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76
375. 모독의 성왕 4
아자딘이 저주에서 태어난 남자의 아들이라는 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
과거 그것은 저주의 상징이었으나 지금 아자딘이 백작 위를 계승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비범한 태생의 탄생설화 같은 것이 되었다.
“이거 참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군요. 왕이시여. 그런데 어째서 반릉의 왕좌에 앉지 않고 여기에 나와 계시는…….”
시온 에타르가 그렇게 말하자 아자딘이 손을 내저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린 하지 마. 이제 와서 갑자기 경칭을 하다니. 너무 어색하지 않나?”
“…….”
시온 에타르는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흑강전을 활시위에 걸어두었던 이들이 활을 내렸다.
“설마 왕좌를 박차고 나왔다고 말하는 건가?”
“정확해.”
“제정신인가? 왜? 정당한 왕임을 입증하지 않았나? 저 왕의 교회 놈들은 아니지만 구난기사단의 셀레스티얼들이 곧 당도할 텐데 그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이 신왕임을 보여주었다면…….”
“그러게 말입니다.”
생뚱맞게도 지벡이 시온 에타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모두의 시선이 지벡과 시온에게 쏠렸다.
‘세상에 진짜야?’
‘진짜로 왕좌를 박차고 나왔다고?’
전령일족들은 지벡의 반응을 보고 정말 아자딘이 왕화의 빛을 발현시켰으며 왕좌를 박차고 나왔다는 걸 확실히 믿게 되었다.
“만약 네가 왕이 되겠다고 하면 일족은 과거를 잊고 전력을 다해 널 왕으로 추대할 것이다.”
시온 에타르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말했다.
“아자딘, 그대도 영지를 경영해 보니까 알겠지? 아라가사의 역량이 영지 경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우리가 돕는다면 왕국을 경영하는 것도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네더의 사신 소환해 백성들을 학살한 이들과 손을 잡는 게 어떻게 진정한 왕일 수 있지?”
“북제는 가능한 모양이던데?”
시온 에타르는 아자딘에게 엄포를 놓았다.
왕화의 빛을 발현시켰다고 해서 우쭐대지 마라. 다른 옵션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런 의미의 엄포였지만 당연히 아자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곤란하겠지. 북제에게는 북방 아라가사 일족들이 이미 있으니까. 그리고 당신들의 야망은 단지 북제가 약속하는 것, 자기가 황제가 되고 전령일족을 복권해 주겠다는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잖아. 안 그래?”
시온 에타르는 아자딘이 현재 일족이 처한 상태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에 놀랐다.
‘역시 유능하군. 카자스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아라엘과 융합하면서 그 재능이 뒤늦게 개화한 것 같은데.’
아자딘이 말한 대로 현재 일족은 북제와도 느슨한 협력을 하는 중이다.
정확히는 북제가 자신이 황제가 되면 전령일족을 복권해 주겠다고 미끼를 흔드는 중이고, 전령일족은 미끼를 물듯 말 듯하면서 또 따로 활동하고 있었다.
네더의 신들을 강림시켜 일으킨 혼란기를 이용해 자신들의 몫을 더 챙기겠다는 게 현재 전령일족들의 방침이다.
그 방침을 위해서 아자딘이 왕이 된다면 그것도 이용하려 하는데….
아자딘이 전령일족들의 그러한 방침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긴 괜히 왕좌가 그를 왕으로 선택한 게 아닐 테지. 우리와 대놓고 손잡으면 왕으로서 자격이 있을 리가 없지. 아.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악당이라고 자인하는 꼴인가? 음. 아니 뭐 명백히 선인은 아니지. 휘브리스 백성 놈들이 죽어 마땅하긴 했지만 무력한 민간인들이 섞여 있는 것도 사실이니. 그 무력한 민간인들도 주제넘게 아라가사들에게 돌을 던져대는 잡놈들이지만 말이야.’
