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83
382. 겨울의 입구 2
아자딘이 차드라 고원에서 길을 닦고 나이산도카르와 산도카르 지방으로 내려왔을 때부터 인근의 귀족들과 왕족들은 아자딘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겉으로야 영혼 없는 불경자, 재수 없는 전령일족이라고 폄하했지만, 자기 영역 인근에서 폭발적으로 힘을 키우고 움직이는 세력을 모르는 척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산도카르의 이브첵 백작은 아자딘에게 굴복한 것이고 아랑기에서는 어차피 차지하지도 못할 나이산도카르 지방의 변경백 위를 제수하여 체면을 지킨 것이다.
스람 왕자 역시 아자딘의 지금까지의 행각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난민들을 거두어들이는 모습을 보며 스람 왕자는 대놓고 비웃어왔다.
‘뒷생각 없이 그저 호의만 베풀면서 인심을 끌어모으다니 다른 왕들이 뭐 생각 없어서 식량을 아끼는 줄 아는가? 얄팍한 호의로다. 어리석구나. 천한 신분으로 어설프게 귀족 흉내를 내려고 하니 어쩔 수 없겠다만 저렇게 앞날을 내다볼 줄 몰라서야 얼마 못 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한편으로는 은근히 질투와 시기심을 불태웠다.
아자딘의 천한 신분으로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행위가 고결하고 올바르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인정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아자딘의 발언을 들으니….
‘생각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놈이었군. 그 사람 좋은 모습들 모두 그 나름의 계산에서 움직이는 것이었다니. 나야 그렇다 쳐도 그럼 이 녀석의 후원자인 아케나르 주교는….’
스람 왕자는 문득 아케나르 주교를 떠올렸다.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보다 어린 어머니가 되는 여자. 귀족과 왕실의 충동에 멋대로 희생된 그녀가 아자딘의 본색을 알고서도 후원한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이 교활하고 음험한 전령일족 놈이 아케나르 주교를 속여넘기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우리라.
“이놈. 아케나르 주교가 그대를 후원한 것으로 아는데, 그녀도 네 이런 사악한 본모습을 알고 있었나?”
“아니 조금 전략적으로 굴었다고 사악한 모습이라고 할 것까지야. 그런데 아케나르 주교는 왜?”
아자딘은 스람 왕자가 갑자기 아케나르 주교를 언급하자 잠깐 멈칫했다.
“그분의 호의 덕분에 네가 구난기사단에 들어온 걸로 아는데, 네놈… 설마 그런 은인까지 속여가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악한이었을 줄이야. 나나 세상을 속이는 건 용서할 수 있어도 아케나르 주교님을 속인 것은 너무 하지 않는가?”
“흐음.”
아자딘은 스람 왕자가 아케나르 주교를 언급할 때마다 애틋한 정이 비치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적당히 속이고 구슬려서 이용하려고 했는데. 이 녀석, 아케나르 주교와 관련이 있었나. 그렇다면 그녀를 봐서라도 모략으로 대할 수는 없겠군.’
비록 아케나르 주교는 죽어 없지만, 그녀의 호의는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아자딘은 그녀에게 호의를 보이는 자를 속임수로 대할 수 없었다.
“저기 스람 왕자?”
“뭔가. 아자딘 백작.”
“방금 했던 말을 주워 담고 싶은데.”
“뭐?”
스람 왕자는 아자딘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을 보며 다시금 의혹을 품었다.
‘혹시 나를 머저리로 아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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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얄팍한 수를 썼다가 오히려 풀기 힘들게 일이 꼬여버렸다.
하지만 아자딘은 스람 왕자의 신병을 인질로 잡고 있었으니 그를 납득시킬 시간은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아자딘은 스람 왕자에게 자신이 진실로 아케나르 주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밝혔다.
설령 자신이 처음에 보인 모습대로 용서 못 할 악인이라 해도, 아니면 백성들의 목숨 하나하나를 아껴서 무리해서라도 전부 다 거둬들이려 하는 선인이라 해도, 양쪽 어느 쪽이라 해도 스람 왕자는 아자딘과 협력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걸 납득시켰다.
아자딘이 위선자, 악인이라면 그의 식량을 축낼 수 있어서 좋고.
아자딘이 선인이라면 그의 선한 사업에 보탬이 될 수 있어서 좋다.
결국 스람 왕자는 석연치 않아 하면서도 아자딘의 편으로 돌아섰다.
스람 왕자는 인질 신분이면서 아랑기 인들의 감독관으로서 콕스할 재건에 나섰다.
지휘관인 스람 왕자가 아자딘의 편에 서서 콕스할 복원작업에 나서자 부하들도 군말 없이 따르게 되면서 작업 속도가 더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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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거다.”
아자딘은 이브첵 백작에게 스람 왕자와 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이브첵 백작은 혀를 찼다.
“놀랍군요. 설마 적장을 설득해서 아군의 공병 작업을 떠넘기다니. 하지만 상대가 그 스람 왕자라면 이해합니다.”
“그 스람 왕자?”
“아 이 일대에선 유명한 이야기지요. 본래 아케나르 주교, 그러니까 치타이의 공주 하월을 보고 첫눈에 반한 스람 왕자가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부왕에게 청원했었습니다. 그런데 부왕인 아랑기 왕이 냉큼 그녀를 자신의 비로 맞이해 버렸지요. 워낙 유명해서 이 일대 음유시인들이 마르고 닳도록 노래한 이야기입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나?”
“네. 전령일족들도 잘 알 텐데요?”
“나는 여기 말고 동쪽 담당이라서 잘 몰랐지. 그래서였군.”
