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82
381. 겨울의 입구 1
산도카르 백작 이브첵은 반릉 왕국에서 육로를 통해 몰려오는 난민들에 고심하고 있었다.
반릉 왕국에 왕화의 빛이 감돌고 뱀파이어들이 몰살되어 자유로워졌다지만, 반릉 왕국에서 밀려오는 난민들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다.
왕족과 귀족, 관료와 기술자들이 뱀파이어가 되거나 네더의 힘에 타락해 버리면서 국가체제의 붕괴.
더군다나 본래 고도화된 산업기술 국가였기에 식량을 해외로부터 수입했던 만큼 식량 수급 및 배급이 원활하지 않다.
왕화의 빛이 왕국을 가호한다고 하더라도 난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누군가 빨리 왕의 역할을 대신해 이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데, 경직된 왕의 교회의 방침으로는 쉽사리 다음 왕을 결정지을 수 없다.
‘아자딘 백작이 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이 난민들을 받아야 하는데 핌불베르트가 찾아온 지금, 과연 이 난민들을 받는 게 올바른 일일까?’
이브첵 백작은 그 점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난민들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하면 성실한 백성과 병사들의 동기가 손상당한다. 그렇다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굶주리면 도둑질, 강도질, 소매치기 등 온갖 범죄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어떤 일거리를 준단 말인가?
그런데 때마침 아자딘이 콕스할에서 아랑기의 왕자를 인질로 잡았다는 소식을 듣자 이브첵 백작은 난민들을 싹 징집해 보급대라는 명목하에 콕스할을 향해 이동했다.
난민도 치우고 그들에게 일을 주기 좋으며 또 지금이라면 아자딘이 뭐라도 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행군은 가혹했지만 그들은 군말 없이 이브첵 백작을 따라 콕스할로 향하는 행군에 가담했다.
그리하여 이브첵 백작이 콕스할에 당도하니….
“음, 잘왔군 이브첵 백작. 때마침 사람들이 필요했던 참이었어.”
아자딘은 이브첵 백작을 환영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전갈을 보내긴 했지만, 상황이 급박해서 답신을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성급하게 결정을 지었는데 행여 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아니야. 전황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판에 굳이 상부의 명령만 받아야 움직이겠다는 건 현명한 지휘관의 방식이 아니지. 야전에서 그때그때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 훌륭했어.”
아자딘은 명령 없이 멋대로 난민을 끌고 온 이브첵 백작을 오히려 칭찬했다.
‘놀랍군.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난민들을 끌고 온 나를 칭찬하다니. 그런데 여기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이브첵 백작은 이미 상당히 많은 이들이 콕스할을 재건하고 길을 정비하는 것을 보며 의구심을 품었다.
“뭡니까 이들은? 상당히 잘 단련된 병력이 순찰을 하는 것 같은데요.”
“아 저들은, 아랑기 왕국 군이지.”
“네. 그렇군요. 음. 네?”
이브첵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아랑기 왕국의 왕자를 인질로 잡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마치 동맹처럼, 아니 오히려 부하처럼 저들을 부리고 있단 말인가?
“아, 그게 말이지.”
아자딘은 그간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
스람 왕자를 인질로 잡은 아자딘은 콕스할을 보급기지로 만들기 위해 무너진 건물들을 치우고 도시를 재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자딘이 끌고 온 병사들의 숫자는 상당하지만 문제는 아랑기 왕국 병들이 콕스할 밖에서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들을 경계하면서 공병 작업을 해나가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랑기 왕국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그들의 임무는 콕스할을 재건하고 차지하는 것.
하지만 스람 왕자가 인질로 잡히는 바람에 현재 콕스할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람 왕자의 몸값을 내기 위해 스람 왕자의 모계, 일타스 가문에 편지를 보냈지만, 활력 마법이 걸린 비둘기를 날려 보내도 응답이 오려면 몇 주는 소요될 것이다.
그동안 꼼짝없이 군량을 까먹으며 허송세월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자딘이 그들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어차피 너희들 임무는 콕스할을 재건하는 것이었을 거다. 재건 작업에 협력하지 그래?”
“네? 우리를 무슨 병신으로 보십니까? 왜 우리가 당신들 손에 들어간 콕스할을 재건하는데 협력합니까?”
“백작님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도 억울해 배알이 뒤틀릴 판인데 선물까지 얹어주라니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스람 왕자의 부하들은 아자딘의 말을 진담이 아니라 무슨 도발쯤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아자딘은 그들의 태도가 정중한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발언은 위험하군. 앞으로 쭉 콕스할의 영유권이 내게 있음을 인정하겠다는 걸로 해석될 수도 있어.”
“아니 그건….”
너무 나간 해석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왕의 교회의 빡빡한 율법은 해석하는 쪽의 마음에 따라서 평범한 발언도 얼마든지 불순한 의도를 씌워 처벌할 수 있었다.
스람 왕자를 빼앗긴 추태를 범한 지금, 아자딘이 말하는 곡해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아랑기 왕국에서 그들을 처벌할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뭐지? 그래서 우리들 보고 자기 휘하로 들어오라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방금 적이었던 놈 밑에 그렇게 쉽게 들어갈까?’
‘우릴 너무 우습게 보는군.’
스람 왕자의 부하들은 아자딘의 제안이나 회유에도 자신들이 넘어가지 않으리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그때 아자딘이 제안해왔다.
“콕스할 재건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급료를 준다면 어때?”
“네?”
아랑기 왕국군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따로 급료를 주겠다. 처음부터 그대들의 임무는 콕스할 재건이었을 테니까. 콕스할 재건 작업을 한다고 해서 상부에 책잡힐 일은 없겠지?”