시온 에타르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그가 아라가사 원로원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굉장히 높지만, 아자딘이라는 재료는 명백히 그 혼자 다룰 수 없는 커다란 안건이 되어버렸다.
왕좌에게 선택받은 성왕이 아라가사 혈족에서 나타났다니.
정치적으로 써먹을 요소가 너무 많다.
“시온 에타르. 장로는 당신 혼자 와있나? 그렇다면 당신 혼자서 결정할 사항이 아니지? 머리가 복잡할 텐데 가도 좋아. 가서 다른 이들과 상의하고 충분히 생각하고 오라고.”
아자딘은 흑강전으로 완전 무장한 정예 아라가사들을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그렇게 말했다.
시온 에타르가 절대로 이 사항을 혼자서, 즉결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오는 여유였다.
그 여유가 얄미워서 시온 에타르가 은근히 협박했다.
“아자딘. 지금 흑강전 사수들이 그대를 겨누고 있는데 쏴버리지 않을 이유가 있나? 하다못해 그대를 굴복시키고 납치하면 왕의 권능을 가진 존재를 확보할 수 있는데.”
“정말 납치하고 싶었다면 벌써 공격을 가했겠지.”
“미디암 에타르의 목숨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아자딘. 그녀의 목숨이 아깝다면….”
“에타르 혈족이 에타르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건가. 너무 수준이 떨어지는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하아….”
시온 에타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협박하고 어르고 달래도 아자딘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요? 장로님?!”
“철수한다.”
시온 에타르는 놀랍게도 흑강전 사수들로 포위한 이 절대적인 우세를 포기했다.
“미안하군. 나도 예상치 못한 일에 혼란스러워서 할 필요 없는 발언을 하고 말았다. 용서하도록. 그만큼 간절하게 아자딘 네 협력이 필요하다고 이해해 주면 좋겠군.”
시온 에타르는 그 말을 남기고 부하들과 함께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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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군.”
아자딘은 전령일족들이 물러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령일족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허세를 부렸지만 흑강전 사수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령일족들이 흑강전을 겨누고 있을 때는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괜히 신왕살해자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말이 통하는 놈이라서 망정이었지 다른 놈이면 위험할 뻔했어.”
“하지만 명백한 약점이 생기겠군요. 저들은 지금은 왕좌가 부서졌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나중에 왕좌가 부서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걸 누가 부쉈는지 자연히 알게 될 겁니다.”
지벡은 아자딘에게 눈총을 주었다.
“어쩔 수 없잖아. 흑강전의 소낙비를 맞고 싶지는 않은걸. 허세 떨어서 저것들 물러나게 한 것만으로도 할 만큼 했어. 그럼 더 골치 아픈 일 겪기 전에 빨리 도망치자.”
“왕좌를 부쉈는데 골치 아픈 일이 이것뿐이겠습니까?”
“내가 부수려고 부순 게 아닌데. 그만하지 그만해.”
아자딘은 산의 능선 오솔길을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가급적 다른 이들을, 특히 셀레스철 파이어 기사단을 만나지 않고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
왕화의 빛이 발현된 이후, 반릉의 상공에 휘몰아치던 강풍과 사악한 그림자가 사라졌다.
오히려 따뜻한 훈풍이 반릉 곳곳에서 불어오니, 이에 놀란 아자딘의 군벌은 즉시 히포그리프 정찰병들을 보내 반릉 왕국 내부의 사정을 염탐케 했다.
그리고 그들과 중도에 합류한 덕분에 아자딘 일행은 셀레스철 파이어와 조우하는 일 없이 무사히 본대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
히포그리프를 타고 셀레스철 파이어를 피해 따로 본대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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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아니 이놈의 히포그리프 진짜 애매하네. 타고 오니 좋긴 하지만, 장거리 여행을 갈 때 보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타고 갈 수가 없잖아? 쓸 수 있을 때는 참 좋은데 그 쓸만한 환경을 조성하기가 힘들군.”
