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4
3. 금화의 악마 3
“삽 있어?”
“삽? 이들을 묻을 거란 말인가?”
지벡 경은 의아했다. 이 전령은 이미 금화를 받아 버렸다. 청원자가 죽었으니 더 이상 이들을 보살필 의리도 없을 텐데. 이들의 시체를 매장하겠다고?
“없으면 뭐 할 수 없지.”
아자딘은 지벡 경에게 등을 보인 채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
정녕 시체를 매장할 셈인가? 그 행위 자체가 코젤 공자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곳곳의 나무에 시체가 매달려 있고 사악한 마력이 그들을 언데드로 바꾸어 죽어서도 시체들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코젤 공자는 나무에 매달린 언데드들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려 할 것이다. 누군가가 도중에 장례를 치른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 하물며 그게 전령일족이라면 더더욱.
지벡 경이 당황할 때 그는 벌써 사람 한 명이 누울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시체를 묻었다.
“아.”
지벡 경은 그 모습을 보고 차마 검을 겨눌 수 없었다. 나무에 매달린 채로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방치한 시체들, 인간으로서 존중조차 받지 못하고 폭군의 가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깃발로서 매달려 있던 이들을 바닥에 내려 장례 지내는 모습에 어찌 검을 겨눌 수 있겠는가?
그리 생각하니 문득 자신이 너무나 비겁하고 하찮게 느껴졌다. 정작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이는 폭군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종사하고 있는 신세가 아닌가.
지벡 경은 칼을 칼집에 꽂아 넣고 아자딘에게 다가가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
왕의 교회의 성기사와 전령일족의 청년이 함께 땅을 파고 희생자들을 매장했다. 아자딘은 그렇게 매장한 희생자들 앞에서 합장했다.
지벡은 순간 흠칫 놀랐다. 이 청년이 어떤 이단의 주술로 사람들을 유린하려고 묻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방금 전의 번드르르한 말도 어쩌면 그를 미혹하기 위한 잔재주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자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황제 추종자, 전령일족이 아닌가?
그런데… 이 청년은 의외의 말을 입에 올렸다.
“지혜와 용기와 자비의 대천사여. 불쌍히 여기소서.”
놀랍게도 이 청년이 구난기사단의 축문을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구난기사단?”
“나야 전령일족으로 태어났지만 구난기사단의 이념이 마음에 들어서….”
“경망스러운 놈이로군. 태어난 일족의 숙명을 저버리고 이단의 믿음을 섬긴단 말인가?”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관철하지 않으면 태어난 의미가 없을 테니까.”
“…….”
이상한 놈이다. 한 마디 한 마디 절대 지려고 하지 않는데 젊은 녀석답지 않은 노련한 말에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대체 이 녀석은 뭔가?
지벡 경이 바라보는 동안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의 축문으로 죽은 이들을 장례 지냈다.
“어설프게 약식으로 치른 장례지만 그들이 언데드가 되는 건 막을 수 있겠지.”
장례를 치르지 않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언데드가 되기 쉽다. 하지만 전령일족인 그가 구난기사단 식으로 치른 장례에 정녕 효과가 있을 것인가? 그의 믿음은 진짜인가?
*********
구난기사단은 미덕을 수호하는 삼위의 대천사를 섬기는 교단으로, 출생신분에 상관없이 세 가지 미덕, 지혜와 용기와 자비를 지킴으로써 백색 마력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교단이었다.
왕의 교회는 통치이념으로써 유일한 종교로 자신들을 규정하고 있었으니 원래는 구난기사단을 이단시하고 처벌하려 했었다.
하지만 바다로부터 마물들이 몰려올 때 구난기사단이 육탄으로 그들을 막아내었으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구휼활동을 벌이니 민중들의 지지가 너무 크다.
게다가 많은 귀족 자제들이 구난기사단에 출가하니 핏줄이 섞이고 섞여 이제 왕의 교회나 구난기사단이나 그 구성원의 성격이 비슷하여 이단으로 지정할 수 없었다.
