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44
43. 복무의 저주 5
아자딘이 분개했지만 화가 아무리 나도 가만히 있으면 1년 뒤 복무의 저주로 죽게 된다는 것엔 변함이 없다.
“결국, 살기 위해서는 두령에게 부탁해서 파직을 철회하는 것밖에 없다 이거군.”
“그, 그래. 그게 현명한 생각이야.”
“암, 그렇지. 네가 무죄임을 증명하면 되지 않을까?”
“쓰읍. 열 받네. 아니 무죄인 걸 증명 못 하면 죽으라니 말이 되냐? 참으로 사람의 의욕을 끌어올리는 데 천재적인 수단이다. 응?”
“우, 우리가 한 거 아니라고.”
“우리에게 화내지 마. 몸도 안 좋다.”
“야, 너희들은 어린 시절에 나에게 개같이 군 것만으로도 거세시키고도 남아. 응?”
“히익….”
“거세라니. 너무 잔인한 거 아냐?”
“조직에 충성했더니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동생 때문에 나까지 덤으로 죽이려 드는 판국에 내가 지금 안 잔인해지게 생겼어? 원래 나도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었어. 삼위의 대천사를 섬기는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었다고! 그런데 자꾸 이렇게 굴면 너희들이 날 냉혹하고 흉악한 살인귀로 만드는 거야!”
아자딘은 너무 화가 나서 선배인 켈리브레와 아단을 죽일까 말까 고민도 해봤다. 선배라고 해도 좋은 기억 따위는 전혀 없다. 오히려 도시락 싸 들고 쫓아가서 살해해도 이상하지 않은 원한 관계만 있을 뿐이지.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파직을 물리고 복귀를 신청하려면 일족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하리라. 게다가 여긴 마을이다. 캐러밴들이 서 있는 상업지역이라 오가는 사람들도 많다.
“으. 참자.”
“그래서 말인데 우리에게 잡혀가는 건….”
“사양하지. 네놈들의 공로가 되고 싶지 않아. 내 실력으로 돌파한다.”
“하지만 일족에게 체포 혹은 척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설마 앞으로 만나는 일족들 전부와 싸울 거야?”
“공이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우리에게 잡혀야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다른 일족들은 널 죽일지도 몰라!”
켈리브레와 아단은 아자딘을 설득했다. 하지만 아자딘은 거절했다.
“아니, 내가 무력하게 잡힌다면 두령이나 장로들이 날 인정하겠어? 자신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걸 인정할 만큼 깨어 있는 놈들이 아니야. 차라리 나 하나 죽이고 묻어 버리는 쪽을 택할걸? 그러니 난 내 발로 살라스마 지역장 앞에 출두하겠어. 그사이에 가로막는 놈들은 엉덩이를 차 주지. 생각해 보니까 일족 중에 내가 엉덩이를 차서 미안하지 않을 사람은 알디스랑 스승님뿐이야. 나머지 놈들은 상관없어! 달나라까지 뻥 차 주지 뭐!”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서로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인간 화나면 눈앞이 안 보이는 성격이구나. 큰일 났군.’
이스마일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디암은 으쓱거렸다.
“역시 그 정도는 해줘야죠.”
미디암은 어느새 아자딘을 편들고 있었다.
*********
켈리브레와 아단은 아자딘의 눈치를 살폈다.
“그, 그럼.”
“우리는 이만 보내주는 거 맞지?”
“보내주긴 하겠다만 너희들이 다른 녀석들을 모아서 다시 도전하면 골치 아플 것 같은데? 보아하니 지금 막 연락망을 통해서 나에 대한 파직령과 체포령이 내려진 거지?”
“어.”
“우린 이미 크게 다쳐서 어차피 다시 싸울 처지가 못 돼.”
“그래도 어린 시절에 날 괴롭혔잖아? 그걸 생각하면….”
이쪽도 괴롭힐 동기는 충분하다.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아단과 켈리브레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 그건 우리가 잘못했다.”