“아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지금 스람 왕자가 포로가 되었다는 전갈을 보내놨으니, 그 답장에 따라서는 스람 왕자가 죽건 말건 전투를 벌여 콕스할을 빼앗으라고 명령이 내려올 수도 있다.
그런데 아자딘은 그런 적군에게 급료를 줄 테니 콕스할 재건을 도우라고 한단 말인가?
“저 백작님.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물론이다. 한시라도 빨리 콕스할을 다듬어서 난민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싶어서 그런다. 물론 두렵겠지.”
“네?”
“그러나 생각해 보도록. 콕스할 재건 작업에 함께 하면 우리의 방어 태세와 진용, 근황 및 식량 사정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탐 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
“…….”
아랑기 왕국군의 병사들은 아자딘의 제안에 당황했다.
아자딘 백작이 이끌고 온 병력의 숫자와 질을 생각할 때 지금의 아랑기 왕국군이 아무리 아랑기안 가드들이 섞여 있다 해도 무력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상대. 그러나 그렇다고 제자리에서 계속 손가락을 빨고 있으면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급료를 준다니? 제정신이냐 이놈?’
‘그게 돈이면 받아도 쓸모가 없지 않아요?’
‘돈으로 주진 않겠지.’
‘그렇게 말하고 돈으로 줄지도. 이젠 먹지도 못하는 .’
‘하지만 돈으로 주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이상하잖아. 할 것도 아닌데 급료를 뭐로 주냐고 물어보면….’
휘브리스에서는 어지간한 대귀족이 아니라면, 종사 계급도 벌 수 있을 때 벌어놔야 했다.
아자딘이 급료를 주겠다고 하니 다들 물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저기 급료는 뭐로 주는 겁니까? 경화?”
“돈으로 받고 싶어? 그럼 이쪽도 좋지만.”
“돈 말고 다른 걸로도 주십니까?”
“식사는 해결해 주고, 보수로 보리를 지급하려고 하는데.”
“……네?”
곡물로 급료를 주겠다는 말에 모두들 화들짝 놀랐다.
현재 곡물 가격은 매 순간순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상황. 아자딘의 급료제안은 과거 경제가 멀쩡하던 시절 병사들에게 과분한 보수인 금화를 약속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하, 하겠습니다.”
“이 새끼야. 네가 지휘관이냐? 내가 결정해야지.”
“그럼 안 하실 겁니까? 사관님?”
“하면 안 돼.”
사관은 마치 스스로 내장을 끊어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아자딘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 아자딘이 말했다.
“물론 작업의 총책임자는 내가 따로 제안할 것이다. 그대들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
“아니, 그게 당신이 결정한다고 우리가 책임지지 않는 게 아니거든요.”
“소개하지. 콕스할 재건의 아랑기인들을 감독할 사람, 바로 스람 왕자다.”
“네?”
인질이어야 할 스람 왕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풀려나 아랑기인들 앞에 섰다.
“어.”
“정말입니까?”
“그, 그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스람 왕자는 자기 부하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
스람 왕자는 아자딘의 포로가 된 후 아자딘의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
식사라고 해도 간결한 빵과 고기죽이 전부였다. 귀족의 식사라기보다는 종사 계급이 전투력과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영양식에 가까웠다.
아자딘은 그런 식사를 마치고 차를 끓였다.
“스람 왕자. 아랑기인들을 콕스할 재건에 참여시키려고 하는 데 감독관을 맡아주겠나?”
“날 미친놈으로 보는 건가? 그런 짓을 하면 아랑기에서는 나를 배반자로 여길 거다. 나를 풀어주면 나는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굴욕적으로 포로가 되느니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거야. 아랑기안 한 사람 남김없이 전원 전장에서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다!”
“흠.”
아자딘은 스람 왕자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정말 자기 목숨을 별로 아끼지 않는군. 겁쟁이다워.”
“뭐?! 날 모욕할 셈이냐?”
“목 위에 얹어둔 게 투구 걸이가 아니라면 조금쯤은 생각해 봐라. 그대가 공격을 걸어오는 것과 온전히 투항하는 것, 어느 쪽이 내게 더 큰 부담일지.”
“모욕하는 거 맞군!”
스람은 자신의 공격을 완전히 우습게 보는 아자딘의 태도에 분개했다. 그러나 아자딘은 싸늘한 시선으로 스람을 노려보았다.
“그 정도로 멍청하면 모독할 가치도 없지. 스람 왕자. 지금 세간에 내 평가가 나쁘지 않은 이유가 뭐지? 다른 왕들조차 포기한 난민들을 내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분에 식량 사정은 좋지 않지. 나는 핌불베르트를 예견하고 최대한 식량을 끌어모았지만, 지금처럼 난민들을 받아들이면 아무리 많이 비축했어도 버틸 수가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분에서 다른 왕들보다 페널티가 많아서 그런 난민들의 지지조차 버릴 수 없어.”
“…….”
“운 좋게 좋은 부모 만난 놈들은 백성들을 말려 죽이겠다고 해도 지지받는데 전령일족에서도 박해받던 나는 다 먹여 살리겠다고 무리해서 끌고 가도 의혹의 시선만 받을 뿐이지. 이런 상황에서 그대가 공격해서 내 병사들, 난민들이 죽는다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니지. 비난은 나를 적대하는 아랑기 왕국에게 떠넘기면서 입을 줄일 수 있으니까 나로서도 환영할 일이로군.”
“그게 무슨….”
스람 왕자는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