아자딘 일행은 순찰대의 히포그리프를 얻어 타고 꽤 빠르게 산도카르 요새로 돌아왔다. 갈 때는 그렇게 힘들었던 길이 붕 날아오니까 정말 억울할 정도로 편리했다.
갈 때도 히포그리프를 탔으면 좋았을 텐데, 갈 때는 강풍이 불고 네더의 마물들이 하늘을 점거하고 있어서 쉽게 타고 갈 수가 없었다. 아자딘이 말한 대로 보급도 문제였다.
대량의 식사를 해야 하는 히포그리프를 데려갔다면 식수와 사료의 부족으로 허덕였을 것이다.
“아니 아자딘 백작. 아무리 백작이라고 해도 나의 히포그리프를 욕하는 건 용서 못 해!”
히포그리프를 육성하는 데 인생을 바치다시피 한 미노타우르스, 셀림은 히포그리프를 타고 귀환한 아자딘이 불평을 말하자 눈이 뒤집어지려고 했다.
“셀림. 존귀하신 분의 앞입니다. 말조심하세요.”
니셀다는 셀림의 태도를 나무랐다. 그녀에게 아자딘은 철천지원수 그리셀다를 해치워 준 은인이며 야에가스의 신령들에게 선택받은 성왕이었다.
비록 아자딘이 자신을 왕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으니 참고 있지만, 어전에서 셀림이 경거망동하는 것까지 참아주고 싶지는 않았다.
“뭐야 니셀다. 갑자기 태도가? 원래부터 아자딘 백작에게 예의를 차리긴 했지만 지금 이건…… 아, 설마 그리셀다를 처치했나?”
셀림은 니셀다의 숙원을 아자딘이 이루어줬음을 눈치챘다.
“그래. 그리셀다는 처치했다. 그뿐만이 아니지. 모든 간부를 소집해.”
아자딘은 반릉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와 공유하기 위해 간부들을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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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자딘은 강대한 군벌의 수장이었다. 산도카르와 나이산도카르를 흡수한 아자딘은 근처의 난민들을 받아들여 엄청난 양적 팽창을 이루고 있다.
이제 아자딘의 작전회의장은 일종의 어전회의처럼 되어서 이 안에 참석할 수 있는 이들은 다들 무시 못 할 관록이 붙었다.
“원 참. 동족들 피를 팔아서 출세한 기분이군. 복잡한 심경이야.”
드워프 용병 출신인 칼란은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반릉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튕겨 나온 입장이지만, 반릉의 드워프 왕실이 뱀파이어에 오염되었고 이런 끔찍한 타락을 저질렀으며 그것을 아자딘이 처리했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하는 걸 느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즐겨. 그래서 대장. 어떻게 된 거야? 소문에 의하면 왕화의 빛이 반릉에 발현되었다는데.”
“그거 때문에 너희를 소집한 거야. 나는 반릉의 왕좌에 앉았고 내가 야에가스의 신령들에게 선택받았지.”
“………….”
“어. 대장. 아주 재밌는 발언이었어. 농담이라면 틀림없이 재밌긴 한데. 그게, 대장 사회에는 위치라는 것도 있잖아. 세상엔 농담이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해야 하나….”
평소 성실하지 못한 리전조차 횡설수설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답 대신 아자딘은 자신의 힘을 발현했다.
아자딘의 머리에서 빛의 헤일로가 나타났다.
따사롭고도 은혜로운 금색의 빛이 아자딘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며 추위와 한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아니 이건?”
산도카르 백작 이브첵이 제일 먼저 아자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 맙소사. 왕화의 빛! 설마 내 생애에 진실된 왕화의 빛을 보게 될 줄이야! 왕이시여!”
“아.”
다른 이들도, 심지어 장난기 넘치는 하프엘프 리전도 아자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자딘이 왕화의 빛을 손에 넣었다는 걸, 그가 왕좌에 앉고 신령들에게 선택받았다는 게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