“어린 시절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봐줘라.”
“흐음. 어린 시절의 실수?”
아자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알겠어. 마침 부탁할 것도 있고.”
화덕지기 집에서 구출한 아이들을 노르트 남작부인에게 보낼 사람들이 필요했다. 아자딘이 그걸 그들에게 요구하자 켈리브레와 아단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했다간 아자딘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황제의 목소리가 널 옹호했다는 사실도 보고할게.”
“그래그래. 너야말로 전령의 귀감, 그렇지 않으면 황제의 목소리가 무리해서 그렇게 나왔을 리가 없지.”
“우리가 증언하마.”
아단과 켈리브레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아이들을 보부상 조합의 마차에 태웠다. 진심으로 저러는 건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아부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확실히 부상을 입은 저 둘은 더 이상 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아자딘은 그들을 보내주었다.
“그럼 서둘러서 일단 살라스마 지역장부터 만나자.”
복무의 저주가 걸린 아자딘은 이제 마음이 급해졌다.
“안심하십시오. 제가 빨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형님.”
타르키가 앞장서서 길 안내를 시작했다.
*********
아자딘이 사생아라 부르고 있긴 하지만 타르키는 귀족이 맞았다.
살라스마 변경백, 카젤 백작의 사생아라고 해도 타르키의 모친은 남작가의 딸이고 부유했다. 그렇지 않으면 20명 정도의 용병단을 고용해 줄 수도 없었으리라.
그러니 타르키는 다른 사생아들과는 격이 다른 위치에 있었다. 정실이 아닌 측실 태생이지만 만약 정실 태생 자식들이 다 죽기라도 한다면 그가 가주가 될 수 있다.
사생아라고 불릴 때마다 억울해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살라스마의 영향권 내에서는 관문을 쉽게 통과했다.
“나는 카젤 백작의 아들 타르키다! 급한 용무가 있으니 길을 비켜라!”
관문의 치안군도 자경단도 감히 기사인 그에게 토를 달지 않았다. 이미 용병단들을 이끌고 출병할 때 지나친 곳이라 그런지 관문의 사람들은 타르키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아 저 개새끼 또 왔네?’
‘용병들은 어쩐 거야?’
‘몰라. 어디서 마물들에게 급살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돈만 떼먹고 달아난 거 아냐?’
‘망할 귀족 사생아 새끼. 뒈지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과 관문 병사들은 내심 욕하고 있었지만 빠르게 길을 열어주었다.
“후후후. 보셨습니까? 이 몸의 신분?”
처음엔 주눅 들어 있던 타르키지만 몇 개의 관문을 자신의 얼굴도장으로 통과하고 나니 점점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편하군.”
아자딘은 그 점은 인정했다. 타르키가 사생아라는 호칭에 불만을 품는 것도 이해는 갔다.
“백성을 약탈하려던 놈이 정통 귀족에 기사라니, 말세군 말세야.”
타르키 덕분에 관문 통과가 빨라지니 자연히 속도가 오른다. 어느새 일행은 살라스마 인근 지역에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
살라스마는 약 3천 호의 시가지와 그 부속 농장들이 어우러져 있는 도시였는데 대량의 구리광산이 있어서 예로부터 번성하던 곳이었다.
그 도시 인근, 부속농장들과 마을들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자 지나가는 행인들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 행인들 수가 많아지니 자연히 상인들의 왕래 또한 많아졌다.
“…….”
아자딘은 그 행렬들 가운데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느끼고 혀를 찼다.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군. 나에 대한 척살령을 알고 있음이 분명해.’
전령일족들이 인근을 지나다 아자딘을 발견한 것이다.
“아니 이게 누구야.”
“아자딘 아니야?”
그들은 마치 친근한 사람처럼 아자딘에게 다가왔다. 아자딘보다 윗기수이지만 훈련기간에 만난 적도 없는 이들이라 아자딘은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아자딘은 조롱하려는 심산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자딘은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유명인이라 단박에 알아볼 수 있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아서 저들의 이름을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저들의 콤플렉스를 자극한 것 같았다.
