마침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자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 힘은 정확히 왕화의 빛과 일치했다.
마치 아자딘 그 자신이 왕좌가 된 것 같은….
“왕좌에 앉은 순간, 신왕진서가 온전히 내게 옮겨졌다. 지금의 나는 정당한 반릉 왕국의 왕이다.”
“읍! 읍! 읍!”
에디르가 몸을 비틀어 대며 반감을 표했다.
그러나 아자딘이 뿜어내는 빛은 과거 이 땅의 왕들이 아직 타락하기 전, 신령한 존재임을 과시하는 왕화의 빛이었다.
격노하던 지벡도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어설픈 마음으로 왕좌를 부순 게 아니라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왕좌에 앉는 순간 나는 야에가스의 신령들을 만났다.”
“으읍 크웩, 끄워어어!”
에디르가 아주 몸부림을 심하게 쳤다. 니셀다가 아자딘을 바라보며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하지 마.”
“아쉽군요. 살려둬봤자 좋을 게 없는 놈 같은데.”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속 시원하자고 손을 더럽히면 점점 더 주체할 수 없게 될 거야. 정의의 문은 좁아서 사실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거든. 살인의 문턱을 낮추면 결국 전 인류를 다 죽이는 행위조차 정당화할 수 있어. 아무도 문턱 높은 정의의 문을 통과하지 못할 테니까.”
“이야기나 계속하시죠.”
지벡은 에디르의 처우보다 아자딘이 야에가스의 신령들을 만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래. 신령은 하나이면서 여럿인 거대하고 위대한 어떤 정신이었지.”
“그거참, 제가 당신을 믿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당신을 저잣거리에서 화형시키고 싶어지는 발언을 하시는군요.”
“자기가 듣고 싶다고 물어본 주제에 그러면 어쩌라는 거야? 어쨌건 야에가스의 신령들은 여기까지 온 나를 치하했다. 그간의 내 고행과 헌신에 대한 보답으로 내게 신왕진서를 선사한 후, 반릉의 왕이 되어 핌불베르트와 맞서 싸우라 했지.”
“좋군요. 그런데요?”
“나는 반릉만 지켜야 하냐고 물어봤지.”
“…….”
“야에가스의 신령들은 내 몸이 이미 태생의 저주로 상당히 망가져 있으며, 반릉의 왕좌에서 왕화의 빛을 발하는 매개가 되는 것으로 내 수명이 다할 것이라고 말했지. 하지만 그것은 영광된 죽음이니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이 땅에 야에가스의 약속이 살아있음을 증명한다면, 사후 그들의 편에 서서 내세에서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을 받았다. 야에가스의 신령들에 의해서 승천할 것이라고 약속했지.”
“읍…!”
묶여있던 에디르가 몸을 비틀었다.
아자딘이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영광이다.
신들이 아자딘에게 정의의 기둥이 되고 추후 그들의 곁에 승천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왕들조차 겪지 못한 놀라운 영광이다.
“과연 진정한 왕 다운 일이로군요. 영광된 일입니다.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필멸자의 목숨으로 세상을 지키고 승천하다니. 왕의 교회의 신도라면 누구나 꿈꿔온 영광일 겁니다.”
“그런데 나는 거절했지.”
지벡은 처음으로 자신의 스승인 젝트 경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