구난기사단은 왕의 교회가 신성시하는 신왕들을 존중하고, 왕의 교회는 구난기사단의 믿음에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서로 존중하기로 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정립되었다.
“정말 구난기사단의 믿음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언데드화를 막을 정도로?”
“너무 의심하는데?”
“구난기사단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한 인간의 귀천은 출생에 달린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신념과 행동에 달려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신왕의 피를 타고났다고 백성들을 강간하고 학살하는 놈이 고귀하지 않은 것처럼 말야.”
“…네놈.”
지벡은 아자딘의 말이 자신의 신앙을 비웃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분개했지만 둘이 함께 사람들을 묻고 난 후 그에게 칼을 빼 드는 건 그도 내키지 않았다.
그때 아자딘이 허리에 차고 있던 요대 같은 걸 풀었다. 잘 보니 그것은 활이었다. 활줄을 풀면 아예 뒤로 휘어질 정도라서 그는 그걸 허리에 요대처럼 감고 있던 것이었다.
능숙한 솜씨로 순식간에 활줄을 건 그는 배낭에 끼고 있던 전통(箭筒)을 꺼내 화살을 고정해뒀던 가죽끈을 풀고 전통을 비스듬히 허리에 맸다.
“싸우려는 것인가? 차라리 잘됐군.”
묘하게 마음이 가는 전령일족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곤란했다. 왕의 교회의 성기사에게 전령일족은 처단해야 할 적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명확하게 적대행위를 해주는 쪽이 좋았다.
그런데 아자딘이 대비하는 적은 그가 아니었다. 횃불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선생. 설마 그 여자가 마음에 들었던 거였어? 그런 거면 이야기하지.”
코젤이 시시덕거리며 부하들을 이끌고 몰려오고 있었다.
“하긴 이 하찮은 시골에 있기엔 아깝긴 했지.”
“킥킥.”
코젤 공자의 부하들이 창을 빼 들었다.
“그런데 그 새끼는 누구야?”
병사들이 시시덕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적지 않은 숫자다. 아니, 코젤 공자의 부하들 전부가 완전무장하고 몰려왔다.
이 야심한 시각에 전부 중무장하고 몰려온 것을 보면 어쩌면 그들은 지벡 경이 소녀를 보살피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확실할 것이다.
‘어렵겠군.’
지벡 경은 내심 혀를 찼다. 코젤 공자의 부하들은 판금 갑옷과 체인 메일을 섞어서 무장한 상태다. 어지간한 기사들 이상의 무장이다.
지벡 경도 실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중무장한 놈들 20명을 앞에 두고 있다면 도저히 손 쓸 방법이 없다. 하물며 눈앞의 전령은 경갑옷 상태가 아닌가?
그때 아자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쉭!
순식간에 화살이 날아가 선두에 있던 병사들을 노렸다. 보통 병사들이라면 꼼짝없이 당할 재빠른 사격이었다.
코젤 공자가 데리고 다니는 병사들은 노련한 기사들과 비교해도 떨어짐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방패를 준비하고 있었다. 약탈과 살인에 익숙할 정도로 노련한 병사들이었다.
-쐐액!
아자딘이 쏜 화살은 바람을 찢으며 선두의 병사들 방패를 피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몸을 비틀며 날아갔다.
-퍽!
놀랍게도 화살이 명중한 것은 방패병의 배후, 뒤에서 다가오는 창잡이들이었다.
“으아아악!”
창잡이의 얼굴이 뜯겨나갔다. 투구를 할퀴며 날아간 화살이 투구를 찢어 버리고 그들의 코와 눈알을 날려 버린 것이다.
“아니?!”
화살이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날아가는 것도 놀라운데 위력이 엄청나다. 대체 얼마나 강궁이어야 이런 게 가능한가?
지벡 경이 놀라워하는 사이 아자딘은 다시 화살을 뽑아 들어 활시위를 당겼다. 한 발은 하늘에, 다른 한 발은 방패병에게 쏘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방패를 들어 날아오는 화살을 막은 병사는 그 순간 자신의 팔을 마비시키는 엄청난 충격에 경악했다.