“아니 이 자식이….”
“운 좋게 전령이 되었다고 너무 나대는 거 아냐?”
아마도 실력도 없는 주제에 전령이 된 녀석이라고 아자딘을 미워하는 것 같았다. 그때 타르키가 나섰다.
“어허, 뭐 하는 거냐 네놈들. 이 몸이 살라스마 백작 카젤 님의 아들인 타르키라는 걸 알고 망발을 하는 거냐?”
“…….”
“어디 비천한 상인 놈들이 감히 내 앞에서 까불지? 왜 내 일행에게 지랄이냐?”
“아, 아닙니다 어르신.”
“잘못했습니다.”
내심이야 어떻건 그들의 대외적인 신분은 상인. 기사인 타르키를 앞에 두고 사람들 앞에서 행패를 부릴 수는 없었다.
“잘못했다고 끝나면 왕법은 왜 있겠느냐!”
“…….”
“으음.”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주위를 걸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소달구지에 채소를 싣고 가는 농부들과 염소들을 끌고 가는 목동들, 농기구를 당나귀 등에 실어서 이동하는 농사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등에 광고용 깃발을 걸고 빵과 차를 파는 행상인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타르키를 죽여 버릴 수도 없는 노릇. 그들은 평범한 상인답게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배운 게 없어서 기사님의 위엄을 몰라뵈었습니다.”
“흠. 그러냐? 마침 이 어르신이 목이 좀 마른데 목을 축이게 적선 좀 하거라. 적선이 쌓이고 쌓이면 너희들도 내세에 귀족으로 태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
타르키가 넉살 좋게 너스레를 떨었다.
“…….”
아자딘과 미디암, 이스마일은 타르키를 바라보고 당황했다.
‘쓸 만한데 이 자식?’
그동안 타르키를 무시하던 아자딘이었지만 이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상당히 훌륭한 연기력이다.
“…….”
“여, 여기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타르키를 보며 보부상들은 마지 못해 품에서 돈을 꺼내어 주었다.
“영 부족하구나. 이걸로 목이나 축이겠냐만 흠. 너희들에게 뭐 많은 걸 바랄 수 없겠지. 가라. 너그럽게 용서해 주마.”
“가, 감사합니다.”
보부상들이 물러나자 타르키가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뭐야? 구경났어? 아니면 너희들도 어르신에게 적선 좀 하겠느냐?”
“아이고 아닙니다요.”
다들 길 한복판에서 행패 부리는 타르키를 피해 도망치듯 비켜섰다.
“잘하는데 사생아? 다시 봤다. 대단한 연기력이야.”
아자딘이 감탄하자 타르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뭘요. 이 정도 뜯어내서 여물값이나 될지 모르겠군요. 다른 놈들도 좀 더 뜯을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저놈은 어때요?”
“어?”
아자딘은 맞은편에서 오는 다른 상인들을 가리키는 타르키를 보며 당황했다. 이번에 가리키는 상인은 전령일족이 아니라 그냥 일반인이다.
알고 보니까 타르키는 그냥 평소 버릇대로 상인들에게 행패 부리고 진상 떨어서 금전을 갈취한 것뿐이었다. 딱히 연기를 해서 아자딘을 도우려 한 게 아니라 그냥 평소 행실이 이렇다.
‘아, 이 자식. 이거 괜히 칭찬했네.’
파직당하고 복무의 저주가 발동했다고 했을 때는 화가 났지만 기본적으로 아자딘은 신실한 삼위의 대천사 신앙자다. 본질적으로 선량한 이라 화가 가라앉은 지금, 굳이 엄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 저기 아자딘?”
“음?”
미디암이 아자딘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저쪽에….”
“아.”
아자딘은 앞쪽에 일단의 무장병력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선두에는 갑주를 갖춰 입은 젊은 소녀가 말에 타고 있고, 그 뒤에는 무장한 남녀 셋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행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다 이쪽을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