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41
40. 복무의 저주 2
칼립소는 다른 전령 일족들이 아자딘에게 도전했다가 깨질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아이고 웃으니까 아직도 머리가 아프네. 거의 죽다 살아난 기분인데. 응?”
그때 칼립소는 발을 멈췄다. 그의 눈앞, 가뭄 때문에 메말라 버린 숲에서 이상한 공기가 느껴진다.
[안녕하신가, 106령 칼립소.]인공정령의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뭐냐 너는?”
[나는 목소리. 아라엘의 목소리다.]“아, 아라엘의 목소리라고?!”
[그래. 보시다시피.]“…….”
칼립소는 경악했다. 황제의 목소리는 강력한 대마법이다. 대륙 전체에 108의 인공정령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사람들의 청원을 관리하고 정보를 전달하며 통합된 의식을 갖게 한다.
이런 강력한 마법은 신적인 능력을 지닌 황제만이 만들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아라엘이 그걸 비슷하게나마 따라 했다고? 아무리 천재라고 불리던 아라엘이지만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내게 무슨 용무지?”
[그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할까 하는데.]메마른 숲 그늘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까마귀에 빙의해 말을 걸고 있는 것인가?
이런 점도 황제의 목소리와 같다. 아라가사가 아닌 자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황제의 목소리는 종종 새에 빙의하여 나타나니까.
그런데 이 까마귀는 어딘가 이상하다. 칼립소는 그 이유를 바로 알아챘다. 까마귀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고 그 안에서 눈알 하나가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
아자딘은 그 후로도 황제의 목소리를 내심 불러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초조한 가운데 살라스마를 향해 걸어가다 메마른 시내를 발견했다.
“그나저나 정말 가물군. 이쯤이면 비가 와야 할 텐데.”
아자딘이 본 농장들 어디나 물을 긷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동부 내륙지는 본래 물이 풍부한 서쪽 지역과 물이 가문 동쪽 지역으로 나뉜다.
그런데 최근 동쪽 내륙지에 비가 한 달 동안 오지 않으면서 서쪽 내륙지까지 물이 마르고 있었다.
“제가 동쪽으로 갈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타르키가 그렇게 말하며 말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타르키의 말도 목이 말라서인지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음… 물이 영 탁하군.”
아자딘 역시 산양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멈추어 섰다가 시내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 걸 보고 혀를 찼다. 거의 흙탕물이 되어서 물고기들이 파닥거리고 있었다.
흐름이 끊긴 시냇물에는 여울에 고여 있는 물들에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모여 질식해 죽어가고 있었다. 인근 농부들이 몰려와 가재며 물고기들을 퍼내고 있었다.
“저렇게 퍼내면 물고기 씨가 마르겠는걸.”
“뭐 그냥 냅둬도 어차피 죽어서 썩기나 할 거, 빨리 잡아다 먹는 게 낫겠죠. 하지만 이다음에는 큰일 나겠는걸요.”
미디암도 가뭄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산양이 헐떡거린다. 전령 일족들은 말보다 케림 산양을 선호한다. 케림 산양들은 말보다 더 지구력이 뛰어나고 점프력, 험지 주파 능력이 좋다. 깎아지른 절벽도 타고 오를 수 있으며 그 긴 털에서 나오는 왁스 에스테르는 도검의 방청유, 활과 화살, 창대 등의 유지보수에 두루 쓰인다.
하지만 이러한 케림 산양은 털이 많은 만큼 더위에 약하다. 더운 지방에서는 계속 쉴 새 없이 물을 먹여야 하는 것이니 가물어가는 이곳에서는 더 이상 케림 산양을 끌고 가기 힘들다.
“저 물을 먹이면 탈이 나겠어.”
“그럼 우물은 어떨까요? 강바닥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아직 우물까진 마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스마일이 말하자 아자딘이 혀를 찼다.
“우물을 쓰려면 마을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아야지.”
자신들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전령일족이다. 본래 전령일족은 진한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휘브리스의 다른 인간들과 많이 차별화되었지만 혼혈이 많이 진행된 지금에 와서는 다른 인종들과 비슷한 혼혈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심지어 창립자 일족인 미디암이 북구 휘브리스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정도 아닌가.
“아하하.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제가 기사 아닙니까?”
타르키가 나섰다.
“야! 미천한 농부 놈들아!”
“…….”
타르키가 농부들에게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자 아자딘은 얼른 투구를 벗고 안장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아 또 그겁니까?”
이스마일이 얼굴을 찡그렸다. 장님 순례자 행세라니.
“타르키가 너무 행패를 부리는데 그와 함께 있으면서 멀쩡해 보이면 같은 패거리로 여겨질 거 아냐? 우린 그냥 순례자인데 동행하는 걸로 하자.”
“알겠습니다.”
잠시 후 으스대며 타르키가 돌아왔다.
“어떻습니까? 농민 놈들은 기사가 하는 말이면 그냥 껌뻑 죽는다니까요. 마누라를 내놓으래도 내놓는다 이겁니다.”
“너무하시는군요, 기사님.”
“네?”
“…순례를 지켜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렇게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시면 악업을 쌓는 것입니다. 자비의 미덕을 실천하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제가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실례합니다.”
아자딘은 장님 흉내를 내면서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한창 시내에서 물고기를 퍼내고 있는 농민들에게 다가간다.
“어. 뭐요. 응?”
“자, 장님이네?”
“길가는 순례자인데 우물을 좀 쓰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를 지켜주시는 기사분께서 이미 허락은 받았다고 했지만 간혹 말이 너무 무례하여 여러분께 폐를 끼치지 않았나 염려됩니다.”