아케나르 주교에 대해서 스람 왕자가 보이는 태도에서 비치는 그리움과 동경은 그런 의미가 있었나. 아자딘은 그리 생각하고 혀를 찼다.
아버지가 아들의 결혼 요청을 듣고 오히려 그 여자를 빼앗아 버리다니. 참으로 막장 아버지가 아닌가? 스람 왕자가 이제야 아버지를 배신하고 돌아선 것을 보면 야에가스 신왕이란 자리가 참으로 굳건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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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람 왕자가 아자딘 백작에게 인질로 붙잡혀 몸값을 요구당하고 있다.
그런 전갈이 아랑기 왕성에 당도했지만, 당연히 아랑기 왕은 동전 한 닢 낼 생각이 없었다.
스람 왕자의 모계도 어차피 왕이 될 일 없는 스람 왕자에게 그런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아랑기의 왕실에서는 이 기회에 아자딘 백작을 처단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감히 아랑기 왕실의 왕자를 붙잡고 몸값을 요구하다니 배은망덕하군요. 애초에 그를 백작으로 선택한 것은 우리 고결하신 폐하의 은혜가 아니었습니까?”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과연 전령일족은 인면수심이로군요. 이 기회에 그를 처단하고 그가 차지한 나이산도카르와 산도카르를 빼앗아야 합니다.”
아랑기 왕실의 문무백관들은 다들 하나같이 아자딘을 토벌해야 한다고 언성을 드높였다.
그가 아랑기 왕국의 숙원이던 반릉 왕국의 왕좌를 주장하고 나선 것부터 용서가 안 되는 일인 데다가, 각지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가 대량의 식량을 비축하고 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두가 토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저, 그런데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아자딘 백작은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나이산도카르는 본래 세상이 멀쩡할 때도 감히 저희 병력과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포기한 땅이었습니다. 그를 변경백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그의 힘과 재주가 예사롭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까? 이번에 반릉 왕국을 제압한 것도 표면적으로는 구난기사단의 행동이라고 하지만 실리를 취한 것은 아자딘 백작입니다. 그런데 굳이 그와 적대할 필요가 있을까요?”
모두 주전론을 내뱉을 때 찬물을 끼얹은 것은 놀랍게도 아랑기 왕국의 새 왕비이며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의 딸인 지아델이었다.
엘프와 북제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엘프인 그녀는 9척이 넘는 키를 가지고 있어서 왕비의 옥좌에 앉아서도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왕가의 가신들은 노골적으로 짜증을 냈다.
아랑기 왕국에서 왕비는 결국 언젠가 수녀원으로 쫓겨날 무력한 장식물에 불과했다.
하물며 지금 왕비는 아랑기 왕의 취향이 아니라 더더욱 실권이 없다.
북제와의 동맹이 그녀의 머리 위에 왕비의 왕관이 얹혀있게 유지하는 유일한 구심력이었다.
그런 그녀가 국정에 관여하다니.
“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왕비 전하. 먼저 왕실에 이빨을 드러낸 것은 바로 아자딘 백작입니다.”
“네. 그는 반릉의 왕좌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중죄가 아닙니까? 그것을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왕실의 체통이 훼손됩니다.”
“게다가 그는 이단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민심을 흔들고 요설로 사람들을 현혹할 게 분명합니다. 그 전에 처리하는 게 화근을 도려내는 일입니다.”
가신들은 왜 지금 아자딘을 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비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치 아자딘 백작에게 군대를 대기만 하면 승리가 보장된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아니, 왕비 전하….”
“그가 반릉의 왕좌를 주장했고 이단의 가르침을 설파한다면 왕의 교회가 반드시 행동을 취할 텐데 그것을 보고 나서 움직여도 늦지 않습니다. 굳이 화덕이 불타고 있을 때 손을 집어넣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죠. 그가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는 걸 보면 보유한 식량이 꽤 많을 겁니다.”
“차드라 고원이 원래 곡창지대로 유명하긴 하지요.”
아랑기의 무관들은 자신들의 진짜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왕실의 봉신들이 무슨 도적집단처럼 약탈 욕구 때문에 전쟁을 획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했다.
원래 겨울철이 다가오면 봉건 국가는 전쟁을 준비한다.
농민들이 모든 수확을 끝내고 잠시 쉴 때, 그때가 전쟁하기 좋다. 농민들을 징집해서 전쟁을 수행해도 생산력에 큰 피해를 보지 않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휘브리스 대륙의 군주들은 한 번에 90일간 병력을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다.
겨울 90일간, 봉신들을 징집하는 것은 군주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겨울은 이처럼 전통적인 전쟁의 계절이었다.
“백성들의 목숨을 소모해 도적떼의 사업을 벌이려 하십니까? 믿을 수 없군요.”
지아델 왕비는 아랑기 궁성에 모여든 제자백관 모두의 모습에 경악했다.
그 모습을 본 아랑기 왕 카르나고 4세가 짜증을 냈다.
“왕비는 그만 들어가 쉬도록 하게. 군무를 다루는 자리에 함부로 나서선 안 될 것이야.”
“하오나….”
“어서.”
왕이 손짓하자 왕비의 시녀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쯧, 주제 파악도 못 하는 군. 아비에게 팔려 온 주제에 내정까지 간섭하려고 해? 언제쯤 자기가 인질, 아니, 헌상품이라는 것을 파악할지.’
아랑기 왕 카르나고 4세는 왕비와 시녀들을 물리고 부하들에게 전쟁을 준비시켰다.
겨울은 전쟁의 계절.
그리고 이번 겨울은 유달리 길어질 전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