화살을 막았을 뿐인데 그것이 방패를 뚫고 들어와 그의 하복부, 아니 정확하게 생식기를 찌른 것이다. 놀라운 것은 또 있었다.
-퍽!
하늘에서 떨어진 화살이 그의 쇄골을 강타했다.
두 발의 화살이 동시에 한 목표에 명중한 것이었다.
“끄아아악!”
생식기와 어깨의 격통에 바둥바둥 구른다.
“마, 말도 안 돼!”
“저 활은 뭔데 갑옷을 종잇장처럼….”
“활을 쏘지 못하게 제압해!”
다들 아자딘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뒷걸음질 치면서 화살을 연거푸 쏘아댔다. 뒷걸음질 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앞으로 달려가는 병사들이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화살에 유린당했다.
-퍽!
눈알이 날아가고.
-투콱.
무릎을 부순다.
“…….”
추격하는 병사들 모두 눈치챘다. 이 녀석은 그들을 죽이려는 게 아니다. 영구적 장애를 남기려고 하고 있었다.
‘미친놈인가?’
‘죽이려고 해도 화살이 넉넉하지 않을 텐데.’
병사들은 상대가 쓸데없이 화살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반면 두려움을 느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노가 예사롭지 않다.
정말 저놈에게 맞아서 눈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방금 전까지 그들이 약탈하던 농부보다도 더 무력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괜찮아! 화살 다 떨어졌다!”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을 코젤 공자가 독려했다. 아자딘의 전통이 비어서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정말로 저 화살이 다 떨어진 것이었다.
“좋아!”
살아남은 병사들이 아자딘에게 접근했다.
“어떠냐? 화살이 떨어졌으니….”
“그럼 뭐?”
아자딘은 달려들던 병사의 안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컥?!”
주먹 일격에 투구가 찌그러지며 그 파편이 병사의 눈알을 깨부쉈다. 눈에서 피를 흘리며 병사가 빙글 돌며 쓰러지는 모습에 다들 깜짝 놀랐다.
“화살로 적당히 수는 줄였고… 용기 있으면 와 봐라.”
아자딘은 활줄을 풀어 다시 원형이 된 활을 요대처럼 허리에 차고 바닥에 떨어진 병사의 검을 집어 들었다.
“아, 잊을 뻔했군.”
그는 방금 전 자신의 주먹으로 실명한 병사의 사타구니 사이를 칼로 푹 찍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찌른 걸로 보이지만 수술처럼 정확한 일격이었다.
‘아니 대체 왜 거세에 이렇게 집착하는 거야?’
‘미, 미친놈이다.’
그 잔인한 모습에 병사들이 얼어붙었다.
“여, 역시 전령일족!”
허겁지겁 따라온 지벡 경이 무심코 소리쳤다.
“뭐? 저, 전령일족?”
“영혼 없는 자?!”
몇몇 이들은 전령일족의 흉흉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놈이 바로 그 전령일족이란 말인가?
“쫄지 마, 이 새끼들아! 도망치면 내 손으로 죽인다! 어차피 죽는다면 너희들이 살길은 저놈을 쓰러뜨리는 것뿐이….”
공자가 병사들을 위협했지만 아자딘이 움직이며 병사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누, 눈을 가려!”
눈을 가린 병사는 생식기를 잘리고, 차이고 무릎이 꺾여진다. 그렇게 아픔 때문에 얼굴이 드러나면 반드시 눈알을 향해 검이 날아와 눈을 도려낸다.
이런 작업은 단칼에 쳐죽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서 약점이 드러날 법도 하다만…. 다들 아자딘을 포위공격할 수가 없었다.
“뭐야? 창은 어디 갔어?”
“그게….”
아자딘이 뒤로 달리는 속도에 맞춰 오느라 창잡이들은 창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창을 들고 있는 이들에겐 아자딘의 화살 세례가 날아들어서, 이미 창잡이들은 대부분 제거된 상태였다.
‘이 새끼, 처음부터 이럴 셈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