“아 뭐 그거야.”
“저 기사 나리 그거잖소. 변경백의 아들.”
“나이 어리면 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소만… 어쩌겠소?”
“하지만 거 마침 잘 오셨소. 지금 가재를 삶을 거니까.”
농민들은 아자딘을 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앞으로 타르키는 무례한 도발이 필요할 때나 앞으로 보내자. 아니면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이나.’
아자딘은 그렇게 다짐하고 농부들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
시냇가 마을은 약 700호가 넘는 꽤 큰 마을이었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북방에서는 성이나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크기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중부 내륙지나 남부에서 이 정도는 마을에 불과하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마을 중앙 광장에 상설 상점도 있고 마차나 말에서 물건을 쉽게 하역하기 위한 크레인 장비가 있는 교역소도 있었다.
메말라 버린 시내에서는 물이 불어났을 때는 수운을 하기 위한 설비도 보인다.
“자자. 그래, 장님인데 어떻게 길을 가고 있나?”
“저는 기적을 찾아 방황하는 순례자입니다. 삼위의 대천사의 가호를 바라며 다니고 있지요.”
“아직 젊은 나이인데 원 세상에.”
“잘생긴 친구구먼. 눈은 전쟁에서 다쳤나?”
아자딘이 마을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이 종사인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산양에게 물과 건초를 먹였다. 그러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가재를 삶고 있었다.
생선은 포를 떠서 훈제해서 보관육으로 만들 수 있지만 가재는 그렇게 하기가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삶아서 이 자리에서 다 먹어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당장 먹어야 할 게 넘치니 사람들의 인심 또한 풍족했다.
“자자, 이것 좀 들게.”
농민들은 산마늘과 산초를 뿌려둔 삶은 가재를 아자딘 일행 앞에 담아주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건 가재인가요?”
“그래. 최근 물이 너무 말라서.”
“어차피 죽어서 썩어 없어질 거, 생선은 훈제어육으로 만들고 가재는 그냥 이 자리에서 먹으려고.”
“가재 축제지 가재 축제. 다들 들라고.”
“감사합니다. 여행객을 이리도 따뜻하게 맞아주시다니 복 받으실 겁니다.”
아자딘은 공손하게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으음.”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난처해하며 아자딘 옆에 앉았다.
“사기 치는 기분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저번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이스마일은 이 상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자딘이 장님 순례자 행세를 하면 마을 사람들이 잘 대해 준다. 그러면 아자딘 또한 마을 사람들에게 정신적 부채를 짊어진다.
사람의 호의는 무상이 아니기에 자존심 강한 이는 차라리 돈으로 지불하는 쪽을 택하리라. 그쪽이 깔끔하니까.
아자딘의 방식은 전령일족의 방식이 아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휘브리스인들에게 부딪히고 그들과 얽히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전령일족들은 휘브리스인들에게 박해받기 때문에 그들을 증오하지만 아자딘은 이미 일족들 사이에서 박해받기 때문에 그에게는 휘브리스인들이나 아라가사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식에 미디암이 매료되었다는 점. 미디암이 아자딘에게 호의를 품는 것은 이스마일이 곁에서 보아도 잘 알 수 있었다.
결투에서 졌기 때문에 이 남자의 가치를 끌어올려야 자신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이 남자의 방식, 아라가사에게는 있을 수 없는 특이한 정신세계가 미디암을 매혹시킨 것이다.
‘이 남자는 이물(異物)이다. 문제는 미디암이 새로운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점이고.’
이스마일은 휘브리스인들과 함께 가재를 나누어 먹는 아자딘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
아자딘 일행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산양에 물을 먹이고 가재를 먹고 일어났다.
“가면서 혹시 배고프면 먹게.”
“상하지 않게 주의하고!”
사람들은 아자딘에게 삶은 가재를 싸주었다.
“자 그럼….”
가재를 받고 대접 잘 받은 아자딘이 일행과 함께 시냇가를 지나 언덕길을 내려간다. 그런데 아자딘이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며 멈칫했다.
“왜요?”
“아니 잠깐만.”
아자딘은 품에 넣어두었던 목함을 꺼냈다. 흑마법 재해 당시 아자딘에게 투항한 노예 여성, 아자딘이 그 아이들을 구조해주기로 약조했던 아이들의 탯줄이 담긴 목함이었다.
여기에는 여인이 적은 기록 외에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에게 받은 정보가 적혀 있었는데 아자딘은 그걸 읽어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가 그 마을이군.”
“네?”
“마을의 크기가 커져서 몰랐어. 봐라.”
700여 호나 되는 마을은 사실 작은 마을 두 개가 확장되면서 합쳐진 것이었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새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두 개의 마을이 연담해 하나가 된 것이다.
“이건… 가깝네요?”
“그렇겠지. 노예를 그렇게 멀리 데려갈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어디 찾아보자.”
아자딘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굳이 노예제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양자란 이름으로 사고파는 것은 휘브리스 내에서 보편화되어 있었다.
양자로 데려온 아이를 농장일이나 공장에 투입해 어린 시절부터 가업을 돕게 만들어 수입을 올리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들은 노예들과 확연히 다른 입장인데, 상속권이 있으며 최소한 부모로 규정된 자에게 유린은 당하지 않는다.
아예 그런 일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양자를 학대하다 걸리면 왕의 교회나 구난기사단, 어디든 간에 중죄로 다스렸다.
그렇다 해도 양자는 아동노동이라는 환경에 노출되기 쉽지만 그래도 노예보다는 법적,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요소가 더 많았다.
반대로 말하면 노예로 취급받는 이는 아무런 보호 없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아라가사의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그런 일을 당하게 할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